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누이 자랑

  전통적 가족 제도의 보편적 정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스스럼없기란 쉬운 게 아니다. ‘친동생처럼 대한다’는 시누이의 말은 ‘딸처럼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말 만큼이나 공허할 가능성이 높다. 혈연으로 맺어진 감정과 사회적 계약 관계에 의해 생긴 그것은 심리적·정서적 출발부터 같을 수가 없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시누·올케 관계는 ‘스스럼없음’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리라.

 

 

  내게도 시누이가 한 분 있다. 손위인데 예의 친자매처럼 흉허물 없는 관계는 아니다. 나이 차가 있는 시누이를 내 쪽에서 어려워하고 존경한다면, 당신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역할이다. 시누이 노릇 한답시고 내게 며느리로서의 의무감을 압박하거나 눈치 비슷한 거라도 준 적이 없다. 이십여 년 동안 한결 같은 배려와 관용으로 대하신다.

 

 

  통념상 해야 할 며느리의 도리마저 시누이가 저 만큼 앞서서 본보기를 보이신다. (실은 내가 안 하거나 못하니까 시누이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의 물리적·정서적 지원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올케인 나의 정신적·심리적 상담자까지 자청하신다. 시누이로서 올케에게 왜 서운한 감정이 없겠는가. 한데 천사표 시누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 위주로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인정해버리면 서운한 것도 잠시다.’ 라고 말하는 분이다.

 

 

천성이 고운데다, 자기 수양의 모범을 보이는 분을 시누이로 만난 건 내겐 큰 복이다. 가끔씩 남편이 힘들게 할 때도 ‘아참, 내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시누이가 있었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이다. 사람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처럼 까칠하고 칠칠치 못한 이도 시누이라는 바람막이 덕에 적어도 나쁜 며느리는 면하고 산다. 내 깜냥만으론 어림도 없다. 좋은 사람 곁에서 좋은 사람 흉내 내기란 얼마나 쉬운가. 내가 며느리로서 평균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오롯이 시누이 덕이다.

 

 

 

 

 

 

 

 

 

2. 불안 - 폐쇄공포증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당황할 때가 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과 맘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MRI 촬영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게 경미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건 여러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폐쇄공포증세에 비하면 그것은 천국이었다.

 

 

  좁은 원통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대로 40여 분을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과 마음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친 듯이 벽을 두드려 위급함을 알렸다. 탈출을 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사람 제법 있다며 촬영기사가 위로를 해준다. 항불안제를 맞고 재촬영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좀 진정이 되자 멍청하고 창피하단 생각에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사전 설명 없는 가운데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다. 좁고 폐쇄된 공간 자체의 위압감, 바깥과의 소통 단절에 대한 불안,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어쩌지 하는 걱정, 등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급작스런 불신감으로 불안해할 수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데 그것이 과하다 싶으면 스스로 당황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리적·유전적 요인, 과거의 경험, 현재의 정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불안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내가 시원하게 모르니 더 불안하다. 이토록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었나, 이런 불안감을 스스로 자초한 건 아닐까,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왜 몸과 마음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지, 하는 혼란스러움이 한동안 휘젓고 다닐 것이다.

 

  여기저기 불안의 시대를 살다보니 몸과 맘이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팽팽하게 부푼 풍선 같은 맘 걷어 내고 그 자리에 낭창거리는 버들가지 하나 내다는 연습을 해야겠다. 자고로 긴장은 불안을 낳고, 여유는 안심을 낳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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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3-02-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내려주신 시누이시네요~~
팜님께서도 고운 성품이시라 주거니받거니 하시는것 같은걸요!
갑자기 팜므느와르님이 부럽부럽!
한동안 바쁠것같아요~밀린 팜님의 글들 읽어봐야해서요!

다크아이즈 2013-02-06 23:51   좋아요 0 | URL
데이지님 하늘이 내려준 시누이는 맞아요.
저는 성질 좀 더럽습니다. ^^* 크~~
전, 남편 자랑은 안 해도 시누이 자랑은 절로 되어요.
친구들이 부러워하긴 해요. 시누 복 많다고요.
데이지님은 제가 좋아하는 꽃이 데이지니 무조건 좋아할래요.
블루데이지가 있다는 게 신기신기... 봄 오면 데이지꽃 모종 사러 갈거예요.^^*

프레이야 2013-02-0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 전 없지만 제 올케에게 좋은 시누이인지는 잘 모르겠어요.ㅎㅎ 좋은 시누이도 팜님 복이죠. 근데 어디가 편찮으신거에요?

다크아이즈 2013-02-06 20:24   좋아요 0 | URL
시누이와 동서는 없는 게 좋다는 속설이 있으니 프레님은 좋아해야 하는 건가요? 크~~
프레님은 당근 좋은 시누이지요. 알라딘에서 우리들께 하는 것만 봐도 정감 있고, 사려 깊고, 글 잘 쓰고... 님 같은 시누이 만난 님의 올케도 행운일 걸요^^*


라로 2013-02-07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누이가 둘인데 손 아래야요. 그런 것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대부분 시누이 좋다시는 분들은 손 위가 많은 듯요. 어쨌거나 대한민국에서 시누이 복 있는 분이 드문 걸로 아는데 팜님은 큰 복을 받으셨네요!! 그런데 어디가 아프세요??? 저도 MRI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던데, 40여분이라면 그런 공포심을 충분히 느끼실만하세요!!! 저도 짧은(얼마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시간이었지만 기분이 이상하던걸요!!!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팜님 아프지 마세요!!

라로 2013-02-08 02:43   좋아요 0 | URL
제가 40분이나 하는 MRI 한 적이 없다는 입찬소리를 했더니 오늘, 아니 어제 그보다 더 긴 촬영을 했지 뭡니까!!! ㅠㅠ 그런데 가만 보면 팜님과 제 일상이 어딘지 모르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이런 현상을 뭐라 해야 할까요??? 님의 글을 읽으면 다음 날 비슷한 일을 겪거나(이건 처음이었지만 너무 충격적이라) 아니면 제가 겪거나 생각한 일에 대해서 글을 올리시는;;;이건 뭐 SF소설도 아니고;;;ㅎㅎㅎㅎ 근데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5:52   좋아요 0 | URL
나비님, MRI 촬영 심리적으로 힘들지 않으셨나요?
저는 앞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아 긴장하고 있습니다.
죄 진 게 워낙 많아 그런지 목을 죄는 듯한 갑갑함과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오지 뭡니까. 맘을 느긋하게 먹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건 그렇고 나비님 일상과 제 일상이 어딘지 모르게 겹치는 이 느낌, 전 기분 좋은데요. 데자뷰 현상도 아니고 이런 걸 심리학적으로 뭐라 일컫는 말이 있지 않을까요. 흐흐~~

꿈꾸는섬 2013-02-0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 자랑하실만 하네요. 저도 시누이가 있긴한데, 손아래임에도 편하지가 않아요. 또 저도 다른이의 시누이인데, 우리 올케언니께 전 어떤 시누이일까 궁금하네요.^^

다크아이즈 2013-02-12 14:50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원래 손아래시누가 더 불편할 것 같아요.
저도 시누이이기도 한데 좋은 시누이는 전혀 아니고 무관심 시누이는 맞는 것 같아요. 그들이 하는 일을 시누는 몰라도 좋다, 뭐 이런 마인드라고나 할
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