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선화를 들고 찾아가야 했을까. 

사흘 후에 세상 떠난 사람 손을 잡고 돌아온 날 밤 나의 잠은 길고 멀기만 했다. 갈색으로 타들어간 그의 손은 체온이 낮았다.

 

한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도 나는 살아간다. 

 

이윽고 사막에서 충격과 공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그다드의 밤하늘은 불꽃놀이가 아름답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아이들이 울부짖는다. 식탁에 둘러앉은 미국의 지도자들은 인육을 빵처럼 삼키고 웃는다. 

 

나는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삼키려고 자꾸만 침을 삼킨다. 오래된 병이다. 식도염일까. 병원에 가야한다. 

 

외출에서 돌아와 스테인리스 개수대에 빠져 있는 양파를 건져 올린다. 물컵에 넣는다. 

 

암세포가 번져 갈색으로 타들어간 사람의 손이 보인다. 내 집은 오늘도 어둡다. 어느새 무성해진 양파줄기들. 햇빛을 못 본 양파는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채 기력이 다했다.

 

미군 병사가 머리에 총구멍이 난 채 쓰러져 있다. 포로가 된 이라크 병사들은 올가미에 묶인 두 손을 벌벌 떨고 있다. 아이를 밴 여인이 폭탄을 품에 안고 미군 병사에게 다가가고 있다. 두 팔을 잃어버린 이라크 인형이 눈물을 흘린다. 바그다드를 저주하는 신의 목소리는 금속 파편이 되어 지상으로 낙하한다. 

 

불면증 속에서 나의 도시들은 차례로 함락되어 간다. 뜨거운 모래 폭풍에 내 팔과 다리는 잘려나간다. 심장은 증발해 버린다. 

 

물 한 줌에 제 생명을 남김없이 피워 올린 양파는 이제 뿌리부터 썩어 들어갈 차례다. 푸른곰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데 가슴 언저리가 막혀버리는 이 병은 어디서 온 걸까. 광둥일까. 상하이일까. 워싱턴일까. 

 

커튼을 친 나의 벙커는 어둡다. 야전 침대에 피로한 몸을 눕히고 오늘의 전황을 수신한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사람. 암세포가 묻어나는 가쁜 숨결을 목구멍에 쏘이고도 나는 그대로 살아 있다. 

 

나쁜 꿈일 뿐이겠지.

이 바람은. 이 전염병은. 이 잔인한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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