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지방 강의를 마치고 귀가중이다. 어제부터 계속되는 한파로 겨울을 실감하게 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뜨거웠던 지난여름만큼 매서운 겨울이 될 거라는 예측도 있기에. 귀경 기차에 오르며 승차를 안내하는 승무원의 코끝이 빨간 걸 보고 감동할 뻔했는데, 이런 날씨에는 가만히 있어도 치열하게 산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제 강의에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다루며 ‘행동주의‘ 문학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했는데, 그에 대입하자면 한파 속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행동하는 것 같다고 할까(아,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구나). 걸어다녀도 비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은 이국종의 <골든아워>(흐름출판)가 전달해주는 느낌도 이와 유사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중환자들의 수술 장면을 묘사할 때 저자는 행동주의 작가로 손색이 없다고 느꼈다. 지난해 ‘올해의 책‘이었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과 장르가 바뀐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도 책을 손에 들기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형식상으로는 각각 외과의사와 정신과의사의 기록인데, 전자가 문학적이라면 후자는 보고서적이다(나는 강의에서 ‘자료소설‘이라고 불렀다). <골든아워>의 저자가 <칼의 노래>의 김훈을 사숙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던 것.
<82년생 김지영>이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켰다면 <골든아워>는 내내 저자의 손가락에 주목하게 했다. 수술실 외과의사의 손가락이면서 동시에 문체를 빚어내는 손가락. 의사로서는 아툴 가완디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시조종사 생텍쥐페리에 견주어 중증외상센터의 생텍쥐페리도 상상한다. <골든아워>의 후속작도 읽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