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우리 신화 -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9월
구판절판


신화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경외감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가꾸어 온 신성한 이야기가 신화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그리고 그들이 엮어내는 서사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본원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과 욕망의 상상적 분신인 신화적 주인공들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을 투시하는 한편 삶을 두르고 있는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분투를 거듭해왔다.-5쪽

원형을 찾는 일 못지않게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 현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일터다. 과거 삶의 소산인 전통 신화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하지만 나는 이와 관련하여 한번도 회의를 느껴본 적이 없다.
우리 만간 신화가 지니는 민족적 정체성과 인류적 보편성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신화가 제기하는 인간과 삶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문제와 질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신화들이 마음의 고향을 잃은 채 흔들리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욕망과 갈등의 회오리 속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해주리라고 기대한다.-8쪽

꼭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야만 신의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이루어야 하는데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품은 능력, 그 또한 위대한 신의 훌륭한 자격이 된다. 가슴속에 간직한 한恨의 힘으로 신성을 얻게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민간 신화의 신들이 나타내 보이는 두드러진 특성의 하나가 된다. 그 자신 가슴에 많은 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한테 그 신들은 자기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196쪽

신화는 신에 대한 이야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말이 아니다. 신화는 신성神聖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성이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전하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문득 신성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가 신화다.
우리가 거듭 보아왔거니와, 그 신성은 능력보다는 사연에 있다. 사연으로부터 능력이 나온다. 주인공들의 몸짓 하나하나, 숨결 하나하나에서 배어나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몸을 적시는, 그리하여 혹은 겨자씨만큼 혹은 태산만큼 우리를 바꾸어놓는 그 무엇이 신성이다. 저 먼 곳에서 고고하고 위대하게 내려다보면서 명을 내리는 식의 신성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성이 아니라 억압일 뿐이므로, 내가 믿는 것은, 피부로 와 닿고 가슴으로 스며드는 구체적인 삶의 사연뿐이다. 신성은 한도 끝도 없다. 신성을 드러내는 사연들은 참으로 많기도 하다. 어찌보면 세상 모든 사연에서라도 신성을 찾을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 사연들이 모두 신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당겨서 그들로 하여금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 거울로 삼고 등불로 삼게끔하는 힘을 가진 그런 사연이 신화가 된다. 그렇게 백 년 천 년 살아 숨쉬어온 사연이 진정한 신화가 된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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