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의 말 -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다카야마 하네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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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가득 들어찼던 자료들이 가치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미나코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미나코는 다만 이 건물에 드나들면서 매 순간 자료 정리에 성실히 임했을 뿐이다. 진실은 그 순간부터 과거의 것이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의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훗날 필요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145)


오키나와와 관련된 문학작품, 자료실에서 일하는 미나코, 세개의 단어로 유추하는 퀴즈 게임... 이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미군기지가 있어 황페해진 곳이었고 일본 패망 직전에는 자살특공대를 강요해 수만의 오키나와 주민을 말살시켰고, 그 이전에는 류큐 독립왕국이었으나 일본으로 복속이 되어버렸고, 그 이전에는....

그렇게 하나하나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들은 바 있고 그 역사속에 오키나와는 자연발생한 태풍마저 처음으로 맞이하는 섬,이라는 것 역시 우리나라 제주의 역사와 비슷해서 더 관심이 가는 곳이었다. 사실 일제시대때 오키나와가 없었다면, 아니 2차세계대전이 조금 더 길게 갔다면 아름다운 섬 제주는 일제의 병참기지가 되어 더 황폐해졌을 것이다. 강정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며 구럼비가 파괴되기 전에, 4.3사건이 있기 전에, 일제시대에 이미 산과 들 곳곳을 파헤치고 군사시설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제주와 다를 것 없는 오키나와의 역사는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단하게 줄거리만을 놓고 보자면, 오키나와로 이사 간 미나코는 그곳에서 요리 씨가 운영하는 오키나와 도서 자료관을 중학생 시절부터 드나들다가 결국 그곳에서 아카이브 정리를 하고 온라인으로 접속한 이들에게 퀴즈를 내는 일을 맡게 된다. 퀴즈를 풀기 위해 접속한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들을 통해 미나코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집 마당에서 발견한 동물의 정체도 확인하게 된다. 

며칠 전 티비에서 몽골의 축제에서 말의 경주는 어느 말이 빠르냐가 아니라 이쁘게 빨리 들어오느냐가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보면서 웃었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말 역시 오키나와의 전통문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류큐 경마는 속도가 아닌 아름다움을 겨루는 경기"(116)라고 하는 설명과 함께 그 화려했던 경마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언급해주고 있다. 

미나코의 집 마당에서 발견된 슈리의 말,을 통해 오키나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싶었지만 계속 읽어봐도 왠지모를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작가도 소설 속 등장인물도 오키나와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에 더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걸음 떨어져 오키나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데 이것이 역사 속 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그 순간부터 과거의 것이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의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훗날 필요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145)


도서 자료관 정리라거나 온라인 퀴즈 대결이라거나 태풍이 지난 후 갑자기 등장한 슈리의 말이라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어서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또 등장인물들의 개인사와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또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뭔가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을 것처럼 전개되다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버린 듯한 이야기가 또 쉽게 이해할 수 없기도 했지만 이것 또한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오키나와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반어적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에서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반다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국경 없는 장소가 마음에 듭니다.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기세 좋게 주먹을 휘두르다 자신이 오히려 뒤로 나자빠지는, 중력에 의한 힘의 세기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리는 그런 곳 말입니다. 혼자라서 지루하기도 하고 가끔 외로움과 불안감에 짓눌려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지만"(100) 그런 곳이 지금의 우리 현실보다 더 낫겠다, 싶은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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