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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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섭더니 이제는 보이는 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특히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을 때, 내 뒤를 덮칠것만 같은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행여나 나를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하는 낯선 사람 하나가 더 무섭다. 좁은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일부러 덮칠듯이 나를 위협하는 사람과 마주쳐봤거나 일부러 자신의 신체를 보여주며 성추행을 하는 미친 사람들과 마주쳐봤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처녀 귀신이라니. 이건 그냥 무서워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겠지? 물론 이 책은 기담이야기가 아니다. 귀신 이야기에 담겨있는 우리 문화의 인문학적 접근이라고해도 될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신의 내력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들이 더는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비극을 겪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슬픈 사연은 모종의 음모와 억압에 연루되어 있다. 귀신들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현실로 돌아와 억눌렸던 자신의 내면을 '귀곡성'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한국인에게 귀신의 이미지가 유독 처녀귀신으로 고착된 것은 미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희생의 그림자를 반영한다"(173)

 

추석 때, 세월호 유가족 중 누군가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곳으로 찾아가 제를 올렸다던가. 아직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귀환과 어쩌면 너무 원통하고 기가 막혀서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이 있을까봐 그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한을 풀어주고 싶다했던가. 처녀귀신의 이야기와 넋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귀신 이야기가 단지 무서운 전래동화처럼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그저 한여름밤에 더위를 잊기 위해 단지 무섭자고 꺼낸 수다속에서 '영혼'을 믿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보다 더 귀신의 존재를 믿는거 아니겠냐는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도 내 기억과 느낌이 실제인지 구분을 못하겠는데, 몇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직 그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나는 젖은 머리를 말리며 마루로 나오다가 평소 아버지가 즐겨 앉으시던 소파에서 얼핏 아버지의 그림자를 본 듯한 기억이 있다. 몇달 동안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그리고 곧 전화를 통해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어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환상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가끔은 아버지가 하늘로 가시기 전에 즐겨 앉으시던 그 자리에 앉아 내 모습을 보고 가신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아버린 수많은 생명은 어떠할까. 그 파도에, 그 짧은 시간에도 수십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어부들의 외침은, 충분히 구해낼 수 있는 이들을 너무도 어이없이 허망하게 수많은 생명을 보내버렸다는 분노를 떨굴수가 없다. 내가 이러한데 그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고 어이가 없을까.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던 그들, 그 아이들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세월호를 타고 들뜬 기분으로 친구들과의 여행을 즐기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도착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보낸 마지막을 떠올려볼 때면 너무나 끔찍하고 두려워서 바로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만다. 잊지않겠다,라고 결심했지만 그들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구조를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들은 훗날 엄청난 일로 추억하게 될 하나의 사건일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미래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여자 귀신은 공포를 환기시키며 현실로 귀환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결코 무서운 파괴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억울하게 현실에서 쫓겨난 자임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추방됐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죽음의 세계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여자 귀신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머물 수 없는 난민이다. 그들은 오직 이야기하는 주체, 언어적 존재로서 신생한다"(66)

 

자신들이 빠져죽은 바다를 떠나지 못해 그곳에서 떠돌고 있을까봐 그 혼을 위로하고 고이 보내주고 싶다는 어느 유가족의 마음을, 단지 미신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귀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회가 소외시키고 배제시킨 대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발성하는 증표가 된다. 그것이 화들짝 놀라는 단발성 공포의 형식일지라도, 전율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사회의 그늘을 들추는 불편한 진실과 목도하게 된다. 그래서 공포의 순간은 차라리 신성하다"(176)

그래서 오히려 귀신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안개속에 가려져있고 현재로서는 그 안개가 모두 걷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라도 사회의 모순을 뼈아프게 들추는 진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불편한 일이며, 바로 이 '불편함'이 귀신 이야기가 형성하는 공포의 요체다"(175)

그러니 진실을 알게 되는 불편함을, 그 모든것이 주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말자. 잊지 않겠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해주자. 어쩌면 진짜 귀신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세월호 사건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추방된 자의 항변에 귀 기울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며 죽은 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의무임을 잊지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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