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걷기를 하다 멈추면 그제야 발에 잡힌 물집이느껴집니다. 물집이 잡힌 걸 모르고 어떻게 10km고, 20km고 그 긴 거리를 지나왔나 싶을 정도로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을 내디디려고 하면 그때는 물집이 너무 쓰라리고 발바닥도 뻣뻣해져서 걸을 엄두가 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지금 그런 기분입니다. 숨을 고르면서도 발가락 마디마디에 잡힌 물집이 느껴져요. 하지만 이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다시 걷고 뛰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저는 다시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교차하고 움직이고 있을 거예요. 발가락에 잡힌 물집에, 뻣뻣해진 발바닥에 무뎌지는방법은 한동안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묵묵히 걷는 것이니까요.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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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요 - 자연의 지혜와 경이로움을 담은 그림 에세이
보 헌터 지음, 캐스린 헌터 그림, 김가원 옮김 / 책장속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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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음악은 결코 끝나지 않아요. 고요함조차 마침표가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쉼표일 뿐이예요. - 메리 웹 [값비싼 독]"


"낯선 고요"라는 말은 어쩌면 낯선 것이라기보다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고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의 지혜와 경이로움을 담은 그림 에세이'라는 부제 그대로 이 책은 지구의 생명체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무생물까지 포함하여 그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에 더하여 우주의 신비로움도 담아내고 있다. 

문명 세계에 살면서 24시간 내내 온전한 어둠속에 머물러보지 못했던 나는 언젠가 바닷가에 갔다가 별빛조차 없는 캄캄한 어둠속에 잠시 머무르는 생경한 체험을 했었는데 처음의 느낌은 두려움이었으나 그에 익숙해지니 자연속에서의 어두움은 결코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건 어둠속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숲길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는하다. 고요한 숲길에 혼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 소리가 반가워지다가 혼자있는 숲길에 익숙해지면 조금이라도 더 오랜시간을 고요함속에서 보내고 싶어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고요함이 내게는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기에 더 공감을 하게 되고 잠시 시간을 내어 주변의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 신기하게도 귀를 기울이라는 챕터를 읽으며 나 자신만의 소리지도를 그려보라는 부분을 읽을 때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가장 먼저 저 멀리서 경쾌한 새소리가 들렸다. 도시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새소리는 비둘기와 까마귀소리뿐이었는데 뜻밖에 오늘 들은 새소리는 동박새소리가 아닐까 싶을만큼 맑아서 좋았다. 


밤하늘에 유독 반짝거리는 것은 다 인공위성일뿐이라며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별 감흥이 없지만 보름달이 가로등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출 때, 키우던 화초가 죽어버린 화분에서 해를 넘기고 새싹이 올라와 꽃을 피울 때, 무심코 외출하려다가 마당에 날아든 나비의 날개짓을 볼 때... 이 모든 것들이 내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변화야말로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는 진리"라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속 글을 인용한 책 속 문장을 읽으며 '모든 것은 변화 발전한다'라는 철학적 명제를 이론적으로 배웠던 것을 떠올렸는데 새삼스럽게 '진리'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의 진수임을 깨닫고 있다. 


자연관찰로 그려낸 지구 생명체의 그림이 작은 곤충에서부터 암석들, 우주 행성까지 다양하게 그려져있고 일상에서 바로 실행해볼 수 있는 실습과제들이 담겨있어서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도시 생활자로 여유없이 생활에 찌들려 살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당연히 이 책을 읽어보시라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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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건강하게 숨 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생물다양성이에요. 그리고 그생물다양성의 핵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은 곤충들의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맞아요. 때로는 성가시고 하찮게 여겨지는 이 작은 벌레들 말이에요.
이들은 땅 위 모든 생태계의 기초이자 진짜 일꾼이에요. 곤충들은 영양분을 순환시키고 식물의 꽃가루를 나르며 씨앗을 먼 곳까지 퍼뜨립니다. 흙의 구조를 유지하고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것도 빼놓지 않죠. 침입종이 될 수 있는 생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수많은 생명에게 삶의 연료가 되는 먹이가 되어주기도 해요. - P11

서로 도우며 살아갈 것을 맹세해요. 세상의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자연의 몸짓에 크고 작은 것이 따로 있을까요. 모든 것은 그저 서로 이어져 있을 뿐이죠.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어요.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으며, 모든 것이 특별하고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자연의 모든 존재는 생명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라는 순환 속에 각자 필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구 위의 생명들이 살아가게 하도록, 자연은 서로를 향해 뜻을 담아 반응하고움직여요. 벌이 꽃가루를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세요. 혹독한 겨울을 견딘 씨앗이 포근한봄바람을 타고 비옥한 땅으로 날아가는 모습도요.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의지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요. 우리가 먹는 음식, 들이마시는 숨결, 내딛는 한걸음 한 걸음이 위대한 자연의 수레바퀴를 움직이게 한답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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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에는 저마다 짊어져야 할 고유의 몫이 있다.
는 사실을 아는 데에도 나는 이런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내가 옆에 있는데 오빠는 왜 매일 힘들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섭섭하게 했다. ‘삼시세끼 밥을 차려주는 날 위해 상담은 빠지지 않고 가줄 순없는 거야?‘라는 투정과 심술이 볼멘소리로 터져 나오던여러 날들을 보냈다. 그때마다 그는 "지금 간신히 견디고있는 중이야"라고 대답했고 그제야 나는 ‘아차!‘하고 말았다.
아차 싶은 순간이 반복되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세는 방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우울증을 낫게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악화시키지는 말아야지. 그 후로는 더 이상 상봉이가 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지 이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집에만 •있는 그가 도저히 힘들어서 같이 장을 보러 나가지 못한다.
말해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우울증이니까‘라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아도 그의 하루가 원래그런 모양으로 생긴 것처럼 별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방관에는 다른 이의 힘듦을 지켜봐 줄 수 있는인내와 그가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애정하는 것에 쉬운 방관은 없다. 애정할수록 그의힘들은 나의 힘듦이 되고,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 뒤에는 혹시나 하는 염려가 자꾸만 자꾸만 따라붙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더욱 그렇다.
죽고 싶다는 그 마음까지도 인내와 믿음으로 눈감아 줘야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도대체 방관자는 무슨 쓸모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
나는 우울한 상봉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이 어느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결코 그 생각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할 것이다. 가끔 그가 용기 내어 들려주는 말을 통해 어떻게 그 마음까지 도달했는지 헤아리다 코끝만 찌릿해질 뿐이다. 140-141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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