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오마이뉴스에 책동네 서평을 쓰고 있는 시민기자 정민호씨의 에세이집 <산티아고 가는 길>(에세이, 2007)이 출간됐다. 알라딘 동네 상주민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일 테지만, 오마이뉴스에 동료기자의 서평이 게재되었기에 옮겨놓는다. 한때 알라딘에도 '중복' 연재되었던지라 나도 멋진 사진들과 에세이들을 (다는 읽지 못했지만) 접해본 기억이 있다. '젊음이 좋긴 좋은 거구나'란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그래서 약간은 질투마저 느끼게 했던 에세이들인데, 책으로 만나는 감회는 또 색다를지 모르겠다. '산티아고'가 스페인 지명이라는 것밖에 모르지만 '젊음'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물론 고생은 젊은이만 하면 된다). 김현자 기자의 서평기사와 함께 박스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오마이뉴스(07. 01. 30)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세상을 만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규칙 같은 건 없다. 대신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얼마나 걸을지 알아서 판단해서 적당한 곳에 있는 알베르게에 머물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몸이 좋다고 무리해서 걷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계획세운대로만 하겠다고 무리하게 몸을 놀리는 것도 위험하다. 이 길은 하루에 끝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산티아고에 간 뒤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알고 배려하는 것이다."

언뜻 평범한 이 부분을 읽다가 멈추어 섰다.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앞서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곁눈질하고 부러워하면서 조바심을 낸 나머지 지나친 욕심을 종종 부리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정해둔 규칙이 없다. 다만 걸을 뿐이다. 산티아고 성당을 향하여!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누구의 발걸음도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끝까지 걸어가는 것도 중간에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도 자기 몫일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다른 사람이 가는 길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는가!



<산티아고 가는 길>은 최근 한 달 새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고 있는 정민호 시민기자.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여행'이란 제목으로 지난해(10~11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산티아고 여행기 22꼭지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가 배운 외국어는 프랑스어가 전부. 그마저도 가물가물 하단다. 그야말로 가장 절박한 만국 공통어인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여행이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언어로 함께 걸어가는 그 길, 산티아고 순례자의 800km가 아름답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저자에게 외국여행은 처음인 아마추어인지라 여행에서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준비물까지 빠뜨리고 만다. 도시에서 걸어 보았자 얼마나 걸었을까. 그 걸로는 턱도 없지. 그러니 한 달로 안 되는 빠듯한 일정으로 800km를 걸으려면 다리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잖아?

그런데 저자는 비상약품은커녕 작은 손전등하나도 준비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알베르게(여행자들의 숙소)'에서 라이터 불에 의지하여 한밤중의 급한 볼일을 보거나 동트기 전 어두컴컴한 미명 속에 짐을 싸서 알베르게를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무모하고 불편해 보이는 여행이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이른바 드림팀을 만들만큼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감동스럽게 펼쳐진다. 매일 걸아야만 하는 30km에 달하는 여정을 동행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걷고 있다. 단지 몇 시간, 단지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인 그들이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이유만으로 끈끈한 관계가 되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감동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아름답다. 애초부터 아름다웠던 길은 아니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진 길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 야곱이 복음을 전파하러 가던 길이 순례자의 길,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이 되었단다. 저자는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여정에서 인생의 참뜻과 인간이 인간에게 제일 아름다울 수 있는 인간애를 배우고 있다. 저자는 그 감동을 22편의 에세이로 전하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행 에세이지만 산티아고 가는 길의 풍경보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마음과 배려, 아름다움. 그렇게 만나는 세상(삶).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내 가방 끈 고쳐주던 프랑스 할머니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부엔 카미노! 산티아고 가는 길, 무모한 여행은 끝났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계속된다. 이제부터 이 길에서 배운 것을 내가 가는 길에서 꼭 실천하리라. 부엔 카미노! 내가 미처 걷지 못한 길을 다시 걷기 위하여 올 때, 이 다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걸어야겠다.

산티아고, 고마워, 다시 올 때까지 무사하게 있어라!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위하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미 걸었던 사람들과 앞으로 걸을 사람들을 위하여. 부엔 카미노! 웃으며 돌아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끝났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많으니까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신발 끈을 고치고 다시 걷는다. 무모한 여행은 계속되는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맺는 글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함께 쓰면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터라, 저자의 스페인여행 소식은 한마디도 부러움뿐이었다. 여행지가 외국이라는 것이나 한 달 가까운 날들이라는 것은 둘째고 잠시 일상을 접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그런데 왜 하필 산티아고야? 아마존이나 아프리카도 좋지 않을까? 아님 쿠바?...그런데 대체 사람들은 왜 산티아고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과 함께 스페인어를 모르고 영어도 그다지 신통치 않은 실력으로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나는 무모한 젊음이라니. '모든 것이 부럽다!' 솔직히 그랬다. 한 달? 이젠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저자의 여행기가 <오마이뉴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생한 여행기를 읽으며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날아든 기념품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나자,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느꼈던 그 부러움은 더 커졌고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의 꿈이 되기도 했다. 문학 속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더러 만났지만 단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산티아고였는데 말이다. 몇 년 후, 내 아이들과 꼭 함께 가고 싶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우리들이 가야 할 세상과 삶이 그대로 압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더 많이 나누려면 영어를 더 배워야겠지만.

"언제부턴가 제 삶과 관련된 고민 몇 가지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끙끙대보았자 풀리지 않을 고민들. 그래서 무작정 걷고 싶었고, 걸으면서 생각하면 고민이 풀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습니다. 국토종단도 떠올랐지만 내 성격으론 중간에 핑계를 대고 돌아올 것이 뻔하고.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자!' 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게 된 곳이 산티아고였습니다.

산티아고를 처음 만난 것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외국여행을 하자 마음먹었을 때 문득 <온 더 로드>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왜 꿈만 꾸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 살기 위해서다' 결국 이 글귀 때문에 산티아고로 갔는데 지금 가장 행복하고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역시 가길 잘했습니다."

- 산티아고 여행의 의미? 여행 후 달라진 점은?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 세상이 무섭지가 않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혼자서 산티아고에 갔다 왔는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붙고 힘이 나거든요.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 면접을 볼 때도, 입사하여 일을 배우면서도 그랬죠. 일종의 든든한 부적 같은 거랄까. 아, 무섭지 않다는 것보다는 여유로워졌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것과 좋았던 것은.
"물집의 고통이 심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늦게 걷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최소한 걷기 여행 준비라도 했어야 하는데. 손전등이나 비상약품 등을 준비하지 않은 준비부족으로 인해 생겼던 일들이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산티아고를 생각하면 모두 다 좋아요. 지금도 가끔씩 순례자 여권을 보거든요. 그러면 지나간 길들이 다 보이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정말 그 길이 다 좋네요. 그래서 저는 5년 후에 또 가려고 한답니다. 5년차에 휴가가 한 달 주어지거든요. 그때는 영어를 더 자유롭게 구사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 산티아고 가는 길을 꿈꾸는 분들에게 꼭 하고픈 말은?
"두려워하지 말자. 바로 그것이겠지요. 사실은 아까 저녁 먹을 때도 친구한테 그 말을 하고 왔어요. 이것저것 다 따지면 끝이 없고 갈 수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자신을 가지고 일단 떠나고 보자. 돌아와서 더 잘살기 위해!"



혼자 걷는 여자들도 많을 만큼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안전하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매일 20~30km를 걷고 공동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이국 사람들과 낯선 시간들을 떠듬떠듬 말을 나누며 어울리면서 언제 이 많은 글들을 썼을까? 틈틈이 메모해 와서 정리하였다고. 산티아고에 가려고 마음먹고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자료가 너무 부족하더란다. 그래서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썼고 책으로 묶어냈단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제가 좋아졌어요. 전에 보다 훨씬 강해졌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과 자신감이기 생겼어요. 가끔씩 생각해요. 내가 정말 어떻게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었고 많은 고통들을 참아 낼 수 있었는지를! 그런데 정말 했더라고요. 제 힘으로. 그래서 제가 자랑스러워요."
 
07.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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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7-01-31 11:04   좋아요 0 | URL
오, 제목만 보고 김남희씨의 책 이야기하시는건가 생각했답니다. 새로운 책이군요. 저도 산티아고. 한 번 걸어보고 싶다 꿈꾸게 되던데(이놈의 게으름을 생각하면 그저 꿈일 뿐이겠지만;).. 이 책, 궁금해지네요. ^^

paviana 2007-01-31 11:10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유머에 점점 중독되는거 같아요.
에구 정군님이 다시 생각나네요.흑흑흑

나비80 2007-01-31 12:55   좋아요 0 | URL
몇 부분 올려놓으신 것만 봤는데도 사진이 참 좋네요. 글도 재밌을 것 같아요. 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열망이 솟는데요. 뿅~~!!

stella.K 2007-01-31 13: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문득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현자 씨는 동료기자지만, 전 순수 독자란 입장에서...^^

비연 2007-01-31 15:5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정군님 서재에 산티아고에 대한 글들 열심히 보았었는데....
책으로 써도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나온 모양이군요!
서재에 계속 계셨더라면(항상 ~면..은 뒷북이지만..ㅠㅠ) 축하한다는 메세지라도 남길 수 있을텐데 말이죠. 쩌업. 그래도, 이렇게라도 소식 전해주시니 다행~^^

로쟈 2007-02-01 00:01   좋아요 0 | URL
다들 반가워하시는 걸로 보아 정군님이 인세를 좀 챙기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리뷰 좀 쓰는 것보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