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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의 몸에 빙의한 유로는 숨돌릴 틈도 없이 달려가 수이의 팔을 잡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거세게 찼다. 그리고 놀라 수이의 다리를 놓고 일어서고 있는 한 녀석의 가슴을 밀어 차고 다른 녀석의 머리를 걷어찼다. 머리를 맞은 녀석들은 의식을 잃었고 가슴을 걷어차인 녀석은 숨을 쉬지를 못하는지 쌕쌕대고 있었다. 짱인 듯한 아이가 수이를 강간하려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뒤의 다른 둘을 불렀다.
“뭐 해? 새끼들아! 저 새끼 조져!”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하던 소년들이 유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그 소년들 곁에 있던 두 명의 여자애 중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여자아이 한 명이 유로가 빙의한 유향과 소년들이 격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수이는 일어나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려 뛰어가다 이령이를 보았다. 이령이가 수이의 팔을 잡고 가로막았다.
“널 위해 싸우는 애를 두고 어딜 가겠다는 거야!”
수이는 그제야 유향을 돌아봤다. 그 순간 수이와 이령이 함께 입을 맞춘 듯 작게 되뇌었다.
“유로 오빠?”
녀석들을 다 쓰러뜨리자 유로는 수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이가 무사한 듯 보이자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고마워, 유향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돌아가야지. 너 데뷔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려구 그래!”
“유향아! 구해준 건 고마운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 선 넘지 말구. 참견은 그만둬.”
유로가 수이가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그 심정을 유향의 겉모습을 하고 있기에 수이는 알 수 없었다. 수이는 그저 아는 사이라고 하는 연민이나 참견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유로는 어떻게 해야 수이가 제자리를 찾을까 하다가 말했다.
“할머니 걱정하시는 건 생각도 안 하니? 니가 세상 혼자야?”
유로는 이 말을 하며 생각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늘 내가 니 곁에 있잖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자 수이야!’
그때 이령이 유로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수이는 결국 되어야 할 대로 될 거야, 유로 오빠!”
“너? 너?”
유로는 어두운 연기 같은 오라에 감싸인 이 소녀가 자신을 알아보자 놀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령이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를 알아보자마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향의 몸에서 튕겨 나왔다.
유향은 갑자기 자기 몸에 뭔가 서늘함이 느껴지더니 자기 몸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며 타격하게 되는데 놀랐다. 타격감은 실제 같았으나 머리에 연기가 가득 찬 느낌으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액션 영화를 4D로 보는 것 같기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수이에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말을 하던 순간 유향은 형의 존재를 뚜렷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로가 유향의 몸 밖으로 나가자 유향은 이 현실을 믿기도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색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감이 왔다.
수이, 이령, 유향은 그 공사장에서 벗어나 한강으로 왔다. 수이가 뭔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이령일 쳐다봤다.
“너희 아까 거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난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갔을 뿐이야.”
“도대체 확인할 거란 게 뭐야?”
“무언가 실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확신을 얻고 싶었다고나 할까?”
수이는 이령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돌려 말하며 직설적인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힘줘 다물었다. 유향은 이령의 말에 뭔가 꺼림칙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뭘 실현하고 뭘 의심하고 도대체 무슨 확신을 한다는 거야?”
“나에게 중요한 거야. 다른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수이는 아까 유향일 보고 유로 오빠라고 이령이가 한 것도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지만 ‘설마 잘못 말한 거겠지. 그게 당연한 거지.’라는 생각으로 말을 참았다.
이령과 유향은 돌아갔고 별빛이 비추이기 시작하는 시간 즈음 수이는 마포대교를 걷고 있다. 처음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어느 순간 자동차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안 돼. 수이야! 너 그게 니 생에 바른 결정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오빠. 나 너무 힘들어! 오빠 없는 세상에 적응이 되지도 않고 이젠 적응하고 싶지도 않아졌어.”
“넌 꿈이 있잖아. 언제나 바라고 원했던 꿈. 이루려고 열정을 다했던 꿈 말이야.”
“이젠 다 중요하지 않아졌어. 내가 그런 꿈을 꿨던 것도 꿈같이만 느껴져. 오빠를 잃은 그 순간처럼 말이야. 나 그냥 오빠 곁으로 가고 싶어. 나 그냥 오빠 곁으로 갈게. 오빠 나 받아줄 거지. 우리 언제나 함께일 수 있잖아!”
수이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수호령인 유로도 눈물을 흘렸다.
수이는 말을 마치고 다리 난간을 넘어가 두 발로 모서리를 밟은 채 두 손을 등 뒤로해서 다리 난간을 붙잡았다. 유로는 그녀를 하염없이 말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수이의 귀에 유로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이는 멍한 채 다리 아래를 바라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유로 오빠, 나 지금 오빠에게로 갈게. 늦었지만 다시 만나면 나 반겨줘야 해.”
수이는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빼고는 다리에서 한강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