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에 나온 역사서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탐史>(푸른역사, 2007)이다. 공식 출간일자는 2월 9일로 돼 있지만 책은 그보다 조금 일찍 나온 듯하다. 제목인 '탐史'는 '역사를 탐하다' 내지는 '역사를 탐구하다'란 뜻으로 지은 듯한데, 유치찬란이다.

제목으로 책을 골랐다면 전혀 주의를 두지 않았을 터인데, 역사가들의 고백과 대담이라는 게 눈길을 끈다. 원저를 보니 'The New History: Confessions and Conversations'(2002)로 멀쩡한 제목이 붙어 있는데, 왜 '새로운 역사학'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요즘 다소 남용되는 듯한 '새로운 역사학'이 너무 식상해서? 그렇다고 '탐史'라 붙일 것까지야...

그런 불만을 제쳐놓으면 책은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란 스타일 말이다. 분량도 600쪽이 넘으니 흡족하다, 라고 적었다가 원서의 쪽수를 확인해보니 고작 256쪽이다. 아무리 불가피하다고는 해도 607쪽으로 두 배가 훨씬 넘게 불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독서의 편의성을 '너무' 고려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니 별로 흡족하지 않다.

여하튼 소개에 따르면, "20세기 후반의 이른바 '새로운 역사학'을 선도한 역사가 9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학계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거기에 "그들의 출신, 유년 시절, 역사학을 하게 된 동기, 지적 영향을 준 책 등 배경적 측면에서부터 저작의 의도, 내용상의 의문과 모순, 다른 문화에 대한 반응, 학문의 기본 방향 등 학문 전반을 보는 관점과 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담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프랑스 역사학자들의 문집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에코리브르, 2001)와 겹쳐 읽는 것도 흥미롭겠다.

 

 

 

 

'새로운 역사학' 혹은 '신역사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짐작으론 미시사, 지성사, 문화사, 탈신민주의 등을 트렌드로 하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때 '포스트모던'의 상대가 되는 것은 E. H. 카로 대표되는 '모던' 역사학이다. 말하자면, '굿바이. E. H. 카'가 이들의 구호인 듯싶다. 그리고 그런 관점의 역사라면 국내에서도 적잖은 연구논저들이 출간돼 있다. <탐史>의 역자가 엮은 <미시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0)를 필두로 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푸른역사, 2000),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푸른역사, 2002),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2006) 등이 그 예들이다. <탐史>에서 다루어지는 역사학자들의 작업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럼, 그 9인의 역사학자들은 누구누구인가? 알라딘의 소개를 번역/소개된 책들과 함께 나열해본다.

1 잭 구디(Jack Goody):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일류학자로, 영국 켐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대학의 펠로이다. 저서로는 <아프리카의 기술 전통 및 국가>, <야성의 순치>,  <생산과 재생산>, <유럽의 가족과 결혼 발달> 등이 있으며 편저로 <정통사회의 교육>이 있다.

 

 

 

 

2 에이사 브릭스(Asa Briggs): 영국의 역사학자로 빅토리아 시대 전문가이다.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다.

3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 1959년 미시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6세기 프랑스사를 연구하는 역사가이며,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 및 인류학적 역사학을 주도하여 널리 알려진 학자이다. 2004년 현재 프린스대학교 역사학 석좌교수(Henry Charles Lea Professor of History)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근대 초기 프랑스의 사회와 문화 (Society and Culture in Early Modern France)>, <변두리의 여성들, 17세기 세 명의 삶(Women On the Margins, Three Seventeenth Century Lives) 등이 있다. 


 

 

 

 

4 케이쓰 토머스(Keith Thomas): 역시나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은 듯한 영국의 역사가. 대표작은 <종교와 마술의 몰락>(1970/1991)인 듯하다.  

5 다니엘 로슈(Daniel Roche): 프랑스의 역사가. 국내엔 <지방의 계몽주의>가 번역돼 있다.

 

 

 

 

6 피터 버크(Peter Burke): 1937년 런던 태생으로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2006년 현재 케임브리지대학 이매뉴얼 칼리지 교수(문화사)로 재직중이다. 주로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둘러싼 방법론적인 접근과, 르네상스에서 프랑스혁명에 이르는 근대 초기 지식인들의 문화적 동향을 면밀히 파악한 저작들을 집필해 왔다. 지은 책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와 사회>, <역사학과 사회이론>등이 있다.


 

 

 

 

7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193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필립스 아카데미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 기자를 역임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은 책으로 <고양이 대학살>, <책과 혁명>, <앙시앵 레짐 시대의 문학적 지하세계>, <조지 워싱턴의 틀니> 등이 있다.


 

 

 

 

8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 193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1961년 피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0년부터 1976년까지 볼로냐 대학교 조교수를 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는 레체대학교에서, 1978년에서 1988년까지는 볼로냐 대학교에서 정교수로 근대사를 가르쳤다. 1988년부터 미국 UCLA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구의 프랭클린 D. 머피 석좌교수로 있다. 2002년부터는 UCLA에서 연구년을 받아 이탈리아 시에나 대학교와 3년 계약을 맺고 근대문화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치즈와 구더기>, <니코메디즘>, <신화.상징.실마리>, <밤의 이야기>, <재판관과 역사가>, <어떤 섬도 섬이 아니다> 등이 있다.


 

 

 

 

9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 1940년 영국 랭가셔의 올덤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1965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정치학과와 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크리스티스 컬리지의 특별 연구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울프슨 문예상을 수상한 <근대 정치 사상의 토대(The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 <의미와 컨텍스트>, <철학, 정치 그리고 사회> 등이 있다.

 

 

 

 

저명한 행동주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와 성이 같은 퀜틴(켄틴) 스키너는 국내에 <현대사상의 대이동: 거대이론에의 복귀>(강원대출판부, 1989)의 편자로 처음 소개됐다. 이후 강정인 교수 편역의 <마키아벨리>(문학과지성사, 1993)에서도 이 정치사상사학자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시공사, 2001)는 그의 저작이며 주저인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1>(한길사, 2004)도 부분적으로 번역됐다. 논문 모음집인 <의미와 콘텍스트>(아르케, 1999)는 그의 정치철학과 정치사상 연구에 대한 평가와 쟁론을 담고 있다(*거기에 보태어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푸른역사, 2007)이 새로 출간됐다).

07. 02. 01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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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7-02-01 22:32   좋아요 0 | URL
오호호. 진행중이지만.. 저 두번째 칸 세 권 책 전부 있고, 읽었어요. 뿌듯뿌듯... ^^;(로쟈님 서재에서 이런 일 처음이라 자랑중.. ㅋㅋㅋ) 근데 역사학 관련 시간 소식도 늘 이 서재에서 들으니 좋기도 하고, 좀 거시기하기도 하고.. ^^ 첫번째 책도 관심이 가네요...

로쟈 2007-02-01 23:51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클리오님의 전공이 역사시군요.^^ 내용은 더 채워넣다가 날려버리는 바람에 좀 지지부진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관심도서이지만 제목이 제 취향이 아닌데다가 분량이 좀 부폴려진 게 불만스럽네요...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제목 때문에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책은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비채, 2007). 분류상 '외국문학'이고 '미국문학'이고 '추리문학/미스터리'이다. 이런 부류의 책에 별로 흥미를 갖고 있지 않은데 (물만두님보다 먼저!) 소개를 거들게 된 건 순전히 제목에 대한 흥미 때문이다. <살인의 해석>?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대한 비틀기 아닌가.

책에 대한 정보들을 읽어보니, 일단 저자가 흥미롭다. "프린스턴 대학 재학 당시 졸업논문으로 프로이트를 택했고, 줄리아드 연극원에 진학해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 2007년 현재 예일대학 법과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살인의 해석>, <사법부에 의한 혁명 - 미국 헌법의 구조>, <시간 속의 자유 - 입헌 자치 정부 이론> 등이 있다"고 소개돼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멀쩡한 법학자인데다가 명문 법대 교수가 아닌가(그의 아내마저 직장 동료라고 한다. 남편 이상으로 유명한 에이미 추아이다). 웬 스릴러? 아무래도 '문학적 끼'를 주체하지 못했나 보다. 미 헌법 전문가로 돼 있는데, 아무래도 전공은 형법쪽이어야 했을 거 같고.

더 찾아보니 <살인의 해석>은 그의 첫 소설이다. 원저는 작년 9월에 나왔으니까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한국판이 나온 셈(이 순발력이라니!). 거의 '동시출간'이라고 봐야겠다. 일본소설들의 경우도 그렇거니와 이런 장르소설들에 오면 '문학의 위기'라는 게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엄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그 위기는 그냥 '특정한 한국문학의 위기'로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고(물론 고진이 말하는 진지한 '근대문학'이라고 할 때는 사정이 또 다르지만).

소개에 따르면, "미국의 법률학자 제드 러벤펠드가, 20세기 사상가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바탕으로 쓴 범죄 추리극.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꼼꼼히 취재해 프로이트와 융을 살인사건에 개입시켰다. 20세기 초반 뉴욕의 풍경이 소설 속에서 생생히 묘사되며,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이 이야기 속에 아로새겨진다.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실제로 미국을 방문한 해인 1909년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당시 뉴욕은 건축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닮은 마천루들이 매일 경쟁하듯 세워지고 있었다. 그 고층 빌딩에서 어느 날 미모의 여성이 살해되고, 프로이트가 그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Jed Rubenfeld's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is one of the new historical fiction titles that publishers and booksellers predict will be hot this fall.

그러니까 프로이트의 이론을 살인 해석에 갖다 쓰는 게 이나라 프로이트가 직접 등장하는 소설인 것. 현지에서 나온 한 서평을 보니 '프로이트가 햄릿을 만났을 때'란 제목을 달고 있다. 서평이라기보다는 작가 탐방 같은 기사이군.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기사부터 쉬엄쉬엄 읽어두면 되겠다.

 The Scotsman Sat 29 Jul 2006

When Freud met Hamlet

JACKIE McGLONE

JED RUBENFELD WEAVES HIS SILVER BMW SPORTS car expertly around the wide streets of New Haven, Connecticut, sighing heavily and murmuring that he wishes he could leave the country over the next few weeks. Certainly, he could afford to escape. The law professor at Yale University has recently received a whopping seven-figure sum for the sale of his first novel. He refuses to confirm the exact figure, but it is thought to be a US record.

Running away is not an option, however, since Rubenfeld becomes deputy dean of the law faculty at Yale in the autumn and his book,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is due out here next month and in September in the US. Already something of an international publishing phenomenon, the novel has been sold in 28 countries and his publishers have flown in fleets of booksellers to meet the "spectacularly entertaining storyteller". Soon, he faces a long, gruelling book tour across the States.

For once, though, the hype is not exaggerated. Rubenfeld's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is a classy, literary crime novel that's also a thrilling, heart-in-the-mouth read. Set in early 20th-century Manhattan, it takes its inspiration from Sigmund Freud's visit to New York in 1909, accompanied by his protégé and rival Carl Jung. Once you start reading the atmospheric 400-page book, it's impossible to put down. Someone should snap up the film rights.

Bestseller-dom beckons, I tell 47-year-old Rubenfeld. He looks doubtful and insists that he awaits publication with trepidation. "I just don't want to be in this country when the reviews come out," he says over lunch.

His last book - Revolution by Judiciary: The Structure of American Constitutional Law - sold all of six copies when it came out last year. "And four of those were bought by members of my family!" Nonetheless, he has been described as "the most elegant legal writer of his generation," and his first academic tome, 2001's Freedom in Time: A Theory of Constitutional Self-Government, was acclaimed.

But, he says, a work of fiction is something else entirely, although "a very great deal" of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is fact-based. "It's not a genre of literature with which I was familiar," says Rubenfeld, although he's since read Caleb Carr's The Alienist and Matthew Pearl's The Dante Club, and admires both. He wrote his first draft in six months. "It's doubly odd to me because I've never written a line of fiction before -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just poured out.

"I was re-reading EL Doctorow's Ragtime while writing my own novel, mainly for his marvellous descriptions of turn-of-the-century New York, and I'd forgotten that Freud's visit to New York is mentioned in that book. He's a tremendous writer - if only I'd an eighth of his talent - but the details about Freud are not all that accurate because Doctorow is doing something much more fanciful than I am."

Rubenfeld spent months researching his novel. "You can get old newspapers on the internet now - a tremendous resource," he says. "I put countless hours into researching the New York City of 1909, which was far more fascinating than the city of my imagination. Sadly, I lack a vivid imagination. Taking so much from real life made the whole book possible."

As for the novel becoming a bestseller, he jokes: "I have to have a bestseller for my own self-respect." His wife is Amy Chua, also a professor of law at Yale. Her book, World On Fire - based on her immensely readable academic essays - argues that when Third World countries embrace democracy and free markets too quickly, ethnic hatred and even genocide can result. It has become an international blockbuster, reaching the dizzy heights of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 lists this spring.

His wife is brilliant, he tells me over black bean soup. Indeed,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was her idea and she's his most acute critic, along with their daughters, Sophia (13) and Louisa (10), who saw mistakes in the novel no-one else had spotted, starting on the very first page. For instance, Louisa noted that the sentence "Even the keening gulls could be only seen, not heard" should read "Even the keening gulls could be only heard, not seen".

"It took a ten-year-old to point this out, after the manuscript had been read by five or six editors, proofread by a dozen others, and countless agents!" he exclaims. "Our daughters are little geniuses; I don't know what we're going to do with them."

For Sophia and Louisa, he wrote a bowdlerised version of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lest anyone accuse him of corrupting minors since the book takes in not only the moneyed salons of Gramercy Park and glamorous society balls, but opium dens in New York's Chinatown, sleazy brothels and mental asylums. It also includes Rubenfeld's unique take on Freudian theory and the eternal mysteries of Hamlet, as well as discussions and descriptions of certain sadistic sexual practices.

The novel opens with Freud's arrival in New York to deliver a series of lectures at Clark University, in Worcester, Massachusetts. Shortly afterwards, the bound, whipped and strangled body of a wealthy young debutante is discovered in a luxurious Manhattan apartment. When another wealthy society beauty narrowly escapes a similar fate, the mayor of New York - George B McClellan, one of many historical figures featured in the gripping story - asks Freud to use his revolutionary new ideas about psychoanalysis to help the survivor recover her memory of the attack.

The 17-year-old girl is called Nora. "For Nora, read Dora, the young woman described in Freud's most controversial case history, which reads like a 19th-century sensation novel, and which I've always thought someone should fictionalise," says Rubenfeld, adding that Dora, whose real name was Ida Bauer, was not an American, although she died in New York in 1945.

Nora is by no means a carbon copy of Dora, but her predicament is the same: advances are made on her by her father's lugubrious best friend and her father refuses to take her side when she protests, because he's having an affair with his friend's seductive wife, to whom Nora is erotically attracted.

The Oedipal interpretation of Nora's hysterics, which Freud offers Dr Stratham Younger - the book's dashing main narrator who falls in love with Nora - is the actual interpretation that Freud offered the real-life Dora. The case fascinates Rubenfeld, as does Freud's brief American sojourn.

Despite the great success of the Viennese psychiatrist's visit to the US, he always spoke, in later years, as if some trauma has befallen him there. "Freud called Americans 'savages'. He blamed America for physical ailments that afflicted him long before 1909. His biographers have puzzled over this mystery, speculating about whether some unknown event might have happened in America that would make sense of his otherwise inexplicable reaction," says Rubenfeld.

While there is no evidence that Freud was ever asked to investigate a murder, Rubenfeld has drawn directly and extensively from letters, writings or other published sources for much of the dialogue attributed to both Freud and Jung in his novel.

Since Rubenfeld grew up in a highly intellectual household in Washington DC, he was steeped in the works of Freud from an early age. The son of a psychologist and psychotherapist father - "not a Freudian" - and a renowned art critic and biographer mother, he read philosophy and psychology at Princeton, before attempting to fulfil his lifelong ambition to act.

After graduating, he studied acting at the Juilliard School of Drama in New York, where he was one of 18 students chosen from 1,000 applicants. He spent a year "pretending to be an unemployed actor but being a well-employed waiter," suffering rejection after rejection at "cattle-call auditions".

Eventually, after failing to land a single role, he repaired to Harvard University, where he read law and met his wife. "I don't know how I became a professor. I swore I wouldn't become an academic. I wanted to be in the real world and to deal with people's real problems, but now I really love my job. "As for a sequel to the novel, well, the jury's out. I do have this day job and it's time I produced another legal work, which will probably sell another six copies." Before we part, I tell Rubenfeld how riveting I found his theories on Hamlet, although I won't ruin it for prospective readers by revealing his thoughts on the gloomy Dane. "I have to admit I am worried about that, too," he says. "I hope that I haven't written too highbrow a book. There comes a point in this novel when the demands on the reader are perhaps just too great."

To paraphrase his favourite Shakespeare play, the gentleman doth protest too much.

07. 02. 01.

P.S. 사진은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1909년 클라크대학 앞에서 찍은 프로이트(앞줄 왼쪽)와 그의 수제자 융(앞줄 오른쪽)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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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간된 가장 두꺼운 레닌 평전 <레닌>(시학사, 2001)의 저자 로버트 서비스(1947- )의 신작 <스탈린, 강철 권력>(교양인, 2007)이 번역돼 나왔다. 이번엔 1,000페이지가 넘으니 거의 '사건' 수준이다. 작년에 같은 출판사의 '문제적 인간'  시리즈에서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교양인, 2006)을 번역해낸 역자 윤길순씨의 작품인데,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이만한 분량을 번역해낸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경이롭고 경탄스럽다(이 정도면 스탈린시대의 노동 영웅 스타하노프 수준 아닌가?!).

 

 

 

 

어쨌든 그 경이로운 '노동' 덕분에 표트르 대제와 함께 러시아사의 '주인'이자 20세기 최고의 권력자 스탈린의 삶을 우리말로도 따라가볼 수 있게 되었다. 트로츠키의 반스탈린주의와 우리식의 반공주의적 시각으로 덧칠돼 있던 스탈린의 모습을 그 실물에 가깝게 복원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에 국내에 소개된 가장 방대한 전기는 아이작 도이처의 <스탈린>(한림출판사, 1972; 원저는 1960)이며, 이 책은 '정치적 전기'란 부제를 갖고 있다. 알다시피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필맥, 2005) 등 트로츠키 전기 3부작을 쓴 도이처는 트로츠키의 시각에서 스탈린을 조명한다.

참고로 <스탈린, 강철권력>의 원서 'Stalin'은 2004년에 나왔으며 736쪽의 영어 보급판은 작년 10월말에나 출간됐다. 가격은 아마존에서 14.16달러이니까 배송료를 포함해서 25,000원이 안 들겠다(국역본은 40,000원대. 왜 더 비싼가? 번역 비용이 추가되어야 하니까!). 

저자인 서비스는 "러시아 혁명사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은 영국의 역사학자이다. 19~20세기 러시아의 정치사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사 분야까지 폭넓은 영역에 걸쳐 선구적 연구 성과를 낸 러시아사의 권위자이다.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배제하고 냉정한 분석을 앞세우는 그의 연구 방법은 학계와 평단의 찬사를 얻었으며, 치밀한 연구 태도와 방대한 자료 조사, 간결하고 힘이 넘치는 문체는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독자들도 사로잡을 수 있을는지.

작년에 내가 <레닌>을 구하면서 도서관에 신청했던 서비스의 책은 <러시아 현대사: 니콜라이 2세부터 푸틴까지>(하버드대학출판부, 2005)였다(조만간 대출해봐야겠다). 이런 책과 함께 그와 공동 저작을 여러 권 같이 낸, 역시나 20세기 러시아사 전문가인 제프리 호스킹의 책들이 더 번역/소개되면 좋겠다(호스킹의 책은 <소련사>(홍성사, 1988)이 소개됐지만 현재는 구할 수 없다. 물론 소련 몰락 이전의 시각을 담은 책이라 재출간에는 한계가 있겠고 대신에 <러시아와 러시아인(Russia and the Russians)>(하버드대출판부, 2001) 같은 책이 소개됨 직하다).

가디언지의 서평에 따르면, "<스탈린, 강철 권력>은 결함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재능이 풍부했던 스탈린이라는 정치가의 복합적인 내면 세계를 되살려냈다. 저자는 트로츠키가 주조한 스탈린의 고전적인 이미지에 도전해 그 이미지를 깨뜨린다. 이 책은 스탈린이 어떻게 마음 속까지 철두철미한 계급 투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혁명의 심장부의 권력 투쟁에서 일반 당원들의 믿음에 부응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스탈린의 전모' 혹은 수수께끼는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또다른 전문가의 서평을 읽어본 바로는 그렇다. 바로 지난주 'The Moscow Times'지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재수록돼 있는데,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필자인 쉴라 피츠패트릭은 스탈린시대 전문가로서 그녀가 엮은 책 'Stalinism : new directions'(Routledge, 2000)은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에서도 참조되고 있다.  

Closing In on Stalin

Josef Stalin preferred to be seen from afar -- larger than life, inaccessible. In a major new biography, Robert Service tries to cut him down to human size.

By Sheila Fitzpatrick
Published: April 15, 2005

There have been so many new biographies of Josef Stalin lately that we may almost be reaching the point of Stalin fatigue. Not that the subject has become fully comprehensible -- far from it -- or that any of the biographies has the instant-classic status of Ian Kershaw's two-volume "Hitler." Simon Sebag Montefiore's contribution from last spring, "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added a new dimension with his lively and highly readable, but still well-researched, portrait of Stalin in the company of his political associates and in his social and family milieu. Service, who thanks Montefiore in his preface and was warmly thanked by him in Montefiore's introduction, has taken another tack. Already the author of a history of Soviet Russia, Service sets out to give us Stalin in his historical context.(*몬테피오레의 책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됐다.)

Although Service is well-equipped for this task and has done his homework in the archives, including the newly opened Stalin papers, the dictator's personality seems to elude him. Again and again he dutifully lays out alternative motivations for Stalin's actions, a procedure which, fair-minded and historiographically useful though it is, doesn't necessarily help the reader understand what kind of man Stalin was. Still, he offers some valuable corrections to a number of the received opinions about Stalin. Service's Stalin is highly intelligent, even intellectual, despite what Leon Trotsky said about him. He was never a "gray blur" or colorless organization man, as Nikolai Sukhanov wrote. And he was absolutely not, as Trotsky liked to claim, a mere cog in the bureaucracy, but rather someone who very definitely ran the show.

All of these points are well taken, and it is particularly useful to have the ghost of Trotsky's interpretation, once hegemonic in leftist as well as Sovietological circles, chased away. No one who has looked at the new archival materials could doubt Stalin's intelligence. Moreover, it's clear that he thought like an intellectual (that is, analytically), read prodigiously and widely, and had the habit when faced with a new political task -- thinking about Soviet diplomatic options in Europe in the 1930s, for example, or directing the Soviet military effort in World War II -- of systematically researching the topic in preparation. It turns out that not only was he an intellectual, he was a compulsive and professional editor who corrected any manuscript that crossed his desk for style and grammar as well as for ideology.

Stalin's sense of national identification has been the subject of much speculation. In Service's version, Stalin was not particularly hung up on this question, being neither a passionate and absolute convert to Russianness, as Robert C. Tucker argued, nor, as others have suggested, an unreconstructed Georgian whose bloodthirstiness as a ruler can be explained in terms of age-old Caucasian patterns of machismo and revenge. Service's sensible comment is that, like many other people who live somewhere other than their birthplace, Stalin had a sense of himself as both Georgian and Russian, the balance between the two changing according to circumstance. In addition, he was a serious Marxist, whose commitment to internationalism effectively ruled out any form of passionate nationalism.

Service's take on Stalin's relations with Vladimir Lenin, especially in the difficult years of Lenin's last illness, when Lenin became increasingly critical of Stalin and finally pronounced him unfit to be general secretary, is particularly interesting. This is a topic Service knows well from his work on "Lenin: A Biography," in which he showed clearly how much Lenin's intellectual coherence and emotional balance were affected by his strokes. Telling the story from the other side, Service presents Stalin as largely a victim of Lenin's unreasonableness and his own obligations as a Central Committee go-between. This applies not only to the famous "rudeness to my wife" incident, in which Lenin, already seriously ill, rebuked Stalin for his behavior to Nadezhda Krupskaya, but to Lenin's criticism of Stalin's interpretation of Soviet nationalities policy, which many historians have taken to be rational and justified, rather than the confused intervention by a sick and angry man.

This interaction between Stalin and a dying Lenin is a comparatively rare example in Service's biography of an episode in which Stalin appears more sinned against than sinning. The only other similar case is Stalin's relations with his second wife, Nadezhda Alliluyeva, where Service, like Montefiore, foregrounds her difficult personality and psychological fragility. Stalin may have been a neglectful husband, like many another man in public life, but their correspondence when he was absent shows him as the more affectionate and conciliatory partner in what was clearly a volatile marriage. Understandably, Stalin had a sense of betrayal, as well as grief and loss, when she committed suicide in 1932.

Any biography of Stalin must try to explain key episodes in his career, including the dramatic initiatives of the Great Break at the end of the 1920s, when Stalin embarked on all-out collectiv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the Great Purges of the late 1930s; the ups and downs of wartime leadership; and the swing into anti-Semitism of the postwar years. Service sees the purges as an intensification of rather than departure from Stalin's earlier patterns, pointing out what many other scholars have missed -- that Stalin distinguished himself by ruthlessness and indifference to the scale of casualties as early as the Civil War. (This may be another occasion where Trotsky's picture was misleading. As the other great Bolshevik proponent of bloodshed from this period, he presumably had little interest in identifying this as one of Stalin's notable characteristics.)


MT Archive

In his new book, Robert Service attempts to go beyond previous portraits of Stalin as an intellectual fraud or a gray bureaucrat.

 

 

 

 

 

 

 

 

 

On other big issues, however, Service has fewer insights to offer. What propelled Stalin into the wildly ambitious gambles of the Great Break and the First Five-Year Plan remains obscure, as does the mechanism by which he gathered his team of devoted executants. Vyacheslav Molotov appears suddenly in the narrative as a totally reliable No. 2 to Stalin, though all the reader has previously heard of him is that he and Stalin clashed in 1917 before Lenin's return from exile. As for the postwar period, the biography really trails off here. Service doesn't regard Stalin as a dyed-in-the-wool anti-Semite, probably correctly, but leaves the reader uncertain as to why he made the lurch into covertly state-supported anti-Semitism in the late 1940s and early 1950s. Stalin's striking retreat from hands-on leadership in the last years of his life, apart from a few favored issues which almost certainly included the anti-Semitic demarche of the Doctors' Plot, gets only perfunctory discussion.

Service had the laudable intention of writing a biography that would show Stalin as a human being rather than as a stereotypical personification of evil, but he only partially succeeds. His Stalin does seem human, though unattractive, and Service does not take the easy way out of suggesting that his suspicious and even paranoid characteristics amounted to madness. But Service fails to achieve the kind of vivid recreation of a personality that leads the reader to feel he has finally understood what made Stalin tick. Why was he so bloodthirsty as a ruler, and why did his associates follow him even after the debacle of the German attack in June 1941, when Stalin clearly expected to be overthrown? Service's historical landscape is quite precisely drawn, but the protagonist who inhabits it remains shadowy and distant -- which is no doubt the way Stalin, a great editor of his own personal archive as well as other people's manuscripts, intended it.

Sheila Fitzpatrick is the author of "Tear Off the Masks! Identity and Imposture in Twentieth-Century Russia," to be published by Princeton University Press this summer.

서평 말미의 필자 소개에는 근간으로 돼 있지만 이 책 <가면을 벗겨내라! : 20세기 러시아에서 정체성과 사칭>(프린스턴대출판부, 2005)은 이미 출간되었다. 아주 흥미로울 듯한 책이다. 참고로, 피츠패트릭 여사의 책으론 <러시아혁명 1917-1932>(대왕사, 1990)이 번역돼 나온 바 있다(놀랍게도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07. 02. 01.  

Неизвестный Сталин

P.S. 러시아서점 오존을 둘러보니까 스탈린 관련 최신간은 저명한 역사학자 로이와 조르스 메드베제프 형제(로이의 책들은 국내에도 여러 권 소개돼 있다)의 <알려지지 않은 스탈린>(2007)이다. 7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고 물론 스탈린의 비밀 문서고를 뒤져서 얻은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궁금한 신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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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2-1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엊그제 나왔는데, 제가 빠를 수가 있나요. 전 이번달 구입한도 초과여서 다음달에나 구입할 수 있습니다.--;

털세곰 2007-02-20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딴지는 아니구요, 원본 책값 약 15달러에 비해 40,000원대로 책정된 번역서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은 아주 약간은 과한듯^^... 나탸샤 댄스도 40,000원대(원본 보급판 역시 약 15불대에 할인 판매중)였는데. 조금은 관련있는 얘기인데, 요즘 한국책 활자들이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러니 한 페이지에 25줄 이상 넣기 힘들고(사실은 결코 넣지 않는 것 같고), 자연히 쪽수 늘어나고... 전 책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위의 바람구두 님 말처럼 편집자의 노력이 돋보이면(상대적으로 나타샤 댄스는 이 부분에서 꽤 무성의했죠?) 그 노력의 댓가는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책을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비싼 책이 결코 달갑지 않지만^^... 아, 그리고 영어권 책이 소화되는 시장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겠죠? 규모의 경제란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닐테고.
폭등하는 작금의 책값에 저도 갑갑해 하는 마당이라 딴지는 결코 아니니까 맘상하지 마시구요, 다만 그 굵은 활자들만 좀 줄여 페이지수 줄이면 책값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욕심은 분명합니다.

로쟈 2007-02-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lovo님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책값이 비싸지는 거 다 이해하구요. 한데, 말씀대로 분량이 부풀려지는 건 좀 못마땅합니다(일단 종이가 많이 듭니다). 거기에 무성의한 번역/편집이면 열불나는 거구요.^^; 그건 그렇고, 'slovo'는 러시아어인데요.^^

2007-02-20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세곰 2007-02-2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마지막 p.s.에 다신 로이 메드베제프의 "알려지지 않은 스딸린"은 책이 좀더 이전에 나왔나 봅니다. 혹시나 하고 아마존에 보니 로이/ 죠레스 메드베제프 형제의 언급하신 책이 엘렌 다렌도르프(E. Dahrendorf)란 사람의 번역으로 "The Unknown Stalin"이란 같은 제목으로 이미 2003년 출판되었고, 2004년 하드커버 본으로 재출판도 되었네요. (링크 겁니다; http://www.amazon.com/Stalin-Roy-Medvedev/dp/1585675024/ref=reader_req_dp/103-1810962-8412617)

2003년 초판 영어번역본은 스딸린의 급작스런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부터 시작해 2차 대전, 핵무기, 르이센코 사건 등의 학문분야, 그리고 그의 알려지지 않은 신변에 관한 얘기 등이 15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300페이지 이상 집필되어 있네요.

로쟈님 말씀하신 2007년의 메드베제프 선생 형제의 새 책은 750페이지를 넘는다는 분량으로 볼 때, 아마 그 이전 책에 대한 증보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선생들의 나이와 건강을 생각해 보면 아르히프 등을 뒤지는 작업으로 새 책을 최근에 내기는 아마 힘들지 않을까도 싶은데, 놀라울 따름입니다.

2007-02-21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지난달초에 한 신문의 '책읽기 365'에 착안하여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보자'며 나대로의 목록을 제안한 바 있다. 내가 1월의 목록으로 꼽은 책은 네 권이었는데, 지승호의 대담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 테리 이글턴의 <우리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 그리고 김경주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가 그것들이었다.

 

 

 

 

네 권의 책은 각각 네 가지 범주를 고려한 것인데, (1)한국사회에 대한 책, (2)미국과 세계에 관한 책, (3)철학/이론서, (4)문학서, 가 그 범주들이다. 한달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네 권의 책 모두 구입은 했지만 한권도 완독은 하지 못했다. 나대로 변명이 없는 건 아니나 취지에 스스로가 적극 부응하지 못한 점은 반성할 여지가 있다. 그래도 <금지를 금지하라>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꼭지씩을 읽었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서 몇 편의 시를 읽었으며 나대로 이 책들을 '광고'했으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겠다. <우리시대의 비극론> 같은 경우는 좀 '무거운' 책에 들기에 일단은 사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고(사실 복사해둔 원서를 아직 못 찾고 있다).

 

 

 

 

참고로, 어떤 평자는 이글턴의 이 책을 <미학사상>(한신문화사, 1995)과 함께 그의 가장 좋은 책으로 꼽았다(<미학사상>의 원제는 '미적인 것의 이데올로기' 혹은 '미학의 이데올로기' 정도이다. 왜 샤프한 제목을 놔두고 둔감한 제목으로 옮겼는지 모르겠다). 이글턴 버전의 '미학사'인데, 먼로 비어슬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 1989), 베르너 융의 '미학사 입문'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경성대출판부, 2006), 아직 한권이 덜 나온 타타르키비츠의 <미학사1,2>(미술문화, 2006) 등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아무려나 다시 달이 바뀌고 보니 해야 할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의무감'에 2월의 목록도 제안하도록 한다. 서재를 즐겨찾으시는 분들 가운데 1% 정도, 즉 10분 정도는 취지에 공감하여 '사회적 독서'에 동참하실지 모르고(적어도 책은 사서 꽂아두실 수 있겠다. 사실은 그게 중요하다) 그 정도라면 나의 '발의'가 무색하진 않겠다. 2월은 날수도 적은지라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

 

 

 

 

먼저, '한국사회를 읽자'는 취지로 고른 책은 남재일의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강, 2006). 고종석의 <신성동맹과 함께살기>(개마고원, 2006)에도 눈길이 갔지만,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의 경우 비교가 안될 만큼 세일즈포인트가 턱없다. 나부터도 한권 사줘야겠다. 가격 대비 분량 빵빵하고, 읽은 분들의 평도 좋다. 소개를 옮기자면, "기자 시절부터 다방면의 글을 써온 남재일의 사회/문화 비평집. 영화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작품들을 읽어내려간 글들과 최근의 한국 사회 이슈들에 대한 발언들, 그리고 한대수·최민식·임상수·김훈 등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인터뷰들이다. 지승호 대담집의 경우도 그렇지만, 나는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육성을 듣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미국을 알자'란 취지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까치글방, 2003)인데, 어느새 품절이다(책은 그나마 사둔 게 다행이군). 그래서 다시 고른 책은 '악동 감독 케빈 스미스의 미국 문화 뒤집기'란 부제를 가진 <순결한 할리우드>(media2.0, 2006).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을 책인데, 원제는 'Silent Bob Speaks'(2005)이고,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와 제작자를 끌어들이는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감독, 미국 인디영화계의 총아 '케빈 스미스'의 에세이.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문체로 미국 대중문화계의 이면을 파헤친다. 지은이가 할리우드에서 보고, 듣고, 소화시킨 미국 문화의 모든 것을 밀도있게 담아낸 책이다." 물론 나의 취지는 미국문화의 한복판에서 그가 던지는 '육성'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목차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꼭지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지젝의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의 출간이 다소 지연되는 바람에 무주공산이 된 철학/이론 파트에서는 로버트 니스벳의 <보수주의>(이후, 2007)를 골랐다. 하도 여기저기서 보수주의를 떠들어대고 있으므로 보수주의가 정말 뭔지 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신보수주의의 창시자'로도 불린다는 니스벳의 이 책은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를 가장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수주의 개론서"라고 평가되는 모양이다. "과연 보수주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 그것을 실체를 찾을 수 있는가? 저명한 보수주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니스벳이 정치적 집단주의와 근본적 개인주의를 공격하는 보수주의의 본질을 명쾌하게 분석한다"니까 일독해봄 직하다. 원서의 표지를 보니 부제는 '꿈과 현실'.

그리고 끝으로 문학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열린책들, 2007)을 고른다. 모더니즘에 대해서 공부도 해둬야 하고, 막간을 이용해 안 읽어둔 고전도 읽어둘 겸. 이미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으므로 판본은 임의로 고르실 수 있겠다(기억에 학부시절엔 삼중당문고 정도가 유일했었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실실거리며 감상을 전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세상을 떠났다).

잔소리 같은 소개를 보태자면, "20세기 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와 비범한 지성과 창조력이 결합된 장편소설이다." 그래도 300쪽이 안되는 분량이니 분량으로만 치자면 '만만한' 작품이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주연의 영화 <댈러웨이 부인>(1997)이 작년 가을에 개봉되기도 했었다. 겸사겸사 봐두면 좋겠다...

07.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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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01 09:59   좋아요 0 | URL
**님/ 네. 안 그래도 부지런하시단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구내서점에서 구매할까 했는데, 보내주시면 잘 읽어보겠습니다.^^

paviana 2007-02-01 10:16   좋아요 0 | URL
사놓고 베고만 자는 책들이 너무 많은데, 님의 말씀 들으니 위안이 되는군요.ㅎㅎ

짱꿀라 2007-02-01 10:43   좋아요 0 | URL
로쟈님, 정말로 이곳에 들어오면 책잔치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답니다. 어찌 그렇게 책 소개를 잘 해주시는지 매일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정보 가지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로쟈 2007-02-01 10:46   좋아요 0 | URL
paviana님/ 아시다시피 책의 용도야 다양하지요.^^
santa님/ 별로 돈 드는 잔치도 아닌 걸요.^^

biosculp 2007-02-01 10:48   좋아요 0 | URL
보수주의와 더불어 나온 자유주의는 사서 책장에 진열해 두었습니다.
근래 서점가서 헉소리 나는 느낌을 받은것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새로운 판본입니다. 아 사고 싶다라는 지름신의 충동을 일으켰는데 하드커버도 나온다니 비교해보고 가격만 적당하면 다른책들 접어두고 사려고 합니다.

동대장 2007-02-01 10:54   좋아요 0 | URL
2월 책 중에 한권 읽어볼랍니다. 참 바지런 하시네요.
항상 좋은 정보에 감사드려요.....

수유 2007-02-01 10:58   좋아요 0 | URL
"너는 꽂아두기 위해서 책을 사지? " 동생이 늘 제게 하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당장 읽기보단 꽂아두는 책이 훨씬 많습니디만,. 그러나 사지 않을 수 없을 뿐더러 언젠가는 손에서 읽을 날이 옵니다..

린(隣) 2007-02-01 11:21   좋아요 0 | URL
부지런하신 로쟈님의 사회적 독서목록, 저도 참조하고 싶네요.
한편의 불순한 생각, 독서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로쟈님의 공적 생각은 어떨까? 예를 들면 긴급조치관련 문제 같은.. 아침에 좃선을 보니 괜히 시비 걸고 싶은 기분이네요.
그건 글쿠, 열린책들에서 댈러웨이 부인은 또 언제 나왔데요?
솔출판사의 울프 전집을 통해서 봤었는데. 그때 참 좋은 기획이다 싶었는데 그닥 빛을 못 본 것 같아 약간 안타까운 기억이..

드팀전 2007-02-01 13:36   좋아요 0 | URL
<순결한 헐리우드>는 왠지 발칙할 것 같아서 눈여겨 봤지만 ..지금은...
전 산 책은 반드시 읽자는 주의여서...3-4권 이상 쌓이면 불안해집니다.대개 5만원 맞추기 위해 함께 주문하다보면 좀 쌓이는데..하여간 쌓이면 마음이 않좋습니다.그래서 미리 사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요..책을 많이 않봐서 그런가 봅니다.

로쟈 2007-02-01 13:49   좋아요 0 | URL
biosculp님/ 도스토예프스키는 새로 나온 장정이 더 맘에 들더군요. 전은 이전의 판본들을 두 종 다 갖고 있어서...
동대장님/ 동참해주셔서 감사.^^
수유님/ 보석들 모으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horasin님/ 저는 좃선을 보지 않습니다. 다른 페이퍼들에서 이미 피력해놓은 바 있지만 저는 '정치적인 말'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자칭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아니라 그의 생활이고 일상이라고 봅니다. 대학 강단에서 진보적 이념을 늘어놓는 건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이란 제도 자체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언론이나 종교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울프, 책이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그냥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도 나름 게으르기 때문에...
드팀전님/ 그런 뒷맛까지도 '미국적'인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3-4권만 쌓이면 불안해지는) 그런 아빠라면 딸아이가 너무 좋아할 거 같습니다.^^

수유 2007-02-01 16:31   좋아요 0 | URL
모을수 있다면야 보석도 모으고 싶군요 --;;

로쟈 2007-02-01 16:32   좋아요 0 | URL
책을 보기를 보석같이 하시면...

2007-02-0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바 2007-02-01 18:00   좋아요 0 | URL
부득이하게 지젝의 책이 선정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1월 말에 출간된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로쟈님이 출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실 거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로쟈 2007-02-01 18:23   좋아요 0 | URL
**님/ 섭섭이라니요. 저도 빨리 책을 내서 신세를 갚아야겠습니다.^^;
에바님/ 다음주에는 나올 거라고 하네요...

2007-02-01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01 21:07   좋아요 0 | URL
**님/ 지나친 말씀이시구요.^^ '뚜렷한 목소리'가 저는 때로 진정한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가림막이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건 '정치'가 아니라 '정치성'(정치적인 것)이고 이건 두루 편재하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저는 매일, 매순간 아주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한시도 그로부터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늘빵 2007-02-01 23:53   좋아요 0 | URL
로쟈님 보면 참 분야가 넓으세요. 저는 시는 봐도 모르겠어요. -_-

로쟈 2007-02-02 00:04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언어의 속살>만 따라 읽으셔도 웬만한 시집들은 읽은 게 되는데요...
 

주로 오마이뉴스에 책동네 서평을 쓰고 있는 시민기자 정민호씨의 에세이집 <산티아고 가는 길>(에세이, 2007)이 출간됐다. 알라딘 동네 상주민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일 테지만, 오마이뉴스에 동료기자의 서평이 게재되었기에 옮겨놓는다. 한때 알라딘에도 '중복' 연재되었던지라 나도 멋진 사진들과 에세이들을 (다는 읽지 못했지만) 접해본 기억이 있다. '젊음이 좋긴 좋은 거구나'란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그래서 약간은 질투마저 느끼게 했던 에세이들인데, 책으로 만나는 감회는 또 색다를지 모르겠다. '산티아고'가 스페인 지명이라는 것밖에 모르지만 '젊음'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물론 고생은 젊은이만 하면 된다). 김현자 기자의 서평기사와 함께 박스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오마이뉴스(07. 01. 30)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세상을 만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규칙 같은 건 없다. 대신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얼마나 걸을지 알아서 판단해서 적당한 곳에 있는 알베르게에 머물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몸이 좋다고 무리해서 걷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계획세운대로만 하겠다고 무리하게 몸을 놀리는 것도 위험하다. 이 길은 하루에 끝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산티아고에 간 뒤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알고 배려하는 것이다."

언뜻 평범한 이 부분을 읽다가 멈추어 섰다.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앞서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곁눈질하고 부러워하면서 조바심을 낸 나머지 지나친 욕심을 종종 부리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정해둔 규칙이 없다. 다만 걸을 뿐이다. 산티아고 성당을 향하여!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누구의 발걸음도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끝까지 걸어가는 것도 중간에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도 자기 몫일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다른 사람이 가는 길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는가!



<산티아고 가는 길>은 최근 한 달 새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고 있는 정민호 시민기자.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여행'이란 제목으로 지난해(10~11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산티아고 여행기 22꼭지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가 배운 외국어는 프랑스어가 전부. 그마저도 가물가물 하단다. 그야말로 가장 절박한 만국 공통어인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여행이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언어로 함께 걸어가는 그 길, 산티아고 순례자의 800km가 아름답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저자에게 외국여행은 처음인 아마추어인지라 여행에서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준비물까지 빠뜨리고 만다. 도시에서 걸어 보았자 얼마나 걸었을까. 그 걸로는 턱도 없지. 그러니 한 달로 안 되는 빠듯한 일정으로 800km를 걸으려면 다리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잖아?

그런데 저자는 비상약품은커녕 작은 손전등하나도 준비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알베르게(여행자들의 숙소)'에서 라이터 불에 의지하여 한밤중의 급한 볼일을 보거나 동트기 전 어두컴컴한 미명 속에 짐을 싸서 알베르게를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무모하고 불편해 보이는 여행이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이른바 드림팀을 만들만큼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감동스럽게 펼쳐진다. 매일 걸아야만 하는 30km에 달하는 여정을 동행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걷고 있다. 단지 몇 시간, 단지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인 그들이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이유만으로 끈끈한 관계가 되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감동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아름답다. 애초부터 아름다웠던 길은 아니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진 길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 야곱이 복음을 전파하러 가던 길이 순례자의 길,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이 되었단다. 저자는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여정에서 인생의 참뜻과 인간이 인간에게 제일 아름다울 수 있는 인간애를 배우고 있다. 저자는 그 감동을 22편의 에세이로 전하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행 에세이지만 산티아고 가는 길의 풍경보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마음과 배려, 아름다움. 그렇게 만나는 세상(삶).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내 가방 끈 고쳐주던 프랑스 할머니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부엔 카미노! 산티아고 가는 길, 무모한 여행은 끝났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계속된다. 이제부터 이 길에서 배운 것을 내가 가는 길에서 꼭 실천하리라. 부엔 카미노! 내가 미처 걷지 못한 길을 다시 걷기 위하여 올 때, 이 다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걸어야겠다.

산티아고, 고마워, 다시 올 때까지 무사하게 있어라!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위하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미 걸었던 사람들과 앞으로 걸을 사람들을 위하여. 부엔 카미노! 웃으며 돌아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끝났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많으니까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신발 끈을 고치고 다시 걷는다. 무모한 여행은 계속되는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맺는 글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함께 쓰면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터라, 저자의 스페인여행 소식은 한마디도 부러움뿐이었다. 여행지가 외국이라는 것이나 한 달 가까운 날들이라는 것은 둘째고 잠시 일상을 접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그런데 왜 하필 산티아고야? 아마존이나 아프리카도 좋지 않을까? 아님 쿠바?...그런데 대체 사람들은 왜 산티아고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과 함께 스페인어를 모르고 영어도 그다지 신통치 않은 실력으로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나는 무모한 젊음이라니. '모든 것이 부럽다!' 솔직히 그랬다. 한 달? 이젠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저자의 여행기가 <오마이뉴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생한 여행기를 읽으며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날아든 기념품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나자,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느꼈던 그 부러움은 더 커졌고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의 꿈이 되기도 했다. 문학 속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더러 만났지만 단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산티아고였는데 말이다. 몇 년 후, 내 아이들과 꼭 함께 가고 싶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우리들이 가야 할 세상과 삶이 그대로 압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더 많이 나누려면 영어를 더 배워야겠지만.

"언제부턴가 제 삶과 관련된 고민 몇 가지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끙끙대보았자 풀리지 않을 고민들. 그래서 무작정 걷고 싶었고, 걸으면서 생각하면 고민이 풀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습니다. 국토종단도 떠올랐지만 내 성격으론 중간에 핑계를 대고 돌아올 것이 뻔하고.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자!' 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게 된 곳이 산티아고였습니다.

산티아고를 처음 만난 것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외국여행을 하자 마음먹었을 때 문득 <온 더 로드>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왜 꿈만 꾸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 살기 위해서다' 결국 이 글귀 때문에 산티아고로 갔는데 지금 가장 행복하고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역시 가길 잘했습니다."

- 산티아고 여행의 의미? 여행 후 달라진 점은?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 세상이 무섭지가 않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혼자서 산티아고에 갔다 왔는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붙고 힘이 나거든요.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 면접을 볼 때도, 입사하여 일을 배우면서도 그랬죠. 일종의 든든한 부적 같은 거랄까. 아, 무섭지 않다는 것보다는 여유로워졌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것과 좋았던 것은.
"물집의 고통이 심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늦게 걷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최소한 걷기 여행 준비라도 했어야 하는데. 손전등이나 비상약품 등을 준비하지 않은 준비부족으로 인해 생겼던 일들이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산티아고를 생각하면 모두 다 좋아요. 지금도 가끔씩 순례자 여권을 보거든요. 그러면 지나간 길들이 다 보이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정말 그 길이 다 좋네요. 그래서 저는 5년 후에 또 가려고 한답니다. 5년차에 휴가가 한 달 주어지거든요. 그때는 영어를 더 자유롭게 구사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 산티아고 가는 길을 꿈꾸는 분들에게 꼭 하고픈 말은?
"두려워하지 말자. 바로 그것이겠지요. 사실은 아까 저녁 먹을 때도 친구한테 그 말을 하고 왔어요. 이것저것 다 따지면 끝이 없고 갈 수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자신을 가지고 일단 떠나고 보자. 돌아와서 더 잘살기 위해!"



혼자 걷는 여자들도 많을 만큼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안전하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매일 20~30km를 걷고 공동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이국 사람들과 낯선 시간들을 떠듬떠듬 말을 나누며 어울리면서 언제 이 많은 글들을 썼을까? 틈틈이 메모해 와서 정리하였다고. 산티아고에 가려고 마음먹고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자료가 너무 부족하더란다. 그래서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썼고 책으로 묶어냈단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제가 좋아졌어요. 전에 보다 훨씬 강해졌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과 자신감이기 생겼어요. 가끔씩 생각해요. 내가 정말 어떻게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었고 많은 고통들을 참아 낼 수 있었는지를! 그런데 정말 했더라고요. 제 힘으로. 그래서 제가 자랑스러워요."
 
07.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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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7-01-31 11:04   좋아요 0 | URL
오, 제목만 보고 김남희씨의 책 이야기하시는건가 생각했답니다. 새로운 책이군요. 저도 산티아고. 한 번 걸어보고 싶다 꿈꾸게 되던데(이놈의 게으름을 생각하면 그저 꿈일 뿐이겠지만;).. 이 책, 궁금해지네요. ^^

paviana 2007-01-31 11:10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유머에 점점 중독되는거 같아요.
에구 정군님이 다시 생각나네요.흑흑흑

나비80 2007-01-31 12:55   좋아요 0 | URL
몇 부분 올려놓으신 것만 봤는데도 사진이 참 좋네요. 글도 재밌을 것 같아요. 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열망이 솟는데요. 뿅~~!!

stella.K 2007-01-31 13: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문득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현자 씨는 동료기자지만, 전 순수 독자란 입장에서...^^

비연 2007-01-31 15:5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정군님 서재에 산티아고에 대한 글들 열심히 보았었는데....
책으로 써도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나온 모양이군요!
서재에 계속 계셨더라면(항상 ~면..은 뒷북이지만..ㅠㅠ) 축하한다는 메세지라도 남길 수 있을텐데 말이죠. 쩌업. 그래도, 이렇게라도 소식 전해주시니 다행~^^

로쟈 2007-02-01 00:01   좋아요 0 | URL
다들 반가워하시는 걸로 보아 정군님이 인세를 좀 챙기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리뷰 좀 쓰는 것보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