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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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잠시, 나는 그래도 따뜻한 봄날을 지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현실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지인의 어머니가 척추 수술 후 저녁에 화장실 가려고 움직이다가 살짝 넘어졌는데 괜찮다고 그냥 넘기고 며칠동안 두통이 심하다고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해 정밀검사를 하고 뇌출혈이 보인다며 수술을 했다. 그리고 수술 이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자가호흡을 하시는 상태여서 거의 십여년을 병원에 모시고 있다. 이 경우는 오히려 병원비만 걱정하면 되는 것이라 그나마 나은 것일까? 의식은 있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더구나 나이를 먹고 치매까지 있다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어머니가 식사도 손수 차려드시기는 하지만 밥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휴일이면 뭔가 간식거리를 만들어주기를 원하고 자잘하게 요구하는 것들을 하며 시중들다보면 휴일이 휴일같지 않을때가 있다. 봄날을 지내고 있는 내가 이런 느낌인데 '간병과 돌봄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는 이들'의 황폐한 마음은. ......


뉴스로 접해왔던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노모의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니라 노모의 시신과 함께 동거하며 시신이 썪어가며 풍기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라는 기괴한 뉴스를 이제는 또 다른 시건으로 바라보게 된다. "기초수급자 신청을 해보려 했지만 원인불명의 통증으로는 의사로부터 '근로능력불가'라는 평가를 받기가 어려워졌다. 가난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고 수치스러운데, 몸이 아프다는 걸 증명하는 건 더 복잡하고 굴욕적이다"(85)라는 문장은 그저 공감한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 같다. 그 굴욕적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이성적으로 감응할뿐이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당황한 것도 잠시,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게 제 날짜에 연금이 입금되었음을 알리는 문자 한 통은 명주로 하여금 죽음의 확인을 뒤로 미뤄두게 한다. 이웃과 친밀한 소통을 하며 지낸 엄마의 소식을 묻는 이웃집 청년, 마트가게 사장, 심지어 함께 여행을 떠나자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는 엄마의 친구라하는 진천 할아버지의 등장까지, 아슬아슬한 거짓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이웃에 사는 청년 준성.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쓰러지고 알콜성 치매까지 앓고 있는 아버지를 혼자 돌보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된 - 잦은 결석으로 학급 분위기 흐린다며 자퇴를 종용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었지만 그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 준성은 검정고시로 졸업장을 받고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아버지를 운동시키며 돌보고 아버지가 잠자는 시간에 대리운전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는데, 다친 손의 통증으로 인한 찰나의 순간에 외제차에 흠집을 내고 만다. 도대체 왜 힘든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더 힘든 앞날이 있는 것일까.


뉴스를 통해 보던 온갖 사건의 집합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늘 안타깝다,라는 것 외에는 할말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갈뿐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생각해보지만 정말 답이 없다.

소설의 마무리 역시 뚜렷한 답이 없다. 명주와 준성의 행위는 분명 범법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들의 행동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소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는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사건들이 모두 비난받아야 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에 소설 속 명주와 준성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보고 응원을 해 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잔혹한 현실속에서 더 잔혹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소설 속 이야기를 넘어 현실속의 그들에게도 희망을 건네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하는 문학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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