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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ㅣ 생각의 탄생
차윤선 지음, 박태성 그림, 문성원 외 감수, 블루마크 기획 / 푸른나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어렸을 적 좋아했던 두 화가. 고흐와 밀레.
고흐의 그림도 마찬가지였지만,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들>은 색감과 분위기가 꼭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항상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었다. 평화롭고 정적인 이미지에 고상한 경건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때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기도를 올리는 두 부부의 삶이 실제로는 고단하고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의 팍팍한 일상과 그 와중에 올려지는 기도의 깊이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했던 표면적 감상이지 않았을까. 사실 그런 감상은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나이나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밀레의 그림들이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고된 농민의 삶을 표현했다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계급 혁명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차가운 눈총에도 그는 솔직하고 진솔하게 농민들의 삶을 그려냈다.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노동의 가치와 건강한 아름다움을 그는 보고 있었던 듯하다.
사실주의는 실패한 혁명 이후 냉혹한 현실에 눈을 뜬 예술가들이 그들이 처한 당혹스러운 세계를 문학과 예술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태동된다. 그것은 발전된 과학과 실증주의의 영향도 크지만, 작가 개개인의 현실 의식과 문제의식에 의해 창조된 것들이 더 많다.
어떻게 그림을 감상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냥 느끼는대로 느끼고 보이는대로 보세요...라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다 맞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 작품과 그 외에 창작물에는 발신자인 작가가 수신자인 감상자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면이 있는데, 난 대부분 감상은 감상자의 주관적인 몫이라 생각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그게 좋으냐 나쁘냐 혹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 어떻게 느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문제점은 예술이나 문학 작품에서 작가의 원래 의도와 역사적 의의 등을 놓치고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의 범위로 예술을 평가 절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게 이런 배경에 근거해서 쓰여졌더라, 이 때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나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더라, 그래서 이 작품은 이런 의의를 가진다...라는 배경 지식. 이 배경 지식으로 새롭게 눈을 뜨면 같은 작품이라도 달라 보인다.
<사실주의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는 이런 배경 지식에 눈을 뜨게 해 주는 일종의 안내서이다. 철학책인가? 하며 가졌던 선입견이 첫 한 두 페이지로 바뀐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라고는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주의>라는 한 사조를 예술과 문학, 역사에 버무려 어른들도 읽으면 좋을 만한 구성이다.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산업 혁명 이후 어둠 속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일반 서민, 노동자, 농민 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예술 사조인 <사실주의>. <사실주의>가 어떻게 태동되었는지, 어떤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지가 첫 번째 챕터에 나오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6가지의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 속에서 <사실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나온다.
특히, 밀레의 그림들 뿐만 아니라, 쿠르베의 "화가의 아뜰리에"라던지 사실주의 문학 작품들인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인간희극",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등을 사실주의 사조에 근거하여 해석해 주는 부분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그들이 고민했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 사회 참여적이고 고발적인 그들의 생각.
청소년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 같기도 한 이 책이 또 하나 좋은 점은, 텍스트가 많지 않고 사진 자료가 풍부하다는 점. 그러면서도 일목 요연하게 되어 있어서 역사나 예술, 문학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루하게 이것 저것 설명하려고 애쓰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재미 없어지는 안내서보다 오히려 <사실주의>에 집중하여 19세기 초중반의 역사와 예술, 문학을 소개하는 이 책이 알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이 그림에서 풍경과 색감보다 오늘 하루의 끼니를 위해 허리도 펴지 못하고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한숨과 고단함이 먼저 보인다면, 아마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 본 사람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 눈에 그게 쉽게 보일리 없겠지만, 이런 책들을 통해 조금씩 눈이 뜨이고 시야가 넓어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