미국 '반골' 영화의 대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세상을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영화잡지에서 그의 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이 극장에 걸려있다는 소식까지 접했는데, 비록 적지 않은 나이이긴 하나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다. 더불어, 몇 가지 상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부고기사와 함께 그의 영화와 관련된 개인적인 '인연' 몇 가지를 적어둔다.  

한겨레(06. 11. 23) 미 독립영화계 거장 알트만 감독 별세

20일(현지시각)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81살을 일기로 50년간의 영화 인생을 마감했다. 알트만 감독의 영화제작사인 ‘샌드캐슬 5 프로덕션스’는 알트만이 이날 로스앤젤레스의 세드라스 시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한평생 비주류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작품상·감독상을 포함해 다섯 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6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1925년 2월20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1살 때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잠시 배우로 활동하다 5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16mm영화를 제작해, 55년까지 60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55년 만든 첫 극영화 ‘탈선자들’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눈에 띄어 히치콕의 TV시리즈인 ‘앨프리드 히치콕 제공’의 몇몇 에피소드를 감독했다.



그는 1970년 한국 주둔 미 육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삼은 블랙코미디 영화 ‘매쉬 (M.A.S.H)’로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이 블랙코미디가 알트만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한다. 이전에 자료화면을 보니까 한국전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베트남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탓에 우리에겐 다른 의미로 코믹한 영화이겠다).

그 뒤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내슈빌'(1975) 등 헐리우드의 기존 문법과 다른 영화들로 명성을 얻으며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등과 함께 70년대의 헐리우드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예술영화 전성시대가 끝나자, 알트만은 80년대 대부분을 16mm 영화를 찍거나 파리에 거주하면서 케이블 TV용 영화를 만들면서 보내다 92년 헐리우드를 풍자한 ‘플레이어’로 돌아왔다.(박현정 기자)

경향신문(06. 11. 23) 美 인디영화 거장 로버트 알트만 별세

미국 인디영화계의 대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2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알트만의 영화제작사인 샌드캐슬5 프로덕션스는 21일 알트만이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알트만이 10년전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추정된다.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알트만은 1970년대 미국 영화계의 총아였다. 이 시기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등이 한꺼번에 등장해 이전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쏟아낸 때였다. 알트만은 한국전쟁을 풍자적으로 다룬 ‘매쉬’(70), 뒤틀린 뮤지컬 영화 ‘내슈빌’(75) 등으로 기존 할리우드와는 완전히 다른 문법의 영화를 선보였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알트만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의 블록버스터가 득세했던 80년대는 시련의 시기였다. 이후 알트만은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제작환경을 풍자한 ‘플레이어’(92)로 화려한 재기를 알렸고(*내가 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알트만의 영화도 팀 로빈스 주연의 <플레이어>였다), ‘숏 컷’(93) ‘고스포드 파크’(2001) 등의 걸작을 공개하며 여전한 창조력을 과시했다.

알트만은 수많은 배우들이 나와 중첩된 내러티브를 이끌며 자연스러운 즉흥연기를 보여주는 이른바 ‘알트만 스타일’의 영화를 창조했다. 감독 이름이 하나의 스타일로 불리는 건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공인된 거장에게나 가능한 일이다(*그러한 알트만 스타일의 최고 걸작이 <숏컷>이다).



알트만은 영원한 반골이었다. 그는 “펄럭이는 미국 국기를 보면 농담 같다고 느낀다” “텔레비전이 예술매체라 믿는 건 미친 짓이다. 그건 광고 매체다”라고 말했다. 은퇴 계획에 대해 “은퇴라구? 죽음 말인가?”라고 말하던 알트만은 사망 당시에도 내년 2월 촬영할 신작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제 그 신작의 시사회는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열릴 듯하다).(백승찬 기자)

06. 11. 22-23.

P.S. 내가 본 알트만의 영화들은 주로 <플레이어> 이후 국내에 소개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숏컷>(1993)과 <패션쇼>(1994)이다(<패션쇼>의 원제는 <프레타포르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됐었다는 사실인데, 나는 두 영화를 같은 날 연이어 본 기억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종로쪽에서 상영했었고 나는 그날 알트만의 걸작과 졸작을 동시에 보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게 나만의 판단은 아니어서 일반적으로 <숏컷>이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반면에(이미지는 <숏컷>의 제니퍼 제이슨 리) <패션쇼>는 최악의 작품으로 거명된다(게다가 <패션쇼>는 마지막 장면(누드 패션쇼)에서 화면 가리개까지 둥둥 떠다녔는지라 불쾌한 감상을 안 가질 수 없었다. 나는 러시아에서야 이 영화의 노컷판을 구했다). 

모두 33편의 장편 극영화 필모그라피 가운데(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전체 필모그라피는 39편에 이른다), <플레이어>(1992) 이후에 알트만이 찍은 영화는 모두 10편이고 그 중에서 나는 5편을 보았다. 아직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듯한 <컴퍼니>는 러시아에서 본 영화이다. 어쨌거나 이젠 그의 영화들 모두가 '회고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거꾸로 되짚어가며 <제임스 딘 스토리>(1957)에까지 이르는 '로버트 알트만 스토리'의 여정을 감행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이겠다 싶다(소개되지 않은 영화가 너무 많지만 여하튼 내년은 장편으로만 치자면 데뷔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인생은 한 사람을 추억/기념하는 일만으로도 너무 짧다!..

1. 프래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 2006)

2. 더 컴퍼니 (The Company, 2003)

3. 고스포드 파크 (Gosford Park, 2001)

4. 닥터 T (Dr. T And The Women, 2000)

5. 쿠키의 행운 (Cookie's Fortune, 1999)

6. 진저브레드 맨 (The Gingerbread Man, 1998)

7. 캔사스 시티 (Kansas City, 1996)

8. 패션쇼 (Prêt-à-Porter, 1994)

9. 숏컷 (Short Cuts, 1993)

10. 플레이어 (The Player,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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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임스 딘 스토리 (The James Dean Story, 1957)

P.S.2. 잘 알려진 것이지만 알트만의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영화화한 것이다. 참고가 될 만한 자료(씨네21, 05. 03. 22)를 옮겨놓는다.

단편집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이웃사람> <목욕> 등 9편 레이먼드 카버 지음
영화 <숏컷> 로버트 알트먼 감독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선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와 잠깐 드라이브를 하고, 언제나처럼 낚시 여행을 떠나고, 이웃에 사는 부부와 저녁을 먹을 뿐이다. 그런데도 파국은 천연덕스럽게 찾아온다. 작은 실수, 미세한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이닥쳐 사막처럼 막막해진 인생을 뒤로하고 떠나버린다. 로버트 알트먼은 때로는 몇 시간에 불과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비행기 안에서 읽고 ‘레이먼드 카버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플레이어>의 성공 덕분에 알크먼은 아홉개의 단편을 골라내어 가늘지만 탄탄한 실로 꿰매었다.

 

 

 

 

<숏컷>에서 비교적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에 바탕을 둔 것이다. 클레어는 남편 스튜어트와 세 친구가 산속 계곡으로 낚시 여행을 갔다가 알몸으로 물속에 버려진 젊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들은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려면 너무 멀고 여행 첫날이라는 핑계를 들어 시체를 곁에 둔 채 낚시를 한다. 그 물로 그릇을 씻고 커피를 끓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린 클레어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감상적인 에피소드는 <목욕>. 스코티는 여덟 살이 되는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난 스코티는 그날 오후 혼수상태에 빠지고 깨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 사이 주문받은 생일케이크를 완성한 제빵사는 집요하게 스코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한다. 알트먼은 아홉 단위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서로의 에피소드에 스쳐가게 만들거나 서로 관계를 맺어주었다. 카버의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좀더 감정이 많고 좀더 설명이 많다. 카버처럼 망연하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건 알트먼이 카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버의 정수에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P.S.3. 알트만에 관한 책으론 올해 나온 <알트만이 말하는 알트만(Altman on Altman)>(Faber & Faber, 2006)과 <로버트 알트만 인터뷰(Robert Altman: Interviews)>(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00) 등이 있다. 두껍지 않은 책들이기에 소개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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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트만 감독은 처음 뵙는 분입니다.
로쟈님 덕분에 견문을 넓힙니다. 고맙습니다. 로쟈님.


로쟈 2006-1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 알트만은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놓칠 수 없는 감독 중의 한 사람입니다...

어부 2006-11-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전 <내쉬빌>을 그의 스타일의 최고로 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스트우드보다는 오래 버텨주길 바랬는데..-_ㅜ

로쟈 2006-11-2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알트만은 사실 몇 편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걸작과 졸작이 같이 들어 있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삼는 편이죠...

로쟈 2006-11-2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TV시리즈로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모두 알트만이 찍은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 종종 코멘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서재가 좀 '조용한' 편이어서 말이 없는 제가 꽤나 떠드는 사람으로 오해를 사고 있거든요.^^ 좀 진정이 되시면 알트만에 관한 '뒷얘기'도 나누어주시길...
 

조정래 선생의 신작 <오, 하느님>이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이미 지난주 한겨레의 북리뷰에서 이 작품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젠가 TV에서 본 '노르망디의 한국인 포로'를 소재로 한 소설. 한 전쟁사가가 발굴한 사진 속의 이 '한국인'은 일본군에 징집되어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2차대전시 동부전선에서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노르망디 전선에 배치되었다가 또다시 연합군의 포로가 된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한 약소국의 국민이 겪어야 했던 신산한 삶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데, TV프로에서는 끝내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공동체적 삶과 그 운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옅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최근의 문학경향을 거스르고 있는 이 경장편 분량의 소설은 이번에 전재된 것이 아니어서 내년 봄호에 나머지 절반 분량이 마저 게재된다. 아직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관련기사와 사진들을 옮겨놓는다. 이 참에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들을 훑어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적은 책들이 나와 있다(최근에야 나온 책들도 많다). 하긴, 악마들조차도 '전쟁'보다는 '프라다'에 더 관심이 있는 게 우리 시대이니까... 

경향신문(06. 11. 17) '오 하느님’ 조정래 “강대국 만행 알리고 싶었다”

소설가 조정래씨(64)가 지난 6월 장편소설 ‘인간연습’(실천문학사)을 출간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경장편 ‘오 하느님’(원고지 630장 분량)의 전반부를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했다. 하루 8시간씩 원고지 30장 분량의 소설을 쓰는 것이 평생 몸에 밴 까닭이다. 강제전향을 당한 장기수의 희망찾기를 소재로 한 ‘인간연습’을 내면서 “이제 분단문제를 끝내고 인간문제를 탐구하겠다”고 했던 그는 새 작품에서 무대를 전세계로 넓혔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SBS TV를 통해 방영된 한국 젊은이들의 인생이 소재가 됐다. 미국의 역사학자 스티븐 엠브로스의 저서 ‘1944년 6월6월 디데이’에 따르면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타해안에서 나치 군복을 입은 채 미 공수부대에 체포된 4명의 젊은이는 바로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가 1939년 만주국경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적군에 편입됐다. 그러나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투입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때 이들은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조씨의 소설 속 인물들은 미군 포로가 된 것까지는 실화와 비슷한데 미국에서 소련으로 송환된 이후 총살당한다. 스탈린이 1천만명을 숙청할 당시 5백만명이 돌아온 포로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그린 것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라면 무조건 선한 존재로 믿고 있지요. 그러나 돌아온 포로를 죽인 그들이 옥쇄를 강요한 일본군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 소설에서는 강대국이 약소국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고 소설을 읽어나가면 마음이 아플 것”이라며 “주인공의 삶이 기가 막히고 통렬해 소설을 쓰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강대국이 인류 공동의 선으로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이상일 뿐 실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소국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비극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작가로서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는 한국이 아직도 ‘당연히’ 약소국이라고 한다. 우리의 운명이 주변 4강에 휘둘리는 형편이므로 통일이 될 때만 거기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 대처할 방법은 열린 민족주의밖에 없다. “요즘은 민족주의하면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련이나 일본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우리 같은 약소국의 수세적 민족주의는 다르다”고 말한다. “북한은 핵을 폐기해야 하고 남한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과 미국·일본이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중간자로서 양쪽 입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구요.”

그의 작품계획은 통일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남북 양쪽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우상화 또는 폄하해온 여운형, 이현상, 홍명희, 김일성 등 해방공간 인물들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밝힌 글을 쓰겠다고 한다. 발표는 유고 형식을 빌리더라도 통일 이후로 미룰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2년동안 손자 세대를 위한 50권짜리 전기·전래동화 전집을 낼 계획이다.(한윤정·기자)

한겨레(06. 11. 17) ‘오, 하느님’ 또하나의 인간에 대한 탐구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타 해안에서 찍었다는 흑백사진이다. 독일(?) 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아시아인이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조사를 받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에 딸린 영문 설명은 이러하다: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적군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넷에 떠 있는 이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떤 사이트에는 그가 신의주 출신의 ‘양경종’이라는 인물이며 전쟁이 끝난 뒤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미국으로 이민했고 미국에서 평탄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역사학자 스티븐 엠브로스의 저서 <1944년 6월 6일 D-DAY>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의 포로가 된 네 명의 한국 출신 독일 병사들이 언급되어 있다. 지난해 한 방송사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추적해 보았으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스티븐 엠브로스의 책으론 공저한 <만약에1>(세종연구원, 2003)이 유일한 듯싶다).

소설가 조정래(63)씨가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전반부를 발표한 경장편 ‘오, 하느님’은 바로 이 사진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신길만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징집되어 관동군 고바야시 부대의 일원으로서 국경 전투에 투입된다. 그는 다른 조선인 동료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소련으로 끌려가며, 그곳에서 소련군에 편입되어 모스크바 사수를 위한 대독 전선에 투입된다. 거기서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신길만은 노르망디 해안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며, 다시 소련 땅으로 후송되었다가 결국 총살당하고 만다.

‘오, 하느님’은 전체가 원고지 630여 장쯤 되는 소설이며 <문학동네> 겨울호에는 우선 앞부분 절반 정도가 실렸다. 소설은 이 잡지 봄호에 뒷부분이 마저 발표된 다음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겨울호 분재분은 신길만이 소련군에 편입되어 독일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히는 부분까지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조씨의 대하소설 삼부작 가운데 일제 강점기를 다룬 <아리랑>의 뒷부분과 겹친다. 작가는 “<아리랑>을 쓰기 위한 취재가 이번 소설 집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 하느님’은 적은 분량임에도 스케일은 큰 소설이다. 무대부터가 몽골과 소련, 프랑스 등으로 다국적이다. 대초원의 전투 장면과 다국적 군대의 묘사는 이전의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들었던 규모를 자랑한다. 자연 묘사 역시 웅장하다. 가령 이러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보라와 땅에서 솟는 눈보라가 뒤엉킬 때면 그 광경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혼몽스러웠다. 그 어지럽고 숨가쁜 뒤엉킴은 마치 소련군과 독일군의 살기가 뒤엉켜 사생결단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하얗게 눈 덮인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 덮였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눈은 또 붉게 물들었다. 마치 하늘과 인간이 거대한 화폭의 추상화를 그리고 지우는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 조씨는 “소수의 강대국이 다수의 약소국민들을 괴롭힌 것이 지난 역사였다”면서 “그런 부당한 역사가 21세기에도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삼부작 이후 한동안 침묵하던 조씨는 지난 6월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을 탐색한 한 권짜리 소설 <인간 연습>을 내놓았다. ‘오, 하느님’을 연재하며 쓴 ‘작가의 말’에서 그는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라고 밝혔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6. 11. 22.

 

 

 

 

P.S. N님이 귀뜀해주신바, 엠브로스/앰브로스의 책으론 <만약에> 외에도 <대륙횡단철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이 더 번역/소개돼 있다. 더불어, 전쟁사의 세계적인 권위자 존 키건의 책들을 참조해볼 수 있겠다. 그의 <2차 세계대전>(청어람미디어, 2007)이 최근에 출간됐다.

07.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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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1-23 09:15   좋아요 0 | URL
**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에 와서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니 '책읽는 다음'의 메인으로 ''책벌레' 요한슨 밤늦게까지 책 읽는다'란 기사가 뜬다. 그 요한슨이란 스칼렛 요한슨(1984- )을 말하는데, 이름을 기억하는 건 순전히 우디 알렌의 영화 <매치포인트> 때문이다(이전에 <매치포인트>에  대해서는 <달콤 살벌한 연인>과 함께 '영화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는 방식'이란 칼럼을 인용해놓은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아서가 아니라 아지 못 보았기 때문이다. 동네 '영화마을'은 '마을'이란 이름이 멋쩍게도 이 영화를 구비해놓고 있지 않다.

 

 

 

 

필모그라피를 찾아보니까 요한슨은 <매치 포인트> 외에도 여러 영화에 출연한 바 있으며(그 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나도 본 영화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 같은 건 챙겨보고 싶지만, '한 미모' 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그런 그녀가 요즘 읽는 책이 <죄와 벌>을 비롯하여 트루먼 카포티와 로알드 달 등이라고 한다.

 
 
 
 
 
 
 
 
별거 아닌 기사이긴 하지만, 요한슨을 좋아하는 관객/독자들이 최소한 <죄와 벌>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뜻에서 옮겨놓는다. 우리식으로 하면 '최강희도 읽는다' 정도가 될까?
 
마이데일리(06. 11. 22) '스칼렛 요한슨은 책벌레!'  
 
 


최근 새영화 '블랙 달리아'(Black Dahlia)에 출연한 스칼렛 요한슨(21)은 독서에 새 취미를 붙였다. 스칼렛은 고전문학 읽는 걸 아주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그녀를 너무 지적으로 보는게 두려워 내색은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블랙 달리아>(2006)는 브라이언 드 팔마와 함께 찍은 영화이다. 연기자로서도 그녀는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듯하다)
 

하지만 영국의 생활정보사이트 피메일퍼스트에 따르면, 스칼렛은 "얘기 꺼내면 사람들이 나를 지적인체 하는 양 볼까봐 짜증이 난다"면서 "하지만 난 방금 '죄와 벌'을 읽은 참"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또 "난 밤 늦게까지 책을 읽는다. 트루먼 캐포트의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인 콜드 블러드'도 아주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전 뿐 아니라 최근에 '찰리와 쵸콜렛공장'과 같은 아동소설도 읽었다고 자랑했다.(*<죄와 벌>은 <매치포인트>를 찍을 때 읽었어야 하는 책인데, '방금'이란 게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한편 스칼렛은 '선배 우마 서먼이 가장 완벽한 몸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그 자신 날씬한 S곡선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 스칼렛은 최근 무조건 마른 여자만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추세를 맹비난했지만, '킬빌'에서 우마 서먼을 보고 '정말 놀랍고 압도당할 만한 몸매'라고 부러워했다.

'책도 읽고, 몸매도 잘 가꾸고싶다'는 그녀는 결론적으로 재색겸비의 스타가 되고싶다는 야망. 더욱이 스칼렛은 최근 "백악관에서 내가 분명히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차 미국 여자대통령의 될 꿈까지 키우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이게 '진지하게' 덧붙인 얘기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귀추'가 주목될 건 또 무언가?).(이경호 기자)
 
06. 11. 22.
 
 
P.S. 요한슨의 이미지들을 훑어봤지만 '지적'으로 보일까봐 두려워한다는 게 사실인 듯하다('요한슨'과 '책'을 같이 검색할 경우 유일하게 뜨는 건 '달력'이다). 그나마 찾은 게 영화 <매치포인트>의 스틸컷이다. 왜 지적인가? 담배를 손에 꼬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가, 책도 안 읽고 몸매도 잘 가꾸지 않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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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2 15:27   좋아요 0 | URL
오.. 진행중이시군요. 로쟈님
제 취향은 아니지만 요한슨은 매력적인 배우입니다.
찾아보면 재색을 겸비한 배우들이 있지요.
금상첨화! 하하


마늘빵 2006-11-22 15:57   좋아요 0 | URL
오홋. 의외의 이미지.

비로그인 2006-11-22 16:55   좋아요 0 | URL
완결하셨군요. 로쟈님
담배를 들고있어 지적이라? 음..


로쟈 2006-11-22 17:22   좋아요 0 | URL
담배는 일종의 (코드화된) 기호이지요...

마노아 2006-11-23 15:30   좋아요 0 | URL
전 처음에 그녀의 나이를 보고서 놀랐어요. 이렇게 어리다니..했죠^^;;

로쟈 2006-11-24 20:55   좋아요 0 | URL
우리 나이와는 좀 다르니까 신체연령은 24-5살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뭐, 그래도 젊긴 하네요...
 

필요 때문에 (연쇄)살인과 대량학살에 관한 책들을 들춰보게 됐다. '살인'에 국한하자면, 이 분야의 책들은 처음 찾아보게 됐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책이 콜린 윌슨의 <잔혹>이나 <살인의 심리> 같은 책들이니까 좀 오래 묵긴 했다. 도서관에서 '살인'이란 검색어로 뜨는 책들 가운데 몇 권에 관심이 갔지만 모두 대출중이었다.

 

 

 

 

그 책들이란 게 브라이언 이니스의 <프로파일링>(휴먼&북스, 2005)이나 <살인의 현장>(휴먼&북스, 2006) 같은 것이었는데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휴먼&북스, 2005)와 함께 '범의학과 과학수사 시리즈'를 구성하고 있었다. 한데, 모두 대출중. <살인의 현장>은 원서('Body in question')마저 대출중이었다.

책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지난 7월에 나온 이 책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그다지 높지 않은 걸로 보아 대중적이지는 않은 이 책에는 일부 매니아 독자층이 있는 듯하고, 그들은 아마도 CSI 시리즈의 매니아층 일부와 겹치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추정이다. 하는 수없이 방향을 틀어서 로버트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를 대출할까 했더니 이마저도 이미 대출중. 나는 간신히 이 책의 구판인 (미래사, 1994)을 '꿩 대신 닭'으로 대출했다. 하지만, 구내서점에 가서 비교해보니까 분량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지라(바다출판사판은 435쪽, 미래사판은 268쪽이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아예 구입을 했다(원저의 제목과는 무관한 국역본의 제목은 물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본딴 것이리라).

알라딘의 소개에 따르면, "1994년 출간되었던 의 개정증보판이다"이라고 하는데, 똑같이 1992년에 나온 원저를 대본으로 하고 있으므로 '개정증보판'이란 표현은 국역본에만 해당한다. 그러니까 짐작엔 미래사판이 축약번역판인 모양이다. 한데, 이 '축약본'의 서두에도 들어가 있는 10페이지의 사진자료들이 '개정증보판'에는 왜 빠진 것인지? 더불어, '개정증보판'에는 "33년의 경찰 재직 기간 동안 시카고의 거리에서 여러 괴물들과 싸웠던 내 절친한 친구이자 처남에게 바칩니다"란 헌사도 빠져 있다(처남이 유감스러워하지 않을까?). 게다가 저자의 '감사의 말'까지.

물론 '축약본'도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테니까..."라는 에피그라프가 빠져 있는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인용한 것이면서 책의 원제를 따온 대목이기도 한. 요컨대, 94년의 초판에서 2004년의 개정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처남'이요, 얻은 것은 '괴물'이 되겠다.  

로버트 레슬러(1937- )의 이 저명한 책에 대해서 내가 숙지하지 못한 것은 개정판이 지난 2004년,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겠다. 뒤늦게 알아보니 이 '전설적인' FBI 수사관이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나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 같은 말을 처음 창안한 사람이다(그러니까 그는 '연쇄살인범'의 '아버지'이자 '프로파일링'의 '대부'이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의 작가 토머스 해리스 또한 그 소설들을 쓰기 전에 로버트 레슬러에게 경험담을 실제로 듣고 참고했다고 하니까 더 말할 것도 없다. 재작년의 한 리뷰기사를 읽어본다.

 

 

 

 

경향신문(04. 08. 21) 유영철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구속기소된 시점에서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라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미국 연방수사국(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 그는 범죄 현장 조사·감식을 통해 범인의 프로필을 추적하는 수사기법인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범인상 추정)’을 처음 창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레슬러는 엽기적 살인이 발생한 현장 분석에서부터 시작해 교도소에 수감된 살인마들과의 면담을 통해 살인자들의 공통점과 범죄 심리를 해부하고 있다. 그는 1,488차례 방화하고 하룻밤에 6명의 여성을 살인한 데이비드 버코위츠, 마음에 둔 여인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마구 흉기를 휘두른 뒤 토막낸 듀안 샘플즈, 살해한 뒤 시체를 욕보이는 시간(屍姦)을 저지른 연쇄살인마의 대명사 ‘데드 번디’ 등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레슬러는 인터뷰 과정에서 니체의 이 말을 유념하며 냉철한 이성을 통해 ‘괴물’들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연쇄살인마들은 통념처럼 가난한 결손 가정 출신이 아니며 오히려 중산층 이상 출신들이 많았고, 또 80~90%가 어린 시절 ‘냉담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으며 성적 도착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연쇄살인범들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의 ‘충족되지 않은 경험’이 그 환상의 일부가 되어 다음 살인을 부추긴다. 저자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용어의 뒤에 숨어 있는 뜻은 진짜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인육을 먹었다’는 등 유영철의 진술 하나하나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 때에 나온 이 책은 유영철의 심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엽기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책은 아니다. 최근에야 범죄 프로파일링을 시도한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 관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김종목 기자)

06. 11. 21.

P.S. 레슬러의 책으론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외에 <범죄분류입문>, <이성 살인: 패턴과 동기> 등의 공저가 있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 나머지 책들도 소개됨 직하다...

 

 

 

 

P.S.2.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물만두님이 추천해주신 <마인드 헌터>(비채, 2006). 소설인 줄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FBI의 베테랑 수사관이었던 존 더글러스의 회고록이라고 한다. <마음의 사냥꾼>은 그 구판이다. 내친 김에 떠올리게 된 책은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시울, 2001). '범죄소설의 사회사'가 부제인데, 보관함에 넣어놓은 채 몇 년이 지난 듯하다.

그리고,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향수>(열린책들, 2006). 나는 아주 오래전 초판 번역으로 읽었는데(기억에 하룻밤에 읽은 책이다), 최근에 영화화되어 곧 개봉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들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나는 <텍사스 살인마> 같은 영화를 취향상 보지 않는다) <향수>의 경우는 이야기도 되새겨볼 겸 한번 보고 싶다. 비록 나의 관심은 이런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에 더 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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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21 20:08   좋아요 0 | URL
비교해서 볼 책으로 다시 출판된 마인드 헌터를 알려드립니다^^;;

로쟈 2006-11-21 20:10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인 줄 알았는데, 회고록이군요.^^

짱꿀라 2006-11-22 00:56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1년전에 본 것 같은데 너무 재미있게 봤거든요.

로쟈 2006-11-22 09:48   좋아요 0 | URL
이미 읽으셨다면, 이 '소개'는 잉여적인 것인데요.^^
 

지난주에 장정일의 신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 대한 소개 페이퍼를 올리면서 인터뷰기사 한 꼭지를 옮겨놓았었는데, 내친 김에 북데일리에 실린 인터뷰 또한 옮겨놓는다. 대충 읽어보고 말 생각이었지만 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장정일만큼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나도 책에 대해 아는 체를 많이 하다보니 간혹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오해받곤 한다.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평소에 나는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자책하며 사는 편이다(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정하는 게 사실은 더 많지만). 마일리지도 쌓인 김에 이번에 <장정일의 공부>와 함께 몇 권의 책을 더 주문했는데(책은 이미 학교로 배달되었지만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분량상 <공부>를 제외하면 내가 빨리 완독할 수 있을 책은 <언어학과 정치>(역락, 2006) 정도이겠다.

 

 

 

 

거기에 현재 읽고 있거나 대출해놓은 책들이 10여권. 강의준비나 필요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또 두서없이 그만큼이다. 지난 주말부터 가방에 들어가 있는 책은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2006)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이고, 집에 와서 잠시 펼쳐본  책이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사, 1995), 그리고 엊그제부터 행방을 찾고 있는 책이 비릴리오의 <정보과학의 폭탄>(울력, 2002)이다(나는 국역본과 함께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 영역본도 구했다).

 

 

 

 

전업작가라면 나름대로 책읽기에 질서를 부여해서 '로쟈의 공부'라도 내놓을 준비는 돼 있지만 장정일만큼 쌓아놓은 공덕이 없기에(내가 읽은 '장정일' 가운데 베스트 네 권이다. 나는 그의 <삼국지> 등을 읽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그러니 울적하다. "다 읽으면 굶기 때문이죠." 더불어 아무리 부지런히 읽는다고 해도 이젠 책들을 다 읽을 수 없다. 그러니 막막하다.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말하건대, "저, 독서광 아닙니다!"

북데일리(06. 11. 20)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지난 2월.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소설가 장정일(45)이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학교 측은 “교육부 학력 규정상 장 씨를 전임교수로 임용할 수 없어 초빙교수로 채용했지만, 임기를 마치면 발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음란물 비시에 휩싸여 구속되기도 했던 ‘화제의 작가’ 장정일. “나는 문학이 직업이 아니라면 구역질이 난다”라고 스물한 살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그는 시인도 됐고, 소설가도 됐고 교수까지 됐다. 모두 ‘책’ 덕분이다. 밤낮으로 읽은 책 이야기. 그가 쓴 6권의 <독서일기>는 독서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설적인’ 책이다. 책 전문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의 진행자로 발탁 되었을 때 그의 어눌한 말솜씨에 불만을 갖던 사람들도 “그럴 만하다”며 독서력만큼은 인정했다.

학교에 ‘덜’ 다닌 대신 ‘더 많이’ 읽은 장정일. 그가 <장정일의 공부>(이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라는 책을 펴냈다. 이번에는 읽은 책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뾰족한 일침까지 던졌다. 관심분야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책에 미쳐있는 그를 간곡한 설득 끝에 ‘어렵게’ 만났다. 정면의 시선을 던지지 못하는 그의 수줍음 사이로 마흔 다섯 해의 기나긴 책의 역사가 사라졌다 피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 시인, 소설가로 살다가 직장인이 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백수로 있는 것만 못 하죠. 작가는 24시간 365일이 자유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학생들을 위해 내 삶을 쪼개야 하니까 작가가 낫지요”

- 그 좋은 자유를 포기한 것이나 나고 자란 대구를 떠나 서울 살이를 시작한 것이나 자신에게는 큰 변화일 텐데요. 대구와 서울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서울은 재입성이에요. 90년도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사 왔다가 96년도에 다시 대구로 내려갔죠. 그리고 10년 만에 올라 온 거에요. 대구와 서울을 굳이 비교하자면 도시와 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사회에서는 ‘은거’ 에 비할 수 있는 지방생활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어요. 인터넷, 신문. 아무것도 없는 ‘은거’가 불가능한 시대죠. 저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면 꼭 서울살이를 해보라고 해요.

사실, 대구에 가도 서울 생활하고 비슷하거든요. 그럴 바에는 대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보는 게 경험상 낫다는 거죠. 젊은 작가라면 특히, 대도시 생활을 겪어 봐야 해요. 촌으로 가겠다는 젊은 작가들한테는 나이 50, 60되서 가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대도시에서 생활해 보라고 말해요. 대도시 문명과 호흡하면서 글감과 문젯거리 같은 것들을 만나봐야 해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외국 생활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누구든 문명에 노출 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은거의 장점도 살리지 못할 바에야 중소도시 보다는 대도시에서 살아 보는 게 경험상 좋다는 거죠”

“지금은 민주주의 아닌, 과두제”

- <독서일기>와 <공부>의 공통점이 있다면 역시, ‘책’입니다. 책읽기라는 것은 마흔 다섯이 된 지금의 자신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독서일기>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면 <공부>는 ‘책 속에는 길이 없고, 책과 사이사이에 난 길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실, 책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못해요. 만약 길이 있다면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이겠죠. 길은 스스로 만드는 거에요. 텍스트를 가지고 콘텍스트 속에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겁니다. <독서일기>는 책이 먼저 독후감이 뒤에 있는 책이지만 <공부>는 반대로 관심 있는 테마를 정한 후 관련된 책을 읽은 것 입니다. 책이 먼저가 아니라 뒤에 선택 된 거죠.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책을 읽는 이유를 물으면 저는 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교양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시민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공부’하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는데 너무 입시위주의 공부를 해서 그런 거고, 공부는 평생 함께 가야 할 좋은 친구입니다. <공부>는 나이 마흔 다섯 된 제가 공부라는 게 참 재미있다고 말하는 책이에요”

- '책 읽기를 통해 스스로 길을 만든다'는 말씀에서 ‘길’이 의미하는 것은 다른 텍스트로 옮겨 가는 길이 아니라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같습니다. '비행기의 1등석에 탈 수 있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없지만 3등석 밖에 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국경의 벽은 높다'며 현 사회를 ‘과두제’에 빗대는 등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도 쏟아 내셨는데요.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미, 과두제에 들어갔죠. 미국도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과두제란 특권층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나눠 갖는 시대죠. 프랑스 혁명 이후 세금 내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잖아요. 지금이야 형식적으로 1인1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돈 있는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선거비용을 많이 낸 사람이 당선확률이 높고, 돈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들이 법을 만듭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속게 되죠. 정치권력, 자본주의에 휘둘리기 쉬운 사람,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단돈 몇 천원만 사기 당해도 속았다고 분해하면서 책을 안 읽는 다는 건 문제죠. 엠마뉘엘 토드, 촘스키 모두 ‘책 읽는 능력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말을 했습니다.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고 보다 철저히 기업과 정치를 감시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소수종파의 문제 아니다”

- 아직도 여호와의 증인을 믿고 있는지요. 본문에 보면 '학력이 중학교 졸업밖에 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당시에 치러지던 고등학교의 군사훈련(교련)을 피하고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1만 명의 신도를 감옥에 보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해온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 유일하다'고 밝히셨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사이비로 지탄 받아온 것. 대체복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시비라고 지적한 개신교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까?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18세에 신앙을 버렸어요. 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양심적 병역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어느 종교든 간에 살생, 살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종교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이는 한국 종교의 현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나는 양심에 의해 살인은 못하겠다’고 하고 ‘그러니까 양심적 병역대체를 하게 해다오’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게 당연 한 건데. 우리나라 종교는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이 소수종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 겁니다. 또 불합리 한 건 종교 안에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군대나 살인문제에 대해 평신도가 고민을 하면 감옥에 가고 성직자는 면죄가 된다는 거에요. 성직자라면 평신도를 위해 발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고민에서 벗어나 있어요. 성직자라고 면죄 되어서는 안 되죠”

- 40년간 문학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를 향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동문 오에겐자부로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한 것은 아닌지’라는 반문을 던지셨습니다. 문학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인문, 교양 분야의 책들로 포진되어 있는 <공부>를 보면 스스로도 문학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최근 20년간 문학작품을 안 읽었다고 합니다. 다카시는 21세기 교양의 총체는 자연과학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은 늘 사회 현실과 조우했지만 어느 날 그게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일본 문학이 언젠가부터 자아나 내면도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문학을 안 읽는다고 해요. <문학의 종언>에서 하는 얘기가 그런 겁니다. 작가들이 점점 사회와 괴리 될 때 문학도 독자와, 사회와 끊어진다는 거죠.

문학이 살아나려면 내면에서 벗어나 사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옛날 시인, 소설가들에게 사회는 “여기 앉으세요”라며 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그건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말을 듣고 싶다”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아요. 그건 작가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작가도 한국사회에 대해서 발언하지 않죠. 이렇게 사회에서는 멀어지고 내면 도피나 자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니까 ‘미래파’라는 시가 나오는 겁니다. 작가들도 내면 도피에서 벗어나서 사회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저는 종종, 작가들은 ‘야반도주’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야반도주’는 내면 도피 문학을 말합니다. 작가는 사회에 빚이 많습니다. 그러니, 빚지고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책은 반드시 도서관에서 읽은 후 구입”

-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다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빌려 읽는다 해도 워낙 오래 된 책탐이니 모은 분량이 엄청나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읽습니다. 책은 꼭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사요. 신간은 도서관에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3달 정도 늦게 사게 되지만 그래도 읽어 보고 삽니다. 이런 구매법을 권해주고 싶습니다. 도서관, 출판계 모두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소장권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5년 전에 중학교 때부터 모았던 책을 헌책방에 모두 내다 버렸거든요. ‘나는 왜 이렇게 살까’라는 자책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건 아마 모든 수집광, 마니아들이 한번쯤 겪는 관문일 거예요. 다 내다 버리고 ‘재생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전에 집에 쌀이 떨어졌는데 한 선배가 라면 사라고 돈 3만원을 줬어요. 그런 선배를 참 좋아 하는데 “지금 무슨 글 써?”라고 묻는 선배보다 “너 요새 먹고는 사나? 돈은 있나?”라고 묻는 선배가 정말 좋은 선배에요. 글이야 다 알아서 쓰니까. 아무튼 그 선배가 준 돈 3만원으로 쌀을 안사고 교보문고 가서 책을 사버렸죠. 그러면서 자책했어요. “나 정말 왜 이러고 살까” 결혼기념일에 아내 선물 사줄 돈으로 책 사버리고. 그러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귀한 책도 많았고 도서관이 안 부러울 만큼 갖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싫어서 다 갖다 버렸어요. 결국 재생의 길을 걷지 못한 거죠. 지금 다시 사 모으고 있으니까“

- 아직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 저는 아직 그 수준이 되려면 먼 것 같습니다. 책 읽기 전에 손을 씻는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특별한 버릇 같은 것이 있나요. 접는다거나 줄을 친다거나 포스트잇을 붙인다거나....

“그런 시기가 마니아들에게는 꼭 한 번씩 온다니까요.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웃음) 시기야 다 다르겠죠. 책은 사면 커버부터 버려요. 책 읽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책은 이방 저 방에 두고 오가며 읽어요. 한 가지 테마를 정해 놓고 10권 정도를 동시에 읽는 편입니다. 그래야 시너지가 생기거든요. 관심 있는 싶은 주제는 그렇게 접근해요. 접거나 줄치지는 않아요. 읽으면서 파악하려고 노력해야지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면 거기에 묶이죠. 두 번, 세 번 다시 읽더라도 그건 좋은 독서법이 아니에요”

- 독서광들이 정말 어려워하는 질문이지만, 빼놓고 싶지 않은 질문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책이 있다면.

“책 많이 읽은 사람들은 그 답을 뽑아 낼 수가 없어요. 그래도 말하라면 카프카에요. 젊은 시절 무척 좋아했죠.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을 권해주고 싶고....또....아! KBS 박성래 기자가 쓴 <레오 스트라우스>(김영사. 2005)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에요. 제가 한겨레21에 그 책 서평을 쓰면서 “이 책을 읽거나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 아는 것은 독도를 얻는 것과 똑 같다”고 했어요. 레오 스트라우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합니다. 그가 쓴 <마키아벨리>(구운몽. 2006)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 소설 집필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부>를 바탕으로 2003년 대선 이후의 한국 풍속을 다루는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 시인으로 데뷔해 교수의 자리에 오기까지 글쟁이로, 독서광으로 20년을 보내셨습니다. 꿈을 이룬 지난 시간 동안 행복했나요.

저는 독서광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너무 안 읽으니까 그런 말을 듣는 것뿐이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 달에 10권 읽는 건 기본 아닌가요. 저는 조금 더 읽었을 뿐이에요. 모두가 그렇게 읽었다면 제가 독서광이 될 이유가 없었겠죠. 행복요? 음....행복했죠. 지금도 행복하고. 정규교육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했어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땄다면 세상을 뀄다는 자신감에 아마 책을 안 읽었을 거예요. 조금 배웠기에 많이 읽어야 했고, 덕분에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김민영 기자)

06. 11. 20.

P.S. 결론은 이렇다. "기본을 갖추자!"

P.S.2. 생각이 난 김에 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도 다시 읽어보록 한다. '정규교육'을 못 받은 그에게 삼중당문고는 그의 '학교'였고 '교사'였으며 또한 '친구'였으리라.

삼중당문고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잃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 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 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왔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빳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 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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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11-21 03:57   좋아요 0 | URL
로쟈님, '다 읽으면 굶기 때문'이라... 가장 현실적인 답이네요.
전 '다 읽으면 폐인 되기 때문' 을 생각했었는데...

기인 2006-11-21 07:03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라주미힌 2006-11-21 09:05   좋아요 0 | URL
대단하고 흥미롭네요.
요즘 레오스트라우스 읽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비로그인 2006-11-21 10:05   좋아요 0 | URL
장정일씨가 언젠가 말했지요.
"동사무소에 취직하여 퇴근후 맘편히 책만 읽으며 살고싶다"
책을 많이 좋아하는 분인가 합니다.


로쟈 2006-11-21 11:45   좋아요 0 | URL
가을산님/ 아마 굶기 이전에 쫓겨날 거 같습니다.^^
기인님/ 출근하셔야죠!
라주미힌님/ 레오스트라우스의 책은 저도 소개만 하고 들춰보진 않았는데 읽어볼 마음이 드네요.
hansa님/ 요즘은 9급도 쉽지 않다지요...

뽀르르 2008-08-15 14:40   좋아요 0 | URL
장정일씨 검색하다 읽어보고 글 남깁니다.
집에도 빛 바랜 누런색의 삼중당문고가 몇몇 보이네요.
단어 단어 한자로 쓰여진게 많아서 편히 읽을수는 없지만
작은 크기는 정말 매력적이네요. 그리고 의외로 세로 인쇄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네요.

거의 매일 저공비행에 들어와 독서 지침으로 참고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