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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사실..이 책은 이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리뷰를 쓰기가 좀 아깝다. 좀 더 맑은 정신일 때, 밖의 날은 차지만 따뜻한 해가 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한 낮에 커피 한 잔 마시며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있다. 읽으면서 내내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에...기교없이 잔잔한 햇살같은, 몸에 붙은 습관이지만 늘 새로운 커피같은...뭐 그런 느낌이 드는 글들이었다.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가꾸는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보이고, 덤덤하게 풀어 놓는 그녀의 일상 속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들이 또한 곳곳에 녹아져 있다. 그리고 너무나 덤덤해서 오히려 울컥해 질 수 밖에 없다. 그건 그녀의 소설 속 가상의 삶이 아니라 그녀가 걸어온 실제의 삶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한참 꿈을 꾸고 미래를 계획해야 할 대학 초년 시절, 그녀가 겪은 전쟁은 그녀의 말처럼 잔인하고 무자비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꿈을 꾸고 그 길을 아쉬워 했을 수도...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전쟁은 영혼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력한 경험이었기에 오래도록 그녀의 내면을 흔들고 혹은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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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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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을 코 앞에 둔 그녀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니...난 그것이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바라보며 나 역시 그런 질문들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설령 80까지 살아있다 해도 그 질문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먼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해결이 나고 결론이 나야 마땅한 것 같은 그 나이도 결국 '나를 찾는 여행'의 연장선상 중 일부분이구나. 그래서 더 아름다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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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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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바퀴없는 자들의 편이다-
...우리는 낮에는 빈집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밤에만 조금씩 걸어 임진강 가에서 그 강을 건너지 않고 숨어지냈다. 임진강은 절대로 건너지 않기가 우리 가족이 찢어지면서 한 암호 같은 약속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바퀴가 없어서 한강을 건너지 못했고, 바퀴를 피할 수 있어서 임진강을 안 건널 수 있었다...
...어쩜 그렇게 혹독한 추위 그렇게 무자비한 전쟁이 다 있었을까.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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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에 감동이 와 표시 해 놓은 부분들을 보니 전쟁을 겪은 그녀의 이야기가 많다. 극적인 개인과 국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연평도 사건이 터져서이기도 했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이 날 더 몰입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전쟁통에선 오로지 그녀의 두 발 만이 유일한 이동수단이었고, 그래서 겪은 고통들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몸이 불편한 오빠를 부축하며 그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걸어서 피난해야했던 꽃다웠던 그녀는 원망섞인 그 심정을 지금도 토로한다.
하지만, 결국 바퀴없이 이동해야 했던 그 어려움이 가족을 지켰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뿔뿔이 흩어질 위기였던 순간도 피해갈 수 있었고, 그래서 다시 만나 오늘날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고..그래서 그녀는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란다. 가장 최악의 비극에 처해있는 삶의 편,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희망적일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편. 너무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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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남대문 주위에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 남대문 홀로 크고 장엄했다. 하여 남대문로 양쪽의 건물들이 납작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남대문이 위압적인 건 아니었다. 대도시의 혼잡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조그만 계집애에게 괜찮다, 괜찮아, 라고 다독거릴 듯 인자하고 편안해 보였다. 한 가문의 맥을 한 손에 틀어쥔 것처럼 당당하고 기가 센 종가댁 증조할머니도 매 맞고 우는 어린것들한테는 기꺼이 당신 치마폭을 내주고 감쌌다. 남대문의 석축이 그렇게 부드럽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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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이 불에 탔던 그 시점에 썼던 글 중에, 일제시대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 구경을 온 꼬마 숙녀의 눈으로 본 남대문에 대한 회상이 있다. 나 역시 남대문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무기력했고, 마치 내 역사가 송두리째 불타는 충격을 겪었기에, 왠지 이 남대문에 대한 묘사는 너무 반갑고 아련하게 따뜻하다. 한참 보수중이지만 너무나 새 것처럼 다시 내 앞에 나타나면 굉장히 낯설고 어색할 것 같아 미리부터 걱정이다. 오래도록 크고 장엄하지만 부드럽고 여성스러웠던 남대문의 그 빈 자리가 너무 클 것 같다. 아마...그녀에겐 더 할테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봐왔던 그녀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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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는 정말 그랬을까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장 천한 신분의 죄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고 하나가 되어 우의를 다졌다는 기록은 사대복음서에 공히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니 아마 실화일 것이다. 실화일 터인데도 너무 아름다워 꼭 꾸민 이야기, 소설처럼 읽힌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소설 같다고 폄하하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나는 내가 소설가여서인지 꼭 정말 있었던 일 같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처럼 진실한데 아름답기까지 한 이야기를 소설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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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정말 있었던 일 같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처럼 진실한데 아름답기까지 한 이야기'를 '소설 같다'고 생각하는 그녀. 소설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느껴져 미소까지 지어지게 하는 구절이었다. 작은 밥상이라도 함께 나누고,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네 할머님들의 모습이 묻어난다. 그리고 무뚝뚝한 손녀딸이 오랜만에 찾아가면 반찬 없다 하시면서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우리 할머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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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좋아한다. 그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국내에서도 평가가 구구한 줄 알지만 내가 좋으니까 좋아할 뿐, 남들의 평가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소설을 재미로 읽지 공부하려고 읽지는 않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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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그녀의 소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공부하려고 읽는게 아니라 재미로 읽는게 소설이다...라고 무심한 듯 단순하게 이야기하지만, 왠지 그녀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듯 하다. 어깨에 힘 잔뜩 주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애정을 넘어 과한 집착을 보이는 젊은 이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할 여유다. 그녀의 글은 내내 그런 여유와 덤덤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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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책 자체를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할아버지의 피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며느리들과 함께 당신들이 읽던 언문책만 빼고는 할아버지의 한적을 모조리 물에 불려 먹물을 빼고 절구에 찧어 가볍고 튼튼한 커다란 함지박을 만들면서 희희낙락하던 할머니의 피가 같이 섞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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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심이 좋다는 스스로의 평가. 넘쳐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재미나다. 책을 너무 귀하게 여겼던 남편이 돌아가자, 며느리와 함께 그 모든 책을 뜯어 살림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할머니의 이야기. 그 두 피를 모두 물려받았다며 스스로를 보는 작가. 난 그저 커다란 함지박이 얼마나 튼튼한지 그것을 만들면서 즐거워 했을 할머니의 웃음이 떠오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겠지만, 할아버지가 평생 손때 묻혀 애정했던 것이, 사실은 할머니와는 상관없는 책이었기에, 오히려 함지박을 만들어 사용함으로 더 친근하고 애정 넘치게 할아버지를 추억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책답게 대접하는 것이 진정 뭘까 생각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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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읽히기 위해 있는 것이지 꽂아놓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빌려주기도 잘하고 안 돌려줘도 찾지 않는다. 그러나 이청준의 처음 책을 아무도 안 빌려주고 여태까지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건 초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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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어리지만 늦게 등단한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청준의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뒷 부분에는 그녀의 독서록, 혹은 책에 관한 에세이가 실려 있다. 요새 책에 관한 책들이 유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책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박완서 그녀의 책 소개는(사실, 책을 소개하려고 의도된 것들은 아니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맥락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훨씬 더 친근하다.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 : 제주 걷기 여행>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정민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애송시 100편>
공선옥 <행복한 만찬>
이청준 <별을 보여드립니다>
조나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 작가, 박수근 화백에 대한 추모글이 있다. 그녀만의 인연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추억하는 글들이 내내 따뜻하여 나도 다시 한 번 그분들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외에도 월드컵 때,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이었던 그 순간들의 이야기, 소소한 정원 가꾸기에 대한 단상들, 나무와 풀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애정, 스스로가 지나온 역사에 대한 덤덤한 서술이 내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책을 덮으며, 그녀는 그녀가 못내 가보지 못한 길이 아름답다고 단언하지만, 난 그녀가 그렇게 걸어왔던 길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겪었고, 경험했고, 견뎌냈고, 지켰기에, 못가본 길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손때 묻은 추억과 기억이 있기에...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풍성히 나눌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