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 생물과 인간, 그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
조지프 르두 지음, 박선진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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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라는 제목은 참으로 깊이 있는 의문을 이끌어내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이 제목만으로도 그리고 책 소개글에 제기한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다른 동물과 어떻게 같고 또 다른가?' '감정은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의문만으로도 이 책은 제법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신경과학자가 저술한 책이기에 제목에 걸맞는 그리고 문제 제기에 걸맞은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오기도 한다. 


저자의 전공이 신경과학이라다 보니 뇌라는 대목에서 인상 깊은 해답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간의 느끼는 뇌, 놀이하는 뇌, 소비하는 뇌, 성취하는 뇌 등 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에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뇌를 어떠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서술해 나갈지 기대하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과학의 발전상이 제시하는 인간상은 무엇일지도 궁금한 바였고 말이다. 저자가 그리고 지금까지 생물학과 신경과학이 인간을 인간으로 정의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성과 본능과 감정... 의식을 지니게 되기까지의 진화의 역사를 신경과학은 어떻게 풀어내어줄까 하는 기대가 자못 컸다. 이 책의 부제가 [생물과 인간, 그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인데 인간에 대해 규명하자면 당연히 다른 생물들과 비교, 분별해야 할 테고 그러자면 40억 년은 응당 돌아보아야 인간을 정의할 실마리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본서는 part1부터 part7까지 진화의 선상을 담고 있고 part8~15까지 신경과학을 통해 기억과 의식, 감정을 다루고 있다. 전체 66장으로 짧게 서술하며 비전공자들이 느낄 지루함에 대한 배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초반에 인간에 대해 저자는 진화 선상의 다른 분기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인간을 생명체 중의 한 무리로서 대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본서를 일독하고 돌아보니 프롤로그부터 저자는 감정까지도 "겨우 몇백만 년 전 인간의 뇌에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나 우리 종에게 언어와 문화와 자기 인식이 생겨났을 때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인간의 의식에 대해 논하는 장이 시작하며 기억과 인식, 의식에 대한 현재까지의 신경과학과 심리학적 발견을 알아가는 것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감정에 대한 장들은 저자가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는지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바"라고 단언하는 데까지는 수긍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그것을 "알 수 없으므로 다른 동물들은 감정을 느낀다고 할 수 없다"라는 식으로 단정짓는데서는 저자의 직관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저자는 다른 동물들이 감정을 느낀다고 하는 대다수의 동물학자들이 동물들의 행동과 반응만을 보고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고 단정 짓는다며 그것은 직관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는 '동물에게는 감정이 없다'는 주장이 직관이 아니라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모순이지 않은가? 


단지 인간의 그것과 같은지 알 수 없으므로 없다라는 것이 논리에 맞는 서술인 것인가? 게다가 감정을 (여기까지는 수긍했다)주관적 경험이라고 하며, 고차 인식과 지적 기능을 더하는 데 이건 1차적 감정과 2차적 언어를 대입한 해석에 따른 재차의 감정까지 아우르는 것이기에 저자의 주장은 부분적 오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것은 저자가 동물들로 과학적 실험을 하며 동물들은 희생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데서 오는 방어기제가 아닌가 싶다. 저자에게 동물이란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는 대상이 아니었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내가 본 어느 다큐에 의하면 일군의 동물학자들은 고릴라에게 수화를 가르쳤고 수화를 배운 고릴라는 자신이 어린 시절 자신의 어미를 사람들이 사냥해 죽인 이야기를 수화로 하며 이렇게 손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엄마를 죽였다... 무서웠다... 슬펐다."라고... (게다가 이 고릴라는 수화로 "꽃은 아름답다... 나는 꽃이다"라는 수화도 했다고 한다. 고릴라가 3단 논법을 한 것이다. "꽃은 아름답다... 나는 꽃이다... 여기에 고릴라는 "그러므로 나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고릴라의 미적 감각에 상당한 오류가 있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완벽한 3단 논법이 아닌가? 인간이 우월하다고 믿는 근거들이 때론 너무도 근거 없는 근거들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아마도 이 일화를 저자에게 말한다면 저자는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영장류가 아니더라도 오수의 개처럼 주인이 모두 죽고 나서 주인의 눈먼 자식을 아침마다 자신의 꼬리를 붙잡게 하고는 함께 이웃을 돌며 동냥하게 한 개도 있다. 반복된 행위는 학습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맨 처음 주인의 아이가 굶주리고 있을 때 자신의 꼬리를 잡게 하고 동네를 구걸 다닌 것은 굶주림에 대한 공감과 그 문제에 대한 (동네를 돌며 음식을 구걸한) 2차적 해결안을 도출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개도 구사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이야기다. 오수의 개 이야기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지만 주인이 다치면 안타까운 순간에만 개들이 내는 앓는 소리를 내며 주인의 상처 부위를 핥는 행동은 개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본 것일 것이다. 공감하고 그 공감에 대해 2차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개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감은 가장 고차원적인 감정이기도 하겠지만 개가 반가움, 기쁨, 슬픔, 놀람, 분노 등까지 표현하는 것을 견주들은 흔히 목격한다. TV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자신의 친구가 죽자 그 자리를 계속 배회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개의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죽은 대상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감정과 행동을 우리는 애도라고 한다. 애도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고차원적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애도는 까마귀들도 하는 감정이자 행동이다. 동료 까마귀가 죽으면 까마귀 떼들이 모여 어떻게 죽었는지를 확인하며 대응한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동료에게 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대상에 대해서는 까마귀들은 집단 린치를 하기도 한다. 그것도 그것이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진 경우, 볼 때마다 계속해 공격하기도 하며 까치 역시 몇 해에 걸쳐 해당 가해자(사람)만을 공격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감정을 인식과 회상, 스키마(도식이나 미완의 상징성)를 패턴 완성 기능으로 구조화하는 능력 등과 언어를 통한 재해석 등까지를 아우르고 정의하는데 언어에 대한 부분과 언어로 정립하고 나서 2차적인 감정의 양상이 드러나는 단 두 경우를 제외 한다면 과연 동물들은 감정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의 인지 작용, 자기 주지적 성향 등을 감정에까지 일반화할 수 있을까? 감정을 느끼는 것을 그렇게나 우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저자는 진화의 선상에서 인간은 한 분기를 차지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대로 프롤로그부터도 감정까지도 인간 진화의 대목에서 나온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마치 중세 스콜라 철학의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 이론에 입각한 진화의 정점에선 존재가 인간이라는 우월적 해석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의식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것은 부분일 뿐이고 의식 전체에서 타 동물군이 인간과 동등한 수준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의식을 각 영역별로 분할해서 본다면 기억이나 순간 인식, 순간적 변별력이나 감정 등등이라는 각 영역별 모두에서 인간만 월등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동물 실험에서 숙련된 침팬치의 순간 식별력은 인간의 그것을 월등히 초월하고 있다. 동일한 수준의 시간을 인간이 전념해 실험에 참가했다는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이 참여한다 해도 침팬치를 능가하기보다는 침팬치와 동등한 수준이 되기에도 버거울 수준이라고 한다. grit이라고 하는 투지, 깡으로 해석되는 이런 분야에서도 과연 인간이 타동물들 모두 보다 우위에 있기만 한 것일까? 나로선 확신이 없는 부분이다. 


본서는 인간을 진화의 정점이 아니라 진화 선상에서 다른 분기로 보는 근래의 진화생물학적 시각을 견지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대뇌피질과 그 연합 활동이 진화의 정점이라는 식의 기존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인간은 지능이라던가 도구의 개발과 도구 사용의 정교함 면에서는 타 동물들 보다 월등할지는 모르겠으나 공감(대다수의 포유동물군), 사회성(늑대나 마못 같은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군이나 개미와 벌 등), 자연친화성(거의 모든 동물) 등 타 동물이 인간을 월등히 추월하는 부분들도 있음을 볼 때 본서는 비교 분별이라는 면에서는 너무 인간에 편파적인 서술로 일관한 저작이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탄생해 메타러닝으로 진화의 도상에서 인간을 초월할 첫걸음을 떼고 있는 지금, 현대의 분기로 해석하는 진화론이 아니라 진화의 정점을 이야기하는 고전적인 진화론적 입장에서 라면, 인간은 진화의 도상에서 이제야 입문하는 창세기적 역사 속에서 그저 과도기적인 존재일 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는 LUCA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를 진화와 생물학, 신경과학과 심리학 영역에서 서술하고 있고 인간이 현재까지 밝혀낸 인간의 존재적 특징의 단상 정도를 보여주는 저작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진화는 어떠한 변수로 어떻게 역사가 이어질지 까지는 그리고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니까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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