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전철역에서 사든 '시사IN'에서 옮겨놓으리라고 찜해 놓은 기사는 '건강불평등'에 관한 특집기사이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8). 계기는 물론 최근에 출간된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2008)이고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013968). '복습'하는 의미로 기사도 읽어두기로 하자(책은 못 읽더라도).

시사인(08. 04. 01) 미국인 건강 순위 25위의 의미는?

미국을 따라하려는 그 어떤 보건 시스템도 반드시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 이치로 가와치 교수의 말이다. 미국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 최부국이자, 각종 신약 개발이나 의학 신기술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나라이다. 미국 사회가 보건 의료에 지출하는 돈은 약 1700조원(2003년)으로 국민총생산의 15%에 해당한다. 그러나 평균 수명과 사망률을 기준으로 매년 각국의 순위를 매기는 ‘건강 올림픽’에서 미국은 20위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29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그해 국민소득이 미국의 10%에 불과한 코스타리카는 25위, 국민의 영양 상태를 걱정해야 하는 쿠바는 30위였다.



미국 사회가 직면한 천문학적인 의료비 지출과 국민 건강 수준 사이의 끔찍한 불균형은, 많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의료보험 체계를 개편하자는 미국 사회의 고민과 맞물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의료 현실을 풍자하는 역작 <식코>를 지난해 내놓았다. 마이클 무어는 손가락 하나 봉합하는 데 수천만원이 들어가고, 아이가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자기들과 거래하는 보험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결국 아이가 죽음에 이른 사례 등을 들이대면서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비인간성을 까발린다. 그는 4500만명에 이르는 보험 미가입자뿐 아니라 많은 돈을 들여 보험을 유지하는 보통 사람도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어는 사실상 무상 의료 체계를 갖춘 영국, 그와 유사한 캐나다와 쿠바의 의료 체계를 소개하면서 미국 보건 체계의 거시적 비효율성을 고발한다. 특히 영국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극빈자에게는 귀가할 차비까지 챙겨주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건 체계를 갖췄다. 1948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갖춘 후 그 시스템을 줄곧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전 국민 무상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춘 영국 국민의 건강은 만족스러운 수준일까? 영국은 영국대로 고민이 깊다. 계층 간 건강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아서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 사회 모델을 구현한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그들의 고민은 이렇게 집약된다. ‘누구나 병이 나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왜 저소득층의 건강은 상위 계층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가?’



영국, 공짜 치료해도 건강 격차는 여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답이 있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데다가 음주와 흡연, 운동 부족 등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져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그렇게 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불평등을 사회 정의의 문제로 접근했다. 담배를 피우고 독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실태를 반영하듯 한국에 번역된 관련 서적도 영국 연구자의 저작 일색이다.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펴냄),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리처드 윌킨슨 지음·당대 펴냄)에 이어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후마니타스 펴냄)가 최근 출간되었다. 한국 사회에 처음 건강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대중적으로 환기했던 한겨레의 기획 보도와 전문가의 글을 한데 묶은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사회 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이창곤 지음·도서출판 밈 펴냄)는 지난해 말 출간되어 건강불평등에 관한 국내외 논의를 집대성했다.



신간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원제 The Impact of Inequality)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불평등한 사회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도 떨어뜨린다.’ 불평등한 사회는, 열악한 처지의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좀먹는다는 것이다. 대표적 불평등 사회인 미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이 보건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로, 민간 보험사의 손아귀에 국민 보건을 내맡긴 의료보험 체계를 지목한 데 비해 영국 연구자는 유난스러운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자체를 원인이라고 본 셈이다.

윌킨슨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보다 가장 평등한 주에서 건강 수준이 더 높았다고 지적한다(53쪽 도표 참조). 소득 편차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데 활용되는 지표인 중위 계층 가구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즉 소득 편차가 적은 지역일수록 평균 사망률은 낮았다. 반대로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 격차가 큰 지역일수록 그 지역의 소득 격차는 어김없이 컸다. 2000년 초반 자료에 근거한 연구 결과는 미국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16세 백인 여성은 86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되지만, 뉴욕과 시카고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의 기대 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분배와 건강이 관계가 있다면 그 변수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고리를 규명하는 데 골몰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저자의 다른 저서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보다 더 진전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스트레스를 중간 고리로 삼아 사회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 의과대학에서 사회역학과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마이클 마멋과 함께 사회 역학 분야에서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물론 건강형평성 학회 창립 멤버인 조홍준 교수(울산대 의대)처럼, 윌킨슨이 건강불평등의 발생 기전을 사회심리적인 것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물질적·정치적 요인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불평등의 실상과 파괴적 영향에 관한 그의 문제 제기는 우리나라 독자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낮은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평했다.



부유한 주보다 평등한 주가 사망률 더 낮아


왜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영국 사회의 전통은 꽤 뿌리가 깊다. 저명한 건강불평등 연구자인 마이클 마멋 교수에 따르면 영국이 건강불평등 문제에 착목한 것은, 150년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마이클 마멋 인터뷰). 현재 영국은 암 발생률과 흡연율을 언급할 때도, 전체 인구에서의 발생률과 취약 계층의 발생률을 각각 거론할 정도로 ‘건강불평등 인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서 건강불평등이 정식 어젠다로 채택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분야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로 얘기되는 블랙 리포트는,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블랙 위원회에 연구를 의뢰해 1980년 세상에 빛을 본 것이지만, 이후 집권한 보수당 정권은 이 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건강불평등을 논제로 삼지 않았다. 그 사이 보수당 집권 시기에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그에 따라 계층 간 건강 격차도 커졌다. 1997년 다시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후 건강불평등 실태와 정책 제안에 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그것이 애치슨 보고서이다(55쪽 참조).

보수당 집권기에 정부는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 차이(Vari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국 보건부 건강불평등팀 레이 어리커 박사는 “건강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일은, 곧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연결되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관료의 증언에 따르면, 발병 후 처치를 맡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 체계(NHS) 유지에 들어가는 돈보다,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일련의 건강불평등 정책이 오히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설득이 주효해 건강불평등 완화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책은 기대 여명을 늘리고 영아사망률을 줄이는 것에 집중되었다.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 요인에 관한 연구는 최근 20년 동안 특히 선진국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계층 사이에 왜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연구는, 정책 수단을 결정하는 데 긴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 요건이 충족된 부유한 나라의 경우, 그 관심은 더욱 첨예하다. 지금까지 지목된 사회 요인으로는 초기 아동기 경험, 현재 겪는 불안과 걱정의 강도, 사회 관계의 질, 삶에 대한 자기 통제력의 정도, 그리고 사회 지위 등이 있다.

특히 마이클 마멋은 사회적 지위와 사망률의 연관 관계를 밝힌 연구로 유명하다. 마멋은 영국의 공무원 사회 분석을 통해 직무에 대한 자기 통제권이 적을수록, 즉 조직의 말단으로 갈수록 수명 등 건강 지표가 나빠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바 있다(<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노순동기자)

08. 04. 05.

P.S. 건강 형평성 연구에 관한 보충기사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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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3-15 11:09 
    지난주에 서평도서로 내가 고려했던 책은 그 전주에 나온 <권력의 병리학>(후마니타스, 2009)과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2009)이었다. 지면 사정상 후자에 대해서 쓰게 됐고 <권력의 병리학>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리뷰기사가 별로 올라오지 않았다. 다행히 메인으로 다룬 기사가 하나 있어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9. 03. 06) 질병은 왜 가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