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유로가 안된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수이는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유로는 어금니를 깨물며 수이의 곁으로 날아가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무슨 주술에 또 홀렸을까?' 유로는 그리 생각하며 수이의 머리 위를 쳐다봤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 수이를 한 팔로 감싸 안은 채 떨어져 내리다 유로는 다른 손으로 강바닥을 쳤다. 강물이 핵폭탄이라도 맞은 듯 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며 유로와 수이가 떠있는 상공까지 솟아올랐다.


=내가 뭘 어떻게 한 거지? 


유로도 각성된 자신의 힘에 놀라며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꼭 안겨 자기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이를 보았다.


-수이야 괜찮아?


-응. 오빠... 나 벌써 죽은 거야?


-무슨 소리야. 죽긴 니가 왜 죽어. 내가 너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아.


-오빠, 지금 이건 꿈이야? 어떻게 이렇게 현실 같지.


-이건 현실이야.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너에게도 저 강물에도 실제 같은 힘을 아니 실제 보다 더한 힘을 사용해도 되네.


유로는 경황이 없는 순간임에도 어떻게 자신이 이런 힘을 갖게 된 것인지 의아했다.


-오빠, 나 많이 보고 싶었지?


-늘 니 곁에 있었어 난.


-그럼, 나 자살하려는 때까지 다 보고 있었던 거야.


-늘 그런 상황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리 처절히 얘기하고 막아서도 막아지지가 않더라.


-우리 할머니 꿈속에 나왔다는 것도 유향이가 오빠처럼 싸우던 것도 다 오빠가 한 거야?


-응, 맞아! 그리고 난 늘 너에게 말을 걸고 있었어. 


-나도 오빠에게 말을 걸고 있었어, 늘. 대답을 들을 수 없어서 더 괴로웠어.


수이를 안은 채 유로는 강변으로 날아갔다. 강변 산책길에 수이를 내려놓았다.


-난 늘 니 곁에 있어. 내가 죽었다고 하지만 난 죽은 것 같지가 않아. 널 볼 수 있고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해. 


이 말을 하며 유로는 눈물을 흘렸다. 


-오빠, 우리 함께이면 되지 않을까?


수이도 울면서 말했다. 


유로도 수이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들을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이 사랑이 유로에게도 한없는 상실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수이의 심정이 자신보다 더 괴로우리라 느끼면서 늘 미안함이 있었다.


-오빠. 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죽은 거잖아.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아니야. 그게 어떻게 니 탓이야. 니가 나랑 헤어지려고 했다고 해도. 우린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만났을 거야. 내 죽음은 그냥 사고였어. 니 탓이 아니야, 수이야.


-내가 오빠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려는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날 그 시간에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오빠는 지금 살아있을 거잖아. 근데, 그게 어떻게 내 탓이 아니야.


-그건 사고였어. 세상의 모든 우연에 누가 감히 다 책임질 수 있겠니. 넌 너무 무거움 짐을 니 심장 위에 얹고 있어. 놓아버리렴. 봐! 내가 죽었다고 변한 게 있니.


-그렇지만 오빠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우리 그냥 잠시 떨어져 있는 거야.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 그렇게 따로 떨어져 있지만 또 함께인 거야. 한없이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한공간에 있고 난 널 늘 느끼고 있어. 그러니까 너 좀 힘내면 안 되겠니? 예전에 니 모습으로 돌아가 줄 수는 없겠니? 난 너의 눈물도 한숨까지도 모두 사랑하지만 니가 괴로워하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 예전의 그 이쁜 미소를 다시 보고 싶어. 


-이런 게 어떻게 함께인 거야.


눈물을 흩뿌리면 고개를 흔드는 수이를 보고 유로는 입을 맞췄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부활하게 될 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이에게 속삭였다.


-봐. 모든 게 전과 같잖아. 우리 잠시 시험 기간이라 아니 니가 가수가 돼서 멀리 전 세계 콘서트 투어를 하는 동안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듯이 그렇게 내가 잠시 어떤 역을 맡아서 떨어져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니? 하지만 그보다는 나은 게 난 늘 니 곁에 있다는 거야. 난 너의 수호령이니까.


유로는 수이의 오라장이 보였다. 점점 오라장의 어둡고 까칠해 보이던 색과 질감이 부드럽고 밝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수이의 눈이 게슴츠레 해지면서 졸린 눈이 되었다. 


-오빠 나 잠이 와. 


그녀 뒤에는 붉은 도복의 지도령이 서있었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유로는 수이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잠시 자, 수이야. 오빠 어디 안가. 니 곁에 늘 있을 거야.


수이는 자리에서 스르르 쓰러졌고 산책로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 거기 119죠. 여기 마포대교 한강변인데요. 여자아이 하나가 쓰러졌어요. 네.. 네..


산책로에서 운동을 하던 한 여자분이 쓰러지는 수이를 발견하고서 119에 전화를 하고 있다.



34


인간계와 천상계 사이의 차원, 그 새하얀 공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너는 아니 자네는 수호신급이 되었네.


붉은 도복의 지도령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유로가 놀란 눈이 되었다.


-제가 어떻게 벌써 수호신이 돼요?


이제 수호령이 된지 얼마이지 않은 자신이 수호신이 되었다는 말에 유로는 의아했다.


-수호신이 된 것이 아니라 수호신급이 되었다는 말이야.


-그게 굉장히 오랜 세월이 걸리는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원래는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의도를 지니고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네. 자네를 수호신급으로 바꾼 이가 아마도 자네를 죽인 이일 거네.


-저를 죽여요. 저는 사고로 죽었지 않나요?


-자네 수이 머리 위에 마법진을 보지 않았나?


-네, 봤어요. 


-자네가 죽을 때 그 마법진이 있었네. 


-그럼 저는 살해당했던 거예요? 수이를 죽이려던 사람이 저도 죽인 거였어요? 왜요? 도대체 누가요?


유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도대체 누가 자신을 죽이고 수이마저 죽이려 했다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군지는 우리도 알게 되었네만 자네를 죽인 것이 왜인지는 우리로서도 알 수 없네. 


그때 유로의 머리 위로 육각별을 감싸 안은 원이 그려진 마법써클이 생겨나고 유로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유로는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이가 바로 자신을 죽이고 수이를 죽이려 한 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너 이 자식. 반드시 죽인다.


유로는 공간을 이동해 가면서도 두 눈에 분노가 불타올랐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