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퓨달리즘 - 클라우드와 알고리즘을 앞세운 새로운 지배 계급의 탄생
야니스 바루파키스 지음, 노정태 옮김, 이주희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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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개를 짧게 하자면 전 그리스 재무장관이었으며 영국, 호주, 미국에서 수년간 경제학 교수로 재직한 진보 경제학자라고 한다. 현재는 아테네 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리스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국제 풀뿌리 운동인 DiEM25를 공동 설립하고 유럽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내용이지만 굳이 언급한 건 저자의 이력이 본서의 색깔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인터넷을 만나 변이되어 클라우드 자본이라는 독특하고 독한 체제로 변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전환점의 절정을 2008년으로 보고 있다. 클라우드 자본은 저자가 테크노퓨달리즘이라 명명한 기술 봉건주의 시대를 장악한 자본가들을 말한다. 저자는 현재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인터넷을 만나며 중세의 인클로저가 야기한 독한 봉건체제로 시대를 역행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자본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며 테크노퓨달리즘 시대이자 사회민주주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인터넷은 무형의 영역이지만 분명 무형의 영토이며 그 영토의 지대를 받고 있는 것이 클라우드 자본이다. 이들은 아무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웹상에서 사람들의 활동에 대한 지대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 관리자, 마케터, 분석가, 금융가, 엔지니어 인력군을 공유하며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며 계급을 형성하는 모습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새로운 산업국가]라는 저작에서 1967년 그려냈는데 그 과정이 이어져 결국 테크노퓨달리즘으로 변이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제 클라우드 자본가와 디지털 농노로 나뉜 시대가 되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사실 현재는 플랫폼과 클라우드 사용료를 내지 않고 살 수 없는 구조가 아닌가.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이전에 본 어느 책에서는 DARPA에서 최초의 웹이 시작되고 이걸 이전받아 월드와이드웹이 창조되었는데 페이스북과 구글 서비스의 전신이 그랬듯 이건 민간 사업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신기술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에서 개발해서 정부 차원에서 대중화하면 대중은 의혹을 재기할 수 있다. 의도와 방식에 대국적으로 저항할 명분도 민중이 갖게 되고 말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이런 기술들은 개발 직후 민간에게 양도된 후 민간사업으로 탈바꿈해 보급된다) 월드와이드웹 그러니까 인터넷의 현재 소유권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빌 게이츠라고 한다. 인터넷 접속 자체를 수익화한다면 빌 게이츠가 로버트 휴 벤슨이 말한 [세상의 주인]이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기존 세상의 주인에게 반역의 기미를 보이며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인터넷 자체를 수익화하지는 않았다. 되려 인터넷 안에서 다수의 클라우드 자본가가 테크노퓨달리즘 시대를 열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인터넷과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많은 소비를 하고 있고 이러한 수익은 다시 클라우드 자본가들에게 넘어가며 부의 불평등은 극한에 이르는 구조이다. 이 소비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알고리즘과 인터넷상의 광고들은 클라우드 자본에게 수익을 보장하는데 이 수익의 일차적인 징수 대상은 대중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부 유투버나 BJ들이 부를 쌓는 것을 보며 그들이 클라우드 자본이 흘리는 콩가루라도 얻고 있으니 누군가 이익을 얻고 누군가 더 큰 이윤을 낳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에 당연한 순리가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테크노퓨달리즘이라는 변종 자본주의의 양상은 모두가 수긍하는 속에 극한의 극한의 극한으로 극단적인 불평등을 낳고 키우는 중인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상이 변해갈 방향을 개인 유투버 A의 하루 중 일부분으로 예를 들자면 아침에 일어난 개인 유투버 A에게 AI는 알고리즘을 빙자해 오늘 아침은 무얼 먹을지 오늘 입고 갈 옷은 무엇이 좋을지 오늘의 뮤투브 방송은 어떤 포맷이면 좋을지를 권고할 것이다. 그를 위한 준비 과정에 메타버스에서 정보와 인력을 얻는 방법도 권하거나 A에게 이미 주지시켜 놓았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의 여가를 위해 어떤 공연을 즐기면 좋을지 어느 장소에서 야경을 보는 게 좋은지 이 여정을 함께 할 A와 다른 이성이나 동성을 매칭할 것이고 말이다. 이 과정이 모두 루틴을 형성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 소비 과정에서 이용하게 되는 모든 클라우드 서비스들에 개인 유투버 A는 의식하지 못한 채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고 이 비용은 고스란히 클라우드 자본에게 축적될 것이다. 먹고 입고 놀고 인간관계를 맺고 일하는 모든 과정에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우리는 일상이기에 신경도 쓰지 않게 되며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클라우드 자본을 배불릴 것이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일에 조언을 하는 형식으로 클라우드 자본의 부를 축적해 주는 노동을 부추길 것이고 클라우드 자본과 디지털 농노가 나뉘는 현실이 지속될 것이다.

 

AI와 로봇으로 모든 노동이 대체되는 순간이 와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그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누군가 능력주의가 기울어진 거란 걸 말할 때 누군가 엘리트가 세습되고 있다고 주장할 때 누군가 부가 세습되고 있다고 열변할 때 대안을 만들자는 공론이 나왔어야 했다. 이제는 초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야기될 인류세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감상만 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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