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 (靑燕) LE
윤종찬 감독, 장진영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시절이 혼란스러울 때는 꿈꾸는 것조차 위험해지기도 한다.  아직은 억압받는 여성이 더 자연스럽던 시절에 여류비행사를 꿈꾸었던 박경원.   그녀의 꿈은 조선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고, 고학을 통해 여류 비행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지만, 식민지 조국은 그녀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질 뿐이다.

그녀는 대리운전을 해주다가 지혁을 만난다.  친일파 아버지를 둔 까닭에 호의호식을 하지만 의식은 늘 방황하고 있던 청춘.  지혁 아버지의 수양 딸로, 경원을 동경해서 비행사로 지원하게 된 정희는 지혁을 좋아한다.

기베는 일본 최고의 모델이자 외무대신의 든든한 배경을 지닌 비행사인데 처음엔 경원의 라이벌이었지만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그녀의 비행을 위해 아낌 없는 후원을 해준다.

지혁은 경원에게 청혼하지만, 비행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경원은 거절하고, 그 뒤 지혁의 친구가 지혁의 아버지를 처단하는 바람에 지혁은 한순간에 불순분자로 몰려 고문을 받게 된다.  정희 역시 끈 떨어진 갓이 되어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경원 역시 공범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지혁(김주혁)의 고문 장면은 정말 잔인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마 그 시절의 고문 장면은 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되었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원 역시 고문을 당하지만 그 장면에 있어서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는 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개 그런 씬이 등장하면 으레 짐작되어질 부분이었음에도 감독은 과감히 그런 장면들을 찍지 않았다. 

지혁은 경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살리는 조건으로 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 당한다.  이로 인해 정희는 경원을 원수 보듯 대한다.

모든 멸시와 설움, 또 사랑을 잃은 슬픔까지도 하늘에 떨쳐내고자 경원은 고국방문 비행을 단행하고, 악천후 속에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거부한 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녀를 미워하고 악담을 퍼부었던 정희가 모르스 신호로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매달리는 장면은, 한지민 스스로 자신이 연기자가 되었다고 생각한 최고의 명장면이기도 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랬듯이 경원은 그 비행에서 추락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영화는 영상미라던가 그밖에 스토리의 전개 구조 등은 나무랄데 없이 드라마틱했다.  그러나 보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에 그 정도의 '출세'를 가지려면 '친일'의 행적을 비켜나갈 수 없었던 게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박경원, 그녀는 어땠을까.  이 작품이 상영할 당시에도 친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말과 함께.

영화는 특별히 그녀가 친일했다고 보여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었다고 보여주지도 않는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었다.  한 톨 쌀을 구하기 어려워 굶고 있던 시절이었고, 독립군들은 목숨을 잃어가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고, 모두가 숨죽여 살던 그 시절에, 그녀만큼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인가, 아니면 수치스러운 일인가.  나라가 어수선하니, 민족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개인의 꿈은 그대로 접혀져야만 하는가...

그런 질문들에는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한쪽의 눈으로는 그녀의 행적이 돌맞을 만하고, 또 한 쪽의 눈으로는 박수를 보낼 만하니...

그녀의 능력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쓸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걸 강요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말하기는 더 쉽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제작비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제작 기간도 꽤 길었다고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스포트 라이트를 많이 못 받은 영화 같다.  아무래도 민감한 '시기'의 소재를 선택한 까닭이지 싶다.  어쩌면 그 민감한 부분도 이겨나갈 수 있는 마음바탕이 이젠 우리에게도 필요한 듯 싶다.  단죄할 것은 단죄해야 하지만, 또 포용해야 할 부분들은 받아들여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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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화가 시나리오 쓰고 제작비도 많이 쓴 영화인데 친일논란때문에 흥행에 실패했죠.저는 영화는 보지 못해서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경쟁영화사에서 소문을 퍼트린거라는 말도 있었죠.
그당시 비행기면허를 딸려면 집한채값이 들었고, 고이즈미 조부와 친했던것은 사실인데, 친일을 했다거나 고이즈미 조부의 첩이었다는 기록은 없거든요. 친한거하고 비행기면허를 따기위한 돈을 여자가 어떻게 벌었을까 하는것을 연결시키셔 첩이고 친일했다고 소문이 난거죠..그런식이면 당시 사람들중에 남아날 사람 없을거 같은데요.

마노아 2006-10-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화가 시나리오를 썼군요. 그 시절에 친일논란으로 자유롭기는 참 힘든 것 같아요. 생존 자체의 문제였으니까. 적극적 친일인가, 방임적 친일인가의 차이는 분명이 두어야 하겠지만. 영화는 참 괜찮아요. 사운드가 받쳐주는 곳에서 보아야 더 제맛일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