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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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를 경제편으로 시작해 사건편, 잔혹사편에 이어 전쟁편까지 4권째 읽었는데 역사 분야에서는 이만한 저작이 없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방송은 자주 보지는 못했다. 방송은 방송만의 특색이 있을테지만 책도 활자만의 매력이 있는터라 책으로 읽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본서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내용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관한 내용, 이 둘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더욱 관심이 갔던 책이다. 하지만 읽고 보니 그보다 오히려 아편전쟁, 메이지 유신과 소말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유고 내전이 인상적이었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중국의 차를 수입하며 금전적 손해가 막대해지자 인구 대국인 중국과의 무역임에도 불구하고 무역에서의 손실을 회복할 수 없으니 아편이라는 마약을 중국에 수출하여 손실을 수익으로 되돌리려 하고 중국이 이에 저항하며 시작된 전쟁이다. 당시 이 전쟁을 개전하려 할 때 영국 국회에서도 이긴다 해도 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전쟁은 없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컸다고 한다. 인류사에 있어 이익과 윤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인류가 과연 윤리를 이유로 이익을 볼 기회를 철회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물론 그런 역사가 있었다고 해도 역사 사료로 남아있지 않다면 후세에서 알 도리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역사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이로움 앞에 도리가 사라지는 인간의 역사가 씁쓸하기도 하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개화가 우리 역사에 준 파급을 볼 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청나라가 유럽 열강들의 요구에 저항하다 본 피해들을 익히 알고 서구의 개방 요구에 저항 없이 개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너무도 열렬하게 서구의 문화를 수용하고 빠르게 서구화되었다. 무엇보다 일본은 전쟁 이후 전쟁배상금으로 이익을 크게 볼 수 있음을 깨닫고는 전쟁에 연연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주목할 건 일본의 개화 과정에서 대두된 정한론이다. 물론 정한론이 있기 전에도 임진왜란이 있었고 정유재란이 있었지만, 근대 이르러 일본이 정한론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쟁에 연연하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에 이런 참극들은 없었을 것이다. 또 야스쿠니 신사와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버마 대량 학살을 주도한 기무라 헤이타로, 난징 대학살을 자행한 마쓰이 이와네 등 A급 전범만도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가 우리나라 입장에서만 논란의 대상인 것이 아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주는 국제적인 파급이 큰 것을 보고 시절의 괴로움만이 아니라 시절의 화해를 이끌어내야 할 것도 위정자들의 판단과 행동에 따른 거란 걸 되새기게 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원거주민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부동산 사기가 발단이 되었다. 종교 간의 지역 간의 갈등 국면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거란 생각도 들었다. 대다수 기독교도들은 예수 재림이라는 기독교 예언이 완수되기 위해 이스라엘이 중동 각국과 전쟁을 치르고 중동을 장악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전제가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이라니 그들이 과연 천국을 바라는 것인지 지옥을 바라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천국이 오라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란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천국을 바래 다수가 죽으라는 게 과연 천국을 불러온다는 사람들의 요구인가 싶다. 지옥도 악마도 인간 세상과 인간인 것은 아닐까?

 

현재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테러를 자행해서 이스라엘은 보복 작전 중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비롯해 서안지구에 800km에 이르는 장벽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물자가 왕래할 수도 없게 만들어 팔레스타인인들이 UN의 구호물품에만 의지해 살아가도록 만든 현실은 인간이 만든 지옥도가 아닌가 싶기만 하다. 이번 하마스의 테러 후 사망자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비등했지만, 과거에 그 둘 간의 격돌에서는 대개 이스라엘 사람이 13명 죽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장벽이라는 감옥 안에 갇힌 채 공격받아 이스라엘 사람 13명의 죽음에 대한 댓가로 800명 이상씩 죽어 나갔다. 물론 지옥에서 벗어나자고 다른 이들에게 테러를 행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선조가 과거에 행한 도시락 폭탄이나 저격도 타자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다. 이렇다 보니 테러리스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말이다. 되려 이때를 기회라며 예수님 오시게 확전되고 세계대전 일어나라는 일부 광신도들이 더 심각한 정신병자들로 보인다.

 

소말리아 내전은 여느 갈등 국면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UN군과 미군의 참여도 무용지물이며 이 사태가 소말리아의 해적이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놀랍기도 했다. 외국 어선들이 대대적으로 어종을 독점하다시피 어획해 가는 것도 모자라, 부패한 정부가 자기들 바다에 외국의 폐기물들을 버리게 허가했고, 그로 인해 소말리아 어부들이 해적이 된 과정이 너무 소설 같기도 영화 같기도 개그 꽁트 같기도 했다. 이들도 처음에는 외국 대형 어선들을 협박해 소말리아 바다에서 나가도록 한 게 다였다고 한다. 그러다 외국 어선의 승선자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니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알고부터 전문 해적들이 어지러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제는 이들의 해적질이 국가 GDP에서 마저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영국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해적을 지원하며 국가의 부를 강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무슨 해적이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해도 각 국가의 문명과 문화 상황은 동시대이기만 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쉽기 위해 그걸 평준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생소한 아프가니스탄이 그토록 열강들의 침략에 강한 나라였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 베트남전과 같이 미국이 이익보다는 손실을 더 남긴 전쟁 중 하나라는 인상을 남겼다. 오사마 빈 라덴을 처형한 건 미국이 역사를 정리하는 기회였겠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이 중앙아시아 상황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지 않나 싶었다. 모자헤딘, 탈레반 등에 대한 대중적 인식만 강화해주었을 뿐인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의문스럽고 부러운 건 열강과 패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쉽게 떨쳐내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이다.

 

유고 내전은 사실 홀로코스트보다 더 잔인하고 참혹하게 다가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은 있는데 왜 유고 내전에 대한 인상은 그만 못했는지 모르겠다. 현대사에서 민족 간의 갈등이 이렇게까지 얽혀 파국적으로 흘러간 나라와 민족도 더는 없을 것 같다. 갈등하는 국가들과 민족들은 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정의와 사유를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없는 건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사이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할 일이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는 역사를 다루다 보니 누구라도 가볍게 읽으며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읽어본 모든 편이 그랬지만 전쟁편도 여러 감정과 함께 배움을 가져다주었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전체가 시간을 아깝게 만드는 책은 아니니 어느 편이라도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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