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그 자리
이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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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전에는 수제비 반죽 같은 눈이 육수에 풍덩풍덩 빠지듯 내렸고, 그제에는 단체로 실연을 맞은 구름떼가 하루종일 슬피 눈물을 흘렸고, 어제는 지상으로 마실 나온 안개들이 모든 것을 희뿌옇게 뒤덮고 있었다. 눈이 내리든 비가 내리든 안개가 덮이든 사건사고는 연일 끊이지 않았지만 내(內)에서 은은히 감돌던 서정성은 조용하게 극치를 향해 달려갔다. 한강으로부터 시작하여 신경숙, 윤성희, 김미월, 이혜경에 이르기까지 나는 몇 주 동안을 여성 작가와 함께 지냈다. 그 중 대부분은 한강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냈고, 그 다음으로 이혜경에게 관심과 열성을 쏟았다. 세심하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러나 날카로우며 남성을 능가하는 힘과 격정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러한 글들. 게다가 매력적이며 탄탄하고 잘 쓰기까지한 소설들에 담뿍 빠져 며칠 밤을 샜다. 샤프 펜슬과 형광펜을 손에 쥐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행복하고 즐겁게 읽어나갔으나 힘든 점도 있었다. 단편 소설의 특장이기도 하나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데, 짧다는 것이다. 몰입이 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작품을 읽고, 또 다른 작품을 연달아 읽을 때 속에서 솓구치는, 그리고 뒤섞이는 감정들이 문제다. 물론 두 작품 간에 시간을 두고 곱씹으면서 찬찬히 기다리면 되긴 되나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집이라 칭해지는 책은 이 짧은 소설이 대부분 예닐곱개 씩은 들어가 있기에 한 권을 하루에 다 떼기 위해선 미분함수니 지수함수니 삼각함수니 하는 수학적 혼란이 아닌 문학적 혼란을 견뎌내야 한다. 나는 이혜경의 신간 소설집을 이틀에 걸쳐 완독하며 몇번이고 한숨과 탄식으로 속에서 응어리진 어떠한 감정을 뱉어내어야 했다. 그것이 아니면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문장들과 생각들을 정리하여 머리속 한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그래야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혜경은 농익은 소설을 쓴다. 그렇다고 야릇하고 요염하다는 소리는 아니고 분위기나 글이 다른 작가들보다 성숙한 느낌이 빼짓이 배어난다. 나중에 한강에 대한 글을 쓸 때 자세히 말하겠지만 잠깐 언급하자면, 한강은 어린 새의 심장 같은 소설을 쓴다. 여리고 연약하고 투명하고 부드럽고 뜨겁게 뛰는 소설들을 쓴다. 그 때문에 나는 한강을 20대 젊은 작가로 여겨왔고. 한강의 글은 투박하지도 촌스럽지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세련되거나 도시적이지도 않다. 적당히 중립적이면서 충분히 감정적이고 서정적이다. 이혜경의 글은 결혼 10년차 넘는 주부가 사골을 한 양동이 끓여놓고 불현듯 외국 여행을 떠나 양주를 홀짝이며 남기는 일기 같다. 원숙미가 글 전체에, 비록 서술자가 한창 나이의 여성남성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스며있고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과 고심이 발자국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때로 그녀의 글은 달리도 읽혀지는데, 오래 사랑한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찢어지는 가슴의 여자가 기록하는 일지 같은 느낌도 은근히 드러난다. 그것은 이혜경만의 사랑을 그릴 때의 문체일 것이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방에 들어와 물기를 닦다, 그만 당신 이름을 입밖에 내는 순간,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았어요. 타일 바닥이 서늘했어요. 채 물기를 닦지 못한 머리에서 타일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에 내 뜨거운 눈물을 버무리면서 오래 울었어요. 평온한 비췻빛이었다가 한순간에 음험하게 짙어진 물, 유유히 헤엄치던 작고 예쁜 열대어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빨려들 것 같은 어둠만 펼쳐질 때의 당황과 공포, 내겐 익숙한 거였어요. 그게 뭐였는지는…… 나중에 기회 되면 말해줄게요. 18p



<너 없는 그 자리>는 초반과 후반의 글 양상이 달라지는데, 갈수록 내 집중도가 떨어진 까닭은 아니고, 분명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난 것이다. 앞의 소설들은 무언가 감추는 게 있다. 작가는 드러내지 않고 계속해서 뒤로 미루거나 서술자가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린다. 독자들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겨야 한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진 진실을 알기 위하여 더욱 꼼꼼히 글을 훑어간다. 그러다가 서서히 정체가 드러나고, 해설을 빌리자면 그것이 '앎' 이다. 이혜경의 소설에서 '앎' 이란 고통을 대변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아니, 고통의 시작. 주인공들은 '앎' 을 통해 둑 터지듯 피가 쏟아지는 느낌을 받으며 슬픔과 고통의 좁은 길에 들어서게 된다. '앎' 이후로 그들은 서늘해지고 처참하게 슬퍼진다.



' 너 없는 그 자리' 에서 경원은 케냐에 출장을 갔다고 굳게 믿은 남자를 서울 한복판에서 운전 중에 발견한다. 발견, 즉 '앎' 이다. 경어로 쓰이던 서간문이 어느 순간 낮춤말로 진행되고, 남자를 발견한 경원은 이렇게 쓴다. "오늘 오후 네시 십오분, 뱅뱅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재색 비바리, 당신 맞지?" 곁에 없는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자의 심정으로 읽히기 시작하다 읽어갈수록 공허하고 텅빈 듯 이상한 구멍들이 이 문장에서 맞부딪히며 절정을 맞는다. 추궁하고 심문하는 듯 날카롭게 날아오는 질문들은 어쩐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 소설은 한 여자의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원은 남자를 운명의 상대로 받아들였으나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되레 경원에게 "경원씨가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우린 그저 한때 같은 직장 동료였을 뿐이에요." 하며 거부한다. 경원이 수도없이 거는 전화를 받지 않고 천장 위를 기어가는 바퀴벌레 보듯 그녀를 째려보고. 이렇게 본다면 남자를 그리워하며 회상했던 경원과 남자의 아름답던 추억은 여자의 착각이 아닌 회피일지도 모른다. 현실과 진실에서 회피하여 거기에서라도 사랑하고픈 심정. 어쩌면 위의 인용문에서 여자가 무릎을 꿇어가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까닭은 자신의 애처롭고 비참한 모습을 동정한 것이 아닐까. 혹은 남자를 가지지 못한 슬픔과 분노에 울었던 것일까.



<너 없는 그 자리>는 사랑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초반 몇 개 소설은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 일방적인 사랑, 일방적이 아니었으나 결국은 일방적으로 판명난 사랑, 상호적인 사랑에서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혼자가 되는 사랑, 아픔을 잊기 위해 선택한 사랑…. 이혜경은 '한갓되이 풀잎만'에서 이렇게 말은 해두고 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그러나 이혜경의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는 것을 택한다. '감히 핀 꽃'의 시아버지는 평생을 집 떠나 살다가 죽기 다 되어 본가로 들어오는데 간병인으로 데리고 온 사람이 알고보니 사랑을 나누던 사람이었다. 이렇듯 주인공들은 계약보다 사랑을 중시한다. 특히 사랑은 맹목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덮어놓고 사랑한다. 그저 사랑한다. 그러다 당한다. 이혜경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당한다. 맹목적으로 사랑하다 당한다. 덮어놓고 사랑하다 당한다.



죽음은 후반에 이르러 얼굴을 빼꼼 내밀기 시작한다. 5번째로 실린 소설 '감히 핀 꽃'에서 시작되어 7번째 '꿈길밖에 길이 없어'까지, 총 3작품에 죽음이 등장한다. '감히 핀 꽃'은 늘그막에 죽는 거니 넘어간다치고 '금빛 날개'와 '꿈길밖에 길이 없어'의 죽음은 무언가 의미심장하다. '금빛 날개'는 한 중년의 남성의 글이다. 그는 가족들에게까지 천대받던 무지하고 무식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일하게 명문 대학을 나와 병원을 개업했다. 그는 그야말로 돼지 같이 꿀꿀대기만 하는 가족들과 연을 끊고 지낸다. 그러면서 어릴 적 친척들에게 들은 비난과 동정, 거짓 긍휼의 발화들로 인해 매사에 부정적이고 무심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것은 결국 애지중지 키우던, 어떻게든 잘 살게 해주겠다고 다짐한, 그에게 전율을 불러 일으키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 큰 아들을 죽게 만든다. 불량배에게 칼을 맞고 아버지의 병원 문을 두드린 아들을 아버지는 외면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외면했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외면한 것이다. 사랑과 무심의 괴리는 이토록이나 처참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는 가장 짧다. 그러면서도 울컥한다. 갑선은 축 처진 사람이다. 우울하고 순박하고 숫하다.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돌아다니는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힘들다. 아껴쓰기는 자린고비 저리가라인데다 어깨에는 보통 사람의 수십 배 부담과 피로가 얹혀 있다. 그런 갑선이 어느날 불쑥 알로하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다.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고 무슨 일인지 돈을 펑펑 쓴다. 갑선의 이발소 단골 손님이었던 김씨는 이상하게 여기고 이곳저곳 알아보고 다닌다. 깨달았다. 갑선은 미쳤다. 김씨는 건강검진의 핑계를 대며 정신병원에 갑선을 밀어넣는다. 사람 잘 믿는 갑선은 어수룩한 거짓말에도 감쪽같이 속아 정신병원에 머무른다. 시간이 흐르고 통장 잔고가 바닥나기 시작하며 갑선은 예전과 같이 돌아온다. 그렇게 퇴원하고, "선생님, 저는 왜 미쳐지지도 않는 걸까요?" 하는 말과 함께 목을 맨다. 이 죽음은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갑선의 한탄은 그동안의 고통을 극한으로 함축해 놓은 듯하다. 얼마나 심하고 처절한 고통이든 부담이든 피로이든 참고 인내해오던 남자의 끊어져버린 정신줄. 얼마나 닳았으면 끊어지기까지 했을까. 어느 정도로 힘들었을까….



이혜경의 소설은 힘들다. 해풍처럼 강하게 밀려오는 바람을 견디기 힘들 듯 읽기 힘들다. '앎' 은 이혜경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고 사랑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이혜경의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의 단편을 읽는 것이다. 과거와 과거, 과거와 현재가 버무러져 뿜어내는 고통의 아우라를 우리는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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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2-17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대단해요.
머잖아 이혜경, 한강을 넘는 젊은 작가 한 명을 우리는 만나게 되겠지요. ^^*
글에 대한 그 열정, 그 탄력 분양받아 갑니다.

이진 2012-12-17 22:28   좋아요 0 | URL
와, 팜므느와르님! 제 서재엔 처음이신 듯해요~ 아닌가요?
한강을 넘기는 지금의 제 능력으론 무린 거 같고, 이혜경이라면 비등비등할 것 같아요. 물론 감정선 같은 것들이요! 감사합니다. 또 좋은 글 올릴테니 들러주셔요~

2012-12-17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7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7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7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7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2-1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추천 열개 드리고 싶은 리뷰에요.
이렇게 읽어냈군요.
전 오늘 가서 마자 낭독하고 끝내고 올거에요. 너무 읽고 싶어서요.
해풍이 솔바람을 만났을 때, 요거 하다가 멈춘 상태라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앎, 우린 때로 모르면 더 나았을 것들을 알려고 들고 알게 되고 알아버리지요.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앎 이후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래야하구요. 불끈!
조금은 흐린 아침, 12월의 중반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
단단하고도 무름한 마음으로 시작해볼까요. 응원합니다^^

이진 2012-12-17 22:3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읽으면서 계속 감사하고 감사했어요. 되게 좋은 글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사실 저도 후반부에 가서는 꾸역꾸역 읽어냈어요.
후반으로 갈수록 단편들의 힘이 달리는 건 사실이잖아요?
신경숙의 소설집도 그렇고, 이혜경의 이번 소설집도 그래요.
언제나 저도 응원할게요~ 파이팅!

ICE-9 2012-12-1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프레이야님에게 동감이에요.
처음 문장을 읽는데 '와! 이건 리뷰가 아니야. 하나의 작품인 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소이진님처럼 쓰고 싶어요 ㅠ ㅠ (갑자기 제가 쓴 리뷰를 싸그리 다 지우고 싶은 충동이...) 아무튼 정말 잘 읽었어요. 이혜경 '너없는 그 자리' 꼭 읽어볼게요. 그리고 소이진님 문학하길 정말 잘 한 것 같아요.(더하여 평론쪽도 노려봐요^ ^)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

이진 2012-12-17 23:43   좋아요 0 | URL
아이구, 헤르메스님 제가 할 말을 하시면 어뜩합니까... ㅠㅠ
사실 첫 문단은 작품 이야기는 없고 주저리주저리 식이나 마찬가지죠! ㅎㅎ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들러주시는 군요! 어때요, 실시간 댓글이죠? ㅎㅎ

착한시경 2013-01-2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앞 부분 읽고...헉~너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 쓰실 글들도 기대가 됩니다^^

이진 2013-01-23 21:22   좋아요 0 | URL
와, 착한시경님 정말 감사합니다. 첫부분은 교회 갔다가 오늘 길에 가로등에 뿌옇게 낀 안개를 보고 생각났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밤 되시길 :D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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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승우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울게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기억이다.

 

이 문장을 읽고는 급히 펜과 노트를 찾아 메모해두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잃는다는 것이라기 보다 그와 함께했던 기억들로 쌓인 자신의 삶의 일부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일부를 잃음으로써 허망함을 느끼고 위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허망함과 위태함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떻게든 그를 살려보고자 전국에 있는 좋다는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니고, 좋다는 약은 다 해먹이고…. 하지만 그 어떤 위대한 의사에게 치료받고, 명약을 복용한다 한들 죽음은, 쓸데없는 수고라고 비웃듯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작별인사도 미처 하지 못하고 그를 보내야 할 때가 언제든 찾아오고, 사별과 함께 두려워하던 허망함과 위태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려 즐겁도록 만들어 주고, 남은 이들의 허망함과 위태함이 덜 하도록 보살펴 주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입니다. 오랜 투병과 고통을 겪고 이제는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찾아온 말기 암 환자들과 그런 그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힘을 기꺼이 내어주는 봉사자들과 의사들, 따뜻한 말과 마음이 오가며 호스피스 병동에는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든 온기가 감돕니다. 생의 끝, 밑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서서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해진다고 합니다. 평생 죽음을 연구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절망(우울)-수용'이라고 합니다. 즉, 부정과 분노와 절망의 부정적인 단계들만 거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활짝 웃으며 떠날 수 있는 '수용'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수용 단계에 이르는 며칠 동안은 환자와 가족들 모두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금자 할머니는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평생을 주고도 모자라 늘그막에 아프면서까지 베풀고 싶어하시는 인자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주저하며 가족들이 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도 가족을 걱정하며 위로해주시던 착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연 금자 할머니가 변했습니다. 생전 하신 적이 없는 욕을 자신의 남동생에게 퍼붓질 않나, 식사가 5분이라도 늦으면 벼락같이 호통을 치셨습니다. 평소의 인자하던 금자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모습에 놀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얼마 정도 금자 할머니를 마음으로 걱정하며 대해주었더니 다시 인자하던 금자 할머니로 돌아왔습니다. 맞아요, 할머니. 금자 할머니는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지나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하필 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위의 모든 것이 싫어시고 짜증스러워 지는 단계지요. 한평생 억눌러온 한(恨)과 고통을 마음껏 표출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늘 남에게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오면서 금자 할머니의 마음에는 자그마한 상처들이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었겠지요. 부정과 분노와 타협과 절망의 단계를 거치며 이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는 것입니다. 상처들을 표출하고, 덩어리를 해체하고 나서야 '수용'의 단계에 이르러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욕하는 환자가 좋다. 화는 울거나 웃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찾아오는 분노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평생 동안 가슴 밑바닥에 축적된 슬프고 시리고 아픈 상처들, 옹이로 박인 그것들은 분노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풀리고 사라질 수 있다. (113)

 

금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폐암 말기이셨던 당신께서는 투병 생활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셨지요. 당신께서는 자신의 병을 아시고 부터 얼마 간 많이 예민해지시고 짜증을 부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덩달아 화를 내었습니다. 이 책을 조금 일찍 읽었더라면 할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마음의 일들을 들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옵니다.

 

언젠가 당신의 약봉지를 보다가 '마약'이라고 써진 글자를 보며 깜짝 놀라 질문을 했던 적이 있지요. 마약을 왜 드시느냐고, 마약을 약으로 드시는 것이냐고. 당신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해답을 또 이 책을 읽으며 찾았습니다. 당신께서 드셨던 약은 바로 '모르핀'이겠지요. 암 환자에게는 암성 통증이 따른다고 합니다. 1에서 10까지 단계가 나뉘는데 어떤 단계는 버티기 힘든 통증은 맞겠지요. 이 암성통증을 이기는 데는 모르핀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폐암이셨으니 숨 쉬는데 고통이 따랐을 것입니다. 매일 밤마다 기침을 하는 당신을 보며 왜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과연 못했을까요, 안 한 것일 겁니다. 심지어는 짜증마저 부렸습니다. 조용히 좀 하시라고……. 당신의 고통을 모르고 내뱉었던 말입니다. 우리의 말에 얼마나 상처받으셨을까,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말기 암 환자들, 아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핀'도 호스피스도, 항암 치료도, 명약 투여도 아닌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이라고 느꼈습니다. 명희 아주머니는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되어 돈이 많았지만 그 행복을 누릴 새도 없이 암에 걸렸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진 채로 호스피스 병동에 나타난 그녀는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통증으로 아파하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그녀를 앞에 두고 가족들은 허구한 날 싸웠습니다. 주된 내용은 유산 문제였습니다. 명희 아주머니의 돈을 더 많이 물려받기 위해서 가족들은 싸우고, 소리 지르고, 머리채를 잡았습니다. 그것도 아주머니 앞에서요. 아주머니는 그런 싸움 장면을 앞에 두고 늘 고개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그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이 부끄럽고,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하루는 아주머니의 남편이 찾아왔습니다. 또 싸웠습니다. 이제는 싸우다 말고 아주머니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당신이 잘못 키워서 애가 저 모양이잖아!" …….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과연 사람이라면 죽어가는 자를 앞에 두고 저주하는 욕설을 퍼붓고, 싸우고, 화를 낼 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이자, 자신들을 낳아주고 헌신하여 키워준 엄마입니다. 명희 아주머니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무시와 멸시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얼마나 불행하고도 슬프고도 안타까운 죽음입니까.

 

삶은 힘들고 암과 함께 가는 삶은 더 힘들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 마디, 따뜻한 스킨십이 환자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외로움을 치유해야 한다. (189)

 

평생 힘들었던 삶, 마지막 길마저도 힘들게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 저는 늘 후회하고,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당신의 고통 한 번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 손을 뻗으셨을 때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드리지 못한 것, 축복의 기도 한 번 올려드리지 못한 것, 셀 수 없는 많은 후회와 죄송함이 밀려옵니다. 저도 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언젠가는 호스피스 봉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저와의 약속이지만 이 죄송함을 가지고 있는 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죽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요.

 

 

 

(+) 청림출판에서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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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7-1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차분하게 아주 잘 읽었어요. 뭐라고 좀 댓글을 달아야겠는데, 그냥 잘 읽었다고만 말하고 가려다가,,,
일단, 소이진님은 너무 어렸을거에요. 가끔씩 그렇게 할머니 한 번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안녕요.

p.s. 이승우 작가 리뷰라고 처음에 생각했어요. -- 오늘 알라딘 서재가 엄청 조용해요???

이진 2012-07-15 12:38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은 댓글 달지 말라고 쓰는 글이잖아요? ㅎㅎㅎㅎ
막 진지하고, 슬프고 이런 글... ㅋㅋㅋㅋ
진지해서 댓글 달면 안 될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제가 아이님하고 댈러웨이님한테 받잖아요.
두 분 글이 너무 진지하고 수준 높아서.. 막 ㅋㅋㅋㅋㅋ

주말되면 알라딘 축축 가라앉아요. 이상하죠?
알라딘이 학교나 회사하고 비슷한가봐요.
주말에는 안 해야할 거 같고 ㅋㅋ

cyrus 2012-07-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님이 인용한 첫 문장, 저도 보는 순간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어쩌면 인간이 타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곁에 있던 타인이 남기고 간 상실감으로 비롯된 허무함이 아니라 예전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낀 행복했던 경험과 기억들이 다시 재현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대한 슬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실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단순히 인간의 영이 육신을 남긴 채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 친할아버지랑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시간은 기억하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실감나게 반응한 적도 없고요. 그래서 막상 지금 곁에 있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정서적으로 큰 상심의 고통을 겪지 않을까 저 스스로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이진 2012-07-15 12:52   좋아요 0 | URL
이승우의 책을 읽다보면 저런 문장들이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저는 밀려오는 감동과 명문장들에 어쩔 줄 몰라하며 펜과 메모지를 들지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그가 떠나고 눈물이 날 때는 그가 추억될 때 잖아요. 그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슬픈게 아니라, 맞아요, 그로 인해 다시 웃을 수 없고 그가 빠져나간 기억이 허망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죽음은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달까. 죽음은 아직 막연하고 어렵게만 다가오고 있어요. 죽음을 완벽히 이해하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네요. 좋겠어요. 저는 중학교부터 벌써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두 번이나 겪었어요. 죽음에는 면역이 생겼어요.

2012-07-15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5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7-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글이 참 좋아요.
할머니가 저 세상에서 마음으로 읽으실 것 같아요.

이진 2012-07-15 12:4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푹 빠져서 글 써봤어요.
리뷰도 오랜만이구요. 은희경의 소설도 써야하는데 말이죠.

그러시겠죠...?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2-07-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리도 멋진 글을 쓸 수 있죠? 대단하삼. 슬프게 하는 건 기억이라는 대목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벤지란 강아지가 죽고난 뒤 한동안 벤지가 좋아하던 KFC에 가지 못했고, 벤지가 즐겨먹던 흰우유를 못마셨답니다. 그거 보면 벤지가 즐겁게 먹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글고보니 저희 할머니도 요양원에 계시네요.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잊혀져서,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해서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요.

비로그인 2012-07-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가요, 소이진님. (마치 우연히 처음 들른 것처럼-)
한 마디로 끝내려고 했는데... 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여기서 줄일게요.

jo 2012-07-1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할머니는 아니고 증조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어요. 심하진 않고요. 약을 매일 복용하셔야 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가까이 살면서도 공부한답시고 1달에 1번도 뵈러 가지 않는 제가 떠오르네요. 용돈 주실때만 좋아라 했던 제가 부끄럽네요. 진짜 있을때 잘해야 하는데.. 내일 찾아뵈러 가야겠습니다. 근데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ㅋ.
 
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세자의 연정과 사랑

 

 

 

 

  얼마 전까지 정은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해를 품는 달>이 크게 화제를 이끌어내며 방영되었다. 가상 조선시대에 살았던 세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다룬 책이자, 드라마다. 드라마에는 김수현이 그 역할을 맡았는데 역할에 몰입을 잘하여 드라마 자체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짜임새있는 연기와 구성을 보여주었다.

 

  세자는 한 눈에 반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녀가 세자빈에 간택되었을 때도, 원인모를 병에 들어 폐빈 되었을 때도, 그녀가 병으로 죽고 난 후에도, 그가 임금이 되어 중전을 거느리게 된 후에도 연심을 그만두지 않았다. 어찌나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지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잊지 않으며 살았다. 끝내는 죽었던 세자빈이 살아 돌아와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조선의 로맨틱한 세자의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이다. 나도 <채홍>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내 관심은 오롯이 어서 세자와 세자빈이 재회하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TV를 두들기곤 했다.

 

  그러다 <채홍>을 읽게 되었다.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을 선물까지 받은 터라 들뜬 마음으로 펼쳐보았다가 덮을 때는 비탄하며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그 여파는 한창 즐겨보고 있던 <해품달>에서 관심을 두는 인물을 바꾸게 했다. 바로 어린 시절에 세자빈과 함께 예동을 지냈던 중전이다. 그녀는 공주의 예동을 지낼 때부터 관심 밖이었다. 세자빈의 오빠를 마음에 품었던 공주는 세자빈 쪽으로 마음이 가기 마련이었고, 왕마저도 지식이 뛰어난 세자빈을 마음에 두었다. 중전은 늘 세자빈과 비교되는 수치를 당해야했고, 주저앉아야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아비는 더욱 독하게 마음을 먹으라며 다그치기만 했다. 성장한 후에도, 죽은 세자빈 대신 들어오게 되었다는 간접적인 이유로 세자에게 미움 받았고, 자신의 아비가 세자빈을 살해하는 것을 주도했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밤 떨었다. 세자빈이 살아 돌아와 자신을 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정신적 이상까지 생겨버렸다. 심지어 합방일이 되면 세자는 언제나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교태전에 걸음하는 것을 피했다. 그녀는 이러한 무관심과 자신을 향한 질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자처해왔다. 하지만 늘 그녀는 외로운 존재였다. 남편에게, 아비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많은 여인이었다.

 

  왜 내가 중전에게 눈길이 가게 되었는가? 바로 <채홍>에도 이와 같은 여인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순빈 봉씨. 역사서에 쓰여진대로만 보면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자 후궁의 회임 소식을 들고 투기를 부리고, 거짓 임신을 고하고, 심지어는 궁녀와 동성애까지 저지른 나쁜 여자다. 김별아는 이런 순빈 봉씨를 어떠한 여자로 다루고 있을까. 또 그녀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순빈 봉씨, 사랑할 수 있는...

 

 

 

 

  순빈 봉씨는 알려진 것이 없는 여자다. 그 칭호 넉자 말고는 이름도 모르고 단지 동성애를 저지르고 폐출 당했다는 기록만이 보인다. 이런 그녀에게 김별아는 난(暖)이라는 예명을 붙여주었고, 친근하게 봉빈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난으로, 봉빈으로 그녀를 표현해야 했을 이유가 무엇일까.

 

  봉빈은 일찍이 어미를 잃고 유모를 한 가족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듬직하게 자란 오라비들 밑에서 담뿍 사랑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컸다. 그녀는 비록 아비뿐인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덕이 높았고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다. 수려한 미모는 감히 중국의 천하일색들에 견줄만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오만했다. 간택절차로 궁에 들어 선을 보일 때도 그녀는 고개를 처박고 있는 다른 후보자와 달리 궁안을 둘러보며 느긋이 서있었다. 자기는 타 후보자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자의 총애를 얻기 위해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술법들을 행했던 앞선 세자빈 휘빈 김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비웃음을 치기도 했다.(휘빈은 엄청난 박색이었다! 땅딸만한 키에 답답한 이목구비를 지닌 여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세자는 더욱 그녀에게 무관심했고 불안해진 휘빈은 민간의 술법을 행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은 부덕한 죄로 쫓겨났고 재간택에 봉빈이 뽑히게 된 것이다.)

 

  어쨌든 난의 오만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외모로 뭇 남성들까지도 홀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봉빈은 그 외모로 세자의 마음까지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은 휘빈과는 전혀 다르기에, 아니 수십배는 더욱 아름답기에 잡지 못하면 이상하리라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세자는 봉빈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되려 미모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과 눈을 질끈 닫았다. 세자는 여자에게 무심했다.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나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것과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익숙치 못했다. 특히 세자에게는 오래전부터  미(美)에는 반드시 악이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봉빈의 미는 세자의 마음을 얻는 데 독이 되었을 뿐이었다.

 

  난의 사랑받고픈 마음과 세자의 선입견은 첫날밤부터 격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연(宴)에서 마신 몇 잔의 술을 핑계로 세자가 등을 돌리고 드러 누워버린 것이다. 어느새 그는 코까지 골며 잠들어버렸다. 콧소리가 쌕쌕거리며 고르게 퍼질수록 오라비의 신혼 생활을 엿들어오며, 남과의 접촉을 은밀히 상상하며, 첫날밤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품어오던 난의 억장을 처참히 무너져갔다. 누가 알았을까. 난이 시집간 첫날 밤, 등을 돌린 남편의 뒤에서 스스로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치마를 벗을 줄을. 난은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수치심과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녀는 겨우 세자빈 따위의 신분으로 장차 성군이 될 인물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아름답게 태어난 걸, 문종의 세자빈으로 간택된 죄, 즉 자신을 탓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순빈 봉씨, 사랑받고픈...

 

 

 

 

  세자는 봉빈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했다. 끝내는 극과 극으로 치달아버렸다. 세자에게 또 다른 후궁이 들어서면서 부터 더 심해졌다. 몇 년동안 갖지 못한 아이를 후궁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잉태해버렸다. 봉빈은 엄청난 질투심과 분노로 후궁을 괴롭히는 등의 파행을 저질렀다. 태어날 아이와 어미를 저주하며 하루하루 술잔을 비워갔다. 상상임신까지 했다. 하지만 상상임신으로, 그녀는 위로받지 못하고 더욱 악처로 치닫게 되었다.

 

  봉빈은 어느새 술고래가 되어있었다. 자신에 대한 한탄을 담아 한 잔, 세자에 대한 분노를, 사랑을, 그리움을, 외로움을, 질투를, 체념을 담아 열잔, 또 한 잔 마시다 보니 그녀의 옆에는 빈 술병이 산더미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이런 그녀의 상태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왕 내외는 세자와 세자빈을 단 둘이서만 나가 살도록 명하였다. 너무나도 멀어진 그들의 사이를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서, 상상임신 아니 거짓임신으로 궁내를 휘휘스럽게 했던 세자빈의 면모를 조금이라도 깨끗이 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것으로 더욱 둘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대체 봉빈은 전생이 어떤 죄를 살았길래 이토록이나 처절하게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을까. 은희경의 <빈처>라는 작품이 있다. 현진건의 <빈처>가 돈의 결핍을 나타낸 것이라면 은희경의 것은 사랑, 즉 애정의 결핍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내의 일기장을 읽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남편이 등장한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남편이 아닌 아내다. 남편은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끝내는 얻어냈다. 하지만 이루어진 사랑의 남루한 일상이라고 그랬다. 그는 사랑을 얻었다는 허무감 때문인지 아내에게 무관심했고, 무시했다. 아내를 위할줄 몰랐고 따스한 한 마디 해줄 줄을 몰랐다. 일찍 들어온다고 말해 몸도 좋지 않은 아내를 저녁 차린다고 고생하게 만들어 놓고는 달랑 전화 한통으로 늦는다고 말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해주려고 하지만 쓰러질 듯한, 아려오는 외로움을 느낀다. 이루어진 사랑의 남루한 일생... 이루어진 사랑의 쓴 인생... 사랑의 외로움. 봉빈은 <빈처>의 아내보다도 더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빈처>의 아내는 자신이 원한 결혼을 하기라도 했다. 결혼 전 연애 시절에는 무한 사랑을 받아보기라도 했다. 그런데 봉빈은 뭔가. 원하는 결혼도 아니었고, 세자가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결혼 첫날밤부터 폐빈되기까지 7년 동안을 외톨이로 지냈던 것이다. 술을 벗삼아, 바느질을 남편삼아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다.

 

  그녀가 택한 마지막 탈출구는 궁녀와의 사랑이었다. 동성애, 오직 그 하나만이 봉빈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봉빈을 음녀로, 악녀로 치부하기에 바빴고 결국엔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렀다. 어째서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만들어 놓고는, 그렇게 해 놓고서는 그 고통을 벗어내고자 하면 더욱 더 옥죄이고 결박하는 것일까. 왜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껏 무시해도 되고, 마음껏 쫓아버려도 되고, 마음껏 짓밟아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여기서 내가 던진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김별아 작가는 이런 순빈 봉씨를 위로하기 위해 난이라는 예명을 지어준 것일까? 여성으로 태어나 망가지고 짓밟힌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순빈 봉씨, 여자로서 패배자...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늘 패배자로 살아야 했다. 늘 남자의 밑에 서있어야 했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에서도 패배자였다. 봉빈은 오로지 악녀로만 그려져 있다. 도저히 따뜻한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탕한 여인. 하지만 어쩌면 김별아 작가가 그려낸 봉빈의 모습보다 훨씬 처참하고 힘든 삶을 살다간 여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농후하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에게 정절과 여성으로서의 모습은 굉장히 중요했다. 봉빈은 정절을 어긴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악하게 그려질 수 밖에.

 

  말했다시피 조선시대는 여성들에게 정절을 강요하던 때였다. 그런 시대에 동성애로 퇴출된 여인을 김별아는 왜 끌어온 것일까? 나는 조심스레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 애처로운 그들의 삶'을 그려냈다고 생각해본다. 봉빈은 세자빈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다. 세자빈이라는 지위로서 박생들에게 덕을 보여야 하는 자리였고, 그녀에게는 수많은 격식과 의례와 절차를 지켜야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봉빈은 좋게 받아드리고자 했다. 하지만 격식과 의례와 절차는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닌 구속과 결박의 의미로 봉빈을 옭아맸다. 마음이 전혀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밤일, 친정과의 교류를 금지하며 세자는 봉빈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잠기도록 했다. 그런데 비단 봉빈만이 이러한 제약과 규율 내에서 악압받으며 살았을까? 물론 아니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이번 생애 그곳까지 닿을 방도가 없기에 김태감은 무력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에 무력했기에,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헛힘을 쓰기 시작했다. 입번하러 나서는 길에 트집을 잡아 아내의 귀뺨을 올려붙었다. 쓰러져 울고 있는 아내를 내버려둔 채 나갔다가 출번하면 또 다른 가탈을 부려 아내를 쳤다. 고생중에 마음고생만큼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없으니 금세 아내의 눈빛은 흐려지고 피부는 윤기를 잃었으며 변함없는 산해진미에도 살이 내렷다. 수척해진 아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으나 김태감은 매타작을 멈출 수가 없었다... 44p

 

  지인의 친구 분은 배를 타시는데 어렵사리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즌슥 아내가 그 분과 밥을 먹다가 생선을 뒤집었는데, 생선을 뒤집는 행동은 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금기시 되어있던 일이라고 한다.(배가 뒤집힌다나...) 화가 난 남자는 쌍욕을 하며 아내의 귀뺨을 때려버렸다고 한다. 그저, 잘 몰랐을 뿐인데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될 것을 썅년, 이라고 욕까지 하며 때렸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 행동으로 아내는 당장 짐을 싸서 나와버렸다고 한다.

 

  김태감의 아내도 실수를 저질렀다. 내시의 부인으로서 '자른다'는 말을 입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여자들은 화를 때며 욕을 하고 때리는 남자를 두고 위의 아내 분처럼 집을 나갈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구속된 그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저 맞고, 맞으며 참아냈으리라.

 

  봉빈에게는 신체적 구속은 없었다. 폭행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아파해야 했다. 그녀 자신으로서 조선 시대에 태어난 것을 아파하고, 역사로서도 아파야했다. 봉빈은 삶의, 속세의 패배자였으며 다시 일어날 수 없게 쓰러져버렸다.

 

 

 

 

     차라리 벚꽃같은 삶이었으면...

 

 

 

 

  엊그제 핀 듯한 벚꽃이 벌써 다 졌다. 날리는 벚잎을 보며 문득 봉빈을 생각했다. 그녀의 삶이 벚꽃같았다면 어땠을까. 벚꽃같이 짧지만 화려한 인생을,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한 번이라도 겪어봤더라면 그녀는 이토록 힘들지 않았을텐데.

 

  봉빈을 역사 속으로, 아니 내 마음속으로 보내며 다시금 생각해본다. 사랑을 구속당했던, 인권을 억압받았던 조선시대의 여성들. 사슬로 감긴 사랑이라는 감정에 목숨을, 인생을 걸고 덤벼들었던 당돌한 여인. 그만큼 아파야했고, 외로워야했고, 슬퍼야했고, 고통받아야했고, 탄식해야했고, 눈물흘려야했고, 피흘려야했던 여인.

 

  가끔씩 <채홍>을 읽지도 않고 저질스러운 작품으로 치부해버리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에게 나는 이제 무조건 책을 내밀며 한 번 읽어보라 권할 것이다. 김별아가 그려낸 하나의 작품안에서 김별아 자신의 호소와, 여성들의 호소와, 그리고 나의 호소를 느껴보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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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1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한테도 얼른 읽어보라고 권해요!! 근데 나는 저질스러운 작품이라 안했음. 누가 저런 말을 해요, 대체!! 전에 그 친구들?

이게 <해품달> 보다 재밌어 보여요. 가만보면 남자들도 안됐지만 역사 속에서 여자들은 정말 많이 희생하잖아요. 다시 태어나서 여자 한 번 돼볼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뷰 좋아요^^

이진 2012-04-15 21:00   좋아요 0 | URL
누나, 얼른 읽어보아요! 전에 그친구들... ㅎㅎㅎ 아마 제 친구들 말고도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많을거에요.
<해품달>보다 더 재밌을거에요. 해품달은 로맨스 소설이잖아요. <채홍>은 많은 걸 담고 있단 말이에요. 음... 예전이라면 싫은데 지금이라면 대환영이죠! 안그래도 수다를 무척, 무척, 무척, 무척 좋아하는데 여자로 태어난다면 거리낌 없이 수다에 낄수있잖아요ㅎㅎㅎㅎㅎㅎ

ICE-9 2012-04-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질이라 칭하는 이들과 달리 채홍의 매력에 빠져버린 동지로서 저는 이 리뷰가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부부관계란 참으로 연약하군요. 생선을 뒤집었다고 헤어지다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남자들의 옹졸함이 일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이진 2012-04-16 23: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리는 그렇게 옹졸한 인생을 살지 말아요. 여자를 때리며, 욕하며 살지도 말구요. 이 리뷰 저는 아무리 봐도 너무 막쓴거 같아요. 요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차근차근 정리해서 쓰신 헤르메스님의 리뷰에 비하면 뭐랄까... 아스팔트의 껌이랄까 ㅎㅎㅎㅎ

저는 이 리뷰랑, 히가시노 게이고의 리뷰로 일단 신청은 했어요. 그런데 10기 활동을 너무 안해서 뽑아줄지 안뽑아줄지는 모르겠어요 ㅠㅠㅠ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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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보칼리즈, Dame Kiri Te Kanawa sings>

 

 

 

 

 

   시리도록 하얀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을 쥐어 뜯으며, 가슴을 쥐어 뜯으며 탄식하고 또 탄식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런 일을 이제서야 책으로 접하게 된 나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고 그에 따라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답답하게 먹먹한 가슴을 어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힘들었다. 계속 찡하게 아려오는 코끝이 신경쓰였고 뿌옇게 흐려진 눈앞이 거슬렸다. 아, 이 애통함을 어찌 전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경찰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성실하고도 정의로운 용사였다. 고모부가 경찰이었고 그 분은 언제나 웃으셨다. 늘 착하셨고 듬직했다. 그래서 나의 머릿속엔 경찰은 착하다,는 이미지가 콕 하고 박혀버렸다. 또 중국 여행을 가서 본 제복입은 멋지고 잘생긴 경찰들로 인해 경찰은 멋있다,는 이미지까지도 박혀버렸다. 하지만 착하고 멋있기는 개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죄 없는 시민을 향해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발로 차고 밟는, 무자비하고 몰상식한 인간들이었다.


 

 

   간이 의무대를 차려놓은 교실은 더 아수라장이었다. 대부분이 이마가 깨진 사람들이었는데도 얌전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얼굴이 피칠갑이 되어 부어오른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양호한 편이었다. 네댓 사람이 계속 사람들을 들고 들어오는데 사지를 못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처럼 머리가 조금 깨진 사람들은 의식을 잃고 계속 들려오는 사람들을 먼저 돌보라고 몇 번이나 자기 차례를 양보해야 했다. (중략)

 

   나중엔 정말 응급처치를 해줄 아무런 대안들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빨간 소독약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의식을 잃고 실려와 바닥에 동댕이쳐진 환자들은 이미 넘쳐나고......

 

   그런데도 미친 전투경찰들은 바로 문 앞까지 다가왔다. 우리가 있는 교실 복도 창을 모두 깨뜨리며 가장 잔인한 욕설과 인상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경찰이 아니었다. 밖에서 전투경찰들이 던지는 돌을 피하기 우해 우리는 벽 뒤에 숨어 오들오들 떨었다. " 야, 새끼들아. 여긴 환자들 있는 곳이라고...... 사람 죽어가는데 이게 무슨 짓들이야. "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돌아온 대답은 기가 막혔다. " 이 개새끼들 니들 오늘 다 죽었어. " 그들은 환자까지도 다시 짓밟을 태세였다.

p. 168-169

 

 

 

   한국의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얼마 전 '부러진 화살'을 보며 경찰과 시민의 대립 장면을 접할 수 있었다. 제복과 방패로 시민 앞을 둘러싼 경찰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 하고 되짚어보니 ' 그래, 저건 다 옛날 일일 뿐이지 '하고서는 말했던 것 같다. 제대로 민주주의가 갖춰진 현재, 저런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위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년도는 2006년. 21세기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위 본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대추 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마을을, 아니 자신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의 인권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경찰들과 대항했다. 무장한 경찰들을 보고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그들의 자존심. 하지만 자존심만으로 무장경찰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송경동 시인은 머리에 벽돌을 맞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의식을 잃었다.

 

 

   하, 전투경찰. 이토록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한 전투경찰의 일기를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단지 훈련소에서 줄 잘못 섰다는 이유로 전 국민과 고참들에게 욕 먹는 자신에 대해 한탄하고 우리들에게 메세지를 전하는 글이었다. 자신들도 한 부모의 자식들이라고, 우리가 시위를 제지하는 것도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정치인을 지키고 싶어 전경이 된 것이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저 사회에서의 치안 업무를 당당히 하기위해 전투 경찰이 된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정치인의 똥개 새끼들...'하는 욕을 들으며 시민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창에 맞는 자신들도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본문을 읽으며 똑같이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정치인의 똥개 새끼들...'하고 욕을 했던 내 모습과 눈물을 흘리며 차갑게 식어버린 도시락을 까먹는 전경들의 모습이 겹쳐지나갔다. 아아, 대체 이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한진중공업에 관한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김진숙'이라는 이름만 알았고, '김여진'이라는 배우가 한진중공업 어쩌고해서 경찰에 불려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김진숙이라는 여성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심하게도 그 크레인이라는 것을 굴삭시 버켓이란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었다. 흙이 잔뜩 굳어있는 버켓에 올라가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크레인이 35m라는 것을 알기에는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언젠가 김진숙님이 크레인에서 내려온 날, 알라딘에는 많은 글들이 게재되었다. 알라딘 입성 초반, 아주 혈기왕성했던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그 분의 사진은 관중들을 향해 외치던 멋지고 당당한 흑발의 여성이었는데 알라딘에서 그녀의 모습은 초라한 백발의 여성노동인이었다. 그 충격에 나는 잠깐 "아아, 김진숙 님이 이런 분이셨구나"하고서는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금방 활기찬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진숙님이 노동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생각치 못했다. 그냥 인권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성의 몸으로서 남자도 하기 힘든 용접공을 하다니. 왠지 남녀차별의 분위기가 풍기는 생각인줄은 알지만 여성 노동자라니, 나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성의 몸으로 엄청난 혹사의 일을 견뎌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고있기에 나는 더더욱 그랬다. 여성노동자라니...

 

 

   송경동 시인이 군데군데 뽑아놓은 김진숙님의 <소금꽃나무>라는 책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울컥했다. 이런 끔찍한 생활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써 간접적으로 접하는 나도 이러한 일을 마주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직접 겪은 자들은 도대체 어떠한 고통을 품고 있을까. 대체...

 

 

   이소선 어머니가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있던 때가 있었다. 바로 그 분이 타계하신 날. 나는 뭐지?하는 마음으로 클릭했다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사실에 놀라고, 또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두번 놀랐다. 그리고는 또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에 글을 쓴 송경동 시인에 다시 놀랐다. 그 당시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글귀를 읽으며 이해하지 못했던 때와는 달리 너무나도 어머니의 마음이 잘 이해되었다. 나이에 상관않고 언제나 당당하고 또 씩씩하게 살아오신 어머니. 노동자들을 위해서 싸우셨고, 응원하셨고, 도우신 어머니. 희망버스를 타고 크레인에 가 김진숙을 만나는 것이 유언이었다는 어머니.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해 한 몸 바치셨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께

  

전태일을 아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바늘구멍 같은 어머니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갔기에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당신은 가난하고 힘없는 아들을 가둔 벽을 허물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만인을 살리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에미 노릇’으로 지켰습니다

당신에게는 배고픔도 슬픔도 고통도 분노도 외로움도

사랑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의 연행도 구속도 구타도

사랑이었습니다

평화시장을 살리고 유가협을 세우고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힘이었습니다


전태일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를 것입니다


당신은 만인의 해방을 위한 길을

오직 사랑으로 걸어갔기에

영원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

 

 

  
   힘든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닫고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2년 전부터 알아오던 한 누나가 있다. 그 누나는 해양 대학을 나와 선장일을 하다가 여자의 몸으로 배를 타는 것은 결혼에 좋지못하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이 있는 시골로 내려와서 살게되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매일 성실하게 살았다. 첫번째 시험은 합격하지 못한 것인지 아무런 말도 없던 것을 보아서는 그랬던 것 같다. 대신 다음 시험을 준비하며 군청의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그 누나의 친구가 농협의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정규직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배가 아프다며 웃으며 말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하면 인간 취급도 못받지"하고서는. 그리고 이제야 이 책을 읽고 비정규직의 애통함을 알 수 있었다. 나도 한 번 기회가 된다면 그들의 편에 함께 서서 응원해주고 싶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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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02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는 것도 힘들고 느낌을 풀어내기는 더 힘들지요, 그래서 나는 리뷰를 못 썼어요.
하루에 많이 읽을 수 없어, 조금씩 조금씩 심호흡을 해가며 읽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알고 이해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면 좋겠어요.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진 2012-03-02 17:11   좋아요 0 | URL
초반에는 그래도 편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가슴을 누군가 콕콕 찌르더군요. 저도 이 느낌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도통 모르겠어서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만 썼는데 또 리뷰를 쓰면서도 눈물이 나려고 해서. 정말 저같이 이런데 문외한인 사람들이 비정규직 근로자나 시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으면 해요^_^

ICE-9 2012-03-04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읽기가 힘들었던 책 가운데 하나였어요. 저려오는 아픔, 무심코 스며드는 눈물 때문에...
어서 빨리 가장 약한 자의 눈물을 먼저 보고 따뜻하게 닦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진 2012-03-04 22:13   좋아요 0 | URL
헤르메스님이 저의 마음을 참 잘 표현해주셨군요. 저려오는 아픔, 무심코 스며드는 눈물... 읽는내내 한숨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발 그런 사회가 속히 오기를...

어머니 2012-03-1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서평을 읽는 동안 가슴이 뭉클하고 눈이 시큼시큼 합니다. 고 이소선 어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 블로그입니다. 영화 <어머니>가 곧 4월 5일 개봉합니다. 시간되시면 꼭 관람해주시고 이소선 어머니를 다시 한 번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늘 이런 식이라는 걸 너는 알고 있었지?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그의 생각을 침범할 만한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어. 한 번 그에게 머릿속까지 농락당한 후로 그를 읽으며 철저한 그물망을 조금이라도 벌리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다 소용없는 짓이었어. 그의 트릭을 알아챘다고 좋아하는 순간부터가 내가 그의 늪에 빠지는 순간이었지.

 

 

 

 

               그의 작품인 [밀실살인게임]을 읽으며 감탄했었어. 미나토 가나에의 처녀작을 읽었을 때도 느끼지 못한 스릴감을,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읽었을 때도 느끼지 못한 가슴을 치고가는 엄청난 반전을 그로 인하여 느낄 수 있었지. 그가 사용하는 트릭은 서술트릭이라고 해. 말 그대로 작가가 서술방식으로 독자들을 속이는 트릭인데 이 방식이 어찌나 독특하고 간사한지 나같은 추리 초보라면 생각한번 못해보고 마지막장을 덮어야할테야.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지. 전부터 누누히 말했지만 [밀실살인게임]을 읽다가 책위에 엎드려 울었어. 예전에 도서관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읽다가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서 당황했던 적이있었는데 이때와는 다른 눈물이었어. 나는 그로 인해서 추리소설의 참맛을 알게되었고 또 머릿속에 강풍이 휘몰아친 것 같은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지. 아마 그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을거야. 하지만 그 후로 한 가지 후유증이 생겼어. 어떠한 추리소설을 읽어도 반전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지. 아무리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긴박감이 흘러넘치게 진행된다고 해도 끝에 이르러서는 항상 내게 안타까움의 탄식을 흘리게 만들었지. 그래서 한 동안 책에 대한 관심도까지 떨어지게 되었고 책 수집도 접었었지. 곧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로 인해 돌아오긴 했지만 이것이 내가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생긴 행복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나 애정하고 아끼던 작가였기에 우타노 쇼고의 것들 중 가장 사람들 입에서 오르락거리는 바로 이 책은 아껴두었어. 첫 장을 펼치면 어떤 매혹적인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을까? 그리고 나는 사로잡힐까? 얼마나 매력적인 주인공이 어떤 반전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책등을 볼 때마다 들었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이 즐거움과 설렘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책등만 한참을 바라볼때도 있었어. 그러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 하고서는 꺼내서 침대위로 던져두었어. [밀실살인게임]에서의 반전을 기대하고 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밀실살인게임]에서 느꼈던 임팩트가 너무도 컸기에 이 작품에도 기대를 많이 했어.

 

 

 

 

               내가 생각하는 우타노 쇼고는 완벽한 추리소설작가야. 또 내가 유일하게 읽어본 신본격추리소설의 작가이기도 하지.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문장력이나(문장력은 번역가의 기량이겠지만) 스토리따위의 추리소설에서 불필요한 요소는 바라지 않아. 그저 그가 스토리 흐름을 잘 살리는가, 어떠한 복선을 숨겨놓았는가에 집중에서 읽지. 그래서 이 책도 마음을 푹 내려놓고 읽었는데 왠일로 스토리가 탄탄하면서도 재미있는거야. 조폭이야기에다가 사람들을 속여 먹는 사기조직들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의 연애사가 적절하게 섞이면서 책 한권을 만들어내. 사실 전혀 이어짐없는 이야기들이 각 챕터별로 연결되어있어. 1챕터에는 주인공이 사건의뢰를 받는 이야기, 2챕터에는 조폭이야기, 이런 식으로 극이 전개되지. 그런데 전혀 위화감이 없어. 다 한 이야기 같아. 이것이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능력일까?

 

 

 

 

               하지만 이번 작품은 너무 산만하다. 그리고 너무 혼란스러워. [밀실살인게임]에서 단 한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을 콕하고 찌르는 반전을 보인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아. 이 작품에서도 단 한문장으로 극 전체를 바꾸어버려. 그런데 너무도 터무니 없어. [밀실살인게임]을 읽어본 자라면 서술트릭의 참맛을 알터인데 나는 이 책을 읽고서도 머릿속의 혼돈을 정리하지 못하였지.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는 다시 앞으로 책장을 넘겨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의심이 가는 문장이나 대사들을 꼼꼼히 훑었어. 그렇게 오랫동안 고심했음에도 반전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 마지막의 작가으 친절한 해설부분을 읽고서는 무릎이 아스라질 정도로 치며 '아!!'하고 감탄어를 내뱉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 충격의 한 문장을 읽고서는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어. 농락당하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농락당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지. 기분이 묘했어. 즐겁기도, 기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지. 책 한 권 읽는 것에 이렇게 머리를 쓰게 만들고 체력을 닳도록 만드는 것도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능력일까?

 

 

 

 

               나는 이제 그의 다른 작품을 읽는 것이 두려워. 또 어떤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을까? 또 어떤 반전으로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버릴까?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 같아. 내가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정도의 힘이 나에게는 없는 걸. 하면서 위축된다. 그래도 우타노 쇼고니까, 하면서 읽을 수 있게 만나는 것도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의 능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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