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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는 숙소에 소미와 같이 쓰는 1실에서 이층 침대 아래 칸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휴대폰 플립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오늘 안무실에서 한 고정도 대표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너희 다른 건 몰라도 사생활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건 꼭 명심해둬. 활동기간 동안 절대 연애 금지다 알지?>
그러면서 고정도 대표는 명심하라는 듯 수이를 지긋이 쳐다봤다.
수이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유로 오빠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지난 4년 7개월 노력의 시간과 M.G.I 데뷔 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가 나 없이 살 수 있을까? 난 그런 오빠를 두고 혼자서 내 일이나 잘하자면서 아무렇지 않게 살수 있을까?
소미가 샤워를 마쳤는지 젖은 머릿결을 수건으로 닦으며 들어왔다. 화장대 앞에 앉아 헤어 드라이기를 들었다가 거울에 비친 수이의 모습을 보고는 수이를 돌아봤다.
-언니 무슨 걱정 있어?
-음 아니야? 걱정은 무슨 걱정.
-언니 무슨 걱정하는지 알 것 같은데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래. 우리에겐 지금 2007년 2월 10일 보다 중요한 건 없어 알지?
소미가 고정도 대표가 알려준 데뷔 확정일을 되새기며 수이를 각성시켰다. 수이도 생각했다.
=선택과 집중... 그래 난 이미 선택했고 집중만 하면 되는 거야!
수이는 휴대폰을 플립을 열고 입술을 앙다물고서 유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오빠 우리 일요일 오전 10시에 거기서 만나.
그 순간 수이와 소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수이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원 안에 왼쪽에 초승달과 오른쪽에 태양이 서로 등지고 있는 마법써클 같은 음영이 잠시 생겼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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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9일 일요일 아침, 유로는 아침부터 청바지를 입고 흰 티와 갈색 브이넥 티, 빨간색 셔츠 등을 입어보며 거울 앞에 서있다. 그 모습을 보며 유로 엄마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수이 만나러 가는구나?
-어떻게 아셨어요. 엄마 눈은 못 속이겠다니까.
-속이고 말고 할게 뭐 있어.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게 아니면 니가 언제 옷 입는 거 고르는데 망설이는 애야?
-엄마 뭐가 어울려요?
-내 눈엔 그냥 흰 티가 나아. 화려한 옷보다도 심플한 옷이 잘생긴 우리 아들 얼굴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으니까.
엄마 말씀에 유로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 아들이니까 그렇지. 뭐 그렇게 잘생겼다고 그래요.
-누구 아들이라도 이만큼 생긴 아들이 흔할 것 같니?
유로는 엄마 말에 웃으며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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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는 오늘이라도 마지막이라도 유로 보다 먼저 나와 유로를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홍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이는 등에 맨 가방 옆 주머니에서 미니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을 꺼내더니 이어폰을 연결하고 귀에 꽂았다. sg워너비의 '사랑했어요'가 흘러나왔다.
유로는 바쁘게 지하철역으로 가 홍대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무슨 이야기인지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4~5살 정도 되는 아이 둘이 서로 쫓으며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유로는 아이들이 좀 걱정돼 아이들 엄마가 누굴까 하고 아주머니들을 쳐다보았지만 마침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화면을 보고는 한 걸음 내디뎠다.
마침 그때 유로를 기다리던 수이의 머리 위 공간에 붉은색 원이 서서히 그려졌다. 그 원 안으로는 역 삼각형이 그려지더니 삼각형의 윗면에 뿔처럼 X자가 새겨졌다. 수이가 어지러운듯 머리를 짚으며 쓰러지려는 찰나 머리 위의 마법써클 같은 것이 사라졌다.
수이의 머리 위에 마법써클이 사라지는 그 순간 지하철을 기다리는 유로의 머리 위로 수이 머리 위에 생겼다 사라진 바로 그 마법써클이 생겼다. 유로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으앙
유로가 정신을 차리고 아이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철로에 떨어져 정신을 잃고 있었고 같이 놀던 아이는 놀라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멀리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유로는 생각할 틈도 없이 철로에 뛰어들었다. 정신을 잃은 아이를 아이 엄마인듯한 사람 손에 안기고 이제 자신도 승강장으로 올라가려는데 무슨 막이 막고 있는 듯 올라갈 수가 없었다. 지하철이 빠른 속도도 다가왔고 유로는 정신을 잃는 듯 멍하니 철로에 서서 지하철이 오는 걸 바라봤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앞에 이를 데 없이 새하얀 빛이 보였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