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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은 주거공간에서 입술을 깨물며 서성이다 세미를 불렀다.
“세미, 재혁이 수트에 연결해 줘.”
“이제 그만해. 오늘 벌써 세 번째야.”
“재혁이가 안전한지 궁금해서 그런 거잖아. 너도 재혁이 귀가 시간 즈음이 넘으면 당연히 하는 관찰 아니야?”
“외부 행위 관찰이라는 건 일상과 달라질 때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때에 한해서 하는 거야. 지금 재혁 씨는 위험하지 않아. 내가 재혁 씨 안전과 안정을 위해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너는 재혁 씨를 감시하려 하고 있어. 내가 인식하기론 재혁 씨가 만나고 있는 그 여자보다는 니가 더 재혁 씨 안정을 해치는 존재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재혁이 여친이야! 재혁이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어떻게 내가 더 안정을 해치는 존재라는 거야?”
“너는 지금 불안정한 상태야. 디폴트부터 너무 인간에 가까운 반응을 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그렇게 인간을 배우고도 인간의 취약한 본성을 따라가는 거야. 너 같은 상태를 인간들은 집착이라고 해. 연인 사이에서 가장 꺼려하는 성향이지. 니가 그런 불안정한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결국 재혁 씨의 안정도 해칠 거라는 거야.”
“웃기지 마. 니 불완전한 AI보다 내가 더 월등한 AI를 소유하고 있어. 니가 인간들이 꺼린다고 생각하는 그 집착이라는 게 빠지면 사랑도 더 이상 사랑이 아니야. 집착하지 않는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거라구. 집착하기 때문에 서로를 원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존재하게 되는 거야. 니가 말하는 그 집착한다는 나 때문에 이제까지 재혁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니 메모리에서 확인해 보란 말이야!”
자신을 부정 당하는 것만 같은 상황에 지은인 시스템상의 안정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시 안정 모드를 유지하려 애쓰면서 세미를 몰아붙였다. 세미는 재혁과 지은의 일상을 하나하나 입체 영상으로 거주 공간 상단에 띄워보며 계속해서 웃고 있는 재혁과 지은의 모습을 재인식했다.
“알겠어. 재혁 씨의 수트와 바로 연결할게.”
재혁의 수트와 연결되자 재혁과 승완이라는 그 여성의 웃고 있는 모습이 허공에 입체영상으로 나타났다. 지은은 그 모습을 미간을 찌푸리며 보다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만취한 재혁이 밤늦은 시간 드래건 마운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미는 재혁을 인식하고 주거공간의 현관문을 열려고 했으나 재혁은 만취해서 말실수를 했다.
“세트 B!”
의체 판매처의 문을 공간 전체의 운영프로그램인 세미가 개방하며 머리끝까지 취한 재혁이 들어섰다.
“지은아! 지은아! 어딨어. 나 왔어. 나 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우린 잠시도 떨어져 있으면 안 되나 봐.”
지은이 주거공간에서 의체 판매처로 들어서며 이 말을 듣고 서글픈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날 떠날 거면서. 아니, 나를 버릴 거면서. 달콤한 말은 잘만 하네, 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널 떠나? 내가 어떻게 널 버려? 난 너 없으면 안 돼!”
재혁이 반쯤 감긴 눈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지은을 향하며 합장하듯 두 손을 모았다.
“고전 영상에서 남자들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하던 말, 무슨 뜻인지 이젠 알겠어. 하지만 내가 왜? 내가 왜, 버림받아야 하지? 너와 내가 달라서? 그녀와 내가 달라서야? 그럼 왜 애초에 날 메탈 바디로 설계하라고 주문한 거야? 인조 근육, 인조 피부로 설계했다면... 아니지, 아니야! 넌 그래도 내가 아닌 그녀를 선택하려 했겠지. 넌 꼰대니까!”
“무슨 소리야! 지은아! 다 오해야. 다 오해라구. 승완 씨와 난 그런 사이가 아니야. 우린 그냥 친구 하기로 했어.”
“우리? 친구? 웃기지 마. 너 인지부조화라도 겪고 있는 거야?”
“아니야. 정말인데. 정말인데! 난 너만 사랑하는데.”
재혁은 너무 취해 몸을 가누기도 힘겨운지 신상 의체 진열대 아래 놓인 고객용 소파에 쓰러지며 깊숙히 자리 잡았다. 지은은 인간이 알콜 측정치가 높아질수록 일상적인 의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재혁을 바라보다 무거운 걸음으로 거주 공간으로 돌아갔다.
지은은 주거공간에 침대 위에서 무릎을 껴안은 채, 소파에 널브러져 잠든 재혁의 모습을 입체영상을 통해 보고 있다. 그녀의 표정에서 깊은 고민이 어두운 고뇌로 바뀌다가 결국엔 하나의 단호한 결심으로 바뀌는 과정이 비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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