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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 고등학교 정문 근처에서 교복을 입은 이령이와 유향이가 이령의 전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마침 등교하던 중인 유향의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그중 한 명이 유향의 어깨를 치며 인사를 건넸다.
“너, 이 자식! 요즘 등교를 꼬박꼬박 왜 하는가 했더니 쟤 때문이었어?”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매번 아침부터 같이 등교하는데 그럼 밤부터 같이 있은 거 아니야?”
영현이 말에 유향이 미심쩍게 대답하자 정찬이가 딱 초딩 수준 농담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이령이는 어린애처럼 수준 떨어지는 이딴 애들이 주위에 다가온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그게 너희 수준에 맞는 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일 뿐이야!”
“뭐? 고용? 피고용? 노예팅 같은 거라도 한 거야, 니들?”
이령이는 교실에서 자기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2층 창밖으로 구름이 듬성듬성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 수이가 또 결석한 걸 확인하고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수이는 오늘도 결석이야. 집에 전화해도 할머니께서도 애가 가출했다고 하던데. 수이랑 연락 닿는 애 없어?”
“원래 아이돌 숙소에 있어야 하는 건데 멤버인 애들도 소식을 모른대요.”
“데뷔가 6개월 남았는데 메인보컬이 없어졌다고 애들이 난리도 아니에요.”
아이들 몇몇이 수이 소식에 대해 모른다며 이런저런 대답을 하자 선생님도 걱정스럽게 한마디를 했다.
“걔, 그러다 데뷔도 못 할 것 같은데.”
창밖을 보던 이령이가 무언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령이가 유향의 교실로 찾아왔다. 교실 밖 창가에서 두리번거리는 이령이를 보고는 정찬이가 한창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에 넋 나가 있던 영현이 뒤통수를 쳤다.
“뭐야! 한창 끝짱내고 있는 중인데.”
“유향이 여친 왔다.”
“어라. 유향인 어디 갔냐?”
“매점 간다던데.”
“야! 그럼 날 불렀어야지.”
정찬이와 영현이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복도에서 유향이가 오다가 이령일 발견했다. 유향이 살며시 웃으며 다가서다가 아직도 두리번거리는 이령이 볼을 찔렀다.
“뭐야! 이 짝퉁이.”
“내가 왜 짝퉁이야. 조금만 있어 봐. 대한민국이 내 이름을 다 알게 될 테니까.”
“훗! 넌 가만히 있을 땐 유로 오빠랑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유로 오빠랑 달라도 너무 달라.”
“형은 형. 나는 나야. 다를 수밖에.”
이령인 유로와 유향의 겉모습만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깊이 보지 않아서다. 유향인 유로처럼 하나에 꽂히면 그 하나만 파는 집념이 있는 아이였다. 가끔씩 농담을 하고 가벼운 말투를 보일 때도 있지만 유향도 유로 못지않게 진지한 아이였다. 이령이가 보는 이상으로 더 깊이 보면 그랬다. 그보다 더 깊이 보면 또 각자의 개성이 다르기도 했을 테니 이령이가 꼭 잘못 본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령인 지금 유향이를 너무 겉모습만 보고 있다는 거다.
“너 나랑 어디 좀 가야 해.”
“뭐야? 무단 조퇴하려고?”
“왜? 안 돼?”
“너는 결석일 수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난 좀만 더 결석하면 유급이야.”
“유급 받으려면 두 달이 넘게 결석해야 해. 너 결석한 게 두 달이나 돼?”
“아니, 대략 한 달 정도? 그래도 자꾸 결석할 수는 없는데. 네 어머니께서 널 경호하라고 하신 건 너 착실하게 지내게 지키라고 그러신 걸 거야. 근데 결석하게 두면 안 될 것 같다.”
“무슨 선비냐? 우리 엄마가 널 내 곁에 두게 하신 건 날 감시하고 통제하라고 그러신 게 아니야. 어쨌든 난 지금 학교 밖으로 나갈 거야. 네가 안 따라온다고 해도 나갈 거라고. 하지만 넌 나 안 따라오면 직무태만이야, 알지?”
이령이 아까부터 계속 손바닥만 보면서 택시 기사 아저씨께 목적지도 불분명하게 말하고는 운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주세요.”
“학생 진작 말하지. 여기선 비보호라 돌아서 다시 와서 좌회전해야 해.”
“네, 그렇게 해주세요.”
유향인 이령이가 어디를 가는지 모르기에 그저 묵묵히 이령이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하는 것마다 의문스러운 아이였지만 분명한 건 이 이쁜 아이가 자기가 갈 곳을 모르고 헤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거였다. 작고 여린 이 아이는 뭔가 명확한 목적과 의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유향이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택시에서 내린 이령이는 마법 깃털을 만들어 그것이 날아가는 대로 따라갔다. 유향이 보기에는 허공을 보고 자꾸만 외진 곳으로 가는 이령이가 뭔가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야! 너 진짜 목적지가 있기는 있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만 와. 나도 이러는 건 처음이라 확신은 못 하지만 분명한 건 이론이 완벽하면 실현된다는 거니까.”
수이는 병원에서 나온 후 집에서 무릎만 껴안고서 혼잣말을 하고 반쯤 의식을 잃은 아이처럼 지냈었다. 그러다 장마가 끝나자 폭주족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던 소주까지 마셨고 매일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질주하면서 모든 순간을 잊으려 하며 보냈다. 유로가 없는 모든 순간을 말이다.
그러다 오늘 폭주족 아이들이 수이를 태우고 이 외진 공사장으로 와 자신을 쓰러뜨리고 강간하려는 순간을 겪고 있었다.
남자아이 하나가 수이의 두 팔을 수이 머리맡에서 잡고 있었고 두 녀석이 수이의 다리를 각자 붙잡았다. 그리고는 짱인 것 같은 아이가 수이 곁으로 다가왔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자식들아!”
수이가 발버둥을 치려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
유로는 이 숱한 날들과 지금의 이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수이에게 “이러지 말아, 수이야!” “정신 차려야 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었다. 그러다 오늘 이런 순간을 맞이하자 격분했다. 그러나 그 녀석들을 향해 발길질하고 주먹을 날려도 허공을 스치듯 다 지나쳐 버릴 뿐이었다.
“지도령님. 제발! 제발!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런 경우엔 빙의하는 수밖에 없다.”
유로는 폭주족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 아무 아이 몸에나 들어가 보려고 마구 시도했다. 하지만 빙의란 게 어떻게 하는 건지 도통 먹히지 않았다.
“빙의를 하려 해도 너와 기운이 맞는 사람을 찾아야 가능한 거란다.”
마침 그때 멀리서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여자아이와 유향이 보였다.
유로는 반가운 마음만큼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로는 유향에게 달려가 몸을 던졌다. 유로와 유향이 일체가 되었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