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1984 (한글+영문) 더클래식 세계문학 57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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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 대한 리뷰는 이미 남겼다. 하지만 머리로 생각한 바는 일부 전한 것 같지만 이 소설에서 받은 깊은 인상이 자꾸만 아릿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으니 다시 한번 리뷰를 남기면서 잊으려 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이런 역설적인 구호를 일상으로 맞이한 시대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다. 저자 조지오웰이 1984년의 전체주의 세계를 가상하여 그린 이 시대 상황은 우리 세계와 다른 듯 또 닮아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보이는 것은 다르나 소설을 끝까지 읽고 보면 이 시대의 한면을 엿본듯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한창 전쟁중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영국은 오세아니아에 속한 지역이다. 이 시대는 평화부가 전쟁을 관할하고, 풍부부가 배급량을 제한해 식량배급을 감소시키고, 진리부는 정보를 통제하여 대중심리통제를 하는 것만으로도 역설적인 시대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심지어 애정부라는 부서는 심문하고 고문하는 곳의 명칭이니 말이다.

 

윈스턴은 진리부의 공무원으로 보도 직전이나 출간 직전의 자료를 받아 교정한달까 통제한달까 하는 인물이다. 신조어를 만들어 보급시키는대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로 신조어를 만드는 자체로 그의 반골기질을 묘사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발의 여지를 품고 있다. 

 

빅브라더가 지켜보는 세상에서 그는 혁명을 꿈꾸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고 그 혁명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혁명단체 형제단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자신 역시 형제단의 일원이 되고자 꿈꾸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일상의 모든 바를 통제하는 통제사회인 그곳에서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해봤던 그는 한 여자에 대한 흑심을 품기도 한다. 그녀를 강간하고 죽이려 공상하기도 하는데 어떤 까닭인지 그저 작가의 권능 때문인지, 줄리아라는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계획하며 그에게 접근한다.

 

그 둘은 남녀의 연애마저도 통제하는 그 사회에서 언제 검거될지 모르는 상황 속의 짜릿한 밀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오브라이언이라는 권력자가 정부에 반감을 지닌 은밀한 반역자라는 오해를 하고 그와 접촉하게 된다. 그는 오브라이언을 형제단원으로 착각해 반역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줄리아와의 밀회를 넘어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던 그와 줄리아는 정권에 검거된다. 

 

이후부터 그가 애정부에 잡혀가 오브라이언으로부터 고문 받으며 그에게 세뇌랄까 사상교육이랄까를 받는 장면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 리뷰와 카뮈의 [이방인] 리뷰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으니 본 리뷰에서 생략한다. 실존 자체를 위협 받으며 인격과 사고 마저도 제어 당하게 되는 그 과정은 너무도 이 소설을 인상 깊게 만드는 서술들이다. 자신의 감각과 정서, 사고 자체가 모조리 통제될 수 있음을 윈스턴은 알수 없었을 것이다.

 

2 더하기 2가 3도 되고 4도 되고 5도 될 수 있는 기만의 세계에서 그는 인지부조화를 겪다가 끝내 죽음의 순간에는 수긍하고야 말게 된다. 빅브라더를 깊이 사랑한다고까지 수긍하고서야 그는 죽고만다. 그가 절정에 위기의 순간 줄리아를 자기 대신 고문하라고 처절히도 비명지르는 그 인격 자체가 말살되는 부조리가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삶에 대한 집착이 빅브라더에 대한 애정으로 치환되고마는 그 순간만큼은 수긍하게 되었다. 이 세계의 많은 이들이 삶에 대한 애정을 자신이 호응하는 정치가나 정치조직, 특정단체, 매체들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하는 까닭을 알게 된 것만 같기도 했다.

 

윈스턴이란 인물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존재 방식과 존재 자체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그가 원하지 않고 그가 수긍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그 스스로 수긍하고 원하게 되고야 말게 된 것이다. 이런 정도의 극한의 부정을 그 누군들 감당하고 싶을까 싶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그윈플레인은 자신의 출신을 알고나서 남루하게라도 받아지녔던 그 자신의 모든 것과... 그 남루함 속에서도 빛나던 사랑마저 잃고야 만다. 데아라는 그의 빛과 같은 소녀는 장님이었지만 그의 안에서 빛나는 진가를 알아주던 이였다. 데아도 죽고 그윈플레인도 죽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나마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윈플레인을 보고 다시 윈스턴을 보니 1984에서의 윈스턴이 더 안스러웠다. 모든 것이 통제 당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부정 당하고 사랑마저 혐오로서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오해 받는 남자이다. 누구도 이해 받지 못할 곳이 세계라고 확장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분명 이렇게 이해가 아닌 오해로 점철되는 순간이 사람이 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윈스턴처럼 부정 당하는 존재, 산산히 분해되고나서 완벽히 다른 무엇으로 프린팅 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이가 있을까? 뫼르소에게서는 공감의 여지가 있지만 윈스턴에게서는 공감만큼이나 나는 결코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이 삶 속에서 과연 윈스턴과 같은 심문과 고문을 당하는 이가 없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나는 결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 빅브라더는 실존하는 존재였을까? 형제단은 실체가 있는 단체였을까? 인지부조화 이후 윈스턴은 다시는 그런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이고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런 부조리한 세계에 던져졌을까?" 윈스턴이 잠시 내게 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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