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집 다른 의자>

 

 

 고갱 의자                                                           고흐 의자

 

 

 

 

 

 

 

 

 

 

 

 

 

 

 

 

  둘만 되어도 필연적으로 갈등하게 되어 있는 게 사람이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 적당한 거리 확보 없는 모든 관계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평화를 가장한 전쟁, 미소로 위장한 침울, 침묵으로 포장한 폭발이 당신 곁에 맴돈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법칙에 가장 적절한 예가 예술가들일 것이다. 예민한 예술혼이라는 짐을 진 대신 ‘제멋대로’라는 면죄부를 얻은 그들의 관계는 더 쉽게 깨지고, 그 파국 또한 처절할 수밖에 없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갱도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심연을 후벼 파는 듯 격정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자유분방한 듯 자신만만하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맘먹고 검색이라도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고흐의 해바라기는 더 아름답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두 해바라기라는 예술혼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고갱 해바라기

 

 

 

 

 

 

 

 

 

 

 

 

 

 

 

 

 

 고흐 해바라기

 

 

 

  고흐는 자신의 예술욕을 채우기 위해 고갱을 아를르로 불러들였다. 도도하고 지적이고 권위적인 고갱에 비해 고흐는 격정적이고 소박하고 성실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의 매뉴얼을 담당하는 건 인지상정. 둘 사이의 권좌 차지인 고갱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 매달리는 고흐가 성가실 뿐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고흐는 광기를 핑계로 자신의 귀를 고수레라도 해야 상처받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이다. 고갱의 해바라기도 그렇다. 너무 다른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둘은 만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각각 신경강박증과 오만방자가 없었더라면 누가 그들의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그토록 오래토록 기억해줄 것인가.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위쪽 고갱의 롤랭부인, 아래쪽 고흐의 롤랭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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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1-3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옥이어서 그에 걸맞는 타인을 끌어들인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흐와 고갱은 그만큼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
이 아침, 팜므 느와르 님이 포스팅해주신 해바라기가 참 좋아요. 해바라기는 늘 슬픈 꽃이지만 그래서 더 좋습니다. 잘 보고 가요!

다크아이즈 2013-02-02 22:07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우리 자책은 하지 않기로 해요. 제가 자책의 대마왕녀인데, 정신 건강에 별로 안 좋더라구요. 제 영혼을 갉아먹느니 뻔뻔한 무심함이 더 나을 때가 많잖아요. ㅋ

님 말씀처럼 고흐와 고갱은 서로 필요충분조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모든 관계의 저울추가 공정하지 않듯이 주도권은 고갱이 쥐고 있었다는 생각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가 승자라고 보통이 말했던가요. 크~
좋은 밤 보내시어요^^*

Jeanne_Hebuterne 2013-02-05 08:3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아마 고갱은 고흐를 백 번 만나도 백전불패 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무림의 고수는 아니지만 세기의 만남은 때로는 제 머릿속에서 이렇게 유치하게 재생되어요.
보통은 역시 넘을 수 없는 벽입니다 흑.

다크아이즈 2013-02-06 10:53   좋아요 0 | URL
암요, 고흐가 백전백패지요. 크~
사회화 과정에서 관계 설정이 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천성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고갱 같은 사람은 누굴 만나도 백전불패의 권좌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 캐릭터요...

오늘 갑자기 보통의 불안, 이 읽고 싶어지는 것 있지요. 휴 ㅠ

순오기 2013-01-3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저렇게 다르게 표현한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워요!
고갱과 고흐 사이에도 '갑,을'의 관계가 형성됐을 듯...^^

다크아이즈 2013-02-02 22:0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맞아요. 약간의 갑을 관계...
이 둘의 의자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요.
순오기님도 편한 밤 지내시길...

꿈꾸는섬 2013-02-0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과 고흐, 재밌는 페이퍼네요.^^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남네요.^^

다크아이즈 2013-02-02 22:1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가끔씩 남푠과 자식조차 지옥일 때가 있는데, 제삼자야 말해 무엇하겠어요. 크~
통찰 깊은 사르트트의 지나친 진솔함이 죄라면 죄일까요. 크~~
꿈꾸는섬님도 오늘밤 멋진꿈 꾸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