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뭐야, 이렇게 집으로 그냥 돌아가라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신생대라도 너무 간소한 거 아닌가 싶네.
강당에서 OT를 마치고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줄 알았는데 교수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다영인 발끈했지만 코로나라는 환경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엄마 말씀에 수그러들고 말았다. 엄마도 외동딸의 대학 입학식이랄 수 있는 자리가 너무도 단촐해서 실망하시는 눈치였다.
-우리 딸 오늘은 엄마랑 한잔해야겠다.
-무슨 소리야. 엄마 음주운전은 안돼.
-차야 대리기사님 부르면 되는 거야. 우리 딸 입학 기념으로 대학생활에 앞서 주도도 가르쳐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주도는 무슨 주도. 엄마가 기분 내려 거지 뭐.
-그래도 첫술은 부모에게 배워야 한다잖아. 그래야 윗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실수를 안 한 대.
다영인 조금 찔리는듯했다.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여태 몇 번이나 맥주, 소주, 폭탄주 다 마셔 봤는데 엄마는 첫술은 부모에게 배워야 한다잖은가?
어쨌든 음주 경력이 딱 걸리기 전에 처음 술 마시는 척하기로 했다.
2
다영이와 다영이 엄마는 엄마 취향대로 고추장 양념 불고깃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테이블을 한 칸씩 건너 띄어 손님을 받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손님이 꽤 되는 것 같았다.
-다영아. 처음 마시는 술인데 적당히 해야지.
-응. 엄마 오늘은 좀 취하네.
-오늘은?
-그러니까 대학 입학한 첫날이라 좀 취한다고.
다영이가 처음 마시는 척을 한다고 하다가 술이 들어가자 조금씩 주량이 드러났다. 다영이 엄마는 '얘가 술고래가 될 상이요' 생각하면서 다영일 말렸다. 하마터면 다영인 술이 첫경험인 척을 하는 걸 들킬 뻔했다.
-엄마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다영이는 순간을 모면하려고 화장실 간다고 나오긴 했다. 하지만 사실 술도 좀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집은 엄마 단골집이라고 하는데 화장실이 식당 건물 밖으로 나가야 있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 골목 쪽에서 4차선 도로 방향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차를 세어봤다. 아직 시야도 의식도 또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팍!'
그때 다영이 앞으로 머리 위에서 화분이 떨어지며 깨졌다. '아! 깜짝아' 다영인 깨진 화분을 쳐다봤다가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들 위로 무언가 하얀 섬광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걸 보았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바라보자. 하얀 옷을 입은 남자 아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아니 갈색 옷을 입은 남자 아니 노란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옷의 디자인과 재질과 색상이 무수히 변하고 있는 한 남자가 지나가는 차들을 건너뛰며 자기 앞으로 다가오려는 게 보였다. 다영인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
=저 남자는 뭐지. 귀신인가? 천사인가? 초능력자인가?
남자가 자기 앞으로 다가와 키를 낮추며 고개를 숙여 다영이 눈높이로 얼굴을 가져오더니 다영이 눈을 빤히 쳐다봤다. 남자는 제법 잘생겼다.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 방식이 다영일 두렵고 경직되게 만들었다. 다영인 점점 현기증이 심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엄마 목소리가 그때 아련하게 들렸다.
-다영아! 다영아!
3
다영이는 포근하다고 느낄 때쯤 자기 침대에서 잠이 깨었다. 식탁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에 들려왔다. 다영인 꾸무적대며 일어나 엄마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 나 어제 어떻게 집에 온 거야?
-아니 이기지도 못할 술을 처음 먹는 애가 뭘 그렇게 마셔대.
-엄마는. 나 어떻게 집에 왔는데.
-취한 너 부축하며 차에 끌고 와서 대리기사님 불러왔지.
다영인 아련히 어제 그 남자가 생각나 물었다.
-그때 내 앞에 있던 남자는. 그 남자는 뭐래?
-무슨 남자?
-그 남자 가고 엄마가 온 거야?
-마침 내가 나올 때 니가 쓰러지기에 바로 너 데리고 온 거야. 꿈이라도 꿨니? 무슨 남자 얘기야?
다영이는 그 남자의 하얗고 귀엽게 생긴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지만 엄마에게 더는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수를 하며 다영인 계속 그 남자가 아른 거렸다.
-누굴까? 초능력자 같던 그 남자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