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여행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할일이 많은데(밀린 일에다 준비할 일) 그렇다고 체력이 보강되는 건 아니어서 주말 아침에 일단 잠을 보충했다. 기온이 떨어지는 환절기이기에 면역도 덩달아 떨어질 수 있다. 여행서 두 권과 함께 어제 받은 책은 얼마전에 긴 여행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이다. 말기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몇달 전인가 들었고, 강의 소식이 그래서 뜸했던가 했다.

고인은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철학, 예술을 넘나드는 강의를 많이 했는데 강의책으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현재로선 번역서로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와 공저로 나온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이 전부다. 아무 곳이나 펼쳐도 되는 병상의 아침 단상들을 읽다가 한 문장을 인용한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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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1박2일의 강의여행을 다녀온 터라 공휴일을 앞둔 오늘이 주말 같다.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심코 손에 든 책이 차병직 변호사의 <단어의 발견>(낮은산)이다. 보통은 시인이나 문필가들이 쓸 만한 제목의 책인데, 몇페이지 읽은 바로는 역시 그래야 했을 책이다. 이를테면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같은 책이 있지 않은가. 막연히 그런 종류의 책을 기대했지만, <단어의 발견>은 너무도 평범해서 혹 다른 의도가 있는가 생각될 정도다. ‘답장‘의 한 대목.

˝밤비는 밤을 새워 읽으라는 답장이다. 밤비는 읽기가 힘들면 귀 기울여 듣기라도 하라고 부치는 간결한 문장의 긴 답장이다. 밤비는 내용이 너무 많으면 골라 읽어도 좋다는 세심한 답장이다.
밤비는 밤에 내린다. 밤비는 밤을 새워 내린다. 밤비는 밤에 쏟아지는 이야기이므로 새벽의 통금시간에 그친다.˝

뭔가 배후에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무미한(심심한) 문장들을 나열할 수 있을까(평양냉면의 맛을 문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던가). 아무데나 더 펄쳐보았다. ‘짖다‘.

˝짖는 데는 사정이 있다. 그 울부짖음이나 비아냥거림에 동의할 수 없어도 그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기대를 해서도 안된다. 상대를 자기 생각으로 전향시키는 것을 승리의 쾌거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나도 뭔가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 같다. 다만 저자가 이 책을 쓴 사정을 알기 어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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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0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변호사라고해서
재판에서 이기는,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의 발견인줄~~

로쟈 2018-10-10 23:08   좋아요 0 | URL
책을 쓴 목적이 가늠이 안 됩니다.^^;
 

강의차 어제 아짐 일찍 순천행에 나서면서 강의책(<죄와 벌>과 <전쟁과 평화>가 포함돼 무려 8권이다)에 더하여 넣은 책은 고종석과 황인숙의 대담집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삼인)이다. 책이 가볍기도 하고 두 사람의 두서없는 잡담이 부담없을 거란 판단에서.

실제로도 그런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지 않다. 지난 대선에 고종석이 진지하게 출마하려고 했었다는 것 같은. 그의 몇몇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여전하고(건강을 잃은 저자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건 무리겠다).

한때 ‘고종석의 모든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언어학자‘와 (그가 자부하는) ‘시평론가‘로서의 고종석이 유의미하게 여겨진다. 각각 <감염된 언어>와 <모국어의 속살>의 고종석이다. 트위터 중독과 정치 지망생 이전의 고종석인가? 새삼 확인하는 건 어느 분야의 플레이어건 전성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쇠퇴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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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아무나 가질수 있는 인연은 아닌듯.
저사진을 보면서
저런 시선과 저런 표정으로 볼수있는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속엣말을 나누는 이가 몇이나 있나 생각해봤네요.

로쟈 2018-10-09 16:36   좋아요 0 | URL
네, 그건 인덕이고, 인복이죠..
 

부모님댁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가벼운 책을 하나 빼들었다. 이동중에나 잠시 카페에 들러 읽을까 해서인데, 책장에서 손에 집힌 책이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이다. 대학에서 ‘행복의 과학‘이라는 인기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는 저자의 행복학을 기대하게끔 하는 책. 30년간 이루어진 행복 분야의 연구를 갈무리하여 ˝굵직한 결론들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생존과 맞물려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성과 본능 사이의 갈등과 줄다리기가 인간의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이기에 의식이나 생각으로부터 분리시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의 일부만 행복과 연관되기에 생각을 바꿈으로써 행복해진다는 건 극히 제한적으로만 옳다. 착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행복을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로 전환한 것은 타당하며 동의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저자의 서술이 정연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강의로서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 책의 서술로는 비약과 공백이 많다. 게다가 이성과 의식, 본능과 감정 등의 개념을 별다른 정의 없이 혼용하고 있어서 독서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참지 못하고 이런 지적을 하게 만든 대목이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주술사의 현란한 기우제 춤 때문에 비가 온다고 믿었다. 춤은 눈에 띄지만, 비의 원인은 아니다.˝

무슨 말인가. 여러 번 읽었는데, 저자는 이성적 능력을 기우제 춤에 비유한 것으로 읽힌다. 옛사람들이 기우제 춤을 믿음으로써 비의 진짜 원인에 대한 이해에는 이르지 못한 것처럼, 우리가 이성적 능력을 신뢰한다면 행복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지. 나로서는 기우제 춤 같은 주술적 행위를 이성적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도 특이하게 여겨지면서(그런 주술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반이성적 활동이 되는가?) 동시에 저자는 ‘이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단비를 행복이라고 해보자. 이 비가 언제, 왜 내리는지 알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습도나 풍향 같은 자연 요인들을 이해해야 한다. 주술사의 춤이나 기우제 음식 같은 가시적인 것에 현혹돼서는 행복의 본질을 볼 수 없다.˝

단비(행복)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습도나 풍향)을 말해주는 것이 아마도 저자가 소개하려는 행복의 ‘과학‘인 듯싶다. 그런데 그 과학은 이성적 사고와 무관한 것인지. 이성적 사고를 주술사의 춤에 비유하면 과학은 대체 어떤 능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인가. 가시적인 것에 현혹되어서는 행복의 본질을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그때 행복은 가시적인 것인가, 비가시적인 것인가. 행복을 본다는 것은 볼 수 없는 것(보여질 수 없는 것)을 본다는 뜻인가.

˝이런 비유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나는 이런 비유(우회)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행복은 뇌의 문제이고 뇌의 상태에 달려 있다고 바로 주장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행복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과학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바로 뇌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뇌과학의 성과를 통해서 행복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는 것. 그런데 저자가 분리시키려고 하는 사고(생각)도 뇌의 활동이다. 이성 역시 뇌와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을 ‘뇌=본능=동물‘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성을 그 대척점에 놓고 있는데 이는 무리한 단순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술사의 춤만 보고 있어서 저자의 논의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주장을 매끈하게 이해하는 독자들의 뇌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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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추석 연휴의 첫날이다. 가까이에 양가 부모님이 사시기 때문에 특별한 이동이 필요하지 않고 제사를 지내지 않기에 단촐한 식사모임으로(올해는 동생들의 근무가 엇갈려서 모두 모여 식사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모든 명절행사가 종료된다. 오늘 같은 날 송편을 만들던 때도 있었으나 기억에 가물하다. 음식도 최소화해 가는 중이고 올해는 갈비찜도 줄이셨다. 하기야 부모님과 식사하는 일 자체가 일년에 몇회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설이나 추석이면 가족이 화두다. 가족들끼리 모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가족을 떠나 있어도 그렇지 않을까.

추석의 독서거리로 가족을 떠올린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래도 며칠 전부터 어떤 책을 고를까 궁리했다(기껏해야 일이분 머리를 쓴 것도 궁리라고 한다면). 그래서 고른 책이 사회학자 김찬호의 <한국인의 생애>(문학과지성사)다.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부제. 2009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한국인의 평균치적 삶의 경로를 열다섯 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대략 그렇게들 살았지, 라거나 이렇게들 사는구나, 라는 감상을 끌어내는 책이다.

사회학자 노명우의 <인생극장>(사계절)은 한 편집자의 강력한 추천으로 상기하게 된 책이다. 저자가 돌아가신 부모의 생애를 객관적 시점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아들이 대신해서 쓴 부모의 자서전이다. <생애의 발견>에 견주면, 평균인이 아닌 고유명으로서의 한국인의 삶을 그려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나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역시 사회학자 조은주의 <가족과 통치>(창비)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정리한 것으로 ‘한국의 정상가족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증적으로 짚어본 책이다. 김이경의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을 읽은 독자가 추가적으로 손에 들 만하다.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가 부제. 산아제한부터 출산장려까지 지난 시대 국가의 가족정책의 변모는 그대로 한국의 가족사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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