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 엄마 없이 먹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맷 매컬레스터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몇년만에 설 명절에 만두를 빚어먹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명절에 서울로 갔었지만 3년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내내 병원에만 계시다가 석달전에 퇴원을 하신 어머니는 꼼짝없이 집에 계셔야 했는데 그래도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설을 맞이할 수 있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릴때는 명절때마다 온식구가 모다들어서 만두를 빚곤 했는데 형제들이 하나둘 떠나가도 여전히 만두빚기는 계속됐었기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어머니가 만드시는 만두는 두부와 달걀과 맛있는 김치만 있으면 된다. 아무튼 팔을 못쓰시는 어머니를 감독관으로 옆에 앉혀두고 장장 이틀에 걸쳐 만두속을 만들어놓고 빚어서 만두국을 완성했는데 김치도 집에서 만든것이 아니라 별로 맛없었고, 두부도 좋은게 아니었지만 오랫만에 어머니는 국 한그릇을 뚝딱 드셨다. 예전맛이 아니라면서도 내리 만두국을 잘 드시는 걸 보니 좀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조만간 다시 한번 만두를 빚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정말 마음아픈 이야기지만... 사실 아버지가 약간의 치매증상을 보이시다가 결국 병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콧줄을 끼우고 손목까지 묶게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삶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었다. 아버지 수발로 어머니마저 병드시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즈음 어쩌면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마음을 짓누르는데 겨우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단지 '죽음'을 바란것이 아니라 좀 더 편안한 삶의 마감을 생각했었던 것이라는 것.

엄마의 죽음 이후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그토록 멀리하고 싶었고 지워버리고 싶었던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죽어가는 처참한 전쟁터의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생존의 순간들을 지내다보면 엄마를 잊어버리고 살게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방랑하듯 살았지만 그런 생활 후 엄마의 죽음은 지독한 상실감과 괴로움을 남긴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야 비로소 엄마를 그리워하고 제발 살아돌아와주길 바라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부모의 죽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상실감이 어떠한 것인지 모를것이라는 말에 공감할수밖에 없다. 햇볕을 쪼이며 편안한 얼굴을 하다가도 멀리서 찾아 온 손주들을 보면서 그들이 누구인가 라는 표정으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떠오른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괴로움이 무엇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나 역시 몹시 후회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괴로움과 상실감은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면서 옅어져갔고 그것을 더 흐리게 만들어준 것은 어머니에게 정성을 쏟으면서이다.

어머니의 말, 행동, 습관...예전에는 맘에 들지 않으면 타박하고 화를 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온전히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저자가 엄마와 보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있는 시간들의 기억은 내게도 그러한 추억이 있음을 기억해내게 했고, 저자의 엄마가 들여다보던 프랑스 전통요리책의 설명은 우리네 엄마들의 요리설명처럼 정확한 레시피가 아니라 뭉뚱그려 음식을 만들고 맛을 내는 각종 양념들에 대한 설명과 대충 어림짐작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다. 요리책을 들여다보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진짜 요리를 해 먹는다고 한다면 책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내 어림짐작과 손맛으로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저자의 엄마가 진짜 요리를 하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저자는 엄마의 요리들을 다시 재현하면서 조금씩 마음속에 묻어두고 꺼내기 두려워했던 엄마의 과거를 찾게된다. 알콜중독으로 망가져버린 엄마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던 저자는 조금씩 엄마의 기록들을 찾게 되면서 기억하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 알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을 찾게 되는데...

그저 마음아픈 이야기일것이라고만 생각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오히려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지금도 알게모르게 엄마의 부엌에서 수많은 값진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는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나를 짓누르던 괴로움이 왠지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까, 싶지만 지금 한순간에 좋아지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괴로운 기억들만이 아니라 좋았던 추억들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될 것 같아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게 되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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