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 이 왔다.

둘째 녀석은 6살 부터 사춘기였다고 그 아이 크는 내내 툴툴거렸는데, 그건 진짜 새발의 피였다는 사실. 더 무서운건 나 자신.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시기였는데도 막상 닥치니 나도 다시 사춘기가 된 것 같이 적응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사춘기여자'였던 시절을 잘 넘어가주고 있는 큰 딸이 새삼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집 '사춘기남자'는 현재 모든게 마음에 안든다. 

점심 도시락으로 싸주는 햄버거에 케찹이 많다해서 좀 줄여주면 어김없이 집에 오자마자 케찹은 어디갔냐며 쌍심지를 켜고, 잠깐 노트북 좀 쓸라치면 TV 보며 누워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숙제 해야되니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린다. 쇼파와 한 몸이 된지는 몇 개월 되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일을 - 간식먹기, 숙제하기, 게임하기 등등- 쇼파 위에 비스듬히 앉아 해결한다. 그러면서 계속 허리가 아프다길래 허리에 안좋으니 바로 앉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바로 발끈한다.

"난 이 자세여야 제일 집중이 잘 돼. 엄마랑 달라!"


"엄마는 말투가 왜 그래, 기분 나쁘게!" - 계속 짜증내길래 한 마디 했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들어올 때 노크는 왜 안해? 사생활 침해야!" - 13년 동안 한번도 안한 노크도 해야 할 판.

"진짜 그게 맞대? 엄마가 확인해 봤어? 안그럴 수도 있는거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 지구상에서 증명된 모든 사실들을 믿을 수가 없단다.

"왜 집 안에서 축구하면 안돼?" - 이걸 말이라고...


하루 종일 이런 대사들을 중저음에 변성기가 막 시작되려는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이 아이의 어렸을 적부터의 범상치 않은 생각과 태도, 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 덕에 나도 나름 훈련 받아왔다고 적응해 왔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빠뜨린게 있었다. 이런 당혹한 순간 순간 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매사에 불평 불만인 녀석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예상 밖을 벗어나지도 않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내 감정은 좀 낯설다. 적응이 안되는건 내 반응.


누군가가 사춘기는 뇌를 뒤집어 엎어 새로 정리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매일 매일 혼란스럽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자신에 대해 당황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널뛰는 매일을 살아내는 아이 곁에서 엄마는 그저 바라봐주고 자리를 지켜주고 응원해 주면 된다는데......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1969년에 초판이 나온 <부모와 십대 사이>에서는 사춘기 자녀의 부모들이 겪을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불시에 찾아오는 난감한 순간들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감정적 변화에 대한 대응 뿐만 아니라 이성교제, 성문제, 음주, 운전(미국 나이로 16세가 되면 면허를 딸 수 있고 운전을 할 수 있다), 마약 (미국에서는 공공연한 일) 등의 문제에서 실제 부모 자녀간의 대화나 부모들 간의 대화를 통해 어렵지 않게 생각할 꺼리들을 얻을 수 있다.





십대 아이들의 부모들은 오도가도 못 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도와주면 원성을 듣는 상황에서 도움 주는 방법을, 안내를 거절하는 상황에서 안내하는 방법을, 배려가 공격으로 오해받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의사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십대 아이들과 부모들이 과연 서로 평화롭게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그렇게 살 수 있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p.21


저자인 기너트 교수는 이스라엘에서 나고 뉴욕에서 일을 한 사람이니 아마도 유대인이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평화로운 대화'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과연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뇌의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하기 어려워 하는 내 자신이 문제처럼 느껴지니 사실 부담감을 팍팍 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이의 변화 앞에서 감정적으로 널뛰고 있는 나도 같이 변화를 겪고 같이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은 그나마 긍정적인 것이고, 욱하는 아이와 같이 욱하고 나서는 뒤돌아서서 자책하고 연민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분명 뛰어넘어야 하는 일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친절하고 무조건 잘해주며 지켜보라는 것도 아니다. 화를 내야 할 때 적절히 내야 하고 따끔하게 혼을 낼 때 혼을 내야 한다는데 그것의 전제 조건은 <모욕 주지 않기>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유익한 비판>과 같이 꼭 익혀야 할 부분. 


"모욕을 주지 않고 화를 내라는 말만큼 유용한 지적도 없어요. 그게 성숙한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 같아요. 그렇게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침착함도 유지할 수 있어요. 나는 한가하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비난에나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의 자책감을 씻어내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에요. 어려운 상황을 처리할 때는 마음 속으로 방향을 설정해요. 무엇이 핵심 의도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자. 논점을 혼돈하지 말자..." p.118


와...이런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려면 대체 어떤 내공을 쌓아야 하는가. 

아이가 사춘기를 맞기 전에 미리 충분히 성숙한 성인이 되어야 하던지 아니면 훌륭한 대화법을 미리 배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처럼 이미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는 중에 있거나 이미 지나버린 사람들은 절망할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참 부모의 자리가 새삼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진실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진실함'은 통하겠지.




 이 책과 같이 읽은 책은 2010년에 출간된 <내 아이와의 두 번째 만남>. 홍진표, 박수빈 두 저자는 기너트 박사가 교육자인 것과는 달리 의대를 나와 소아정신과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의사들이라 그런지 조금 더 물리적인 접근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최근 책이고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춘 책이니 구성 면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중독, 부모의 이혼문제, 또래 사이의 따돌림 문제, 진로문제, 이성교제, 학습 문제 등에서 아이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을 같이 기술했다. <부모가 느끼는 내 아이>, <아이가 느끼는 내 부모>, <구체적인 대처법>, <체크리스트> 등으로 구분을 잘 해서 마치 몇몇 사례들의 매뉴얼 같은 느낌도 든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때에 따라 찾아 보면 좋을 듯.


<부모와 십대 사이>가 좀 더 교육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대화 중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내 아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실제적이고 대처 방법 중심적이라 상황이나 사례가 잘 맞는다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하다......그리고 나도 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고, 또 반면 즐거운 웃음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건 뭐 정신병도 아니고...아이들과 같이 널을 뛰고 있다. 부모가 되기 전에 완벽한 부모로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고 (이론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부모가 안되어 봤는데 어떻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질 수가) 그저 좀 더 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 아프려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부모로서, 엄마로서의 내 자신을 내가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껴야 겠다는 뜬금없는 생각. 

내가 나 자신을 부모로서 부족하다 생각하고 자격없다 생각하는 그 순간이 결국 아이와의 관계도 깨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저 선물이라 생각하고 기쁘고 즐겁게 누리도록 애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소유도 아니고 남편 소유도 아니고 그저 이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신일 뿐이니.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듯이 아이들도 그렇게.


오늘도 역시 반쯤 누워 숙제하는 아들 옆에서 엄마가 이렇게 고민하고 잘 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옆에서 이 책들을 읽어댔다ㅋㅋ 제목 보고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지만 엄마 마음 알겠지 뭐. 그래도 모르는 척 하면 알려주지 뭐.


"내가 널 많이 사랑해."

"잘 자라고 있는 네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우리 잘 지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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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4-12-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09 23:32   좋아요 0 | URL
응원까지 해 주시니 갑자기 더 힘이 나는걸요? 감사합니다!^^

댈러웨이 2014-12-10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합니다 2. 반갑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님.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0 10: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댈러웨이님^^ 반가워요~

라로 2014-12-1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일찍 이 페이퍼를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라도 만나서 좋네요!!^^*100% 공감합니다!!!! 전 요즘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일단 아이가 바쁘니까 그걸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0 23:24   좋아요 0 | URL
아이가 바쁜 것도 정말 중요하죠~ㅎㅎ
이럴땐 서로 뭔가에 각자 집중하는 시간도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아롬님은 아이들과 정말 잘 지내실 것 같은데요?^^

울보 2014-12-1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집에도 있습니다 .전 너무
우울학 요즘 아무것도 제가 하기싫어지기도 합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2 03:07   좋아요 0 | URL
벌써 그렇게 컸군요~^^ 여기저기 이집저집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네요.
저도 자주 우울하고 속상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아이들인데요 ㅎㅎ
우리 같이 힘내봐요! 울보님도 화이팅!!

아이리시스 2014-12-1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일단 웃고~ 다들 조금씩 그렇겠지만 이 소년은 예전부터 좀 달랐죠.. 시도 좋고.. 근데 진짜 웃겨요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2 03:09   좋아요 0 | URL
시를 쓰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간걸까요? ㅋㅋ
보통 사춘기에 감성이 폭발하던데 이 녀석의 감성은 사춘기를 기점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ㅋㅋ

수이 2014-12-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_ 왜 이리 공감 가죠. 딸아이랑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어~ 그러면 십대인 딸아들을 가진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는 원수만 안 되면 다행이다_해서 움찔움찔거리고 있어요;;; 그래도 소년~ 엄마 마음 잘 알겠죠.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01:09   좋아요 0 | URL
ㅎㅎ 원수까지 될 일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엄마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되는건 맞는 것 같아요. 아이도 역시 그런 시기일텐데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고민만 하다가 소년이 청년이 되어 버릴까 그것도 걱정이네요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게일 맥도날드 외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1994년 8월
평점 :
품절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 나는 친구들 중에서 단연 손편지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친구들은 내 엽서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썼었고 엄청나게 많은 그 답장들은 얼마전에 이사를 한 친정집에서 발견했다. 신발 상자로 몇 개에 가득찬 그들의 답장들을 보며 난 얼마나 많은 편지들을 써 댔던걸까, 도대체 그 내용들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난 뭐라고 말을 걸었었나 무척 궁금했지만 궁금함을 풀 길이 없다. 나에겐 그들에게 쓴 내 편지가 없으므로.

 

  십수년만에 만난 대학 때 친구와 수다를 떨며 알게 된 사실은, 그때 그녀에게도 내가 자주 엽서를 건넸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창 힘들 때 그것에 위로를 받았고 내 격려와 위로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사실 그녀에게까지 엽서를 건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지금 역시 몇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친구이기에. 난 그녀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시절의 나는 진짜 상대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는 자리에 있었을까? 그저 위로자의 자리에 서고 싶었을까? 아니면 돌아오는 칭찬과 찬사에 목말라 있었을까...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고, 때론 위로를 건네고 싶었고, 그리고 그 결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칭찬도 받고 싶었던 나의 반짝거리던 모습은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에서 보니 그 빛이 바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 그게 진짜 내 모습이긴 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변해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로 받을 사람은 나야, 내가 가장 불행해, 내가 가장 우울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 따위는 없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만 남아버리고 어느새 너무 나에게만 촛점이 맞추어져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가여운 나를 발견할 뿐이었다. 여러 환경 탓을 할 수도 있겠고 꼬이고 꼬였던 인간관계에 원인을 둘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확실한 사실은 내가 변했고 지금은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쭈그러들어 주저앉아 있다는 것.


  길고 긴 단절의 터널 속 어두움에 삼켜져버려 원래 내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잊어버릴 때 즈음, 다시 찾고 싶다 생각할 때 즈음, 그게 가능이나 할까 하며 다시 포기하고 있었던 때에 우연히 떠밀린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책 제목만 듣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후에 '관계'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주제. 제일 귀찮아하고 제일 비관적인 부분. 게다가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모임이기에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의무감 같은 것들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다. 타고난 책임감과 성실성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참 난감했던 첫 시간.


***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책이었는데 읽어내려가며 그 인사이트가 상당함을 깨닫고 예상치 못한 흥미가 생겼다. 사람 내면의 심리와 관계에서의 어려움, 사람을 어떻게 살리고 세워가는지 결국엔 어떤 모습이 되어야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인 내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수십년의 목회 활동과 부부생활을 겪으며 그들이 깨달은 것을 신중하게 고른 의미있는 단어들과 문장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물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예수를 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혹시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한 방법을 제공하는 책이다. 관계에서 친밀함을 누리고 사람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뛰어 넘는 하나됨 - 특히, 가족이나 부부 사이-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이 책을 보게 되면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로를 향해 투명해야 하는 이유, 서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해야 하는 이유, 객관적이고 일상적인 대화의 단계를 넘어서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 불편하고 힘든 갈등 관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헌신해야 하는 이유, 공동체 안에서 민감함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야 하는 이유...이 모든 이유는 예수가 자신의 12명의 제자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배경이 다른 12명의 사람을 불러 함께 지내며 보였던 모습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내가, 혹은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사람들과 잘 지내보려고 하고 특히 가족들과는 항상 부딪히지만 또 극복하려고 애쓰고 희생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발견한건 결국 나의 한계다. 그저 참고 인내하고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과 부당함에 대한 항변, 피해의식과 비판하고 싶은 욕망 등이 나를 결국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기도 한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도를 닦듯 실패해도 또 일어서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조인간이 되어야 하는걸까? 


 기독교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애초부터 못을 박는다. 이 책에서도 결국 인간 스스로는 완벽하게 이룰 수 없는 영역임을 암시한다. 챕터마다 제시하고 있는 인간적인 방법들은 꽤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이미 세상에 많은 책들은 관계의 회복에 관해 심리학 분야, 교육학 분야, 처세술 분야에서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관계의 회복과 사람들 사이의 이상적인 하나됨의 본을 예수에게서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약간의 도움을 넘어서 큰 깨달음과 감동을 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을 배신하고 핍박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서로 누가 더 잘났느냐 싸우는 제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했는지, 그의 제자들이 변하여 예수의 도를 전할 때 그들이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어떻게 행동 했는지를 찾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의 편지를 썼던 나는, 어쩌면 나를 위로하고 싶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상대의 마음과 상황과는 별개로 내 만족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나. 물론 그때의 순수한 민감함이 누군가에게 진짜 위로가 되었었다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나이가 더 들은 지금의 나는 진심으로 타인을, 가족을 혹은 친구를 잘 세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정말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서 투명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민감하게 상대를 다루며 온전하게 사람을 세워주는. 지금의 나는 완벽하게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본이 되는 예수를 따라 가다보면 열매를 볼 수 있게 되리라 믿고 싶다.


그 시작은 정말 놀랍게도 단순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이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 어떠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어떠함이 문제라는 것. 그게 이 책의 출발점이다.


사랑을 통해 친밀함을 개발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가르치신 첫 번째 원리는 바로 사랑하기로 결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p.34

모든 것은 헌신에서 시작된다.-진정한 친밀함은 헌신 - 한계를 뛰어넘어 연합으로 이끄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선택한 다음, 그 관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모든 대가를 치불하는 것이다. p.49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바로 헌신의 시작이다. p.57

친밀한 사람은 투명하다.-자신의 삶을 열어 보인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되지 않고는 결코 가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투명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없이는 친밀한 관계를 누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p.67

최초의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 주는 맨 처음 신호는 갑자기 아담 쪽에서 투명함이 사라지면서 찾아왔다.p.69


예수님은 투명한 인간의 모범이셨다. 그 분은 경제적 수준이나 영적 능력에 관계없이,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투명한 분이셨다....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삶을 제자들에게 열어 보이지 않으셨다면, 그 분은 결코 그런 제자들을 남기실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신학자가 아니었다. 단지 예수님과 함께 걷고 함께 사는 삶을 통해 인생의 청지기 직분을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성장한 것은 예수님의 삶이 플라톤의 새로 지은 집처럼 방마다 창문이 달려 있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p.71

사람들이 한쪽만을 내보일 때는 - 투명함을 거부하고 인격의 좋은 면만을 보이면서 무엇을 숨기려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통과 연약함과 수치를 숨기려 한다. 사기꾼 증후군 p.76

자신을 알려는 노력이 없이는 절대로 투명함에서 건전한 관계를 이룩할 수 없다. 자신을 향해 건전한 비판을 추구할 때에만 그 많은 창문은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우리 삶의 뒷방에는 어떤 두려움과 수치심과 낭패감과 죄책감과 모욕감이 자리잡고 있는가?


만일 사람이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투명해지는 법을 배우는 면에서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를 밟은 것이라 할 수 있다. p.82

민감함 : 안을 들여다보는 기술 - 예수님은 인간 안에 있는 두려움을 미리 아셨다. "베드로야, 두려워 말라.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놀랍고 친밀한 우정은 이렇게 민감함에서 시작되었다.p.91

민감함의 뿌리는 에덴 동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투명함을 잃어버렸을 때, 그 영향은 즉각적이고도 비참한 것이었다....이제 하와는 아담이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와는 아담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 무게를 저울질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과 몸짓을 유심히 살펴야만 했다...하와가 아담을 친밀하게 알려면 아담 쪽에서 투명해지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했다. '관계의 협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아담은 투명해야 했고 하와는 민감해야 했다. 서로를 진실되게 아는 정도와 친밀함의 형성 여부는 바로 그런 노력을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p.93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법 - 민감함이란 기도와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을 통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행하는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p.104

상대방 속에서 발견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본인에게 얘기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오단계 대화에 나타나는 인정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잠재력을 믿는다는 말과 같다.p.146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비난과 험담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책망에 능한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을 지적해 주기가 두려워서,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개인적인 파산의 지경으로 치달아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꽤 많다.p.149

만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아무런 갈등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문제다...갈등이 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실한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갈등이란 대화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다.p.162

사도들은 자기들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들었지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원망하는 마음을 바로 처리하기 위해 일단 문제를 표면으로 제기했다. 자칫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속으로만 투덜대는 상태에 그냥 놓아 두지 않았던 것이다...불이익을 당한 쪽 사람들 역시 비난만 일삼은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많은 경우 갈등을 제대로 처리하면 성장이 찾아온다. p.167

그들의 사고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전통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손이 함께했다는 증거가 분명히 제시되고 인정되자, 순식간에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다.p.168


 10과 <일이 뜻대로 잘 안 될 때>와 11과 <사람을 세우는 법>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명 깊은 통찰을 주는 챕터이다. 특히 위의 인용문에 해당되는 사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에 논란이 일었다. 사도들은 오랫동안 지켜온 율볍에 어긋나는 행동을 두고 쉽게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 대신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검토하기로 했고 결국 생명처럼 고수했던 전통의 겉 형식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 안에 율법이나 전통보다 더 중요한 진짜 진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도들이나 기존의 구성원들이 극복해야 했던 것은 자존심을 세우며 전통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본질을 꿰뚫는 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느냐의 선택의 순간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전자를 택한다. 그것이 훨씬 안전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내 신념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격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더 좋은 것을 지향하기 위해 만든 형식과 율법이 정말 지켜야 할 본질을 흐리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입장을 내려놓고 본질에 다가서는 일이 얼마나 큰 진통을 주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때의 사도들과 성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복음중심적인지 - 예수의 본을 잘 따라가는지 - 알 수 있다. 작은 규칙이나 교회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결국엔 의가 상해 보지도 않고 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마음이 많이 아프다. 교회 안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인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건 그저 성경에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치부되고 마는 일들이 너무 많다.


 몇 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의 룰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다고 그의 신앙을 판단하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서로 다른 생활 습관 때문에 불편하다는 팩트를 두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하지 않은 채 그저 피하면서 상대방에게 결국 상처를 주고 말기도 한다. 더욱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의 작은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 교회 안에서 더 아파하고 상처받는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면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사람들은 가장 어려워한다.

 그만큼 우리 모두 마음이 닫혀 있고 상처받아 있으며 어그러져 있다. 진실에 반응하지 못하는 현대 그리스도인.


갈등 없는 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실한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갈등이란 대화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다….갈등이 반드시 나쁘거나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잘 처리하기만 한다면 갈등을 통해 친밀함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p.162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관계들을 연구해 보면, 불일치라는 주제에 대해 방대한 양의 자료가 등장한다….그들의 사랑에 갈등이 배제된 것처럼 보이게 하지는 말라. p165

이기는 것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관계에는 이기는 사람도 없고 지는 사람도 없이 '성장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사실에 도달하는 것보다 이기는 것에 더 관심이 많게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파괴적인 갈등이다. p.170

갈등에 분노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남자든 여자든 대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갈등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는 결코 친밀함이 자라날 수 없다.자신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기질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어린 아이는 흔히 원한을 품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바로 자비를 주고받는 과정에 있을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p.173

  

 예수의 본을 잘 따르는 집단이라고 해서 '갈등'이 없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이 있으므로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와 제자들 사이, 제자와 제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갈등들이 존재했었고 그것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예수의 행동을 보고 한 단계씩 성장해 갔다. 하지만 갈등의 와중에 당장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은 '화 냄'의 문제이다.


 친밀했던 관계도 '분노'와 '화' 때문에 얼마나 많이 갈라지는지. 화에 가까운 짜증이 많았던 나에게도 많이 와 닿았던 부분이다. 사실 원래부터 화가 많은 사람은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성장과정에서, 혹은 트라우마에 가까운 어떤 사건들로 인해 해결되지 못한 내면의 문제가 상실감과 같은 '짜증'으로 나타날 때가 많았다. 문제는 그런 분노와 화를 정당하게 풀고 해결하지 못한채 억누르고 간과하고 무시했던 결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 가족-에게 어려움을 되물림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집 밖에서는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체면 차리느라 아닌척 했던 본래의 모습들이 가장 편안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폭발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친밀함은 고사하고 함께 있는 것조차 불편하고 둘러싼 공기는 지극히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기질을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상태가 어느정도 괜찮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스스로 다스릴 수 없을 때라고 판단이 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투명해 지고 솔직해 지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을 인정하고 내 상태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까지 결코 적지않은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서로 마주보며 웃고 친밀한 스킨쉽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세워주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사람을 세우는 법 - 인내란 다른 사람에게 성장할 시간과 여지를 충분히 주려는 마음을 뜻한다...인내는 관계의 윤활유이다. 관계에 긴장감이 돌 때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바로 들쑤시지 않는다...친밀한 관계에서는 적절한 지적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가 있어야 한다. p.186


인내를 동조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인내는 다른 사람의 미숙한 모습이나 무책임한 행동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아니다. 인내란 사람마다 성장의 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p.187


바울은 우리에게 실족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끝까지 충실할 것을 명하고 있다. 성경은 세상에서 고생하는 연약한 사람들에게 보호의 손길을 내밀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다. p.194

세워주는 관계에는 용서가 필요하다. - 용서란, 관계에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일로 인해 상대방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잊어버리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긍휼을 베풀기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용서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용서란 스스로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라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p.202


 용서에 대한 이런 구절들을 보며 생각하는 것은,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정말 용서가 안되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은 것 뿐이지 어쩔 수 없이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누가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싶겠는가.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누군가는 그냥 계속 미워하는 편이 더 편하다. 용서하겠다 마음 먹으면 그때부터 심적 갈등은 더 거세진다. 마음 속 자아와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은 아우성을 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용서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 가능할까? 그 질문은 또 다시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의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용서를 하기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고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용서와 고백이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마지막 두 챕터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친밀함을 추구해야 할 부부 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밖에서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 맺고 인격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라도 가정에서 특히 배우자에게 그런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이중인격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실상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 편하다는 이유로 배려의 대상에서 더 자주 제외시키고 소통의 대상에서 밀어놓고 있다. 나 역시 내 모습을 가장 잘 아는 가족들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아 왔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어느새 포기하여 덮어버리고 외면해 오고 있었던 중이다. 신앙을 가진 가족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막연하게 동의하는 것은 바로 가까이 내가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이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외부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 부부는 결국 부부간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와 아주 유사하다고 결론 짓는다. 태초에 완벽한 가정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관계에서도 투명함을 상실하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불화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예수의 모습을 따라 서로를 용납하고 세워주기로 결심하면서 태초의 하나되었던 모습을 회복해 나가기로 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복을 맛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사람들과 화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돌고 도는 상관관계속에서 필요한 것은 지금 그렇게 하고자 시작하려는 결단과 용기이다.


**


 신기한 것은 책을 읽어내려가며 그 동안 가졌던 불신 (내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의심 (과연 진정한 인간관계란게 가능할까?), 분노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피해의식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야,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어) 따위와 신앙의 본질적인 질문들이 조금씩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절대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어두운 마음이 조금 위로를 받았고 움직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집스런 자아는 모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연습해 가며 원래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것 같았다. 이 가을에 변화를 일으키는 책을 만난 것 같다. 우연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에 희망을 가지게 된 것. 조금은 다른 방식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었던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느낌. 그저 한순간의 느낌이나 잠깐의 결심이 아니라 계속 이 길을 묵묵히 가기로 결단하려면 그 중심에는 분명히 예수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분명해 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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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11-1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4년 발행 책이면, 정말 오래된 책이네요. 이 책이 현맘님께 많은 것을 주었나 봅니다.

투명함-, 제 언어로 말하면 솔직함이겠죠, 당신과 나 사이의 맘에 대한 표현,
그런 것들이 투명하기 위해서 자신을 우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제일 첫 단계로 감정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내 맘 상태를 알고 안아주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며 그것이 가능해야 다른 이도 받아줄 수 있다는 제 생각과 일맥 상통하는 느낌으로 글을 이해했답니다, 제가 잘 이해했을까요?

사람 관계, 코알라가 그러더군요, 너무 어렵다고. 그래서 제가 말해주었어요, 어렵지,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중요하지.
너무 중요해서 어려운가봐요.... ^^, 날이 너무 추워요, 현맘님. 건강 유의하세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1-14 22:59   좋아요 0 | URL
날씨가 추워졌어요? 저 있는 곳도 갑자기 추워졌어요. 물론 한국보다는 따뜻한 곳이지만요~
마고님이 말씀하신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내 감정을 인식하고 자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요. 이 책을 읽는 기간 중에 그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내 자신-내면 아이를 포함-에 대해 스스로 위로하고, 괜찮다고 하며 넘어갔던 상처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요. 진짜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이 책을 읽어서인지 훨씬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주변인들에 대한 생각과 제 내면적 태도가 변화가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리뷰를 쓰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기 쉽지 않아 에둘러 쓰다보니 좀 두리뭉실하고 모호한 리뷰가 되어 버렸어요. ㅋㅋㅋ 역시 글을 쓴다는건 어려워요.

코알라는 도대체 얼마나 성장한거예요? 벌써 사람 관계가 어렵다는 세상사 진리를 깨닫다니요!
 
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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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들이라면 나 같은 사람도 - 여기서 '나'같은 사람이란 '소설'을 잘 못 읽는 사람이란 뜻이다- 읽을 만 하겠다 싶었다. 차 안에서 읽어도, 집 거실에 앉아 읽어도,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읽어도 어디에서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난 내 삶이 소설인데 남의 이야기 따위 읽고 싶지 않다고 은연중에 '다른 이의 이야기들'을 거부했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사회 현실을 고발한다거나 우리의 내면을 돌아본다거나 하는 명목 하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까발려지고 드러내지고 심지어는 과장되어지고 부풀려지는 지금 같은 시대엔 더더욱.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난 내 삶의 이야기가 풀어내는 이면의 의미 따위에 집중하느라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조금 여유있어졌나 싶었졌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난 소설을 읽을 때가 되었구나 싶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궁지에 몰린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객관적으론 맞지 않는 말이다. 가족 모두 건강하며 평안하고 딱히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는 현 상태에서도 난 항상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건 아닐까,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피해망상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증 같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확실한 건 여전히 난 여유가 없다는 거다. 내면적으로 외면적으로 모두 다.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은 그렇게 돌아볼 여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딱 좋은 이야기들이다. 딱 좋은 이야기일 뿐 아니라 덩달아 위로 받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이 곳에도 어김없이 상처입고 소외되고 세상의 끝에 몰려 나뒹굴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것도 모양과 색도 다른 일곱 가지의 이야기들을 안고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봤을 때, 내가 읽어야 할 책은 아닐 것이라 밀어냈었다.

 

 

<극단적인 고립>,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 <지독한 세속적 일상>....

 

한 번 흝는 리뷰들 속에 등장하는 이 낱말들은 여타 다른 단편 소설들과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내 삶에도 등장하는 것들이다. 하나 새로울 것들이 없다. 오래 사귄 연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후 말을 잃은 여자나, 동경하던 이가 정신지체가 되어 버린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바쁜 누군가나, 희대의 살인마에게 가족 모두를 처참하게 잃고 나락을 빠진 어떤 이나, 교통사고로 고립되어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한 남자나, 명확하지 않은 이별의 순간을 오랜동안 마음에 품은 어떤 이들이나, 가장 가까운 아내의 암 소식으로 인해 괴로워 하는 그 남자나....그들은 내 모습이기도 하고 주변의 흔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내게 뻔한 자극과 충격을 주는 대신 은근한 울림과 위로를 준건, 작가가 이런 비극이나 삶의 과정에 집중하고 있지 않아서인 것 같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처럼 덤덤하고 간결하게 묘사하는 그 흐름이 내 거부감을 없애 주었다. 그래서 삶의 모습과 겪은 일상은 다르지만 결국 그 안에서 그네들이 느끼고 있는 모순과 답답함과 절망은 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무겁지만 무겁기를 거부하고, 절망적이지만 겉으론 평온하기를 애쓰는......신경숙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구차하고 지리하게 나열하고 묘사하는 대신, 짧은 언어로 그들의 말과 마음과 분위기를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7편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침묵함으로 자신의 고통을 대신한다. 뱉어내고 질러 버리고 고함치는 대신 그들은 조용히 감내하며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털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상처 입은 사람은 또 다른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다고 하던가...이곳에서 주인공들은 또 다른 '나', 또 다른 소외된 존재들에게 위로를 얻고 치유받는다. '치유'와 '회복'과 '구원'의 과정이 녹아져 있다는게 참 좋았다. 사실은 참으로 얼토당토 않을지 모르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장치들이지만, 주인공들은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도 아닌, 그러니까 어쩌면 일어날 지도 모를 그런 기적과 같은 일들 때문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착한 소설>이라는 느낌은 아닌데, 그들은 착한 과정 속에 녹아져 있다.

 

오래된 연인의 일방적인 통보로 말을 잃어버린 그녀가 오래 전 죽은 한 여인이 손수 차린 식탁을 마주 하며 입맛과 삶을 찾게 되는 이야기. 언뜻 이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환상이 아닐까 싶지만, 이 소설의 맥락에서 이건 환상이 아니라 현실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그렇게 위로받고 회복되어져야 할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고 일으켜준다. 그리고 그게 참으로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지게 하는 힘, 그것이 신경숙 작가의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절대화하지 않는 고통> <서로 함께 존재함> <신화적인 체험> <절망의 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

 

삶이든, 인간관계든 어떤 기점이 되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건 논리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사실 내 삶도 그런 일들 투성이다. 오늘같이 아침부터 흐린 날씨로 인해 오전 내내 우울하다가도, 방금 반짝 베란다 가득 넘치는 햇살로 인해 갑자기 오후 약속에 대한 기대가 한껏 생겨버렸다던지, 우연히 펼쳐 든 책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메모 같은 것들 - 그런데 그게 지금 내 상황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던지 하는-도 그렇다. 이건 흔히 겪게 되는 일들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잠깐 생각했는데 그 사람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는 것도,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동시에 집어드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도....우연이고 상상일 수 있지만 현실이고 현재가 되는 순간들.

 

그 순간들은 이 단편 소설 속 절망적 주인공들에게도 한결같이 일어나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쉽게 거부하고 쉽게 단정짓는 세상에서 쉽게 긍정하고 받아들여주는 '네'라는 한 마디에도 그들은 얼마나 쉽게 회복이 되는가......그런 순간은 이야기들을 읽는 나에게도 전달되어 마치 함께 그 순간을 겪는 것인양, 내게도 위로와 기쁨을 준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하나의 작은 신화적 순간이 되어 참으로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떤 한 구절 속 <무거운 고독>이란 단어가 책 전체에 스며들어 책이 마치 비오는 날 구름처럼 축축하고 묵직하게도 느껴졌지만, 다 읽고 덮은 순간은 반짝 햇살에 바짝 마른 낙엽처럼 조용하지만 가벼웠다. 내 마음도 절망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답지 않게 따뜻하고 충만한 감성으로 가득찼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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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3-2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사는 40대 부모가 책을, 그것도 소설을 읽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리뷰까지 쓰시다니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28 23:25   좋아요 0 | URL
아....이게 대단한 일이었군요..ㅎㅎㅎ
훌륭한 리뷰라뇨. 맨날 쓰지 못하고 맴맴 돌다 뱉어내는게 부끄러워요.
활기찬 포핀스님 보고 운동해야 겠다 마음 먹는 요즘이예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3-2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햇살과 가을낙엽 그리고 사람의 체온까지 모두 다 들어있는 리뷰예요!

현맘님, 뭐가됐든, 여기에 더해 제 위로도 더해드릴게요. 화이팅!!!^^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28 23:26   좋아요 0 | URL
아프지마요~건강해야 해요!
아이리시스님의 위로에 간절함을 더 보태 다시 돌려드릴께요. 얼른 털고 일어나세요.

그리구요.....일 치신거.....그거 뭐예요? 궁금...궁금...ㅋㅋㅋㅋ

비로그인 2012-03-2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글 올리신걸 보니 좋아요. 소설 리뷰인 것도 좋구요.
저는 그래서 소설이 좋더라구요. 소설은 위로에요. ^^

오늘은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 날이었어요. 게다가 내일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그래서 위로를 위해 장바구니에 책을 넣다 뺐다 하는 중이에요. 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28 23:27   좋아요 0 | URL
소설이 위로군요....그러니까요. 소설 많이 읽고 좋아하시는 분들 보면, 참 좋아보여요. 전 그렇질 못해요. 아직 퍽퍽하게 남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가봐요.

스트레스 받으면 안 좋은데...그럴때 알라딘은 참 좋은 스트레스 해소처긴 해요. 저도 지름신이 오시면 알라딘 쇼핑이 1순위이니까요...그래도 뭐...빽 같은거 사는것 보단 낫지...않을까요?ㅎㅎㅎ

프레이야 2012-03-2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패스하고 있었는데 현맘님의 리뷰가 확 지름신을 불러요.
담아갈게요.
무거운 고독이 읽고나면 가벼워진다니 끌리고, 그래도 신경숙이니 끌리고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31 10:28   좋아요 0 | URL
이 책 구입하셨어요? 몇몇 단편은 몇 번 읽어도 좋을 것 같던데...
전 신경숙씨 책은 깊은 슬픔 이후엔 단 한편도 없었어요. 워낙 소설 잘 안 읽기도 했구요.
그냥 요새는 머리 많이 써야 하는 인문학책보다는 마음으로 읽는 소설에 자꾸 눈이 가네요..ㅎㅎ

신지 2012-03-2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를 부탁해를 사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너무 많이 알려졌고
단편 모음인 이 책을 살 걸 그랬네요. (리뷰가 좋아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31 10:29   좋아요 0 | URL
엄마를 부탁해는 저도 있어요. 선물 받았는데 안 읽어봤다죠.
가족에 대한 소설은 더 읽기 힘들어요.ㅎㅎㅎ
전 단편 소설이 부담없고 좋더라구요.
잘 지내셨죠?^^

마녀고양이 2012-04-0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현맘님은 제 맘에 들어갔나 나오는 분 아닐까?
어쩜 이렇게 쏙쏙 다가오고, 똑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지...

저도 가족 소설 읽기 힘들어요. 감정에 끌려다니는 소설은 더욱 힘들구요....
힘든 일이 가득한 세상에서, 푹 들어앉아, 더욱 울부짖는 책은, 정말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좋군요.... 한발 떨어져 나를 객관화시키고 타자를 객관화시키며, 사소한 행복을 즐기지 않는다면
어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요... 사실, 행복한 일들도 참 많은데 그걸 자꾸 까먹게 되니까 말이죠.

잘 지내시죠?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04 09:25   좋아요 0 | URL
마고님이나 저나 가족 안에서 받았던 느낌이나 상처의 골이 비슷한 무게인 것 같아요, 우리 내면의 어린 아이도 그렇고 현재의 내 모습도 그렇고...아무래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단 생각 들어요.

우리 같은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사소한 행복을 잊는다는거죠..ㅎㅎㅎㅎ 저도 그래요. 문득 참 행복한 환경이구나 하기도 하지만, 그건 금방 잊혀져요. 온갖 불안과 두려움과 조급함이 금새 사로잡는데 참...어렵죠?

잘 지내요. 큰 아이가 중학교 가서 아침밥 해 먹이고 데려다 주고 나면 하루의 진이 다 빠지는 것 같아 요샌 그냥 조용히 지내요. 그래도 하루하루 큰 기복 없이 잘 지내고 있답니다~
 
책과 집 - 갖고 싶은 나만의 공간, 책으로 꾸미는 집
데이미언 톰슨 지음, 정주연 옮김 / 오브제(다산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기분 좋아지고 설레는 책을 만났다. 판형도, 손에 잡히는 질감도, 두께도 무게도 다 마음에 드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은건 역시 책 속의 책들. 책으로 가득찬 `공간`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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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방 옆에, 침대 머리맡에, 화장실 위에, 계단 밑에, 나름대로의 공간을 연출하며 쌓여있는 책들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더 기분 좋다. 그냥 화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짧은 에세이들이 엮여 있어 찬찬히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한 장 한 장, 내가 그 공간 속에 있다고 생각하며 읽으련다. 이 추운 날, 딱이다.

잘잘라 2012-01-0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말 책을 사랑하는 현맘님^^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3 19:13   좋아요 0 | URL
포핀스님! 오랜만이예요~1년만인가요?ㅎㅎ
책을 사랑하는건지, 책을 사는 걸 사랑하는건지...올해에는 좀 더 내실있는 애서가가 되야겠어요~^^

아이리시스 2012-01-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맘님 안녕. 새해 처음 쓰는 댓글. 복 다 가져가세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3 21:38   좋아요 0 | URL
꺄~~그런 복을 주시다니...고마워요~
알라딘에서 통계를 내주던데 보니까, 아이리시스님이 제 서재 댓글 1위예요. 흠. 우리 무슨 이야길 한거죠? ㅎㅎ
올 해도 잘 부탁드려요.^^

아이리시스 2012-01-03 21:06   좋아요 0 | URL
푸른 잔디와 비치는 햇살, 우와, 설레요. 현맘님 서재가 환.해.요.
그러게요. 저에게도 현맘님이 1위예요. 우리 무슨 얘길 한거예요?ㅎㅎㅎ
올해도 1위가 될게요^^
추워요. 오늘 부쩍 더 추워진 게 현맘님 계신 곳에 눈이 오기 떄문인가 봐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4 11:56   좋아요 0 | URL
올 한 해 환하게 살거예요.
할 일과 바쁜 일상에 치여 쭈글쭈글한 일상이 아니라 환하고 밝고 즐거운 일상이요~ㅎㅎ
저런 곳에 앉아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오늘 여기 너무너무 추워요~

꿈꾸는섬 2012-01-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맘님 잘 지내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말 매력적인 책을 가지고 계시군요. 황홀할 것 같아요.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6 14:31   좋아요 0 | URL
꿈섬님~~정말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죠?
꿈섬님도 올 한 해 건강하시고 정말 행복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시길 바래요~~
 
순전한 기독교 (양장) 믿음의 글들 185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외 옮김 / 홍성사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진리를 찾는 순례자의 여정 그대로..거창한 신학적 이론이 아닌 내 안에서, 내 주변에서 출발하여 담담하고 진솔하게 찾아가는 기독교 진리 이야기다. CS. 루이스의 논리적 접근은 신기하게도 감성적이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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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2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5권을 구매했다. 매년 선물할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이 책을 구입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삶 앞에서 진지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딱이다. 참으로 덤덤하고 담담한데 빠져들게 하는 논리가 있다. 그리고 그 논리는 따지고 재고 파헤치는 논리가 아니라 함께 가보자고 부담없이 제안하는 논리다. 무엇보다 더 좋은건, 부담없이 권하는 그 길이 그 자신은 무척이나 치열하고 가열찬 진리에의 추구의 결과였다는 것.

아이리시스 2011-12-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감성적이고 매력적. 다른 건 모르겠고 지나간 알라딘 리뷰대회에 [순전한 기독교] 있어서 그걸 꼭 리뷰 올려야지 했는데 저는 역시 계획적인 일에는 orz 오오, 이 책을 선물하신다니, 오늘 당장 꺼내서 읽기 시작해야지! 고마워요, 현맘님. 저한테는 선물 안주셔도 제가 알아서 오래 전에 사뒀어요, 호호호.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28 18:1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미 오래전에 사두신 책. 읽어봐요. 그런데 감성적이고 매력적인 아이리시스님에게는 밋밋하고 지루할 수도..전 감성이 메말라서 그런지 좋더라구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