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브릴과 자밀라는 보통의 날처럼 서로 다소 거리를 두고 마을의 경계로를 향했다. 어느새 라니아와 카림의 시신은 치워져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지브릴은 그게 더 섬찟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질만큼.


자밀라는 지브릴이 서두르는 이유를 짐작할 듯도 했지만 그보다는 하필 이런 일이 벌어진 그날에 꼭 벗어나려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브릴은 하지도 않는 걸까?'


마을을 벗어나는 길은 경계로를 지나는 한 길뿐이었고 그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여기보다 더 시골로 향하는 길 하나는 수도를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아탈라라는 도시로 향하는 길. 자밀라와 지브릴은 사우디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기에 당연히 아탈라를 향해야 했다.


지브릴이 마을에서 좀 떨어진 경계로이기에 자밀라의 손을 잡으려 하자 자밀라가 갑자기 자신에게서 흠칫하며 거리를 두었다. 지브릴도 정신을 가다듬자 멀리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대가 아니다. 저들을 피해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해도 이미 때는 늦었을 뿐이다.


지브릴과 자밀라가 차를 바라보고 서있자 금세 다가온 트럭들마다 무장한 채 검은 상하의를 입고 검은 쿠피야(두건)를 한 건장한 남자들이 연이어 트럭에서 내렸다. 


-앗쌀라무 알라이쿰, 처음 보는 분들인데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인사는 생략하지. 여기가 아탈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와합 마을이냐? 


-네, 그렇습니다.


이방인들 그것도 무장을 한 이방인들이 단체로 들이닥치자 지브릴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고자 상당히 사근사근한 어조로 인사말도 건넸지만 저들은 다소 과격한 말투였다. 그들 중 하나가 다시 자신이 쓴 히잡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밀라를 보더니 지브릴에게 물었다.


-저 난잡해 보이는 여자와 너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거냐? 혹시 율법을 어기려고 그러던 찰나였던 거야?


-아닙니다. 전혀 난잡한 여자가 아니고 마을에 인망 높으신 아브라힘 씨의 딸입니다. 오늘 오전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걸 제가 찾아내 다시 마을로 인도하고 있었던 겁니다.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말해 보아라.


소충을 든 검은 의복의 남자들 중 하나의 질문에 지브릴이 진땀을 빼며 대답하고 있을 때였다. 검은 의복의 남자들 사이에서 하얀 색 토브를 입고 쿠피야 위에 사우디 방식으로 두 개 이갈(천을 돌돌 말아 만든 링)을 한 노년의 남성이 나오며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5


와합 마을 사원에 그들이 찾아왔고 하얀색 토브를 입은 그 남성이 율법학자 슬레이만 씨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죽은 라니아의 아버지 압둘라 씨에게 그런 딸은 잘 없애버렸으며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단호히 행동한 압둘라 씨 행동은 본받을 만한 태도라며 격찬했다. 압둘라 씨는 뭔가 심각한 모습을 보였고 자밀라의 아버지 아브라힘 씨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자밀라는 남자들만 모여 토론하는 장에 오래 머물 수 없어 집으로 향했다. 지브릴은 동네 청년들과 남아 마을 유지들과 율법학자가 이들 이방인들과 무슨 협의를 하는지 궁금해 머물러 있었다.  


이방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하얀 토브의 남자는 급기야 마을 청년들에게 연설하기에 이르렀다.


-근래의 무슬림들은 타락했고 의미를 잃었으며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역할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알라를 통해 수긍해가는 그런 시대를 만들 것이다. 낡은 원칙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이 새로이 거듭나게 만들 것이다. 죽어있는 이슬람을 우리는 되살릴 것이다. 죽어있던 너희가 모두 부활하는 순간을 우리는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를 믿어라. 우리를 따르라. 이것이 무슬림의 사명이며 무슬림의 정신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의 시대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의 정신이다. 바로 우리가 이슬람의 시대정신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IZ로 명명했다. 마을의 청년들이 모두 그의 연설에 감동하는 듯했다. 지브릴마저 수긍할 법한 연설이었다고 마음 깊이 납득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왠지 압둘라 씨와 그의 아들 무자히드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그들은 그 연설의 이면에 숨은 다른 뜻이라도 읽은 것일까? 아니면 마을 유지들과 율법학자가 그들과 담론할 때 무언가 다른 이야기라도 들은 것일까? 지브릴은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날을 찾아간다면서 진정으로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을 보지 못할 뻔했구나 하는 생각에 이상히도 안도하게 되는 것만 같았다.


-내일이면 무슬림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게 될 거야!


자신만큼이나 들뜬 기대를 안은 마을 청년들을 보며 지브릴은 생각했다.


=내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양이 떠오를 것만 같아! 아마도 이런 날이 자밀라가 말해오던 새로운 날일 거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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