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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는 유로의 영정 사진 아래서 하염없이 울다 지쳐 영정사진 옆의 벽에 기대 넋을 놓고 있었다.
유로 엄마와 유향 역시 갑작스런 유로의 죽음 앞에 반쯤 넋 나간 사람들처럼 서있었다.
조문 오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것도 처음엔 넋이 나가 멍한 채 서있기만 했다.
유로의 담임 선생님과 선생님들 몇 분이 오시고 학교 아이들 중 연락을 먼저 받은 아이들이 왔다 갔다.
시간은 점점 늦어져 밤 12시가 몇 분 남지 않은 시각이 되었다. 그때쯤 복도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갈색 옷을 입은 소녀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그러다 유로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한참을 멈춰 서있더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 하는가 싶다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소녀는 유로의 영정 앞으로 다가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에 서있던 유로 엄마를 향해 자기도 모르게 절규하듯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유로 오빠가 죽어요. 아줌마 말씀 좀 해주세요. 도대체 유로 오빠가 왜요.
유로 엄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니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도대체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유로 엄마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녀는 영정사진을 다시 돌아보려다가 한쪽 구석에서 넋 나간 채 유로 사진만 바라보고 있는 수이를 발견했다. 소녀는 수이에게 달려들었다.
-너 때문이야! 신수이! 너 때문이라고. 니가 유로 오빨 죽인 거야. 니가 죽어! 니가 죽으라고. 유로 오빠 살려내고 니가 죽어버려!
소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분노에 차 수이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이령아! 왜 그러니. 유로가 마지막..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게 무슨 소란이야.
유로 엄마가 이령이라는 그 소녀를 말리려 했지만 이령인 거세게 수이의 어깨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마침 이령의 어머니와 그녀의 기사 겸 보디가드가 M.G.I 멤버 중 소미, 이연과 함께 들어서다 이 광경을 보았다.
-언니 도대체 왜 그래요. 지금 언니보다 더 가슴 아픈 건 수이 언닐 텐데.
이연이 나서며 이령을 말렸지만 사실 수이 못지않게 이령이의 심정도 말이 아니었다. 지금 이령이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가 않았다.
-이제 그만해. 제발.
-놔! 놓으라구. 이거 못 놔!
유향이가 나서서 이령이의 뒤에서 이령이의 어깨를 잡고 수이에게서 떼어냈다.
정신이 나간 듯 조문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들던 이령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은 유향을 어깨너머로 돌아봤다.
-유로 오빠?
유향을 본 이령이 표정이 문득 밝아졌다. 하지만 곧 유향이가 유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다시 슬픈 눈빛으로 눈물을 흘렸다.
소미와 이연이가 수이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듯이 부축했다. 수이는 말없이 정신줄을 놓은 사람 마냥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언니 기운 내.
-유로 오빠 같은 사람은 천국 갈 거야. 언니가 이렇게 힘겨워 하는 건 오빠도 원하지 않을 거야.
소미는 힘내라는 말밖에 뭐라고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연이도 수이를 북돋아 주고 싶었지만 이런 뻔한 말밖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놔! 이거 놔. 나 유로 오빠 곁에 있을 거란 말이야... 제발 날 좀 놔 줘.
이령이가 이령이 엄마의 보디가드에게 끌려나가며 소리쳤다.
유로 엄마는 이 상황에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은 아무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표정이 없었다. 유향인 형을 잃은 마음도 말이 아니었는데 그런 엄마를 보고 더 가슴이 아팠다.
이령이의 엄마가 유로 엄마에게 다가왔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갑작스런 비보에 유로 군 어머님께서도 경황이 없으실 텐데 저희 딸이 이런 소란까지 피워 죄송합니다. 어떻게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령이도 소란을 피우겠다고 이런 건 아닐 거예요.
-아드님을 너무 아끼는 마음에 이령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이령이 엄마는 그리 말하고 돌아서려다 유향이를 유심히 봤다. '형제라 그런지 많이 닮았어' 이령이 엄마는 이령이를 안정시키려면 어찌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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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고 유로의 엄마가 실신하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유향이는 놀라 한쪽 무릎을 굽혀 앉으며 엄마를 감싸 안았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이러면 형이 슬퍼할 거야!
그리 말하고 유향은 울기 시작했고 유로의 엄마도 마냥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상황을 유로는 목도하고 있었다. 유로 곁에 서있던 흑백의 차사와 천사 남녀는 늘 보는 광경이었지만 사람에게 이 순간이 얼마나 애통한 순간인지를 알고 있기에 유로를 애처롭게 지켜봤다.
-엄마 저 괜찮아요. 다친데도 없고 배도 안고파요. 엄마... 엄마.. 죄송해요.
유로는 모두에게 이 깊은 슬픔을 자신이 안겨준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다시 가족 곁으로 수이 곁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길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슬픔 보다 더한 아픔이 밀려왔다.
-가족과 너의 수이 곁으로 다시 갈 수 있는 방법이 꼭 없는 건 아니야.
하얀 수트의 중년의 남자 천사가 말했다.
-제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건가요?
-다시 죽기 전의 너로 되살아날 방법은 이제 없는 거야. 그런 망념은 접어둬.
검은 수트의 저승차사 누나가 유로의 들뜬 기대를 조각조각 내듯 차갑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수호천사가 되면 그래서 너의 가족과 수이라는 소녀 중 누군가를 수호하도록 지시가 내려오면 그들 곁에 있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괜히 애 바람 넣지 말아. 얘 판결부터 지시가 떨어지기까지 너네 천국 절차로는 한 세월이 다 걸릴 텐데. 괜히 애 바람만 넣지 말아.
유로는 중년 천사의 말에 한껏 기대하다가 차사 누나의 말에 바람이 빠지는 듯했다.
그때 원 없이 울은 건지 무표정해진 표정의 수이가 일어나 유로 엄마와 유향 곁을 지나 장례식장 복도를 따라 걸어 나갔다. 수이의 머리 위로 유로가 죽기 전에 생겼던 바로 그 마법써클이 떠올라 있었다,
유로가 수이의 표정에서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 따라나섰다. 수이 머리 위의 이상한 문양도 신경이 쓰였다.
-절차를 단축시키는 방법은 없나요.
-그런 방법은 없지만 우리 천국으로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뭔가 대안을 주실지도 몰라.
-속지 마라. 그 하나님이란 존재에게 기도하고 응답받았다는 것들은 줴다 사기꾼들뿐이란다.
천사의 말에 뭔가 희망을 품으려 하면 차사 누나가 늘 찬물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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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폭우였다. 그 폭우 속을 가르며 수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수이의 머리 위에는 여전히 그 마법써클이 있다.
-수이야. 너 왜 그래. 비가 오잖아. 그것도 이렇게 많이.
유로는 수이에겐 들리지도 않을 말을 속삭이며 가슴이 저미는 것만 같았다.
수이는 흐릿한 눈동자로 비에 푹 젖은 채 도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수이의 수호천사와 수호령이 수이에게 계속 정신 차리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 중이야.
-무슨 수호천사가 말밖에 못한데요. 어떻게든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등급이 낮은 수호령이라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 저 아이의 수호령과 수호천사도 할 만큼 하고 있는 거야.
다급한 유로의 말에 하얀 천사와 검은 차사가 답변은 해줬지만 시답지도 않은 말들만 같았다. 유로는 더 조급해져가며 말했다.
-어떻게든 해 주세요. 아니면 제가 수이 뒤에서 수이를 지켜주게 해주시던가요. 그럼 뭐든 다 할게요.
수이는 저 멀리에서 트럭 한 대가 빗길을 해치면 달려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작정 도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듯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붉은 도복의 그 어르신이 나타났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너만 결심한다면 절차를 생략하고 한동안 저 아이를 뒤에서 지켜줄 수 있는 수호령 지위로 봉해도 된다는 전갈이 왔으니 말이다.
유로는 멈춰진 공간 속에 온통 비에 젖은 수이를 보고는 결심했다.
-결심했습니다. 수이의 수호령이 되게 해주세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