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지그문트 바우만 읽기‘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다. 담당자의 낙관 덕분에 신청이 저조함에도 폐강되지 않았다(하지만 다음 강의를 기획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겠다). 아무래도 바우만은 경계가 모호한 듯싶다.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학자이고 전문적이라고 하기엔 또 대중적인 ‘현자‘이기에.

인디고연구소가 기획한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가 다음주까지 읽을 책이고 이어서 말년작인 <레트로토피아>(아르테)와 초기작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를 다음달까지 차례대로 읽는다. 워낙 다작의 사회학자라 유토피아라는 주제에 한정하여 책을 고른 것(<레트로토피아>의 출간이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바우만 강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에 대학의 교양강의예서(‘현대사회의 이해‘인가 그랬다) 교재 가운데 하나로 <액체 근대>(길)를 다루었기 때문이다(수주 동안 읽은 듯하다). 거의 십년 전의 일인 듯싶다. 그간에 바우만 책은 특히 2012년 이후에(<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이후다) 쏟아지다시피 출간되었기에 읽을 책이 너무 많다. 그나마 2017년 타계한 그를 기리며 기획된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북바이북)이 길라잡이가 되는 책.

거기에다 개정판으로 이번에 다시 나온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동녘)가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부 오역도 교정했다고 하므로 이미 읽은 독자라 하더라도 재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앞서는 <희망, 살아남은 자의 의무>와 같은 해에 출간되어 인터뷰에서도 언급된다. 다음주 강의는 그 대목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새로 나온 개정판을 나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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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학 전공자‘라는 프로필의 정보밖에 없어서 저자의 포지션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다. <타락한 저항>(교유서가)이란 얇은 책이 ‘우리 안의 반지성주의‘를 겨냥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는데, 목차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반지성주의를 논하기 위해 저자가 고른 세 가지 열쇳말(괄호안은 정치 진영)이 ‘블랙리스트‘(보수우파), ‘나꼼수 현상‘(중도우파), ‘메갈리아‘(진보좌파)라고 해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는데(수포자는 수학의 반지성주의자다) 다른 건 몰라도 권력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불법적 통제를 가리키는 ‘블랙리스트‘가 그에 해당하는가? 저자가 나꼼수와 메갈리아를 나란히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은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되 ‘지배하는 피해자들‘이라서다. 한데 블랙리스트는?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 역시 ‘지배하는 피해자들‘인가? 정리해서 ‘블랙리스트=나꼼수=메갈리아=반지성주의‘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가? 그게 아니라면 블랙리스트는 뭔가 저자의 의도와는 잘 맞지 않는 열쇳말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반지성주의는 우리말의 부정적 어감과는 달리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자칫 반권위주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바로 거기에 반지성주의의 힘이 있다. 반지성주의이면서 반엘리트주의. 반지성주의는 자연스레 평등주의를 함축한다. 가령 종교에서의 반지성주의는 사제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반권위주의와 만난다. 그것은 몽매주의와는 다른 자가계몽주의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반지성주의가 한국어에서 갖는 의미는 주로 그 부정적인 절반에만 한정되기에 반지성주의를 주제로 한 책도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반지성주의는 반권위주의와는 다르고, 또 반엘리트주의와도 다르며... 더불어 좋은 입론을 세우기도 어렵다. <타락한 저항> 역시 그런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동녘)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어제 쓴 글인데 페어퍼 등록이 거부되어(알라딘의 금칙어DB 에러라나) 이제서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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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이번주에 강의할 책들을 챙겨서 동네 카페로 나왔다. 카페도 오후가 되어서야 문을 열었는지 아직 먼지 냄새가 가라앉지 않았고 손님도 내가 유일하다. 나오면서 확인하니 기온은 8도. 아직 봄기운보다는 찬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 어제는 저녁무렵 비가 흩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내에서 내다보기에는 봄이 완연하다. 이번주에는 아파트단지의 목련들도 만개할 준비를 마칠 듯하다.

길게 느껴지는 한달이었다. 열흘간의 이탈리아여행이 상순에 있었기 때문인데 이후에도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가는 통에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어제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나이와 함께 회복탄력성이 점점 떨어지는 탓이겠다. 그래도 벌써 9월의 영국문학기행을 위한 강의와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니 올해도 한달음에 지나갈 것 같다. 길게 느껴지면서도 한순간이라니.

이탈리아여행 뒤풀이격으로 주문한 책들을 내주면 다 받아보게 된다(여행 전후로 구입한 책이 수십 권이다). 여행은 준비도 필요하지만 막상 현지에서의 경험과 느낌으로 촉발된 과제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해보인다. 단테와 르네상스, 그리고 프리모 레비는 물론이고, 이번 여행의 과제는 아니었지만 숙제로 떠안고 온 마키아벨리와 그람시까지. 이번에 볼 수 있었던 미술작품들 덕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에 대해 친숙한 느낌을 갖게 된 것도 보람이다.

그중 사후 500주년을맞은 다빈치에 대해서는 여행 전에 <인포크래픽, 다빈치>만 구입하고 채 읽지못한 상태였는데 이번에 월터 아이작슨의 평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왔고 쟁여두기만 한 책으로는 발레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까지 두루 읽을 거리가 생겼다. 다빈치의 인생에서 중요한 도시는 피렌체나 밀라노 외에도 프랑스 파리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내년가을 프랑스문학기행 때 루브르를 찾는다면 (다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온다는) ‘모나리자‘도 직접 보게 될지 모르겠다. 다빈치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쉬엄쉬엄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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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데이비드 베너타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서광사)다. 얼핏 철학에세이인가 싶지만 출판사로 짐작할 수 있듯이 진지한 철학서다(서광사의 베스트셀러도 있는지?). 저자는 남아공의 철학자. 소위 ‘반출생주의‘의 대표 철학자란다. 호기심에라도 손에 들게 되는 책이다. 반출생 논증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얼마나 강력한지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단지 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실천과 직결되는 함의를 갖는다. 우선, 베너타의 논증은 무엇보다도 출산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숙고하는 개인에게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만일 베너타의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출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미 출산을 한 번 이상 했다 하더라도, 추가로 출산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출산을 독려하거나 사회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의 도덕적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에도 도전을 제기한다.˝

제목 때문에 같이 떠올리게 되는 책은 에밀 시오랑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챕터하우스)다. 원제는 부제로 붙어 있는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다. 과거에 <내 생일날의 고독>(에디터)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책. 돌이켜 보니 25년전 생일날 읽었던 책이다. 어느새 그만큼을 더 살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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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3-26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낳고 저는 행복했지만
아이에게는 미안했던 기억이~~
마치 사기친 기분이랄까.
살아보니 좋은 거 하나 없었는데 삶을 안겨줘서.

로쟈 2019-03-26 23:37   좋아요 1 | URL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가 선택지가 아니어서 판단이 어렵습니다.^^

2019-03-26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6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7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7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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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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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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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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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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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7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거리 여행 다음날부터 이틀 연속으로 강의가 있었고 나름대로는 시차에 무난히 적응한 줄로 알았다. 아니었다. 강의가 없던 어제부터 무너지기 시작해서 오늘까지도 식사 이후엔 여지없이 침대를 찾는다. 어떤 일에서건 ‘나 홀로 예외주의‘라는 건 없는 법. 시차적응도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고 몸이 적응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어제 주문한 책들이 좀전에 배송되었는데, 여행을 이유로 주문을 보류했던 책들이다. 그 중 하나는 마크 그리프의 <모든 것에 반대한다>(은행나무). 책의 제목만 보고는 저자가 여성이고 페미니즘 관련서라고 생각했다. 추천사들에 수전 손택 이야기가 나와서 넘겨짚은 것이다. 책을 받고서야 저자를 검색해보니 1975년생의 미국 문화비평가로 남자다. 프로필에는 2008년부터 뉴스쿨에서 문학을 가르친다고 돼 있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스탠포드대학의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n+1>이라는 문화비평지를 공동창간한 것도 주요 이력이다.

대표작이 2015년에 낸 <인간 위기 시대>와 함께 그 이듬해에 펴낸 <모든 것에 반대한다>로 보인다. 원서도 이미 주문해놓은 상태인데, <인간 위기 시대>에도 관심이 간다. 그러고 보니 프레드릭 제임슨이 이렇게 평해놓았다(제임슨 선집도 엊그제 주문했다).

˝그리프의 책은 현재의 현상학이라는 불가능한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소설도, 일기도, (푹 빠져들어 읽는) 그 무엇도 아니며, 아마 블로그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기 직전의 현실을 파고드는 환상적인 독서로 이끌 것이다.˝

현재의 현상학? 아무려나 새로운 감각,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평을 시도하는 듯싶다. 좋은 비평의 새로운 사례로 꼽을 수 있을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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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무인 2019-03-1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같이 구입하시는 경우가 많던데 왜 구입하는지 궁금합니다 같이 읽으시는지요 독서나 서평쓰는데 어떻게 활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로쟈 2019-03-17 18:44   좋아요 0 | URL
가격이 적당하다면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좋은 책은 원서로도 읽을 만해서. 번역이 안 좋은 책은 백업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