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이 책은 이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리뷰를 쓰기가 좀 아깝다. 좀 더 맑은 정신일 때, 밖의 날은 차지만 따뜻한 해가 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한 낮에 커피 한 잔 마시며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있다. 읽으면서 내내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에...기교없이 잔잔한 햇살같은, 몸에 붙은 습관이지만 늘 새로운 커피같은...뭐 그런 느낌이 드는 글들이었다.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가꾸는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보이고, 덤덤하게 풀어 놓는 그녀의 일상 속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들이 또한 곳곳에 녹아져 있다. 그리고 너무나 덤덤해서 오히려 울컥해 질 수 밖에 없다. 그건 그녀의 소설 속 가상의 삶이 아니라 그녀가 걸어온 실제의 삶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한참 꿈을 꾸고 미래를 계획해야 할 대학 초년 시절, 그녀가 겪은 전쟁은 그녀의 말처럼 잔인하고 무자비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꿈을 꾸고 그 길을 아쉬워 했을 수도...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전쟁은 영혼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력한 경험이었기에 오래도록 그녀의 내면을 흔들고 혹은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80을 코 앞에 둔 그녀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니...난 그것이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바라보며 나 역시 그런 질문들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설령 80까지 살아있다 해도 그 질문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먼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해결이 나고 결론이 나야 마땅한 것 같은 그 나이도 결국 '나를 찾는 여행'의 연장선상 중 일부분이구나. 그래서 더 아름다울지도..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나는 다만 바퀴없는 자들의 편이다- 
...우리는 낮에는 빈집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밤에만 조금씩 걸어 임진강 가에서 그 강을 건너지 않고 숨어지냈다. 임진강은 절대로 건너지 않기가 우리 가족이 찢어지면서 한 암호 같은 약속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바퀴가 없어서 한강을 건너지 못했고, 바퀴를 피할 수 있어서 임진강을 안 건널 수 있었다... 

...어쩜 그렇게 혹독한 추위 그렇게 무자비한 전쟁이 다 있었을까.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

 
   

내가 마음에 감동이 와 표시 해 놓은 부분들을 보니 전쟁을 겪은 그녀의 이야기가 많다. 극적인 개인과 국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연평도 사건이 터져서이기도 했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이 날 더 몰입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전쟁통에선 오로지 그녀의 두 발 만이 유일한 이동수단이었고, 그래서 겪은 고통들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몸이 불편한 오빠를 부축하며 그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걸어서 피난해야했던 꽃다웠던 그녀는 원망섞인 그 심정을 지금도 토로한다. 
 
하지만, 결국 바퀴없이 이동해야 했던 그 어려움이 가족을 지켰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뿔뿔이 흩어질 위기였던 순간도 피해갈 수 있었고, 그래서 다시 만나 오늘날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고..그래서 그녀는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란다. 가장 최악의 비극에 처해있는 삶의 편,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희망적일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편. 너무 아름다운 말이다.  

 

   
   ...당시만 해도 남대문 주위에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 남대문 홀로 크고 장엄했다. 하여 남대문로 양쪽의 건물들이 납작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남대문이 위압적인 건 아니었다. 대도시의 혼잡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조그만 계집애에게 괜찮다, 괜찮아, 라고 다독거릴 듯 인자하고 편안해 보였다. 한 가문의 맥을 한 손에 틀어쥔 것처럼 당당하고 기가 센 종가댁 증조할머니도 매 맞고 우는 어린것들한테는 기꺼이 당신 치마폭을 내주고 감쌌다. 남대문의 석축이 그렇게 부드럽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남대문이 불에 탔던 그 시점에 썼던 글 중에, 일제시대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 구경을 온 꼬마 숙녀의 눈으로 본 남대문에 대한 회상이 있다. 나 역시 남대문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무기력했고, 마치 내 역사가 송두리째 불타는 충격을 겪었기에, 왠지 이 남대문에 대한 묘사는 너무 반갑고 아련하게 따뜻하다. 한참 보수중이지만 너무나 새 것처럼 다시 내 앞에 나타나면 굉장히 낯설고 어색할 것 같아 미리부터 걱정이다. 오래도록 크고 장엄하지만 부드럽고 여성스러웠던 남대문의 그 빈 자리가 너무 클 것 같다. 아마...그녀에겐 더 할테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봐왔던 그녀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는 정말 그랬을까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장 천한 신분의 죄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고 하나가 되어 우의를 다졌다는 기록은 사대복음서에 공히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니 아마 실화일 것이다. 실화일 터인데도 너무 아름다워 꼭 꾸민 이야기, 소설처럼 읽힌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소설 같다고 폄하하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나는 내가 소설가여서인지 꼭 정말 있었던 일 같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처럼 진실한데 아름답기까지 한 이야기를 소설 같다고 생각한다.

 
   

 '꼭 정말 있었던 일 같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처럼 진실한데 아름답기까지 한 이야기'를 '소설 같다'고 생각하는 그녀. 소설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느껴져 미소까지 지어지게 하는 구절이었다. 작은 밥상이라도 함께 나누고,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네 할머님들의 모습이 묻어난다. 그리고 무뚝뚝한 손녀딸이 오랜만에 찾아가면 반찬 없다 하시면서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우리 할머니도.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좋아한다. 그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국내에서도 평가가 구구한 줄 알지만 내가 좋으니까 좋아할 뿐, 남들의 평가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소설을 재미로 읽지 공부하려고 읽지는 않으니까.  
   

여기도 그녀의 소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공부하려고 읽는게 아니라 재미로 읽는게 소설이다...라고 무심한 듯 단순하게 이야기하지만, 왠지 그녀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듯 하다. 어깨에 힘 잔뜩 주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애정을 넘어 과한 집착을 보이는 젊은 이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할 여유다. 그녀의 글은 내내 그런 여유와 덤덤함이 묻어난다  

 

   
 

 나에게는 책 자체를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할아버지의 피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며느리들과 함께 당신들이 읽던 언문책만 빼고는 할아버지의 한적을 모조리 물에 불려 먹물을 빼고 절구에 찧어 가볍고 튼튼한 커다란 함지박을 만들면서 희희낙락하던 할머니의 피가 같이 섞여 있는 것이다.

 
   

 책 인심이 좋다는 스스로의 평가. 넘쳐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재미나다. 책을 너무 귀하게 여겼던 남편이 돌아가자, 며느리와 함께 그 모든 책을 뜯어 살림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할머니의 이야기. 그 두 피를 모두 물려받았다며 스스로를 보는 작가. 난 그저 커다란 함지박이 얼마나 튼튼한지 그것을 만들면서 즐거워 했을 할머니의 웃음이 떠오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겠지만, 할아버지가 평생 손때 묻혀 애정했던 것이, 사실은 할머니와는 상관없는 책이었기에, 오히려 함지박을 만들어 사용함으로 더 친근하고 애정 넘치게 할아버지를 추억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책답게 대접하는 것이 진정 뭘까 생각하게끔 한다. 

 

   
 

 소설은 읽히기 위해 있는 것이지 꽂아놓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빌려주기도 잘하고 안 돌려줘도 찾지 않는다. 그러나 이청준의 처음 책을 아무도 안 빌려주고 여태까지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건 초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늦게 등단한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청준의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뒷 부분에는 그녀의 독서록, 혹은 책에 관한 에세이가 실려 있다. 요새 책에 관한 책들이 유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책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박완서 그녀의 책 소개는(사실, 책을 소개하려고 의도된 것들은 아니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맥락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훨씬 더 친근하다.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 : 제주 걷기 여행>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정민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애송시 100편> 
공선옥 <행복한 만찬> 
이청준 <별을 보여드립니다> 
조나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 작가, 박수근 화백에 대한 추모글이 있다. 그녀만의 인연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추억하는 글들이 내내 따뜻하여 나도 다시 한 번 그분들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외에도 월드컵 때,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이었던 그 순간들의 이야기, 소소한 정원 가꾸기에 대한 단상들, 나무와 풀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애정, 스스로가 지나온 역사에 대한 덤덤한 서술이 내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책을 덮으며, 그녀는 그녀가 못내 가보지 못한 길이 아름답다고 단언하지만, 난 그녀가 그렇게 걸어왔던 길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겪었고, 경험했고, 견뎌냈고, 지켰기에, 못가본 길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손때 묻은 추억과 기억이 있기에...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풍성히 나눌 수 있기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섬 2010-12-08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백만개 누르고 싶은 글이에요.
박완서 선생님 참 좋아하고 존경하고 그래요. 저도 이 책 읽고 싶은데 아직도 못 봤네요. 언젠가 찾아서 읽어야겠어요.
소소한듯 무심한듯 한결같은 노작가의 마음이 그려지네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2-08 17:17   좋아요 0 | URL
80을 앞둔 분의 내공은 정말...
그것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내공이라..정말 존경스러워요.
전 박완서 선생님 소설을 그닥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 책 덕분에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어요.^^

마녀고양이 2010-12-0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랩한 글만 읽어도 이리 아름다운데,
실제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저 이 책 저번에 샀어요.
이제 읽어야겠어요. 너무 아름다운 리뷰예요.

박완서 님의 글에 꼭 어울리는 현맘님의 글이네요.
그런데... 책으로 함지박을 만드신 할머님이라. 와.
아까움 맘과 함께, 그래서 더욱 애정어린 맘이 드는 저랑 현맘님은... 참 좋네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2-08 17:20   좋아요 0 | URL
와..사셨군요.
전 이거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던건데 꼭 사려구요.
읽고 나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사실 별로 없거든요.
근데 이건 옆에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을만하다 느꼈어요.

책으로 함지박 만드신 할머니...너무 멋져요..ㅎㅎㅎ
요샛말로 쿨하신 할머님..책을 너무 모시고 사는 제게 오히려 가르침을 주시더라구요. 여하튼,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아이리시스 2010-12-0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의 말뚝>이 유일하게 읽은 거예요.
이 책 좋을 것 같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좋네요.
현맘님 글도요.
저도 사봐야겠어요.
아, 저기 책목록도 살짝 탐나고..
멋진 것 같아요, 작가들의 삶이란.
그리고 머릿속이란.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2-08 19:38   좋아요 0 | URL
<엄마의 말뚝>...전 제목도 처음 들어봐요..(이런.)
사실 전 소설도 그닥 많이 읽진 않지만
에세이 류는 더더군다나 잘 안읽어요.
소설의 극적 긴장감도 없는 것 같고, 뭔가 유용한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닌 것 같고...ㅎㅎㅎ
그런데 제 편견을 깨는 책이네요~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우리 아이 속마음 - 성격에 맞춘 성공적인 자녀 양육법
엘리자베스 와겔리 지음, 김현정 옮김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춘기가 시작되려는 큰 딸보다, 나와 다른 둘째 아들 녀석때문에 보게 된 책이다. 우연히 도서관에 꽂혀있는 걸 냉큼 집어왔다. 아직 9살밖에 안된 이 녀석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고집이 센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줏대가 너무 없다 싶기도 하고, 굉장히 똑똑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떤 때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바보같다.ㅋㅋ 때로는 너무 상냥하고 스윗한 막내 아들이지만, 어떤 때는 섭섭할 정도로 냉정하게 거리를 둔다. (혹시 자아분열인가...) 

 

다른 성격분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에니어그램도 역시 사람의 성격을 단정짓거나 결론내기 위해 개발된 것은 아니다. 현재 개인의 심리상태나 성향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보완할 점을 찾고 개선되어져야 할 방향을 가늠하는 정도의 역할을 해 준다.최종 목표는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자녀 양육에 에니어그램을 적용하는 것은...어린이를 한 가지 성격 유형에 제한하지 않고 모든 성격 유형의 요소를 골고루 살피면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에니어그램을 적용해 아이들을 살펴보면 아이의 핵심 자아와 생각을 이해하게 되고, 당신 자신과 다른 성격일지라도 한결 수용하기가 쉽게 된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의 가능성을 새롭게 알게 되어 아이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p.17

 
   

 

총 9가지 유형으로 성격을 분류하고, 서로 옆에 있는 유형을 '날개유형'으로 분류하여 상호 보완되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건강하고 밝은 상태에서 어떤 화살표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 혹은 부정적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어떤 화살표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 현재의 상태를 분석함으로 좀 더 개선되어지고 보완되어져야 할 것들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완벽한 프로그램은 없다. 사실, 이 책에는 질문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자신의 아이를 9가지 유형중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찾아내려면, 몇 가지의 질문 유형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고, 꾸준한 관찰과 이해가 밑받침 되어 있어야 하는데, 당장 책만 봐서는 아이들의 유형을 그리 쉽게 찾아내기가 어렵다. 아마 따로 에니어그램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정확한 것들을 도출해 내야 유익한 정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은,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진 아이들, 부모들이 있고 그 행동 형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짐을 느낄 수 있어서다. 절대 이해가 가지 않던 사람도, 어떤 유형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가 1번 <완벽주의자> 유형에 속해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도 인정하기가 쉬워진다. 그것만으로도 이런 책은 의미가 크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삽화로 각 유형에 대한 훨씬 더 쉬운 이해를 돕고 있다. 단순한 상황에 대한 질문들보다 이렇게 각 상황에서 각 유형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기 쉽게 전달하는게 훨씬 좋다.

 

 

  

  

1번 유형인 완벽주의자 유형의 자녀이다. 밑으로는 2번부터 9번까지 유형의 특징을 나타낸 질문들이다. 사실, 이 질문만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몇 가지 유형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다. 이런 유형 다음에는 <등교시간>이나, <학습유형>, <친구관계>, <잠버릇과 식습관>, <의사결정 스타일> 등등으로 구체적으로 각 유형별 특징을 소개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끝까지 다 읽어내려가며, 자기 아이를 관찰, 비교해 보아야 조금이라도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책 뒷편에는 각 유형별 부모의 특징이 나온다. 이 에니어그램을 잘 활용하고, 자기 아이를 잘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려면, 일단 부모가 먼저 자신의 유형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오히려 부모의 유형을 파악하기에는 도움이 된다. 부록지에 보면 부모 유형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지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면, 자신의 아이를 잘 관찰할 것. 어떤 아이는 부모와 너무 다른 유형이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의도대로라면 자신과 다른 유형이 충분히 존재하고, 장점과 단점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에, 훨씬 더 폭넓은 이해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우리 아이가 어떤 유형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와의 관계가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문제는 무관심한 상태에서 내 판단과 기준으로 아이를 재단하기 때문이 아닌가... 

 

난 이 책을 덮으며, 사실 처음엔 좀 불만이 있었다. 아니...다 읽으래서 읽었는데도 여전히 우리 아이에 대해서 모르겠잖아!!! 이걸 어떻게 아냐고!!! 꼼꼼히 보고 또 보고, 우리 아이를 관찰해 보며 느끼는 것은, 사실 종잡을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어린 아이가 아닐 수도...어쩌면, 이런 유형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도, 우리 아이를 어떤 유형의 틀에 맞추어 넣어 내가 관리하고 파악하기 쉽게 만들려는 부모의 숨겨진 욕구가 아닐까도 싶다. 어쨌든, 우리 둘째 녀석이 속해 있을 것 같은 유형은 두 세가지로 압축되긴 했지만, 내가 둘째 녀석에게 내린 결론은, 이런 저런 유형을 넘나드는 멀티한 인간...이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다양하고 신기한 녀석. 이게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우리 둘째에게 내린 나의 결론이다. 종잡을 순 없지만, 마음은 편해졌다. ㅋㅋ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0-11-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물음이 너무 추상적이예요.
순간순간 아이가 이럴수도 이렇지 않을수도 있는데 이렇게 가두는 자체가 현맘님 말씀처럼 기준을 정해놓고 끼워맞추려는 부모의 욕망 투여일지도 모르겠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1-28 16:37   좋아요 0 | URL
그죠...맞아요.
제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어려웠을까...했었는데
아이리시스님 말씀 듣고 나니 알겠네요. 너무 추상적..그죠?
9가지 유형들에 대한 질문이 추상적이니, 그게 그거같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되어버리니 헷갈릴 수 밖에요..ㅎㅎ
이 책이 저에게 준 교훈은, 그냥 니 아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분류하지 말고..예요..ㅋㅋㅋ
 
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덮고, 마음 한구석이 조금 먹먹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잠시, 이런 여행이라면, 비록 영원히 죽는다 하더라도 한 번 떠나볼 만하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충격을 받았고, 그 상처로 인해 떠돌아다니며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밖에 없었던 영혼을 따뜻하게 치유하는 여행이라...  

 

표지에 그려진 다소곳한 '그녀'는 오랜 시간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해 '망각'이라는 장치를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사촌 '쇼이치'는 오래도록 외로왔던 그녀와 동행하며 그녀의 기억의 자취들을 따라가며 자신 스스로에게도 의미있는 여행을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해줌으로 상대를 치유하고 나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동행은 그 자체로 빛이 날 듯하다. '그녀에 대하여'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동행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사건이나 굉장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어도, 난 '그녀'가 느끼게 되는 사소한 감동이나 변화를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안의 어떤 것도 하나씩 드러나 치유되는 것처럼. 

 

어떤 충격적인 사건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는 과정을 보면, 그 사건 자체는 결국 중요한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라기 보다 어쩌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안의 내면에서 어떤 화학적, 심리적 작용이 일어나 그것이 내 삶에 오래도록 어떤 상흔을 남기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 역시 나를 해한 어떤 사건은 이젠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분노, 배신감, 외로움. 충격 등은 고스란히 느낌과 감각으로 남아,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듯 때때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괴롭히곤 한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느낌과 감각은 나를 다시 그 때 그 악몽같던 기억속으로 데려가곤 한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란, 어쩌면 잊는 것 뿐인지도...세포에 새겨진 감각 하나 하나, 때론 세포 까지도 잊어버리고 싶은 고통. 그런데 '그녀'와 '쇼이치'는 잊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함께' 기억을 거슬러 엄마들의 행적과 과거, 또 자신들의 과거로 다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간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그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만, 어느새 그것은 더 이상 그녀를 해 하는 과거가 아니었다. 함께 손잡고 동행했던 그 여행이 어느새 그녀를 치유했던 것일까...  

 

나는 아직 '그녀'처럼 다시 과거로 거슬러 돌아가 내 상처를 직면할 용기는 없다. 아직은 그저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사촌 '쇼이치'처럼 철저히 상대와 동행하기를 목적으로, 사명으로 가진 어떤 사람과 함께라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용기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여행의 과정에 분명 '치유'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보장된다면 떠나 볼 만하지 않을까? 그 여행은 분명 약간의 건강한 긴장을 요구하겠지만, 내내 맑은 하늘처럼 따스하고 설레지 않을까 싶다. 마치 이 책 처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0-11-28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 끊은지 오랜데 이거 이상하게 끌려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1-28 16:36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바나나의 작품도 이게 처음이예요..ㅋㅋ 문학을 워낙 오래도록 안 읽었어서요...
표지때문에 처음엔 그냥 시덥지 않은 연애소설이려니 싶었는데 잔잔하니 괜찮았어요. 워낙 사전 정보 없이 읽어서 그런가..느낌 괜찮아요.
 
인문학, 아이들의 꿈집을 만들다 - 관계와 소통
김호연.유강하 지음 / 아침이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들에게 깊이, 천천히, 나와 타인과 세상을 생각하고 마음에 품으라 권면하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등학교 때 수학 꽉 잡는 법 - 잠수네 아이들의 수학 비밀 노트 잠수네 아이들
이신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요새 방학을 맞이 해서 꾸준히 교육서와 학습 지도서를 읽고 있다. 4학년이 된 큰 아이의 공부를 집에서 봐주기는 하지만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고 과연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잘 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도 들고.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엄마로써 뭔가 격려도 받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고 자극을 받아야 될 때인 것도 같다.

 

아이의 성실하고 꾸준한 학습 태도에 비해 학교 성적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운게 사실이라 뭐가 문제일까 늘 고민하면서 학습 지도서들을 많이 찾아 보았다. 전 과목의 학습을 전체적으로 봐줄 수 있는 책들이 많아서 구체적인 도움들을 많이 받긴 했지만 내 아이에 맞게 적용할 때면 뭔가 아쉽기만 했었다. 특히 아이는 수학을 좋아하는데 시험을 보면 꼭 한 두문제씩 틀리기도 하고 조금 더 어려운 심화 문제를 대할때면 응용력이나 적용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수학에 대한 호감과 즐거움을 감하기 싫어서 학원이나 학습지보다는 꾸준히 혼자서 해 나가도록 지켜봐 주고 관리해 주는게 전부였다. 얼마 전에는 수학동화나 수학에 관련된 책들을 여러 권 사서 보게도 해 봤는데 그것도 어떤 부수적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은 나선형 과목이라 밑에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갈 수록 놓치기가 쉬운 과목이며 반대로, 그렇기에 밑에서부터 탄탄히 기초를 쌓으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과목. 학원에 보내지 않고, 그저 엄마의 소신대로, 가장 기본적인 원칙대로 교육하고자 하는 면에서 그 전부터 잠수네 교육법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럼에도 책을 제대로 접한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의 수학적 감각과 즐거움을 유지하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결과적으론 대 만족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교과서 중심> <개념 중심> <연산의 중요성> 이지만
구체적으로 교과서의 어떤 부분을 봐야 하고 어떻게 적용하고 따라가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여름 방학 동안 1학기 복습을 철저히 하고 2학기는 가볍게 예습 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1학기 복습을 하다보니 단원별로 역시나 개념이 약하기 때문에 실수하고 틀리는 부분이 많았고 그것을 어떻게 봐주나 했었는데 그 전 학년의 개념으로 돌아가 복습하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교과서의 알아두기>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잠수네 학습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과서 중심>은 어느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서울대에 들어간 수재들도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했어요>인데
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들으면서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일까...그건 교과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타 다른 문제집이나 학습법의 과도한 거품과 마케팅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마치 이 문제집을 풀지 않으면 아이가 도태되어질 것 같은 느낌이나 다른 엄마들의 추천을 받은 학습지를 하지 않으면 완전히 바보가 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함. 

 

그런 모든 유혹을 일단 뒤로 하고 <교과서를 자세히 보기> 하면 아이의 학습법이 보이고 아이의 취약점과 강점이 보일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집에서 엄마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이의 교과서를 문제집 만큼 열심히 들여다 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중요해 보이지 않는 교과서이지만 초등학교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교과서. 문제집만 많이 푸는 아이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정말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교과서로 개념잡기> 를 충분히 시간을 갖고 느긋이 탄탄히 한 아이는
중고등학교 때 탄탄한 기초를 토대로 발전을 할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격려하고 도와 주는 것 같다.

 

교과서를 다 이해하고 익힘책까지 충분히 풀고 나서 그때야 비로소 문제집을 풀리라는 것. 한 학기 예습은 교과서로도 충분하다는 것 복습도 교과서 위주로 하고 문제집은 두세권 정도.

읽어 내려가면서 학년별로 또는 유형별로 자세하게 학습법과 중요한 개념이 설명되어 있어 지금 현재 4학년, 1학년 우리 아이들이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지의 방법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었는데 구입해서 곁에 두고 때마다 꺼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