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 생물과 인간, 그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
조지프 르두 지음, 박선진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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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확히 말해 오늘 새벽 올린 리뷰가 본서에 대한 소개 보다 너무 한 측으로 치우친 내용만 언급한듯해서 본서에 대한 소개를 다시 한번 남기려 한다. 

본서는 이미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듯 또 책의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진화와 생물학적 전개와 신경과학과 심리학적 영역으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에 대한 영역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둘이었는데... 진화에 대한 대목을 서술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원핵생물이 다른 생물을 삼킨 과정 중 특별한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그 원핵생물의 본능적 행위가 다세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를 내포한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와 한 몸이 된 다세포는 에너지 대사가 몇 차원 업그레이드되었고 그로 인해 산소를 이용하고 이산화탄를소 배출하는 순환이 더욱 증대되었다. 다른 식물로 진화한 생명체들은 이산화탄소를 대사로 이용하며 산소를 배출하게 되었는데 이 둘의 상호의존적 생명활동이 진화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는 대목에서 이기적인 선택과 이타적인 선택이 상호 호환적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명체의 진화상의 분기를 설명하는 대목들에서는 생명체의 진화란 어떠한 정점으로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가지가 각기 자라나듯 서로 연계한 분기를 드러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설명한 대목에서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들에 배움도 있었으나 약간의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배움이 컸던 부분이라면, 대뇌 각 부위가 아래 사진과 같은 해당 역할들을 지니는데 이 모두가 연계하여 인간의 의식을 창조해내는 과정을 저자는 몰입도 높게 서술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계와 작용에 대한 설명은 불교의 아비달마와 유식학을 떠오르게도 하였는데 현재까지의 신경과학적 발견으로 인간의 의식을 밝혀나가는 것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고 인간의 의식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던 선조들의 앞선 노력들을 돌아보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전두엽의 전두극과 시각피질 이하 각 영역들의 작용을 설명하는 것이 후천경과 상단전과 인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선도 수행체계의 가르침을 떠올리게도 했는데 한 편으로는 전두극과 전대상은 요가 수행체계에서 중시하는 아갸 차크라와 소마 차크라를 아우르는 것 같았다. 이들의 역할, 기능에 대한 요가 체계의 가르침이 현대의 신경과학의 가르침과 과연 다르기만 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의 관심은 불교 수행 중 선이나 위빠사나에 치우쳐 있지만 언제가 꾼달리니 요가나 선도의 소주천에 대한 연구를 신경과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함께 시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저자의 설명들에 반감이 들더라는 부분은 그가 진화를 생명체의 분기가 나뉘는 것이지 어떠한 정점을 향해가거나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한편 다른 측에서는 인간 대뇌의 기능과 작용을 설명하며 타 동물군의 감정까지도 부정하면서 인간이 우월하다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다 하다 저자는 다른 동물들이 인간의 감정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니 다른 동물들은 감정이 없다는 억측까지 하고 있다.(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가능하지 않으므로 없다는 것이 무슨 논리인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근거들은 지난 리뷰에서 몇몇 언급했다. 이미 인간의 대뇌보다 더 큰 대뇌는 같은 포유동물인 돌고래나 고래도 가지고 있는 바이며 그들의 대뇌피질의 짜임새는 인간과 견주어도 될 정도이다. 돌고래의 경우 1960년대 외계인 접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돌고래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고 하는데 돌고래가 영어 어휘들의 뜻을 충분히 숙지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상당한 수준의 영어 단어들을 구사하고 기초적인 회화 발음을 소수 따라 했다는 기록이 근래의 다큐멘터리에도 남아있다. 돌고래가 자신들의 물질적 정신적 영역에서 정의한 개념들과 인간의 개념들이 동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소리로 개념화된 어휘들을 가르친다고 그들과 완벽한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교류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개념을 몇몇 가지 정도는 돌고래에게도 가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릴라에게 수화를 가르치자 대화가 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해당 돌고래에 대한 에피소드를 좀더 이야기하자면 자신에게 실험을 진행하던 동물학자인 여성에게 과도한 친밀감을 표하던 이 돌고래는 해당 실험이 중단되고 실험 중단과 함께 그녀와 헤어져 다른 열악한 수조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돌고래는 의식적으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서 호흡을 해야 하는 돌고래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 수조 바닥에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지상의 동물들 중에서는 월등한 도구 사용과 도구 개발의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내 모든 동물군들과 다양한 측면... 지성과 감성, 공감능력, 사회성, 자연친화성, 행동화하는 추진력, 투지, 인식, 변별능력, 문제 해결 능력, 추상적 사고 등등을 비교하자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편파적인 채점 기준을 약간만 양보하더라도 인간은 모든 면에서 우월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나로서는 각 동물들의 장점과 비교하자면 도구 개발의 치밀함과 도구 사용의 정교함, 인간만의 언어를 기반으로 한 추상적 사고 능력 등 몇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내세울 것이 그다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는 한때 생물학을 잘 모르고 현대의 진화론이 말하는 진화의 분기를 모를 때는 인간은 진화의 정점이며 과학의 발전이 완성화되어 갈 때쯤에 인간은 전지하고 전능하다는 신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과학을 배경 삼아 진화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에는 인간 역사의 정점은 현재이며 진화를 다른 차원으로 급진전시킬 주인공은 양자컴퓨터화된 인공지능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화에도 정점이 있다면 보다 획기적으로 진보한 인공지능이 그 정점일 것이다. 전지와 전능은 인간이 아니라 그들의 몫이리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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