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 선수촌 (2disc) - MBC 베스트극장 - 8월 MBC 드라마 할인
이윤정 감독, 이민기 외 출연 / MBC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작품은 엠비씨의 베스트 극장이 침체일로에 빠져 있는 나머지 한동안 방송을 중단했다가 다시 야심차게 시작했던 신호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 작품 말고도, 그 기간 중에 방영된 베스트 극장은 모두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전개와 영상, 반전 등을 보여주었다.  물론 내가 다 챙겨보진 못했지만. ^^

 

우리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스포츠를 다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에는 엄청 열광하는 것은 사실이다.  올림픽의 경우, 평소 전혀 관심 갖지 않았던 '양궁'에 환호하고, 체조 경기를 찾아 보고, 유도의 한판승에 열광한다.  우리한테는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임팩트에 신나는 게임이지만, 그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4년은 전쟁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전쟁 속에서 젊음과 열정, 또 좌절과 실망을 묻을 수밖에 없는 청춘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보를 보니, 연출은 이윤정으로 MBC 최초의 여성 드라마 감독이라고 한다.  그 동안 그렇게 여성 드라마 감독이 없었다는 게 놀랍지만, 확실히 여성 감독의 작품은 좀 더 섬세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건 최고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특별한' 이유는 될 수 있다.

 

주인공은 유도선수 홍민기(26), 양궁선수 방수아(26), 체조선수 정마루(17), 수영선수 이동경(27)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기는 태릉을 가리켜 계급사회라고 한다.  신라의 신분제도에 비유하여, 일단은 들어왔으니 귀족은 귀족이나 계급이 다르다고 한다.  제일 많은 게 노메달 국가대표선수.  불쌍한 6두품이라고 한다.  메달은 따기는 했지만 색깔이 안 이쁜 애들을 진골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일 높은 것을 금메달을 딴 성골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처럼 전망 없는 2진 선수를 천민이라고 표현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는 메달이고 또 대표선수에 들어가는 것일 테니, 그의 표현은 틀린 게 아닐 것이다.

 

각각의 주인공들은 저 계급사회에 어느 정도 들어찬다.  양궁선수 방수아는 올림픽 2관왕으로 천재 대접을 받으니 성골중의 성골일 것이고, 체조선수 정마루는 체조계의 기대주며 유망주고 현재 최고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으니 성골과 진골 진입이 눈앞에 있다.  수영선수 이동경은 국내 최초 8강 진출의 기록을 세워 국내 최고의 수영선수로 이름을 높였지만, 세계권에서는 여전히 명함도 내밀 수 없는 6두품 출신이고, 국가대표에 들지 못한 민기의 입장은 그들 모두보다 조금 쳐져 있다.

 

네명의 주인공은 성격 따라 또 분류된다.  제멋대로 기분파에 거칠 것 없고 닥치는 대로 덤비는 민기는, 제 잘난 것을 알고, 그래서 버릇 없게 굴고 왕따를 당해도 여전히 당당할 수 있는 마루는 기질적으로 서로 통하는 게 있다.  그에 비해서 수아와 동경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지극히 이성적인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동경과 수아가 연인이었고, 민기는 마루와 잘 통하는 (잘 놀아주는) 파트너였는데, 그 자리에 균열이 생긴다.  이성적 존재 수아는 동물적 감각의 민기와 가까워지고, 초이성을 자랑하던 동경은 끝내 수아를 잃고 나서야 감성적 인간의 자리를 찾는다.  마루는 부상으로 체조선수로서의 생명을 잃고 폭주하지만,  원래 영민했던 만큼 빠르게 자신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해 나간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각 인물들의 뚜렷한 성격 차이 안에서 서로가 자신의 한계점을 찾고, 또 나름대로의 돌파점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  그토록 다른 입장과 성격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 사이에는 묘하게 조화가 잡혀 있다.

스스로 유도복 등판에 '베스트 홍'이라고 적어놓고 온갖 폼을 잡았던 민기는, 그런 행위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이름을 떼어낸다.  그렇지만 그 근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종격투기로 종목 이전을 해보려고도 했고, 금메달을 따보아도 월 백만원에 불과할 박봉임을 알면서도 녀석은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도전한다.  그래서 이제 그 스스로 등판에 '스페셜 홍'이라고 적어도, 이제는 뭐라할 사람이 없다.  그 스스로 스페셜해 졌음을 주변사람들도 알게 되었으니까.

올림픽 2관왕이지만 국대 선발에 떨어지고 좌절을 겪었던 수아는 스스로 쿨한 척하며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웃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척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민기는 위태롭게 여기고 끝내 수아를 울게 만든다.  수아는 울고나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제서야 바닥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다.  국대선발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나라가 워낙 양궁강국이다 보니까, 10점 만점을 계속 명중한 선수들한테도 제일의 목표가 뭐냐는 인터뷰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 '국가대표 선발'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놀라운 대답이 나오는 우리나라의 특별한 상황이 적용됐음이다.

민기가 이종격투기 쪽으로의 스카웃 제안을 버리고 멋지게 유도판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관중석은 여전히 텅텅 비어 있었고, 올림픽 시즌이 아닌 이상 이 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라마는 과감없이 보여준다.  뿐인가.  동경도, 자신이 한국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은 현재 계속 기록이 떨어지고 있고, 어차피 국제 무대에선 명함도 못 내밀 실력임을 알고 있다.  그의 최선의 선택은 지금 떠나서 수영부 코치 자리라도 유지하는 것이다.  그건 민기가 지금 의욕적으로 유도판을 지켜도 나중에는 현실적인 위험에 더 당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실성'을 보여준다.

작품은, 그렇게 네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 그들의 열정과 목표와 한계와 좌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넓은 화면과 네 계절이 다 들어간 영상미와 적절한 음악과 또 표제마저도 작품을 맛깔스럽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배우들을 썼지만, 다들 제 몫을 제대로 해낸 듯 보인다.  각각의 배우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으니까.

극본은 홍진아가 썼는데,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아직 모르지만, 좀 더 관심있게 지켜볼 수 있겠다.

작품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곡 두 곡의 노래를 함께 추천한다.

퀸의 Don't stop me now와 이승환 8집의 "물어본다" 강력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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