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조카와 함께 양우석 감독,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을 봤다(<변호인 노무현>이란 책도 발 빠르게 나왔군). 최근 개봉작 중 가장 '핫한' 영화라는 걸 입증하듯 객석은 만원이었다. 사실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여 약간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기대 이상의 노숙함을 보여주는 '웰메이드'였다. 게다가 특별히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감동을 전하는 힘이 있었다(프레시안 김용언 기자의 리뷰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1219183833). 문제는 1980년대 전두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현재형'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것.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침묵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30년 전이라니!). 나이를 어떻게 먹은 것인가 싶다. 하긴 권력의 포진으론 유신시대를 방불케 하니 40년 전이라고 해도 믿겠다.

 

 

 

하여 <레미제라블>에서 <변호인>까지가 내가 본 '올해의 영화'가 됐다(혹은 '비참한 사람들'에서 '변호인'까지). 영화의 에피소드대로 <역사란 무엇인가>도 불온서적이던 시대가 있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1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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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있으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필요한 책을 못 찾을 때이다. 강의와 원고에 필요한 책을, 그것도 교재로 쓰거나 서평감으로 쓸 책을 못 찾을 경우 몸에서 열이 날 수밖에 없다(이건 물론 몸을 움직여서 그렇기도 하다). 방안 어느 구석엔가 있는 걸 못 찾으니 더더욱 답답할 밖에. 이미 임계치에 도달해 있기에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 그런 경우 보통 책을 다시 주문하곤 하지만 내일 강의할 책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잠시 열을 식히기 위해 책상머리에 다시 앉아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독일영화사를 다룬 수준 높은 연구서가 한 권 나왔길래 주저없이 '발견감'으로 분류한다. 안톤 캐스의 <히틀러에서 하이마트까지>(아카넷, 2013). 원저는 1989년에 나왔다. 부제는 '역사, 영화가 되어 돌아오다'. 어떤 책인가.

다섯 편의 독일 영화를 통해 히틀러와 히틀러 이후의 독일 역사에 관한 허구, 기억, 현재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책이다. 영화가 제2차 대전 이후 독일 역사의 자리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되는지, 과거에 어떻게 개입하고 해석하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서 독일의 영화사, 기억의 문화사, 그리고 역사에 대한 메타 비평을 하나로 녹여내어 영화와 역사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또한, 독일의 문학과 영화, 역사에 관한 방대한 지식, 이들을 분석하기 위해 참조하고 인용한 풍부한 지성사는 독자들에 훌륭한 지적 성찬을 제공한다.

 

 

책에서 다룬 영화들은 1980년대 초반 뉴저먼시네마의 다섯 작가가 만든 다섯 편이다. 위르겐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한 편의 독일영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알렉산더 클루게의 <애국자>, 헬마 잔더스-브람스의 <독일, 창백한 어머니>, 에드가 라이츠의 <하이마트> 등이다. 내가 본 건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독일, 창백한 어머니>는 출시돼 있어 구해볼 수 있겠다. 독일 영화 가이드북으로는 <독일영화 20>(충남대출판부, 2010)도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독일 영화 관련서로는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최경은의 <독일영화와 독일문화>(연세대출판부, 2008)도 입문서 격의 책. 조금 전문적일 수 있지만(영화가 많이 소개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볼프강 야콥센 등이 엮은 <독일영화사1,2>(이화여대출판부, 2009)도 참고할 만하다. 이제 보니 안톤 캐스는 이 책의 편자로도 참여하고 있다('안톤 케스'로 표기돼 있다). 189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다루고 있으니 두어 권은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안톤 캐스는 프리츠 랑의 영화 <엠(m)>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영화들에 대한 연구서도 더 갖고 있다...

 

13.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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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 카테고리의 글을 적는다. 올해 수능을 본 조카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를 보고 와서다. 같이 본 아이의 반응은 재미없다는 거였지만(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우리를 포함 다섯이었다) 소문대로 단연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한 수작이다(내겐 <관상>이나 <설국영화>보다 만족스럽다).  

 

기사 이미지

 

관련기사를 찾아보니 '잉여'를 다룬 영화들이 올해 더 있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610299.html). 이호재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장현상의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등이 같은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고. 다른 두 편은 보지 못했지만, <잉투기>는 '잉여'가 무엇인지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확실히 보여준다. 장편 데뷔작인 듯싶은데, 놀라운 재능이다(우리가 매년 볼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영화의 발단은 이렇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태식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대립했던 ‘젖존슨’에게 현실에서 급습을 당한다. 흠씬 두들겨 맞는 모습이 인터넷에 퍼져 망신을 당한 태식은 젖존슨에게 복수하기 위해 종합격투기를 배우러 갔다가 관장의 조카 영자를 만난다. 인터넷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에 빠진 영자는 태식을 도와 젖존슨 찾기에 나선다. 태식은 인터넷 잉여들이 실제 격투를 벌이는 ‘잉투기’ 대회에 대해 알게 되고, 이 대회에서 젖존슨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잉여'는 출판에서도 올해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매체의 차이는 있지만 잉여 영화들의 선전에 대응하자면 잉여 담론도 더 분발해야겠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젊은 감독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잉여는 주요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코미디 프로그램(<개그콘서트> ‘오성과 한음’)과 웹툰(<미생>), 이말년 만화가의 소재가 되고, 잉여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책(<속물과 잉여>, <잉여사회>)까지 나왔다. 세 감독들은 이를 ‘신기하고 재밌는 현상’이라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잉여 문화를 소비하고, 잉여짓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 주류도 많아요. 높은 연봉에 번쩍번쩍한 차를 타도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운 거죠. 잉여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대리만족 하는 거예요.”(이호재) “잉여들은 순수하게 재미를 위해 ‘병맛짓’(어이없고 맥락없는 짓)을 하고 더 수준 높은(?) 잉여짓에 감탄하며 무릎 꿇어요. 주류는 이걸 잠시 소비하거나 심지어 돈벌이로 이용하죠.”(장현상)

 

잉여를 소비하는 주류를 비웃지만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주류(대기업)의 시스템에 편입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게 왜 문제가 되죠? 우리는 주류의 시스템을 이용해 ‘잉여짓’을 하는 건데…. 전 이걸 ‘잉여들의 역습’이라 부르고 싶어요. 하하하.”(이호재)  

 

‘영화’라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감독님’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제 잉여가 아닌 것은 아닐까? 진짜 잉여들이 보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이호재 감독은 자기 영화가 잉여들에게 ‘저런 놈도 뭔가 해냈는데, 넌 뭐하냐?’는 식의 또다른 ‘억압’이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호의적’이 된 남들의 시선도 부담스럽단다. “영화 찍은 뒤에도 전 너무 게을러 몇 달 동안 일을 하나도 안 했어요. 웃겨요. 전 변한 게 없는데, 영화 찍기 전엔 손가락질하더니 이젠 대단하대요.”

 

장현상 감독이 말을 이어받았다. “잉여는 탈출하거나 벗어나야 할 영역이 아녜요. 이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 나쁜 놈은 안 되겠지만, 계속 이상한 놈(잉여)으로 살 것 같아요.” 엄태화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것이 좀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는 될 수는 있겠다 싶단다. 사람답게 사는 게 뭐냐고 물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밥은 좀 안 얻어먹는 것? 히히.” (한겨레) 

1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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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바커의 <맑스 재장전>(난장, 2013)의 '원본'이기도 한 영화 <맑스 재장전>이 순회 상영회를 갖는다고 한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비슷한 성격의 인터뷰집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자음과모음, 2013)와 알랭 바디우의 <투사를 위한 철학>(오월의봄, 2013)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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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간지 기사들을 읽다가 배우 최민식의 '마스터클래스' 강연기사를 접했다. 재미있게 읽었기에 마지막 대목을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603183.html).

 

한재덕_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최민식_사나이픽쳐스에서 제작한 <신세계>의 강 과장.

 

한재덕_그건 황정민씨 영화지. 거기서 선배가 한 게 뭐가 있나. (일동 웃음)

 

최민식_어쨌든 배우라면 오감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창작물을 많이 접해야 한다. 돈 생기면 성형하지 말고 좋은 공연을 보고 콘서트장에 가라. 외형적인 데 말고 나의 내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돈을 썼으면 좋겠다. 진짜는 귀하다. 흔하지 않다. 내가 나를 귀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배우다. 남이 날 알아주기 전에 내가 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개차반처럼 놀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나를 차갑게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처절하게 외로워봐라. 우리말이 아니라 좀 그렇긴 한데 ‘곤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진짜 내 자신을 냉정하게 다그치고 통제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기질이 나와야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다른 사람 피해주지 말고 일찌감치 때려치워라. 나도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재무장한다. 훌륭한 배우가 되기까진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한재덕_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뭐냐고 여쭤봤는데…. 아무튼 훌륭한 말씀 잘 들었다. (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드린다.

 

최민식_미안합니다. (일동 웃음) 아무튼 스스로가 귀한 존재란 걸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개뿔도 없는 자존심으로 버텨야 한다. 그런 거 누가 챙겨주는 거 아니다. 그거 하나로 나도 지금까지 살아왔다.

13.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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