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슈밥의 위대한 리셋 - 제4차 산업혁명 × 코로나19
클라우스 슈밥.티에리 말르레 지음, 이진원 옮김 / 메가스터디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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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음모론적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그레이트 리셋'이다. 리셋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초기화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하지만 음모론적 시각에서도 그렇고 세계경제포럼WEF이나 세계지도층이 말하는 그레이트 리셋은 단지 과거로 돌려 놓는다는 뜻만이 아니다. 새로운 체제랄까 새로운 제도로 범세계적인 기준을 재설정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리셋의 앞에 그레이트가 붙은 것이다. 본서는 '위대한 리셋'이라고 반만 번역하고 있지만 '거대한 변혁' 정도의 의미가 좀더 저의에 가까운 번역이 아닌가 싶다.


본서는 거시적 차원의 리셋, 미시적 차원의 리셋, 개인적 차원의 리셋. 이 세 가지의 대분류로 그레이트 리셋의 필요성과 향후의 전개 방향을 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코로나19가 리셋의 시기를 앞당겼으며 그 필요성을 대중에게 전파하게 되었음을 전제해 전하고 있다. 본인은 정치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경제 관련 전공자도 아니기에 본서에서 더 깊은 깨우침은 없었다. 본서를 통한 해당 전공자들의 감상은 보다 깊은 통찰을 전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외한으로서 위대한 리셋이라는 것의 정의가 무엇이며 그 행하고자 하는 전개과정과 체계는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했으나 본서는 위대한 리셋의 필요성과 전개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주로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코로나19 이후의 정치와 경제상의 변화와 앞으로의 변화 과정을 논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전복하고 가져올 결과의 규모나 양상을 쉽게 예측하도록 전달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신기술과 과학의 적용으로 변화할 과학, 사회, 정치, 경제적 미래상을 전하는 저작들에서 예측되는 미래상이 본서의 전개 보다는 더 명확히 예측 가능한 사안들로 다가올 지경이다. 


본서의 내용을 압축 요약할 정도의 정신 에너지를 집중할 의도가 없기 때문에 또 그럴만한 지력도 없는 관계로 본서에서 갖게 된 의문 몇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클라우스 슈밥의 통찰은 남다른 면모가 있어 보였다. 물론 음모론을 신뢰하는 분들은 그들 자신이 계획한 것이니, 미리 예측기구들을 통해 충분히 검토한 사안들을 발표하는 것이니, 코로나19 시기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예측했다는 것은 명백히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겠지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려를 한다해도 슈밥씨가 예측한 공급망 문제, 원자재 문제로 인한 기업들의 재정비와 식량대란을 예측한 것은 다른 분야의 예측보다 충격적인 수준으로 정확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본서는 2020년 쓰여진 책으로 그는 2년 후를 내다보고 예언했다는 말이다. 빌 게이츠 처럼 해당 분야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서 자신이 그 분야들에 대한 언급들을 쏟아내며 대중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각국 정부인사 방역 책임자들을 동원해서 시뮬레이션까지 해대다가 마침 딱 시뮬레이션 시행 2달 후에 자신이 지원하던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되거나 하는 수준의 공교로움을 보이는 양상이 슈밥씨에게서 없지 않은가?([플랜데믹]에서 인용) 그러니 슈밥씨의 예언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아닐 것이라고 다들 믿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예측이 틀린 분야는 이 책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인데. 그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팬데믹은 실질금리를 낮춰야 하고 기존의 양상대로 사회가 돌아가면서 노동자들의 권익도 더 증대되어야 마땅하겠으나, 어떻게 마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그것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확정되는 시점 즈음에 말이다. 현재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데 이 하나만이 그의 예견과 실제가 다른 양상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는 근로자들과 일반 시민 누구나가 이전 상황으로의 복귀나 그럴 수 없다면 다른 안정적인 체제를 요구하도록 유도되는 상황을 가져올 것이 명백하다. 체제로의 복귀가 아니면 다른 안정이라도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생존이 불투명하고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요구일 테니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명확히 슈밥씨가 예견한 대로 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슈밥이 말한 거시적 차원의 리셋에서 경제적, 사회적, 지정학적, 환경적, 기술적 리셋. 이 다섯가지 리셋과 미시적 차원의 리셋과 개인적 차원의 리셋에서 주목이 되던 부분은 거버넌스의 문제와 환경문제였다. 그 외의 부분들은 너무도 평이하게 설명해 주며 상식적인 접근이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경제(기업)에서의 이해 관계 자본주의와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부분은 경제에서 그를 총괄하는 체제를 다양화만이 아니라 조직화 할 여지 그러니까 체계적으로 나아가자는 관점에서 위계질서화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경제나 기업에서는 목적 추구가 명확하기 때문에 이해 관계를 내세운다해도 사회주의처럼 계급화된 발언권과 요구권을 나누지 않는다면 기업의 운용이 원활히 되지 않을 수 있기에 이것은 결국에는 민주와는 거리가 먼 운영을 보이게 될 것 같다. 


더욱이 글로벌 거버넌스는 원만하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중앙집권적인 체제로 발전해 나아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각국 방역에 대한 통제권을 WHO에 이양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에서도 그 양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많은 국가들에서 특히나 유럽 국가들 중 다수 국가와 미국까지 가세한다면 이는 명백히 방역에 있어서의 권력이 중앙집권화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의 중앙집권화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이 양상으로 지속된다면 UN의 권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인다. 국제법상 UN의 권한이 강화된다고 해도 내정 간섭은 할 수 없기에 반전을 강제화 한다거나 하여 종전을 강제로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과 이상기후의 악화로 각국 민심이 피폐해지고 전쟁 중인 국가들과 세계시민들이 반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때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이가 일어난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규모와 형태를 보이는 중앙집권화된 권력구조가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환경문제, 그러니까 멸종위기 생물문제나 특히 이상기후문제에 유독 열렬히 언급하는 것도 납득이 가면서도 이채롭다고 여겨진 것은 기존의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지구온난화 문제를 강조해 오던 것이 고착화 된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이상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견해가 기존의 지구 온난화는 반드시 온다에서 지구 온난화는 없다는 쪽이 강세를 많이 보이기 시작하자 지구온난화라는 명칭에서 이상기후로 명칭 자체가 바뀌게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지구과학자들을 비롯한 환경관련 과학자 3000명하고도 몇 백 여명이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반대하며 지구온난화에 대해 반대 견해를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상기후 문제는 논의의 대상일뿐이지 결코 확정적으로 과학자들에게 인정 받는 학설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상기후 문제를 이슈화해서 탄소세 같은 규제로 제3국가와 개발도상국가들의 산업개발을 제약하고 있으며 기존의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전기나 친환경에너지 등으로의 전환을 앞당기려 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체제 전반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지출 될 것임에도 변화의 추이를 앞당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인들이 이에 동참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 일환의 하나로 이미 탄소발자국 추적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행을 앞둔 시점으로 환경문제를 대거 이슈화하며 전 세계인들의 동조를 불러모으고 있는 중이다. 탄소발자국 추적이 현실화된다면 매매, 이동과 여행, 숙박, 식사, 피트니스 등등의 전방면에서 자신의 동선을 추적 당하는 감시체계가 일반화될 것이다. 팬데믹 동안 일부 국가들에서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이러한 감시체제에 순응했었는데 이것이 환경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강화되며 범세계적인 감시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초연결성이나 디지털화의 가속 만큼이나 환경 문제는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가히 그레이트 리셋의 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야기할 미래 상황이 어떠할지 나로서는 짐작만 될뿐이지만 진짜 세계상이 우민의 한 사람이 짐작하는 양상으로 이어질지 내심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변화의 끝에 무엇을 이들이 바라는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IoB가 일반화된 시대에 중앙컴퓨터로 본능도 이성도 제약 당하는 인류의 시대가 이들이 불러오길 바라는 시대인 것일까? 인류를 과연 통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세계지도층의 다일까? 나로서는 그리 믿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은 음모론의 전개 양상과 그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접하며 나의 견해와 다른 정보 또한 면밀히 보고 또 두고 보는 이상은 없을 것 같다. 내일이 어떠한 모습이던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가야 할 세상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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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7-18 0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하라 2022-07-18 08: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