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할머니,

이승우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울게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기억이다.

 

이 문장을 읽고는 급히 펜과 노트를 찾아 메모해두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잃는다는 것이라기 보다 그와 함께했던 기억들로 쌓인 자신의 삶의 일부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일부를 잃음으로써 허망함을 느끼고 위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허망함과 위태함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떻게든 그를 살려보고자 전국에 있는 좋다는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니고, 좋다는 약은 다 해먹이고…. 하지만 그 어떤 위대한 의사에게 치료받고, 명약을 복용한다 한들 죽음은, 쓸데없는 수고라고 비웃듯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작별인사도 미처 하지 못하고 그를 보내야 할 때가 언제든 찾아오고, 사별과 함께 두려워하던 허망함과 위태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려 즐겁도록 만들어 주고, 남은 이들의 허망함과 위태함이 덜 하도록 보살펴 주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입니다. 오랜 투병과 고통을 겪고 이제는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찾아온 말기 암 환자들과 그런 그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힘을 기꺼이 내어주는 봉사자들과 의사들, 따뜻한 말과 마음이 오가며 호스피스 병동에는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든 온기가 감돕니다. 생의 끝, 밑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서서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해진다고 합니다. 평생 죽음을 연구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절망(우울)-수용'이라고 합니다. 즉, 부정과 분노와 절망의 부정적인 단계들만 거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활짝 웃으며 떠날 수 있는 '수용'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수용 단계에 이르는 며칠 동안은 환자와 가족들 모두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금자 할머니는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평생을 주고도 모자라 늘그막에 아프면서까지 베풀고 싶어하시는 인자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주저하며 가족들이 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도 가족을 걱정하며 위로해주시던 착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연 금자 할머니가 변했습니다. 생전 하신 적이 없는 욕을 자신의 남동생에게 퍼붓질 않나, 식사가 5분이라도 늦으면 벼락같이 호통을 치셨습니다. 평소의 인자하던 금자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모습에 놀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얼마 정도 금자 할머니를 마음으로 걱정하며 대해주었더니 다시 인자하던 금자 할머니로 돌아왔습니다. 맞아요, 할머니. 금자 할머니는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지나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하필 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위의 모든 것이 싫어시고 짜증스러워 지는 단계지요. 한평생 억눌러온 한(恨)과 고통을 마음껏 표출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늘 남에게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오면서 금자 할머니의 마음에는 자그마한 상처들이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었겠지요. 부정과 분노와 타협과 절망의 단계를 거치며 이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는 것입니다. 상처들을 표출하고, 덩어리를 해체하고 나서야 '수용'의 단계에 이르러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욕하는 환자가 좋다. 화는 울거나 웃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찾아오는 분노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평생 동안 가슴 밑바닥에 축적된 슬프고 시리고 아픈 상처들, 옹이로 박인 그것들은 분노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풀리고 사라질 수 있다. (113)

 

금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폐암 말기이셨던 당신께서는 투병 생활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셨지요. 당신께서는 자신의 병을 아시고 부터 얼마 간 많이 예민해지시고 짜증을 부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덩달아 화를 내었습니다. 이 책을 조금 일찍 읽었더라면 할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마음의 일들을 들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옵니다.

 

언젠가 당신의 약봉지를 보다가 '마약'이라고 써진 글자를 보며 깜짝 놀라 질문을 했던 적이 있지요. 마약을 왜 드시느냐고, 마약을 약으로 드시는 것이냐고. 당신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해답을 또 이 책을 읽으며 찾았습니다. 당신께서 드셨던 약은 바로 '모르핀'이겠지요. 암 환자에게는 암성 통증이 따른다고 합니다. 1에서 10까지 단계가 나뉘는데 어떤 단계는 버티기 힘든 통증은 맞겠지요. 이 암성통증을 이기는 데는 모르핀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폐암이셨으니 숨 쉬는데 고통이 따랐을 것입니다. 매일 밤마다 기침을 하는 당신을 보며 왜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과연 못했을까요, 안 한 것일 겁니다. 심지어는 짜증마저 부렸습니다. 조용히 좀 하시라고……. 당신의 고통을 모르고 내뱉었던 말입니다. 우리의 말에 얼마나 상처받으셨을까,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말기 암 환자들, 아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핀'도 호스피스도, 항암 치료도, 명약 투여도 아닌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이라고 느꼈습니다. 명희 아주머니는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되어 돈이 많았지만 그 행복을 누릴 새도 없이 암에 걸렸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진 채로 호스피스 병동에 나타난 그녀는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통증으로 아파하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그녀를 앞에 두고 가족들은 허구한 날 싸웠습니다. 주된 내용은 유산 문제였습니다. 명희 아주머니의 돈을 더 많이 물려받기 위해서 가족들은 싸우고, 소리 지르고, 머리채를 잡았습니다. 그것도 아주머니 앞에서요. 아주머니는 그런 싸움 장면을 앞에 두고 늘 고개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그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이 부끄럽고,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하루는 아주머니의 남편이 찾아왔습니다. 또 싸웠습니다. 이제는 싸우다 말고 아주머니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당신이 잘못 키워서 애가 저 모양이잖아!" …….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과연 사람이라면 죽어가는 자를 앞에 두고 저주하는 욕설을 퍼붓고, 싸우고, 화를 낼 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이자, 자신들을 낳아주고 헌신하여 키워준 엄마입니다. 명희 아주머니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무시와 멸시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얼마나 불행하고도 슬프고도 안타까운 죽음입니까.

 

삶은 힘들고 암과 함께 가는 삶은 더 힘들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 마디, 따뜻한 스킨십이 환자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외로움을 치유해야 한다. (189)

 

평생 힘들었던 삶, 마지막 길마저도 힘들게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 저는 늘 후회하고,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당신의 고통 한 번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 손을 뻗으셨을 때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드리지 못한 것, 축복의 기도 한 번 올려드리지 못한 것, 셀 수 없는 많은 후회와 죄송함이 밀려옵니다. 저도 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언젠가는 호스피스 봉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저와의 약속이지만 이 죄송함을 가지고 있는 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죽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요.

 

 

 

(+) 청림출판에서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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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7-1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차분하게 아주 잘 읽었어요. 뭐라고 좀 댓글을 달아야겠는데, 그냥 잘 읽었다고만 말하고 가려다가,,,
일단, 소이진님은 너무 어렸을거에요. 가끔씩 그렇게 할머니 한 번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안녕요.

p.s. 이승우 작가 리뷰라고 처음에 생각했어요. -- 오늘 알라딘 서재가 엄청 조용해요???

이진 2012-07-15 12:38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은 댓글 달지 말라고 쓰는 글이잖아요? ㅎㅎㅎㅎ
막 진지하고, 슬프고 이런 글... ㅋㅋㅋㅋ
진지해서 댓글 달면 안 될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제가 아이님하고 댈러웨이님한테 받잖아요.
두 분 글이 너무 진지하고 수준 높아서.. 막 ㅋㅋㅋㅋㅋ

주말되면 알라딘 축축 가라앉아요. 이상하죠?
알라딘이 학교나 회사하고 비슷한가봐요.
주말에는 안 해야할 거 같고 ㅋㅋ

cyrus 2012-07-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님이 인용한 첫 문장, 저도 보는 순간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어쩌면 인간이 타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곁에 있던 타인이 남기고 간 상실감으로 비롯된 허무함이 아니라 예전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낀 행복했던 경험과 기억들이 다시 재현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대한 슬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실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단순히 인간의 영이 육신을 남긴 채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 친할아버지랑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시간은 기억하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실감나게 반응한 적도 없고요. 그래서 막상 지금 곁에 있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정서적으로 큰 상심의 고통을 겪지 않을까 저 스스로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이진 2012-07-15 12:52   좋아요 0 | URL
이승우의 책을 읽다보면 저런 문장들이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저는 밀려오는 감동과 명문장들에 어쩔 줄 몰라하며 펜과 메모지를 들지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그가 떠나고 눈물이 날 때는 그가 추억될 때 잖아요. 그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슬픈게 아니라, 맞아요, 그로 인해 다시 웃을 수 없고 그가 빠져나간 기억이 허망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죽음은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달까. 죽음은 아직 막연하고 어렵게만 다가오고 있어요. 죽음을 완벽히 이해하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네요. 좋겠어요. 저는 중학교부터 벌써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두 번이나 겪었어요. 죽음에는 면역이 생겼어요.

2012-07-15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5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7-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글이 참 좋아요.
할머니가 저 세상에서 마음으로 읽으실 것 같아요.

이진 2012-07-15 12:4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푹 빠져서 글 써봤어요.
리뷰도 오랜만이구요. 은희경의 소설도 써야하는데 말이죠.

그러시겠죠...?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2-07-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리도 멋진 글을 쓸 수 있죠? 대단하삼. 슬프게 하는 건 기억이라는 대목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벤지란 강아지가 죽고난 뒤 한동안 벤지가 좋아하던 KFC에 가지 못했고, 벤지가 즐겨먹던 흰우유를 못마셨답니다. 그거 보면 벤지가 즐겁게 먹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글고보니 저희 할머니도 요양원에 계시네요.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잊혀져서,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해서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요.

비로그인 2012-07-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가요, 소이진님. (마치 우연히 처음 들른 것처럼-)
한 마디로 끝내려고 했는데... 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여기서 줄일게요.

jo 2012-07-1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할머니는 아니고 증조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어요. 심하진 않고요. 약을 매일 복용하셔야 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가까이 살면서도 공부한답시고 1달에 1번도 뵈러 가지 않는 제가 떠오르네요. 용돈 주실때만 좋아라 했던 제가 부끄럽네요. 진짜 있을때 잘해야 하는데.. 내일 찾아뵈러 가야겠습니다. 근데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