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는 아니고 가끔 눈에 띄는 기획기사들이 있을 때 '씨네21'을 사서 본다. 보통은 전철에서 읽는다. 지난주에는 '미국영화는 지금 다시 태어났다'는 특집좌담 때문에 사보게 됐는데(세 주 연속특집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이 좌담 외에 특별히 재미있게 읽은 건 김소희 기자의 '오마이이슈'. 매주의 시사 이슈를 정리해주는 꼭지인데(원고지 6매짜리다), 나는 가끔씩 읽어보지만 그 입담에 경탄하곤 한다(한겨레21의 '오마이섹스'보다도 더 섹시하다!). 급기야는 이번주의 '진짜 유별난 DNA'를 며칠 전에 읽고서 몇 편을 모아놓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한달치의 '이슈' 총정리이다.

씨네21(08. 03. 17) [오마이이슈] 진짜 유별난 DNA
아침 8시에 일어나기도 힘든 나에겐 아침 8시 전 회의는 경이로울 뿐이다. 세상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니, 월화수목일일일도 아니고. 남편이 공무원인 우리 옆집 언니 얼굴이 반쪽이 됐던데, 머슴처럼 봉사하겠다며 새벽 별보기, 노 홀리데이를 하면 진짜 머슴처럼 뒷수발 드는 이들의 노동환경은 더 가혹해진다. 운전기사, 경비아저씨, 수행비서, 기타 등등. 설마 한푼이라도 더 시간외수당을 챙기려는 심보는 아니겠지? 워낙 실용적인 분들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공무원들이 바삐 일한다면 고소한 면은 있다. 문제는 그게 진짜 일을 하는 건지 하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 종일 졸리고 멍하다는 ‘얼리 버드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통령이 닦달하니 청와대, 정부부처, 공공기관, 지자체까지 일사불란하게 회의시간을 당기고 휴일에도 나와 일한다. 그동안 다 널널하게 놀았다는 말씀인가. 기업지원과를 기업사랑과로 바꾼 지자체, 직원들에게 영어학원 등록을 의무화한 기관도 있다. 프렌들리가 지나치면 스캔들-리가 된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공기업·공공기관의 임원들을 “알아서 떠나라”고 한 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멀쩡한 절차를 거쳐 뽑힌, 임기도 한참 남은 이들을 겨냥해 “이전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이라며 역시 물러나라고 하고, 한나라당 대변인은 “좌파이념에 매몰된, 유별난 DNA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이렇게 색칠을 하는 이유는 당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자기 사람에게 한 자리 주려는 것이라는 걸 아침잠 많은 국민들도 다 안다.
정작 ‘유별난 DNA’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교육계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회장으로 있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애들에게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더니, 지역 등수, 전교 등수를 매겨 공개할 작정이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하려고 예상문제집을 나눠줘 달달 외우게 하거나(서울시교육청), 운동부 학생 및 장애 학생을 시험에서 제외하는(경기지역 한 학교) 작당을 하기도 했다. 학생 수준을 진단해 그에 맞게 가르치고 학력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더니, 알고 보니 애들을 ‘대리인’으로 교육감들과 학교장들이 경쟁하는 꼴이 아닌가. 내 일찍이 당부한 바 있듯이, 그렇게 겨뤄보고 싶으면 깔끔하게 자기들끼리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시험 보란 말이다. 영어 시험에 말하기랑 듣기는 꼭 넣고.(김소희_한겨레21 기자)

씨네21(08. 03. 10) [오마이이슈] 식량 주권
식당들이 메뉴판을 다 바꿨다. 500원, 심하면 1천원씩 올렸다. 아니, 밀과 옥수수값이 폭등했는데, 비빔밥 값은 왜? 밥집 아줌마의 싸늘한 일갈. “국제 곡물값 상승이랑 유가 급등 몰라? 미국이 콱 쥐고 비싸게 파니깐… 뭐든 덩달아 올랐어.” 그럼 왜 200원이나 700원도 아니고. 덧붙인 일갈. “잔돈 거슬러주기 귀찮아서.” 더 오를지 모르니까 미리 올려놓고 보자는 ‘확보주의’ 심리도 작동한 것일 게다.
십수년 전 우르과이 라운드 때부터 익히 들어온 ‘식량 주권’이 이러다 진짜 위협받는 건 아닐까 싶다. 내 주변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우리 사무실 조계완 선배에 따르면 위협받는단다. 허걱. 그럼 앞으로 밥 많이 못 먹나? 다행히 우리가 쌀은 거의 자급자족한다. 그러나 다른 곡물 자급률은 5%. 그리하여 전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국제 곡물값은 지난해 이미 전년도에 견줘 두배로 폭등했다. 기상이변으로 곡물 작황이 부진한 터에, 중국·인도 등 급격히 소비수준이 높아진 큰 나라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많이 하면서 사료곡물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이들 나라에서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경작면적이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다. 그래 결국 고기 많이 먹는 게 문제야(이다혜 우리 이 참에 끊을까?). 바이오연료도 ‘곡물 먹는 하마’로 급부상했다.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대체에너지인 바이오연료 산업은 더욱 커졌다. 이런 얽히고설킨 상황에 따라 곡물 재고량은 바닥을 내보이고 있다. 조만간 소비량이 생산량을 넘어서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격 급등에 확보문제까지 겹치니, 바야흐로 식량이 무기가 된 시대라고 조계완 선배는 설명했다.
대규모 곡물 생산국은 미국·중국·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 등 큰 나라들이다. 그중 미국의 생산집중도가 제일 높다. 세계 곡물 수출시장을 쥐고 흔드는 주요 메이저 기업들도 대체로 미국 회사다. 이들이 결정적일 때 가격에 영향을 끼친다. 개방 압력을 넣어 작은 나라들이 농업을 포기하게 만든 것도 이들이다. 그럼 유가 급등은 무슨 상관일까? 우리의 곡물 수입 의존도는 2000년 중국(50.2%), 미국(29.1%) 순이었으나, 2006년 미국(55%), 중국(19.6%)로 뒤바뀌었다. 운임 비용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이다.
결국 우리 밥상을 지배하는 ‘보이는 손’은 미국인 거네. 아줌마 말이 맞네. 무섭다. 내 삶의 유일한 밑천, 밥이나 먹어야겠다. 쌀만은 지키겠다며 아스팔트 농사 짓던 농민들의 은덕을 이렇게 입는구나. 모두들 라면, 빵 대신 밥 드세요. 밥힘으로 견딥시다.(김소희_한겨레21 기자)

씨네21(08. 03. 03) [오마이이슈] 왜 언니들은 하나같이 문제지?
장관 후보자 세명이 사퇴했지만, 남은 사람들도 가히 의혹 종합선물세트다. 집·땅·아파트·오피스텔에 이어 국경까지 넘나드는 버라이어티한 투기, 탈세, 표절, 군사정권 부역, 허위 경력, 공금횡령, 외국적 자녀의 건강보험 무임승차, 부동산 실명제 위반…. 위법 내용도 어찌나 다양한지, 운전 중 속도위반을 일삼은 이도 있다. 이러다 정부 구성 못하겠다, 대사면시키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청문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제대로 일을 할까 의심스럽다. 노동·복지장관 후보자는 자기 분야의 현안에도 구체적인 답을 못하거나 의원들의 다그침에 말을 바꿨다.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공부 더 해야겠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개인의 ‘굴욕’을 넘어 부처의 ‘굴욕’, 나아가 그들에게 행정적인 권한을 위임한 국민의 ‘굴욕’이다. 날이 바뀔 때마다 ‘더 큰 의혹’이 터져나와 정신이 없다만, 간추려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사퇴한 세 후보 중 두명은 여성이었고, 논문 표절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청와대 수석도 여성이다. 하나같이 다 이상하다. 왜? 여자들이 공직을 맡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아니다. 구색 맞추기로 여성을 등용하다 보니 공들여 찾지 않고 가까운 데서 아무나 데려다 앉힌 결과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술, 용인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녀국적·부인투기·정신세계 삼박자로 욕을 먹다 사퇴한 다른 한 남성후보는 통일부, 걸어다니는 ‘의혹 백화점’인 후보와 허위경력 기재 같은 바보 같은 짓을 한 또 다른 후보는 각각 보건복지가족부와 노동부 장관 내정자이다. 모두 대통령이 없애려 했거나 노골적으로 홀대하는 부처다. 참,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도 복지 담당이지.
돈 되는 부서만 챙기고 나머지 부서는 잘나가는 부서의 지원부서로 여기는 ‘사장님 마인드’가 정부 구성에도 적용된 것이다. 거기에 부처 수장을 자기 수족 정도로 여기고, 여성은 말 잘 듣는 만만한 이로 고르면 된다는 생각이 더해진 게 아니라면 이런 식의 인사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투기 의혹에 “남편 선물”이라느니 “땅을 사랑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최소한의 공적 훈련도 안 된 여성들이 여론에 밀려 사퇴하자 “여성 인재 풀이 워낙 적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하루아침에 여성의 지위와 권익을 퇴행시켜버렸다. 한나라당의 여성의원과 당직자, 전문위원들은 그럼 뭔가. 여성 등용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일천하고 위험한 이가 그려나갈 ‘실용’이 대체 어떤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김소희_한겨레21 기자)

씨네21(08. 02. 25) [오마이이슈] 단병호와 부자 정부
회사 동료 길사마가 최근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한 한 인사를 놓고 기염을 토했다. 일찍이 조기 유학을 떠나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려다, 잘 안 됐는지 한국에 돌아와 한국의 캐네디가 되려고 하는데, 혼자 잘나 잘벌고 잘먹고 잘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아무런 책임도 애정도 없어 보이는 성장 배경을 갖고 공공의 영역인 정치에까지 진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라는 주장이었다(헉헉 옮기기도 숨차다).
나는 솔직히 조금 무서워진다. 우리 사회의 ‘주류’는 언제부턴가 조기 유학을 떠나 내내 나라 밖에서 살아온(살고 있는) 이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선한 이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많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의 경험이다. 고급 세단 타고 비싼 사립학교 다니다 미국의 고급 주택가에서 역시 비싸게 공부해 고급 일자리 얻은 다음 비슷한 배경의 배우자를 만나 자기 자식도 비슷한 코스로 키우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세상은 제한돼 있다. 그들의 선의가 경험의 폭에 갇혀, “어머,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하지만 저 사람들 길바닥에서 저러고 있으니 정말 불쌍해” 식으로 발휘된다면?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대한민국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고와 판단을 먼저 하기 쉽다. 자기를 버리는 수준의,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막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내각 인선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고 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하나같이 땅땅땅 억억억 부자들이다. 집이 서너채에 전국 산지사방에 땅을 보유한 이들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부동산 투기는 대체 누가 한 것일까.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요청 사유서’에 실린 재산내역을 분석한 기사를 보면, 이들은 대체로 ‘우연히도’ 부동산 개발 바람을 타고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배불린 10년이다. 그런 이들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까.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탈당과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부동산 부자 내각의 면면을 접했다. 단 의원의 부인 이선애씨는 경기 성남의 집 근처 상가에서 채소가게를 하고 있다. 남편이 노동운동을 할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국회의원을 할 때나 변함없다. 살고 있는 아파트도 이씨가 일찍이 분양받아 새벽일 해가며 대금을 부어 마련한 것이다. 단 의원 같은 이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평균 재산 40억원의 불로소득을 누려온 이들은 하루아침에 국정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닐까.(김소희_한겨레21 기자)
08. 0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