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국제영화제가 한창 진행중인데, 영화사의 고전 가운데 새롭게 발굴/복원된 작품을 소개하는 2012 JIFF ‘되찾은 시간’ 코너의 '오프스크린' 행사 강연자로 참석하게 됐다. 내가 맡은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감독 우고 산티아고(Hugo Santiago)의 <인베이전>(1969)이다. 보르헤스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소개를 옮겨놓는다. 영화는 오늘 저녁에 상영된다(http://www.jiff.or.kr/g00_event/g10_special_0102.asp).  

 

 

혁명의 열기가 세계를 휩쓴 직후인 1969년, 아르헨티나는 기나긴 군사독재 중 유화 국면을 맞는다. 검열이 느슨해진 틈을 타, 우고 산티아고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및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와 함께 군사 쿠데타를 빗댄 <인베이전>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과 연출을 도맡는다. 권총 한 자루만으로 무력 침공을 시도하는 잔악한 무리를 막으려 동분서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리어드’를 떠오르게 한다. 침공을 막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트럭과 송신 장치는 트로이의 목마와 닮았고, 용맹하고 정의로우나 시작부터 패퇴가 예정되어 있는 인물들의 운명은 트로이인들과 같다.

 

고다르의 <알파빌>처럼, B급 범죄물이면서 현실 풍경을 배경으로 한 저예산 SF의 외양을 지닌 영화는, 가상의 도시 아킬레아를 무대로 삼았으나 기실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담은 지정학적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또,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사를 극사실주의로 기술하는 역사물처럼 보이기도 한다(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또 한 번 일어날 쿠데타와 길고 엄혹한 저항의 시간을 예감하는 결말 시퀀스는, 1973년 칠레 산티아고 스타디움에서의 학살마저 미리 보여주는 듯해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편, 괴수나 새의 울음, 노이즈, 탱고 선율 등이 직조하는 초현실적 사운드스케이프, 흑백 필름이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를 마술처럼 활용하는 미장센과 외화면 구성의 아름다움은, 이 작품을 상투적인 정치 영화가 아니라 세계영화사의 숨은 보석으로 기억하게 한다.(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메인 카달로그 리뷰어. 신은실)

 

오프스크린 3 : <인베이전>

• 강연자 : 이현우 (인문학자, 인터넷 서평꾼 ‘로쟈’)
• 일시 : 4월 29일(일) 20:00
• 장소 : 전주시네마타운 5관

 

12. 04. 29.

 

P.S. 참고로 영화는 유튜브에서도 전편을 볼 수 있다(123분 분량). 자막이 없는 게 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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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때문에, 거기에 덧붙여 재발한 관심 때문에 영화 관련서들을 사들이고 있는데,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책들도 눈에 띈다. 로버트 스탬의 <영화이론>(케이북스, 2012) 같은 경우가 그렇다.  

 

 

 

보통 영화를 공부한다고 하면 영화이론과 영화사에 관한 '교과서'를 구비해놓는 게 기본이었는데, 바로 그 영화이론 교과서라 불릴 만한 책이다. 원서는 진작에 구입해놓은 터라 번역본 출간이 반갑다. 스탬은 영화이론 앤솔로지 <영화와 이론>의 공동편자이기도 하다.  

 

 

초급 단계의 영화이론을 학습했다면 바로 다음에 읽어볼 만한 책이 스탬의 <어휘로 풀어읽는 영상기호학>(시각과언어, 2003)이다. 책이 출간됐을 때쯤 한번 소개한 기억이 난다. 당시엔 문화기호학과 영화기호학 관련서들이 드물지 않게 나왔었고 스탬의 책은 그중 요긴한 가이드북이었다. 그의 책으론 <자기 반영의 영화와 문학>(한나래, 1998)이 가장 먼저 소개됐었는데, 지금 다시 검색하니 절판됐다. 어디에 두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영화사 책으로 가장 많이 읽혔던 건 잭 C. 엘리스의 <세계영화사>(이론과실천, 1988)였는데, 어느새 절판된 지 오래다. 새로 나온 건 버지니아 라이트 웩스먼의 <세상의 모든 영화>(이론과실천, 2008). 원서도 6판까지 나온 걸 보면 가장 많이 읽히는 영화사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책은 <옥스포드 세계영화사>(열린책들, 2006). 996쪽에 이르는 '중량감 있는' 책이다.  

 

 

거기에 더 얹어서 크리스틴 톰슨 등의 <세계영화사1-3>(시각과언어, 2000)도 과거엔 필수 아이템이었는데, 이 역시 절판된 지 오래군.  

 

 

 

영화이론과 영화사로 들어가는 게 전공수준의 공부라면 교양수준의 영화공부도 물론 가능하다. 교과서격의 책은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현암사). 찾아보니 역자와 출판사가 바뀌었고,  얼마전 12판의 번역본이 나왔다. <영화의 이해>(케이북스, 2012). 판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아 이 역시 가장 인기 있는 교과서인 듯싶다.   

 

 

 

그렇게 책들을 구비하고 나서 독서와 함께 해야 할일은 물론 영화를 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를 다시 읽는 김에 히치콕의 '전작'에 도전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전작'에 모두 도전하는 건 아니고, 구할 수 있는 작품들은 대충 다 구해서 보자는 정도다. 물론 그래도 20편은 훌쩍 넘어간다. 히치콕에 관한 책은 그간에 모아두긴 했는데, 분량 때문에 미뤄둔 패트릭 매길리건의 방대한 전기 <히치콕>(을유문화사, 2006)을 이번에 구입했다. 오래전에 간단한 리뷰를 적기도 했지만 가장 간명한 전기는 로로로 시리즈의 <앨프레드 히치콕>(한길사, 1997)이고 가장 요긴한 자료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1994)다. 절판된 게 심히 유감스러운 책. 개인적으론 분실한 책이라 더더욱 아쉽다. 재출간되기를 기대한다. '히치콕 컬렉션'에 대해선 다음에 따로 적어야겠다...

 

12.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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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화제작 <도가니>도 못본 처지이긴 하지만, 새로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한 호평을 연이어 접하다 보니 이번 설연휴에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영화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김영진의 시네마즉설'이다.

 

 

 

한겨레(12. 01. 16) 관객 쾌감 명중시킨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한 장편 <부러진 화살>은 영화인들 사이에 화제였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일정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이창동 감독, 김유진 감독, 제작자 이춘연씨를 김해공항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이구동성으로 문제작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기자 시사회를 다녀온, 필자와 같은 학교의 교수이기도 한 황규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를 볼 때의 흥분을 느꼈다며 꼭 보라고 강권했다.

 

직접 내 눈으로 본 <부러진 화살>은 솔직히 말해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전개는 투박하고 출연진의 연기 수준도 고르지 않으며 사건을 축조해가는 방식과 주변인물들을 그 사건에 연관 짓는 방식도 낡았다. 이를테면 주인공 김경호를 변호하는 변호인과 김경호를 취재하는 기자 사이를 선후배의 연으로 묶고 플롯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식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에 강력하게 ‘한 방’ 먹이는 게 있었다. 그 한 방에는 누구도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석궁테러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진 이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주인공을 영웅화하지 않았다. 안성기가 연기하는 전 대학교수 김경호는 괴짜 수준의 인물이 아니라 속된 말로 ‘진상’으로 부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으면 아주 피곤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인데,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부조리한 법정의 복판에 서자 굉장한 극적 흥분을 만들어낸다.(게다가 이것은 실화이다.) 그는 민사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석궁을 쏜 혐의로 형사법정에 서게 됐으면서도 법대로 하라고 판사와 검사를 몰아붙인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를 모두 고소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국가권력의 잘못된 전횡에 김경호가 대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타고난 유전자의 반제도적인 기운 덕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의 돌연변이 행동은 관객에게 쾌감을 준다. 감독은 김경호를 플롯의 주인공으로 삼았을 뿐 영웅화하진 않았는데 도저히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인물을 우리는 좋아하게 된다. 그건 이 인물에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경호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죄의 일부를 인정하지만, 실제로 화살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 화살을 쐈다고 주장하는 반대편 논리의 허점을 주장하는데도 그에 관한 증거를 채택하지 않는 재판부와 검찰을 규탄한다. 캐릭터에 대한 미시적인 집중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낸다. 캐릭터가 하도 매력적이어서 <부러진 화살>이 좀더 법정 장면에 집중하는 쪽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판사 역으로 나온 문성근과 이경영의 존재감도 훌륭했다. 문성근의 유들유들하고 강고한 행동이 어떤 공격에도 상처받지 않는 기득권자들의 우월감을 생생하게 각인시킨다면, 애매한 표정과 망설임으로 일관하지만 자기 태도를 바꿀 의지는 전혀 없는 이경영의 판사 연기도 잊기 힘들 것 같다. 영화는 결국 이런 인상들의 고정점을 남겨주는 데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몇몇 이미지의 잔해를 불타는 채로 관객에게 넘겨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쓰고 보니 내가 애초 매긴 평점보다 훨씬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12.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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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다큐영화 <맑스 재장전>에 대해선 작년초에 들어본 듯한데, 지난가을 국내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게다가 감독이 알랭 바디우 전공자 제이슨 바커란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늦었지만 오랜만에 영화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11. 09. 26) "마르크스 유행이 허세일 수도 있지만 정치를 생각하게 한다면 문제 안돼"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2010)의 감독 제이슨 바커(39)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번역가, 저술가로 활동하며 영화도 찍는데 본업은 이론가다. 영국에서 태어나 정치철학을 공부했고,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알랭 바디우를 사사해 카디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2002)은 영미권에 바디우 철학을 최초로 소개한 입문서로, 2009년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맑스 재장전'이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2~28일)에 초청돼 24일 한국을 찾은 제이슨 바커를 만났다. 인터뷰에는 바커의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 국내판 해제를 쓴 철학자 서용순씨가 함께 했다. 서씨 역시 바디우를 사사해 파리 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다큐의 전제처럼 유럽 등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유가 뭔가.

바커 "나는 경제위기 이후 유럽과 영미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각광받고 있다고 보는데, 유럽에서 유행하는 반 세계화(Anti-globalization) 운동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사실 내가 이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웃음)"

-한국에서도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한다고 보는가.

서용순 "그렇다. 2006,2007년 16회에 걸쳐 마르크스 철학을 무료로 강의한 적이 있는데, 매번 70~80명의 사람들로 붐볐다. 유행의 이유를 찾자면 현실의 참혹함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정치, 경제적 위기를 벗어나고 싶은데 대안은 많지 않고, 그나마 대안을 얻을 수 있는 학자가 마르크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큐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춰 마르크스의 계급, 노동, 착취 등의 개념을 다시 사유한다. 한국과 영국의 사례를 통해 달라진 마르크스의 개념을 설명한다면.

서용순 "대표적인 것이 착취의 개념이다.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본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진중공업 사태다."

바커 "다큐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이제 노동자들은 '착취 구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착취 구조에 머물게 해달라'고 말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착취는 노동시간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게 아니다. 예컨대 우리가 TV를 볼 때, 광고를 봄으로써 또 다른 착취 메커니즘에 들어가게 된다."

서용순 "'해방의 정치'란 개념도 그렇다. 마르크스는 미래에 국가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해를 대변하고 조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가 겪은 20세기 역사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이었다. 다큐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본 것은 마르크스 이론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학자 모두 국가를 비난한다는 점이다. 이제 의회민주정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권을 장악한 정당은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매 선거마다 정권은 수시로 바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자민당이 계속 집권했던 일본 역시 최근에 그런 경향을 보인다."

바커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의 국가와 지금의 국가 개념은 다르다. 이제 국가는 국민을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국가차원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최근의 '안철수 현상'도 정당정치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나.

서용순 "크게 본다면 그렇다. 정당 같은 국가 장치에 의한 정치를 국민이 신뢰하지 믿지 못하는 거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정치로부터 벗어난 인물에게 정치적 기대를 거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일종의 패션이 된 시대, 그 유행에는 지적, 윤리적 허영심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한국의 '강남좌파'나 유럽의 '캐비어 좌파'에 대한 냉소도 있는데.

바커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 유행도 미디어가 만든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문화적인 허세가 사람들을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큐에서 학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처럼, 현실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는 빨간 알약과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파란 알약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서용순 "파란 약이든 빨간 약이든 약은 약이다. 현실이 병들고 아프다는 말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빨간 약을 고르겠다."

바커 "나 역시 빨간 약을 고를 것이다."

 


맑스 재장전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Marx Reloaded)'은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패러디하며 시작된다. 소파에 앉은 마르크스에게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내민다. 이때 트로츠키의 한마디. "빨간 알약을 먹으면 영구혁명이 얼마나 진척됐는지 보여주리다." 이후 최근 각광받는 현대 인문, 사회과학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제이슨 바커 감독은 이 다큐를 통해 2007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의 유령이 다시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한다.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안토니오 네그리, 닌나 파워, 알베르토 토스카노 등을 차례로 만나며 감독은 묻는다.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 경제, 환경, 정치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 다큐는 좌우파 학자들의 입장을 번갈아 소개하며 마르크스 이론이 왜 다시 회자되는지를 짚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이론들이 어떻게 변형, 발전됐는지를 소개한다. 2009년 독일 TV ZDF와 메데아 필름의 지원으로 만들어져 ZDF를 통해 방송됐고, DMZ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이윤주기자)

 

12.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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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 소식이다. 아마도 김기덕의 <아리랑> 이후인 것 같다. 홍상수의 열두번째 영화 <북촌방향>이 오늘 개봉했다. 데뷔작이었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홍상수의 모든 영화'를 지지하는 입장에서(인상의 편차는 있었지만) <북촌방향>이 또다른 기대작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려운 제작여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 매우 부지런하게 영화를 찍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작도 얼른 개봉되면 좋겠다. 조금 일찍 올라왔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08. 26) “방식 다르면 생각도 달라…‘즉흥 촬영’ 밀고 나갔다”

한국의 영화감독 중 의뭉스럽기로 따지면 홍상수(51)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술에 취한 채 쉽게 찍힌 듯한 어느 장면이 사실 50번의 테이크 끝에 얻어낸 것임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지만 사실 그들이 받는 출연료는 거의 없음을, 굵고 뭉툭한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 속에 사실 인생에 대한 반짝이는 성찰이 숨어있음을, 아는 사람만 안다. 



9월8일 개봉하는 「북촌방향」은 그의 열두번째 장편이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해 1~2년에 한 편씩 작품을 내놓던 그는 최근엔 1년에 2편을 내놓을 정도로 다산하고 있다. 그는 이미 프랑스 최고의 여우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차기작 「다른 나라에서」의 촬영까지 마친 상태다. 어떤 배우들, 어떤 관객들을 ‘신흥종교에 감화된 신도’처럼 거느린 그를 24일 서울 압구정에서 만났다.

-당신의 작품은 ‘최근작이 최고작’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홍상수 감독은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는데 그중 하나가 영화”라며 “싸구려로 안 하면 보답이 올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운”이라고 말했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미친놈도 아니고. 어떤 작품을 끝내면 ‘기분’이 있는데, 이번엔 나쁘지 않았다. 장르영화처럼 ‘이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고 정해놓고 만들진 않는다. 다양한 반응이 있으면 그걸로 영화가 완성된다.”

-가수 백현진은 ‘술먹고 노는 장면은 홍상수가 제일 잘 찍는다’고 말했다.

“헛소리다. 술자리 장면이라고 특별히 생각하는 건 아니다. 골목길 장면, 밥먹는 장면과 마찬가지다. (밥먹을 때도 반주를 먹던데) 글쎄. 왜 그럴까.” 



-전작들과 다른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들었다. 

제작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방식이 다르면 생각해 나오는 게 달라진다. <옥희의 영화>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구상이 없이 촬영을 시작했다. 이틀 전 정해 배우를 불러 1부를 찍고, 다시 정해 2부를 찍는 식이었다. 이번엔 그 방식을 더 밀고 나갔다. 전체적인 구상이 없이 첫날 찍고 둘째날 찍으니 틀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북촌방향」에선 김보경이 1인2역을 한다. ‘두 여인’의 테마는 당신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내가 오만가지 인물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삶에서 나온 것들이 새 배열을 찾고 새 표현방식을 찾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 비슷한 방식이 반복되는 것이다. 영화에는 말로 집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덩어리들이 있다. 옛 여자와 닮은 여자를 찾는 것도 한 덩어리다. 그 덩어리는 우리가 피할 수 없고 공유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하는 영어 대사 영화다.

“파리에서 위페르를 본 적이 있다. 지나가는 말로 기회가 있으면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이번에 위페르 사진전을 준비하기 위해 내한한다고 전화가 왔다. 낮에 점심 먹는데 데려갈 데도 없어서 「오! 수정」과 「북촌방향」에 나온 고갈비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거기서 엉겁결에 출연하자고 얘기가 됐다.”

-갑자기 다작 감독이 됐다. 몇 편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나.

“그런 멍청한 목표가 있을 리가. 지금은 영화 만드는 게 중요하고 좋다. 건강이 허락하는한 계속 만들고 싶다.”

-작품에 대한 영감이 마구 나오나.

“‘이 때쯤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예를 들어 가을에 바람 부는 제주도에서 뭔가 찍고 싶다는 생각이다. 거기 맞춰서 한 번 해보는 거다.”

-영화, 책, 연극이 아닌, 주로 그림을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침대 위에 화집이 몇 권 있다. 세잔, 마티스, 렘브란트, 피카소… 멍하니 그림을 보면서 내가 이 그림을 왜 좋아할까 생각하는 게 재미있다. 그렇게 두 세 장 보다가 잠든다.”

-요즘 영화는 잘 안보나.

“영화에도 원형이 된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을 접하고 내 나름대로 공부하는 건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많이 했다. 이제 그 이상으로 레퍼런스가 될 사람이 나오진 않는 것 같다.”

-요즘 당신 영화에 ‘착해서 좋아’라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제일 좋은 건 착한 사람이다. 우리들이 아기들을 보고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아무리 머리가 헝클어져도 아기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슬금슬금 용기가 난다.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떠들지만 이런 착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영화 「북촌방향」은
지방에 살면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는 감독 성준(유준상)은 서울에 놀러와 북촌에 사는 친한 선배 영호(김상중)에게 연락한다. 영호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성준은 북촌을 배회하다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고, 옛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고, 마침내 영호 무리와 ‘소설’이라는 카페에서 술자리를 갖는다. 이 술자리는 기묘하다. 여러 차례 보이는 술자리는 하루에 일어난 일 같기도, 여러 날 반복해서 일어난 일 같기도 하다. ‘소설’은 시간이 뒤섞이는 마술 같은 공간이다. 선형의 물리학 법칙에서 벗어나, 관객의 감각이 매혹적인 혼란에 빠지는 공간이다. 성준은 이곳에서 서툴게 피아노를 치고, 옛 애인을 닮은 카페 사장을 만나 동침하고, 마침내 탈출해 어딘가로 향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부는 성준이 이 지루하고 비루한 삶의 궤도에 영원히 포박됐다고 말하는 듯하다. 「오! 수정」에 이은 홍상수의 두 번째 흑백영화다.(백승찬 기자)


11. 09.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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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9-0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석과 이은주가 연인으로 나왔던 '오! 수정'...그때 이은주가 스무살이었을 겁니다.

그리고...김보경 좋아하세요? '친구'에서 이쁘게 나왔고 드라마 '깍두기'에서 김승수 아내로 나온 게 기억나네요.늘씬하고 세련된 여인 역을 하던데 홍상수 영화에선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군요.

로쟈 2011-09-10 10:39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봤는데, 이 영화에서도 매력적으로 나옵니다.

무당광대 2011-09-1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영화에선 관념적인 대화들을 많이 나누는데, 웃기면서도 슬프고 그래요. 딱 체홉 단편소설 같아요.

로쟈 2011-09-11 11:08   좋아요 0 | URL
체홉의 인물들보단 더 지적이긴 하지만, 서로 자기말만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점은 딱 닮았습니다.^^

msjpolitics 2011-09-14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갈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은 너무 어릴때봐서 기억이 나지 않네요. 북촌방향은 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요새 이리저리 "밤과 낮"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를 봤는데, 그 대사 하나하나가 웃기면서도 참 불편하게 만들더라구요. 유준상도 괜찮지만, 저는 김영호가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데, 안봐서 뭐라고 말하기는 좀 그러네요.

로쟈 2011-09-14 17:51   좋아요 0 | URL
<밤과 낮>을 아직 못 봤는데, 유준상의 연기는 좋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하하하>에서도 그렇고 '홍상수 연기'를 마스터하는 듯해요...

philocinema 2011-09-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과 낮은 홍상수 감독 전작품중 유일하게 dvd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상암동에서 홍감독 '전작전'할 때 가서 보고 왔지요.
dvd로도 출시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로쟈 2011-09-22 13:2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9-22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vd 수집중인데, <밤과 낮>만 안 보여서 늘 애태우고 있네요..^^

로쟈 2011-09-22 13:23   좋아요 0 | URL
영화에 대해서라면 샥샥님이 할말이 많으실 듯해요.^^

영남자파 2011-09-2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은주는 가고 오수정은 남았는데...
오수정은 여성과 남성의 시각이 다르다는 생각이..
얼마전에야 도서관에서 봤는데 껍디기에 "키스하고싶다" 라고 어떤 형제님의 염원이 있길래 진짠가 분석해가면서 봤더니...허 참!

로쟈 2011-09-27 08:27   좋아요 0 | URL
오수정을 최고작으로 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