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신문에서 팔레스타인의 여성작가 사하르 칼리파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성은 익히 잘 알려진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작가, 더 나아가 '여성작가'에 대해서 별반 아는 바도 들어본 바도 없기에 주목해서 읽게 되었고, 더불어 옮겨놓을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사하르 칼리파의 책은 다행히도 국내에 번역/소개돼 있다. <가시선인장>(한국외대출판부, 2005)이 그것으로 팔레스타인/아랍 문학 전문가인 송경숙의 교수의 번역이다. 더불어 알게 된 것이지만, 같은 팔레스타인 작가로 갓산 파나카니의 작품들과 그 연구서까지 출간돼 있다. 적어도 맛보기는 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일보(06. 11. 22) 사하르 칼리파 "절망에 저항하는게 지금의 희망"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중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남성과 이스라엘, 모두로부터요. 그러니 여성 해방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동시에 모색해야 하는 게 제 글쓰기의 운명인 셈이죠.”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여성 작가 사하르 칼리파(65)가 처음으로 내한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대표 정희성)가 ‘고통의 기억과 새로운 희망의 연대: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을 주제로 21~29일 개최하는 ‘제13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941년 요르단강 서안의 나불루스에서 1남8녀의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난 그는 아랍 전통에 따라 어린 나이에 강제결혼을 하면서 아랍 여성의 부조리한 인간조건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러나 13년에 걸친 도박중독자와의 비참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은 그에게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결실 또한 맺게 해주었다. 처절한 투쟁 끝에 이혼한 후 두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98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여성학 및 미국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나불루스와 가자 지역의 여성문제 연구소에서 일하며 여성 운동과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지금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여성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일부 여성들에겐 고등교육과 사회참여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대다수 여성들은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여성들이 절망으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근본주의가 그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거죠.”
<가시 선인장>(1976), <해바라기>(1980), <유산>(1997) 등의 소설을 통해 민족해방 투쟁과 여성문제를 동시에 조명해온 사하르 칼리파는 ‘아랍 여성들을 망치는 독’이라는 비난에 시달리며 무슬림과 좌파 작가들의 공격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독일어권에 번역돼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의료보장제도, 교육의 기회 보장 등은 인간 권리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것을 동서(東西)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 가치들의 근원이 어디든 상관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이스라엘에서 온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국내에도 소개된 <가시 선인장>(송경숙 옮김, 한국외국어대 출판부)은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의 패전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놓이게 된 1970년대초의 나불루스를 배경으로 삼아 이스라엘 점령이 팔레스타인 사회에 가져온 구조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사회의식과 행동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그이지만, 해방에 대한 전망을 묻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든 사람이 좌절을 얘기합니다. 저 역시 낭만적 의미에서의 희망은 믿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리 현명하고 유능해도 거대한 미국과 싸워 이길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절망적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 저항하도록,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자유롭게 길거리를 오가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보며 너무 행복하고 부러웠다”는 그는 21일 연세대에서 ‘아시아 여성문학 심포지엄’을 가진 데 이어 22일 원광대에서 ‘팔레스타인 작가 초청 문학 강연’을 한 후 23일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다.
06.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