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 게 뭘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형식 상 잘 쓰는 것과 내용 상 절절하게 쓰는 것은 다릅니다. 잘 쓴 글은 시샘을 유발하고, 절절하게 쓴 글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물론 잘 쓰면서 절절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글쓰기는 작가들에게도 쉽지는 않겠지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잘 쓴 글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글을 더 좋아합니다.

 

 

  오늘 어떤 분을 급히 만나야 했습니다. 글쓰기 대회 입상자인데, 그 글을 활자화하기엔 비문이 많아 퇴고할 기회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입상자 참 잘 뽑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새벽마다 신문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본보기도 될 겸 다이어트도 할 겸, 즐거운 맘으로 새벽 공기를 가른다고 합니다. 이것만도 대단하다 싶은데, 아직 받지도 않은 제법 많은 상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모처와 약속을 했답니다.

 

 

  아주 세속적인 저는 그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워 정중함을 가장한 오지랖을 떨어보았습니다. 글쓰기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데, 상금의 일부분이라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요. 어디 제 말이 씨알이라도 먹혔겠습니까. 그분 왈 “그 상금 제 것 아니에요. 글을 쓰게 한 주변 것이지요.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얼음주머니로 머리 한 대 맞은 듯한 명징한 떨림이 밀려왔습니다.

 

 

  그분에게서 새삼 확인했습니다. 잘 쓴 글은 기법상의 하자 없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깃든 내면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글임을. 돌아오는 길 혼자 중얼거립니다. 착한 사람들이 정직한 비문(非文)으로 제 안의 나무에 꽃을 피울 때, 그렇지 못한 저는 경직된 완문(完文)을 찾아 저 밖의 태양을 좇고 있더란 겁니다. 그래도 욕망투성이 스스로를 보편적 인간이라 달래며 부끄러워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이분 같은 이들을 존경하고 칭송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안의 찌꺼기 하나를 털어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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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2-0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하신 팜님!!^^
글 잘 읽었습니다. 허접하면서 비문투성이 글을 써대는 저에게 위로가 되면서, ㅎㅎㅎ
팜님 글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신다고 생각하오니 믿어주세요.^^;;;
--팬으로부터

다크아이즈 2013-02-06 10:37   좋아요 0 | URL
나비님, 제가 더 팬인걸요. 크~
저야말로 모래알 서걱이는 건조 투에다 비문은 밥 먹듯이 생산해요.
문체나 문투가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노력은 하는데 쉬운 게 아닌 걸 보니 그게 내 한계다 하고,
가는 거죠. 뭐^^*
오늘은 날이 많이 맑아졌네요. 나비님 더불어 제 맘도 맑아지길...

순오기 2013-02-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에 쓰는 글도 불특정 다수가 읽다 보니 나를 숨기거나 꾸미게 돼서 스스로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활자화 되는 글은 나를 100% 드러내자니 부끄럽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니 진정성이 떨어져 감히 내놓지 못했던 일이 있었지요.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건지 새삼 깨닫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2-06 10:4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하모요!
숨기거나 꾸며야지 살아남을 구멍이 있지,
자신을 향해 너무 아프게 찌르거나, 타인을 향해 돌직구를 날리면 그 둘다 상처가 되지요. 그 적당선이 문제이긴 한데 그 조율이야말로 개성적 글쓰기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프레이야 2013-02-0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사람들이 정직한 비문(非文)으로 제 안의 나무에 꽃을 피울 때, 그렇지 못한 저는 경직된 완문(完文)을 찾아 저 밖의 태양을 좇고 있더란 겁니다.

팜님의 이런 문장 때문에 팬을 자처하는 거 아시죠?!!~~
글쓰기 책이 아무 소용 없는 이유 중 하나이겠지요.^^
늘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다크아이즈 2013-02-06 10:44   좋아요 0 | URL
프레님, 기다렸어요.
평안한 여행하신 것 같아 느낌이 좋아요.
칭찬해주시니 넙죽이요^^*
하지만 저 심정이 솔직한 제 맘이라고 생각하면 갑갑합니다.
다 버리고서야 뭔가를 얻을 수 있는데, 버리지 못하는 마음 하나... 휴ㅠ

페크pek0501 2013-02-04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저는 부끄럽사옵니다.
반성할 점이 있네요. 반성 반성...하옵니다.

다크아이즈 2013-02-06 10:47   좋아요 0 | URL
페크언냐가 반성할 일이 뭐간디요?^^*
열심히 앞서가는 님을 본보기로 자분자분 걸음질하는 저 같은 이도 있는걸요.
크~~

Jeanne_Hebuterne 2013-02-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결국 모든 글이 지향하는 그 목표는 바로 진정성인가 봅니다. 김연수와 김중혁이 그리도 부르짖었던!

다크아이즈 2013-02-06 20:41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글치요? 진정성...
진정성에 다가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글쓰기의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 문장까지 되면 금상첨화구요.
그나저나 전 김연수는 적응되는데 김중혁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두 작가 되게 친할텐데 방식은 전혀 다른 게 더 매력적이네요.
좋은 밤 보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