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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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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었습니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 요즈음 해가 길어졌습니다. 퇴근 시간 지하철을 견디고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날이 밝습니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흔한 말이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별이 떠 있었습니다. 스케치북에 별을 그리면 왜 항상 노란색으로 칠했을까요? 별은 노랗다, 는 불변의 공식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본 별은 하얬습니다. 파르스름한 배경에 콕 박힌 흰 점, 수명이 다 한 형광등 불빛처럼 때로 흔들리는 불빛이, 별이었습니다. , 그런데…… 저건 별이 아닙니다. 초저녁 동쪽 하늘에, 이런 밝기를 유지할 수 있는 별은 없습니다. 맞아요. 금성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그것보다는 작고 희미하지만 역시 밝은 흰 점이 놓여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건 목성이었습니다. 지구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멀리 떨어진 두 개의 행성이 별자리처럼 나란히 빛났습니다. 신기하네. 신기한데 이상했습니다. 저토록 조그마한 흰 점이, 실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물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반대로, 어마어마한 원주를 가진 두 행성이 한낱 먼지처럼, 스케치북에 그려진 노란색의 별보다 작은 크기로 보인다는 게, 그것을 한눈에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쯤에서 리처드 파인만의, 그 유명한 문장을 빌리겠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입니다. 먼 우주에 나가 뒤돌아보자,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주광선 위에 놓여, 신호가 없었더라면 발견할 수도 없었을 만큼 작은 점이었습니다. 우주는 얼마나 광활한가요.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서 있는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요. 김수영의 시를 빌리겠습니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었던 수차례의 전쟁과 막대한 부, 권력, 그리고 명예.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은 것이었나요. 우리의 일생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징병되어 잃은 목숨, 권력에 휘둘리고 명예에 짓눌리는, 그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무가치한가요. 금성과 화성조차 한낱 먼지로 보이는 이 우주에서, 한 사람의 육체는 무엇으로 보일까요. 신은 우리를, 너무 작은 탓에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은 성공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기술을 연마하고, 학문을 닦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고, 여차하면 밤을 새기도 합니다. 지난한 노력을 겪은 끝에 그들은 무엇이 되나요. 인간은 특별해지길 소망합니다. 큰 부자가 되길,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길, 추종자를 거느리는 미남자가 되길,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도합니다. 굳이 긴 문장들을 끌어오지 않아도, 우리의 삶이, 일생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우리가 우러르는 부와 명예와 권력의 소유자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황정은은 소라나나나기,의 세 표본을 통해 이를 증명합니다. 아니, 표본은 더 많습니다. 애자, 순자, , 소라와 나나의 할머니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는 아픔을 가졌습니다. 겉보기에 그들은 순탄하고, 어쩌면 특별한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고, 소위 막 나가는 삶을 저 또한 꿈꾼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 대신 도시락을 싸주는 이웃이 있고, 일본 유학을 다녀와 본인만의 가게를 차려 소소하게 꾸려가는 삶, 따뜻하고 소박합니다. 한강의 소설을 빌리겠습니다.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 데예요.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예요.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우린 절반의 진실밖에 보지 못하는 건가요? 아빠가 보는 건 내가 못 보고, 내가 보는 건 아빠가 못 보잖아요.


인간은 자신의 뒷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뒤통수의 머리카락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혼자서는 볼 수 없습니다. 황정은은 이들의 뒷모습을 담담히 묘사합니다. 이를 보지 못하는 한, 피 흘리는 달의 뒷면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보잘것없고, 하찮지 않겠느냐고, 아프게 질문합니다.



인간은 외롭습니다. 모든 인간은 결국 하나뿐인 부족으로 멸종해갈 뿐입니다. 태어나는 것도 혼자, 죽는 것도 혼자입니다. 죽으면 그뿐인 인생이므로 허망합니다. 죽음마저도 보잘것없고, 하찮은, 그것이 인간입니다. ,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요? 속절없이 무너지고, 가라앉고, 보잘것없고 하찮은 죽음을 맞이할 바에야,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요? 아닙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너에게 입을 맞춰 보지도 못했을 거니까요.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매일 아침 조달한 고등어로 만든 초절임을 맛있게 먹고, 한자리에 모여 만두를 빚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종이로라도 꽃을 접어 벽을 꾸밀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가요.



황정은은 끝끝내 고백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단한 것을 이뤄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혼자여도 괜찮습니다. 사랑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아파도 괜찮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제 옆에는, 그렇게 사는, 함께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피 흘리는 뒷면을 가진, 하나뿐인 부족으로 사라져가는, 누군가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럼에도,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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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시인의 죽음 - 자전적 에세이, 단편소설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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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의 산문집을 읽은 적이 있다. 장석주의 추천사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수시 접수가 모두 끝나 수능을 앞둔 시기에 산문집의 첫 장을 펼쳤다. 어려운 어휘와 낯선 문장, 집결되지 않는 내용에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이국땅의 묘사를 눈앞에 그려내기 힘들었고 전혜린이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그림을 보듯 글자를 읽어 내려가기 일쑤였고 책 자체도 지루하다고 판단해서 독서를 중지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책의 글귀들은 물론 인터넷에서 일별한 전혜린의 흑백 사진까지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 기묘한 현상에 이끌려 수능을 치르고 나서 산문집을 다시 읽었다. 그렇게 하여 내가 내린 전혜린에 관한 결론은 그녀가 천재가 맞다는 것이다. 천재란 누구를 칭하는 단어인가.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몇 분 만에 풀어내는 사람 혹은 아인슈타인처럼 세계의 사고를 바꾸어 놓을 과학적 발견을 성취한 사람이 천재인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수재일 뿐이다. 천재는, 좁게 말해, 문학에서의 천재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문학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깨어 있는 자가 천재인 것이다. 전혜린은 세 가지 요건 중 특히 마지막에 충실했던 자였다. 갇혀 있지 않고 외국으로, 이국으로 자꾸만 떠나는 그녀는 떠나는 이유를 떠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독일 청년들의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알프스에 올라 둥근 달을 보며 경탄을 표하는 감성. 그녀의 이상적인 뜨거움과 열정은 가히 아름답다. 사실 그녀의 글이 다듬어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글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이상과 감각에 솔직하기 때문이다. 가감 없이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기에 그녀가 더욱 멋있어 보인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집을 읽으며 전혜린에게서 느꼈던 것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나는 이 산문집을 읽으려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 완전히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는데, 한강 덕분이다. 한강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기획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서재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끝에 그녀 인생의 책 몇 권을 소개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임철우 등의 저명한 작가를 꼽던 그녀는 외국인 남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책 한 권을 들어 보이며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매력이 있는 작품이구나, 하고 넘겼던 기억뿐이다. 한강이 인상적이었던 대목으로 꼽은 장면만은 오래 남아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을 과제 도서로 만났을 때 꽤 기뻤다. 그리고 그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파스테르나크의 글은 몹시 어려웠다. 번역된 지 오래 되어 글이 딱딱하기도 했고 파스테르나크가 읊조리는 이야기들이 생소한 탓도 컸다. 문장 자체는 상당히 유려하면서 생생했으나 묘사 위주의 스타일에 애를 먹었다. 나는 감정선을 따라 글을 읽어내는 데 익숙해 있기에 묘사적인 글에 취약하다. 즉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집은 여러모로 내게 불편했고, 이는 전혜린을 처음 접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래도 과제를 해야 했기에, 라는 형식적인 이유로 억지로 붙들고 읽었더니 난해함이 차츰 걷히며 파스테르나크의 감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게 죽은 피부 조직에 빨간 점의 핏기가 돌 듯 글이 내게서 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시인의 죽음을 요약하면서 한강은 만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만큼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파스테르나크가 만난 사람들이다. 작곡가 스크리아빈,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첫사랑의 여자, 친구 G, 그리고 마야코프스키까지.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순행적으로 자기가 겪어온 기억의 길을 밟아나간다. 한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더 눈길을 주었다. 파스테르나크가 이별을 대하는 방식은, 그러니까, 참 아름답다. 파스테르나크가 전혜린과 비슷한 범주의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그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나 스크리아빈을 통해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밤,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한참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음악과 작별을 고한다. 한강의 표현대로 깨끗한 마음의 움직임, 어떻게 보면 숭고함까지도 드러나는 장면이다. 스크리아빈의 조언을 듣고 그는 독일에 가 철학 공부를 시작한다. 거기서 첫사랑의 여자와 재회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무턱대고 청혼의 말을 던지지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여자를 보내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는 생각한다. 철학 또한 내 길이 아니구나. 내가 철학이라는 명목으로 하고 있는 것은 문학이구나. 그렇게 그는 첫사랑의 여자와도, 철학과도, 독일과도 이별했다. 독일을 떠나며 그가 한 말이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철학이여 안녕, 젊음이여, 안녕. 독일이여, 안녕. 이처럼 파스테르나크도 이별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갇혀 있지 않고 자신을 자꾸 돌아보며 더 나은 길을 추구하는 모습. 그 과정에서 비치는 순수하고 깨끗한 감각들.


파스테르나크에게 가장 강렬했던 사람은 미래파 시인이었던 마야코프스키였다. 파스테르나크는 마야코프스키의 단어 하나하나에 감탄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열광했다. 삶을 바치고 싶었노라 기술했을 정도로 마야코프스키를 숭배하다시피 대한 것을 보면 애정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천재는 공존할 수 없다는 법칙에 의해 두 사람은 조금씩 어긋난다. 파스테르나크가 마야코프스키에게서 이해하기 힘든 점을 몇 가지 발견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두 개의 개성이 치열하게 맞붙는 동안에도 마야코프스키의 시는 그를 감격하게 했고 그런 의미에서 파스테르나크는 결코 그에게서 분리될 수 없었다. 파스테르나크가 마야코프스키를 탐닉했던 또 다른 이유는 정치성이었다. 마야코프스키는 혁명 시인으로 평가될 만큼 사회 변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파스테르나크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이는 파스테르나크가 마야코프스키를 우러러보는 이유가 되기도 했으며 그 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는 마야코프스키의 권총 자살로 끝난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이별은 슬픔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절망이었다. 파스테르나크는 절망에 잠식하지 않고 그것을 글로 승화했다. 시적이면서도 유려한 글은 파스테르나크의 마음이 이리저리 흐르는 듯 느껴진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이러한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다. 절망을 노래한 작가. 거창한가? 아니,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파스테르나크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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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5-08-28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소이진님이다!! 어찌나 반가운지 선댓글 후감상 하게 되네요^^ 잘 지내죠?
파스테르나크에게서 왠지 오도가도 못하는 우울한 지식인의 초상이 엿보이는 것 같네요.
(첫줄과 뒷줄의 시차는 리뷰를 읽은 시간만큼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아이리시스 2015-10-29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뒤늦게 와서..알겠..저도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손 번쩍!)
아.....................학교는 어때요, 잘지내는 거죠?^^

사랑이 2016-08-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본에 이어 최근에 러시아본 번역《안전 통행증. 사람들과 상황》이 나왔다. 모르고들있는걸까?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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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글을 읽는 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한강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마음의 흔들림을 뜻하기 때문이다. 소설에 있어서 글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대부분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주가 되어 소설은 크게 굴곡지거나 평탄하거나 하는 다양한 형태를 띤다. 한강에게 있어 주는 감정이다. 혹은 감각. 한강의 글에 유독 이탤릭체의 독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강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두운 사람이다. 지병을 가지고 있거나 몸이 허약하거나 그도 아니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다. 이들에게 삶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척추가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휘어진 채 한강의 인물들은 한 발 한 발 힘겹게 나아간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아간다, 이지만 지금은 힘겹게, 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전술했다시피 한강은 이들의 내면의 흐름을 좇아 글을 써내려간다. 이들의 행보보다는 내면과 독백, 회상과 깨달음에 집중하기에 한강의 글에서는 인간의 감정들이 뚝뚝 묻어난다. 거대한 고통에 맞닥뜨려 고뇌하고 사념하는 인물들의 사유(思流)를 따라가는 것은 독자에게조차 힘겨운 나락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읽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강의 글을 읽음이 곧 마음의 흔들림이라는 말의 연유는 이것이다.


따라서 한강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인물들이다. 한강의 인물들을 정의해본 적이 있다. 갓 태어난 어린 새의 팔딱팔딱 뛰는 심장 같은 사람들,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광원을 감싸고 있는 유리막, 그 유리막을 그려낸다면 바로 한강의 인물들이라고 끼적인 기억이 난다. 한강의 인물들은 병들고 허약한 사람들이니만큼 연약하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힘겹고 지쳐 도무지 다른 것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삶은 결코 그들의 소망처럼 쉽지 않다. 부닥친 사건을 견뎌내는 사이 그들은 생기를 잃고 야위어간다. 손으로 움켜쥐면 곧바로 터질 듯 약한 아기새의 심장처럼,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입을 얇디얇은 유리막처럼. 이렇게 소설을 끝내었다면 평론가들은 한강을 허무주의자의 허세쯤으로 취급해 하대했을 것이고 독자들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거두었을 것이다. 한강의 인물들은 자신을 짓누르고 앞을 가로막은 삶에 투쟁한다. 김수영의 풀처럼 쓰러지고 짓밟혀도 일어난다. 당장의 부족한 월세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세면대의 컵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져 있으면서도 그들은 삶에 대한 의지를 주장한다. “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치고 아등바등 살(같은 책)”아간다. 삶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쟁취하려고 하는 것일까. 한강의 소설들은 이에 관한 질문의 제출과 자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주체가 한강의 인물들이 아닌 바로 한강 자신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한강이 그려내는 비슷한 이미지의 여성들은 한강 자신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면이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개성론의 시로 거론할 수 있다. 개성론이란 작가와 시적 화자가 일치하는 경우를 일컫는데 고백적이며 자전적인 성격을 띤다. 한강의 이 첫 시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집이 개성론의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늘 보였던 연약하지만 투쟁하려는 사람들의 모습, 즉 작가 자신의 형체가 시에서도 드러난다. 자화상. 2000. 겨울이라는 시로써 이 시집의 시적 화자들은 곧 작가 한강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집은 총 5부로 나뉘어 있는데, 각 부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인간 존재에 관한 성찰이다. 한강에게 인간이란 살아감의 고통을 안고 있는 생물이다.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살아가면서 의미를 얻는 존재로 인식된다. 고로 시집의 화자들은 하나같이 삶의 고통을 노래한다. “그렇게 부서지고도”(피 흐르는 눈 3) 살아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차라리 담벼락 밑에 뒹구는 돌멩이나 사물, 죽어 해골이 되기를 소망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통을 끌어올리며 한강은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몇 개의 이야기 12)은 단단한 슬픔을 적어낸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환멸이지만, 특히 한강은 언어적 고통에 마음을 쓰는 듯 보인다.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해부극장 2부분


 

이 시의 화자는 자기가 선천적으로 소유한 혀와 입술을 혐오한다. 화자는 혀와 입술에서 발화되는 말, 즉 언어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다. 인간의 고통은 어쩌면 최초의 언어에서 기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가 창조되고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사고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고통이 발아한 것이다. 언어 자체에서 드러나는 고통도 있다. 언어란 칼보다 폭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고 가면보다 두터운 가림막이 될 수 있다. 이를 깨달은 화자는 언어를 두려워하는 듯 보인다.


한편, 언어라는 것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언어를 가졌기에 발생하는 고통은 곧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느끼는 고통인 것이다. 인간 존재로서의 고통은 또 어떠한가. 한강은 정확히 시집에서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추측건대, 그것은 상실로 인한 고통이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서 화자는 저녁밥을 먹으려다 말고 흰 공기에 당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화자는 무언가 영원히 지나가버린 것을 깨닫는다.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는 그것의 정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상실로 인한 마음의 공허와 고독이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읽어낼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영원히 흘려버리거나 지나쳐버리는 행위임으로 인간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고 부족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한 불균일의 삶은 인간을 두 동강 내고, 세 동강 내고, 종내에는 조각들로 어긋나게 한다.


그래서 한강은 은연중에 살아간다는 것에서 탈피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파란 돌)라는 고단한 현실의 삶을 견디다 못한 화자의 하소연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때 한강은 한 가지 놀라운 법칙을 발견한다.


 

십 년 전 꿈에서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파란 돌부분


 

죽어서 본 예쁜 파란 돌을 줍기 위해선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죽음의 홀가분함은 실체가 없으며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인간이란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얻고, 살아가면서 아름다움을 만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 가장 환한 것과 가장 어두운 것이 공존할 때에야 인간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이때부터 한강은 살아간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화자들의 입을 빌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지를 표한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꿈으로 인해 한강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의 삶, 덤으로서의 삶을 살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긴 제목의 시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에서 한강의 거듭남을 볼 수 있다. 화자는 살아 있음의 고통을 느끼는 도중 어슴푸레 빛”(피 흐르는 눈 3)나는 살려줘, 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삶의 고통을 견디거나 극복하려는 면모를 보인다. 강원래의 공연을 보고 쓴 시 휠체어 댄스의 화자는 눈물도, 악몽도 자신을 좌절시킬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삶 앞에 의연한 태도를 드러냈다. 가장 격렬한 투쟁은 조용한 날들 2에 쓰여져 있다.


 

찌르지 말아요 // 짓이기지 말아요


 

1초 만에 /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갔다


 

―「조용한 날들 2부분(강조는 작가)


 

이 시의 화자는 한강의 모습이 투영된 여성일 테지만 말하고 있는 것은 달팽이다. 비오는 날 창문을 열심히 가로지르는 달팽이는 다가오는 화자에게 부탁의 말을 던진다. 마치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들이 신에게 자비를 구하듯 달팽이는 자신의 안위를 화자에게 강구한다. 주어진 삶, 운명에 구속되어 타자 혹은 초월적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나약한 존재. 그러나 달팽이는 내면의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투쟁, 달팽이는 극복하여 싸움으로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한강이 바라보는 인간 존재 또한 그런 것일까. 삶의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투쟁할 때 성장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인 것일까.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통과 투쟁해야 하는가. 한강은 그 방법으로 침묵을 제시한다. 인간의 고통을 잉태하는 혀와 입술을 제거하여 단단한 밀봉”(저녁의 소묘 3유리창)을 배우는 것이 고통을 견뎌내고 고통과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언어의 절제로서 고통의 기원을 절단하는 것.


그리고 인간은 고통과 투쟁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오래 성찰해야 한다.


한강의 시에는 당신이나와 같은 청자가 종종 등장한다. 이는 한강이 충고의 말을 건네는 특별한 대상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신이나 는 한강의 운명, 곧 한강 자신이다. 한강의 시들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였고, 그것은 자기반성이 된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연구하면서 한강은, 시의 화자들은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에 파고들게 된다. 그 경지에서 한강은, 시의 화자들은 희망의 부재를 체화하고 삶이 휘두르는 칼날에 오히려 몸을 내던진다. 이는 인간으로서 고통을 초월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작가로서의 사명으로 읽히기도 한다.


한강도 물론 시로 등단한 어엿한 시인이지만 역시 나는 소설을 쓰는 한강이 좋다. 그러나 한강의 시에는 한강의 소설에 조금 부족한 고요와 평온이 있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새벽에 들은 노래 3) 떠도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고 읊조리는 한강은 어쩐지 숭고해보이기도 한다. 한강이 이 숭고한 작업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몰래, 천천히, 한 글자씩 써내려가다가 십 몇 년 후, 아무렇지도 않게 묶어 두 번째 시집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좀더 원숙한 한강의 시를 접할 수 있을까. 삼십 대, 그 반짝일 순간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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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2015-08-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소이진님의 글은 진짜 감동이에요. 저도 고등학생이 되면 이진님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요. 고등학교 들어오고 제대로 된 책을 완독한게 정말 얼마 안되요. 막막하기만 하죠 뭐 즐거운 대학생활 하고 계시길 바라요. 보고싶었어요 이진님 ㅠ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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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알고 있다. 내가 죽음에 관하여 얼마나 약한지.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척 연기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혼란과 공허감을 얼마나 견디지 힘들어하는지 너는 안다. 혹여 그 죽음에 좁쌀만큼의 희망이나 행복이 비칠 때 나는 미치기 직전에 이른다는 사실을 너는 안다.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부릅뜨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너는 수없이 보아 왔다. 너는 내 등을 다독이거나 어깨를 붙잡거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거나 떨리는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너는 묵묵히 내 옆에 앉아 있다. 내가 손을 뻗어 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엉 울 때까지 너는 망연히 앞만 바라보고 있다. 무심히 너는 내 팔을 잡아 네 몸쪽으로 밀착시킨다. 나는 너의 손길이 따뜻해서 너에게서 몸을 떨어뜨린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너의 행동을 따라 한다. 앞을 본다.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은 높은 건물을 응시한다.

너는 강하다. 세상의 질감을 만져가며 느리게 걸어가는 너는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의연하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천진한 문장을 분쇄하여 흩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내가 틀렸다. 그들도 틀렸다. 너는 강하지도 의연하지도, 그렇다고 초연하지도 않다. 너는 나보다도 그들보다도 여리다. 너는 나보다도 그들보다도 약하다. 너를 강해 보이게 만드는 것은 난도질당하여 피가 철철 흐르는 네 작은 심장을 감싸고 내려앉은 수 겹의 딱지이다. 너의 눈물과 피가 더는 보기 싫었던 시간이 내린 단단한 더께이다. 너는 무수한 깊은 상처가 무디어진 결과이다. 너의 심장을 건드리는 고통은 더는 없다. 


네가 우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너는 불평하거나 투정부리지 않는다. 너는 내게(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의지하려 하지 않고 네 감정을 철저히 숨긴다. 너는 늘 받아주는 쪽이었다. 반듯이 한자리에 서서 나의 고통을 너는 말끔히 흡수하여주곤 했다. 나는 네게 미안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고통을 덜어내고 싶었기에 나를 네 앞에 모조리 뱉어내 왔다. 너의 시선은 내 말을, 단어들을 지켜보듯 우리 사이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는, 말이 없던 네가 입을 열었다. 공간이 젖어 있어. 나는 그 후로 네게서 떨어지는 눈물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길을 걸어갈 때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 입에 욱여넣을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마다 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조용히 네 감정을 배출하고 있던 것이다. 무엇이 너를 이토록 은밀히 울게 하나. 어린 너를 장악하고 완전히 바꾸어버린 그 봄인가. 네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시리디시린 그 봄인가.


네게 너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무어냐고 물어보았을 때 너는 허기라고 답했다. 그 봄 이후로 너는 먹는다는 것에 치욕을 느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손을 바삐 움직여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의무가 역겨웠다. 너는 굶을 수 없었으므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목을 넘기기 전에 뱉어내기 일쑤였다. 쌀알은 모래 같았고 김치는 최루탄 같았다. 너는 수척해졌고 깡말라갔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죽음에 결부된 슬픔을 끝까지 견뎌보자고 마음먹은 나를 번번이 굴복시킨 것이 허기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장례식장에서, 어린 나는 새빨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육개장을 함부로 퍼먹으며 엉엉 울었다. 속에 생긴 빈자리에 토란 줄기와 퉁퉁 불은 쌀알이 박혀 영영 소화되지 않고 내 신체를 이룰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났다. 나 자신에게서 욕지기가 났다. 먹는다는 것은 너무도 일상적인 행위이기에,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진심으로 애도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죽음이 일상이 되는 것 같아서 밥숟가락을 들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허기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부쳐준 올배쌀을 공기에 담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네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끔 죽은 이들을 생각한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입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있다. 음식물의 즙이 입천장으로, 혀로 배어들 때 나는 죽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쪽빛으로 푸르렀던 주검의 얼굴, 뇌가 멈추었지만 아직 심장만은 남아서 뛰고 있는 평온한 얼굴, 중력으로 늘어난 피부 위에 아로새겨진 주름이 가득한 얼굴. 얼굴에 놓인 표정은 모두가 어둡다. 찡그려져 있다. 마치 나는 힐책하듯. 나는 입에 든 것을 뱉고 싶어진다. 토하고 싶어진다. 죄의식을 내게서 떨쳐내고 싶어진다.

악취미…… 라고 너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나는 너를 언제나 아파한다. 나는 너를 염려한다. 네가 세상을 등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면 나는 가슴에 무언가 마치는 것이 느껴진다. 너를 어떻게든 돌려놓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게 너를 더욱 상처입히는 일 같아서, 사실 그것은 너를 위한 행동이 아닌 나를 위한 행동인 것 같아서 나는 매번 포기한다. 너는 내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한마디씩 너를 꺼낸다. 너의 봄을 내게 한 덩어리씩 꺼내 놓는다. 너의 목소리는 나직하다. 떨림이 없다. 시를 낭송하듯 무감각하게 너를 읊는 네 모습은 결기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 순간이 아프다. 너를 알고 싶으면서도 너를 아는 것이 두렵다. 무섭다. 너의 목소리가, 너의 단어들이 활처럼 내 심장에 와서 박히므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피를 흘리는 셈이 된다. 생각한다. 내가 흘리는 피의 양은 네게 비하면 얼마나 적은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고통은 네게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가.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 회의한다.

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범죄자를 구타하고 불태워 종내 죽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끔찍한 영상이라며 무심코 네게 보여주었다. 영상이 중반쯤까지 재생되었을 때, 각목에 맞아 튀어나온 자신의 눈알을 보고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사내가 구타하는 자의 다리를 힘겹게 붙드는 장면이 눈에 비치었을 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너에게 이걸 보여주다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너를 돌아다보았다. 너는 담담히 영상을 보고 있었다. 너의 시선은 맞는 자에게도 구타하는 자에게도 향해 있지 않았다. 너는 눈알을 보고 있었다. 사내 옆에 떨어져 흙이 잔뜩 묻은 눈알. 이제 제구실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된 그것을 너는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영상을 종료하지 못했다. 사내는 그사이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눈알을 쥐었다. 사내의 숨이 외마디 신음과 함께 끊어지고 나서야 너는 몸을 움직였다. 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너의 눈은 공허했다. 너의 뇌가 들여다보이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너의 눈은 빨갰다. 어찌나 힘을 주었으면 실핏줄이 터졌다.

그리고, 쏟아지는 말들.

나는 그것을 잊었다. 잊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너의 고통, 그네들의 고통, 나와 비견할 수 없는 그것을…….

 

나는 떠오르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작은 목소리로 나직이 그들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읊조린다.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는 건 일종의 초혼(招魂) 의식이기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혹여 그가 왔을까. 기척이 느껴질까. 너의 어머니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네가 그곳을 떠난 뒤였을 것이다. 네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한 채 대문을 나왔다. 그녀로선 최고 속력이었다. 느릿하게 대문을 나온 뒤 네가 걸어갔을 땅의 자취를 눈으로 훑었다. 네가 남기고 지나간 체취를 감지한다. 그녀는 쉰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녀는 외로우시다. 그녀는 매일 자기를 책망한다. 너는 네가 변한 것처럼 그녀 또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네가 잘못했단 말은 아니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나는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우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는 얼어붙는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포기한다. 어설픈 말을 건네기보다 너를 흉내 내 가만히 있기로 한다. 우는 네 곁에 함께 있어주기로 한다. 언젠가 네 상처가 모두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고 새 살이 돋는 그 날까지 동행하기로 한다. 네 이름을 자꾸 부르며 너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기로 한다. 네가 나를 돌아보면 봄의 시린 풀빛을 지울 수 있는 따듯한 미소를 너에게 건네주기로 한다. 내게 사원이 된 네 속에 나의 촛불이 아른거리면 나는 그제야 걷는 것을 멈추기로 한다. 다짐한다.

 

나는 강둑에 앉아 있다. 내 시야를 가로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눈앞에 강이 흐른다. 촉촉한 소리를 내며 강이 흐른다. 자유롭다. 자유다. 자각하지 못했던 자유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는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슬픔이 아니다. 양심. 그렇다, 양심이다. 고개를 들고 입술을 깨물고 다시 운다. 네 손길이 내 어깨에 닿는다. 너 또한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다. 너는 위대하다. 너는 숭고하다. 너는…… 너를 지킨 사람이다.

 

군인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누구도 너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눈을 감고 묵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를 지킨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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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4-06-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고사 좀 있으면 시작이죠? 잘 보세요.화튕

루쉰P 2014-06-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공부 잘하고 계시죠. ㅋ
저도 서재에 왔어요 침묵을 깨고 ㅋ
 
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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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세차다. 창문이 으스러질 듯 몸을 흔든다. 귓바퀴를 건드리는 파열음이 거세어지자 나는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내다본다. 아스팔트 도로에 은행잎이 한가득 떨어져 있다. 비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차와 사람에 밟혀 뭉개어지며 쓸쓸히 버려져 있다. 창문 틈으로 비치는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겨우 숨을 이어가는 은행잎을 측은히 여기며 나는 팔짱을 낀다. 저항하듯 바람은 더욱 거칠어진다. 나는 괜히 소음을 뿜어내는 제습기를 발로 툭툭 건드린다.






  의자에 앉아 몸을 비튼다.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눈을 감는다. 말러의 2번 교향곡을 재생시킨다. 숨죽인 밤, 너울 치듯 몰아오는 어둠의 물결 틈을 '부활'로 파고드는 음악. 쏟아지는 음표의 무리에 나는 이미 무너진 몸을 가누지 못한다. 산산히 조각난 몸. 활이 현에 몸을 비빌 때마다 떨리는 음, 심장을 베는 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에 나는 진저리친다. 나는 왜 매일 실패하는가. 나는 왜 패전한 군대처럼 무릎을 꿇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의 끝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회색 거인의 거대한 몸뚱어리는 과연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걸어갈 수 있을까. 담장위를 걷는 소년같이 조심스레 무거운 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창문 틈으로 바람이 소리를 지른다. 넌 안 돼. 나의 억센 팔로 너의 몸을 옭아매었어. 덩굴 줄기가 잘리지 않는 한 너는 내 족쇄를 벗어날 수 없어.


  장중한 음의 파도에 사람의 목소리가 새어들기 시작하면 나는 끝내 몸을 쓰러뜨린다. 고통의 시작이자 절정, 그러나 부활의 징조인 그것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떨림으로 울려온다. 세상을 초월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 그때의 감동-팀파니와 북을 마구 때리고 온갖 금관악기를 폐가 터지도록 불어댄다 해도 결국 표현하지 못할 어떠한 폭발을 나는 글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여리면서도 폭발적인 역설과 환희로 범벅된 말러의 음악은 한강의 손을 거쳐 한 편의 장편소설로 변화하였다. 말러의 교향곡이 악장별로 나뉘어 글에 녹아든, 음악 그 자체의 소설. 소설의 짜임과 철근 같은 이야기를 제쳐두고 작곡하듯 단어와 문장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긴 신체소설. 오로지 감각으로 작문에 임하여 감정을 제출한, 결기와 치기가 단단히 뭉쳐진 소설.









그 무렵, 때로 늦은 시간에 인주는 나에게 전화했다.

첫 마디는 언제나 정희야,였다.


(…)


정희야, 자니?

얘기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

나쁜 일이라고도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없어.

민서가 왔어.

어제. 짐 다 싸서 데려왔어.



정희야.

…민서 못 만나고 지낸 몇 달 동안,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 남김없이 파괴됐다고, 완전하게 죽었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어. 그때 내가 정말로 죽었던 거라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아니, 죽기 전의 어딘가로 돌아갈 수는 없어. 되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어. 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말 가능하다면 말이야. 뭔가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서야 하는 것 같아. 아니, 그건 달라.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부서야 하는 거야. 누군가가 지금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말해. 지금까지 내가 그렸던 그림들… 살아내려고, 어떻게든 존재해내려고 필사적으로 그렸던 모든 것들이, 다 가짜라고. 


아니, 아무것도 안 무서워.

아무것도 후회 안 해.

지금부터 시작이야.


P. 322-4









  교향곡이 절정에 다다르면 모두는 땀에 젖는다. 마침내 도래한 부활의 날. 구원과 축복의 오라가 사람들을 감싸고, 연하고 투명한 희망의 막이 생성되는 시간. 새 시간. 세계가 바뀌고 사물이 바뀌는 천지. 환상의 아우성 속에 번지는 인주의 얼굴을 생각한다. 밤늦게 미시령을 찾아가 마녀처럼 흩날리는 눈발을 보았던 인주. 그녀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의식을 잃었고 종내 죽었다. 자살로 결론짓는 다수의 틈에서 홀로 반기를 드는 여인, 정희. 인주의 유일한 친구를 자처하며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인주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남자 강석원과 맞서게 된다. 강석원은 인주의 유작전을 준비하는 동시에 인주의 그림들을 실은 전기를 작성했다. 핵심 내용은 인주가 자살했다는 것. 그에 대항해 정희는 자신만의 인주의 전기를 쓰려고 한다. 자신의 인주에 관한 추억과 기억들을 상기한다. 성인이 된 인주가 즐겨찾았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며 인주에 대해 새로운 것을 환기한다. 정희는 결국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335)"라는 고통스러운 고백을 내뱉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인주는 결코 자살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 






  말도 안 되지. 서(인주) 선생이 왜 자살을 해. 당연히 사고지. 서 선생을 눈곱만큼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런 말 못 해. 얼마나 아등바등 살았어. 얼마나 몸부림을 쳐댔어. 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지, 죽으려고 그랬겠어요? 애는 또 얼마나 어리고. 그 애한테 얼마나 끔찍했어? 그렇게 정 많은 사람은 자살 못 해. 여기 배우는 애들한테도 정성이었어요. 안 해도 될 일들을 다 껴안고 골병이 들었지. 다들 그렇게(인주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구? 데려와봐요. 평론가? 교수? 미술판 사람들? 웃기고들 있군. 미안해요, 내가 요즘 마음이 이래… 이 빌어먹을 눈물이. (208)






  인주에게는 혈우병을 앓는 외삼촌이 있었다.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때로는 자신이 여자인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은 그는 피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경외감은 그를 매사에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아닌 세상을 보호하려는듯 세심하게, 소심하게 움직이는 남자. 그를 인주와 정희는 사랑했다. 인주에게 그는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준 보호자였고 정희에게 그는 사춘기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해소할 이성이었다. 인주는 외삼촌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활기차고 쾌활하고 당당하게 살아갔고 운동신경이 좋은 강점을 살려 소질을 발하고 있었다. 정희는 심오한 철학을 지닌 미술가로서의 외삼촌에게 우주와 삼라만상에 대해 들으며 미술을 시작했다. 인주는 그림을 싫어했다. 정희와 외삼촌이 좁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을 때면 홀로 마당에서 줄넘기를 넘거나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그들은 늦은 저녁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으며 감자를 삶아먹기도 했다. 그러다 그가 죽었다. 뇌에 피가 고여 작업실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인주는 그날로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장대높이뛰기를 하다 절게 된 다리를 계속해서 썩혀두며 한 발짝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 년 동안이나.


  인주는 그 사이 변하였다. 조용해졌고 여려졌다. 살은 쪽 말라 가죽만 보일 지경이었고, 가장 큰 변화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주의 그림은 어두웠다. 인간의 심연의 고통만을 꺼내 연필로, 펜으로 옮겼다고 표현할 수 있을 그림이었다. 인주가 수 년 간 감내해오고 묵혀두고 곪도록 두었던 상처의 둑 터짐. 고뇌 고통 고독 쓸쓸함 외로움 비애 비통, 그러나 신성함조차 느껴지는 그림. 









<김명숙>










  부활의 기쁨은 오래간다. 환희의 송가, 감동에 도취한 음악은 쉼 없이 흐른다. 인주의 마지막. 구급차 안에서의 긴박한 시간.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인주는 갑자기 숨을 내쉰다. 들숨과 날숨이 충돌한다. Breath Fighting. 삶에 대한 열망. 살고 싶다는 의지. 삶을 향한 투쟁 정신으로 인주와 정희는 이어진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살아야만 해. 살아 내야만 해. 삶의 아픔과 인간의 죄악을 낱낱이 폭로한 전작들에 대한 답변-살아 내야 한다. 갈대처럼 충분히 흔들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두 팔로 받아내며, 넓은 벌판에 발을 뿌리박고 견뎌내야 한다. 이 삶을 사랑해야 한다.


  구원의 시간이 끝나고 눈앞에 닥친 세계. 적응해 나가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통증은 모든 곳에 있다. 격렬하다.' 처음의 빛은 광명으로 인주를 감싼다. 그러나 그녀에게 처음의 빛은 너무 밝아 고통스럽다. 인주는 자신의 삶이 조금은 어두워지기를 바랐다. 탁한 음영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길, 자기를 이해할 수 있길 소망했다. 인주는 거칠고 투박한 선의 그림을 버리고 외삼촌의 그림을 따라간다. 오로지 종이와 물, 먹으로만 이루어진 그림. 마치 우주의 탄생을 표현한 듯한 먹그림. 죽음와 삶의 경계를 종이 안에 담아내며 인주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느낀 것일까. 죽기 일 년 전부터 그녀는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한다. 일 년 동안의 공백. 정희는 아득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무거운 두 발을 차례로 내딛는다. 회색 거인의 무거운 발. 거대한 두 다리. 걸어갈 수 있을까. 정희는 걸을 수 있었다.


  얇은 유리막 사이로 터져나오는 핏물. 닥쳐오는 죽음의 경계선. 격정의 폭풍이 몰아친다. 한 손엔 대항을, 한 손엔 저항을 들고 투쟁하는 인물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신성한 격렬함. 끈질기게 삶을 이어나가는,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어본다. 터지기 직전까지.


  심장 한 구석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듯 흐르는 감각. 각혈의 단어, 문장, 문단, 책.


  말러의 교향곡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퍼진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두 번 부딪친다. 다시 앉는다. 정면을 응시한다. 두 팔을 한껏 옆으로 뻗어본다. 눈을 감고 느낀다. 어느새 근처에 펑퍼짐하게 팽배한 고통과 상처, 이 아픔들을. 달의 뒷면에 서려 있는 슬픔을.





  살아내야 한다.








  이 년 가까이 스테로이드 제제로 치료를 받았지. 부작용으로 온몸이 백 킬로그램 가까이 부풀어 올랐어. 견디기 어려웠어. 그렇게 육중한 몸으로, 조그만 상처도 내지 않으려고 절절매면서, 어린 누나가 안간힘을 다해 벌어오는 돈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게.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어. 꿈에 보니 난 이미 죽어 있더구나.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햇볕을 받으면서 겅중겅중 개울가를 뛰어갔지. 시냇물을 들여다봤더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만큼 맑은데, 돌들이 보였어. 눈동자처럼 말갛게 씻긴…… 동그란 조약돌들이었어. 그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걸.


  ……그게 무서워서, 꿈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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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1-2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강만 읽고 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네요. 저번 글에 얼핏 그런 말을 본 것 같은데..ㅎㅎ

이진 2013-11-25 23:45   좋아요 0 | URL
이얍, 가연님 빠르네요. 한강의 장편소설을 모조리 접수해보려구요. 지금은 <희랍어 시간> 읽고 있어요. <검은 사슴>만 읽으면 장편은 완전 정복!

꼬마요정 2013-11-26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러 2번 부활 완전 좋아해요.. 그리고.. 소이진님 표현에 전율을 느낍니다. 심장을 베는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 아.. 그런거였어요. 그리고 절정에서 쏟아져내리는 환희.. 다락방님에 이어 소이지님도 조만간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ㅎㅎ(저 없는 새 벌써 책 내신 건 아니죠?) 이 책 동생이 갖고 있던데 빌려봐야겠어요~~^^

이진 2013-11-26 22:12   좋아요 0 | URL
꼬요님(꼬요 좋은걸요...? ㅎㅎ)
말러 2번 1악장이 저는 정말 좋아요. 전율까지야... 에이
다락방님에 비하면 저는 아직 감성팔이죠. 아니다, 감성팔이 정도도 못 돼요.
고등학생이 무슨 책이에요. 하긴 제 아는 동학년 중에 책을 낸 친구가 있다네요. 부러워요.

이 책은 꼭 읽어보셔야 해요. 후유증은 책임 못 져요. 힘들거예요, 무척.

2013-11-26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6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3-11-2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잘 지내시죠 ㅎㅎㅎ
열정적으로 등장하셔서 제 서제에 방문 해 주셨던 걸 잊지 않고 있어요 ㅎ
요즘도 공부 잘하고 계시죠?
전 늦은 나이에 대학생들과 어울려 도서관에 있답니다 ㅋ
물론 복장도 캐쥬얼하게 입고 이 학생들을 속이고 있죠 ㅎ

이진 2013-11-26 22:10   좋아요 0 | URL
으왑으왑 루쉰님!!
저 루쉰님 정말 좋아해요. 알라딘에서 왠지 애착을 가진 사람이 몇 있는데, 루쉰님도 한 분.
요즘 공부 너무 열심히해서 탈이에요. 근데 성적은 그닥이에요. 저희 학교 문과애들이 다 나눠먹는 지경이라, 저도 일단 젓가락으로 반찬 몇 개 집어들고 있긴 한데... 히히
루쉰님 얼마나 동안이면 학생들을 다 속여요. ㅋ.ㅋ

Shining 2013-11-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한강 소설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동네 마실 나가듯 주머니에 손 넣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웬 단단한 주먹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고수에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하면 표현이 좀 저렴한가요;; 낯설기도 했고 충격이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던 기억이네요. 가끔, 그러면 안되지만 이 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질때가 있어요. 절망의 단애를 훑는 그 손길이 참..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어떨까 하는 천박한 호기심 같은거요. 겨울이네요, 한강을 읽기에도 말러를 듣기에도 좋은 계절, 같아요. 감기 조심해요 :)

2013-11-28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12-1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한강의 작품에 집중(?)하는 모습이 정진(精進)을 생각하게 합니다...

jo 2013-12-3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과정 속 어려움을 한번 뛰어 넘어야 하는데 6학년때 앵무새 죽이기를 읽던 실력이나 지금 책을 읽는 실력이나 똑같아요.
이해가 안되도 계속 읽으면 재미를 붙일 거라는데 아직 너무 힘들어서 책에 손을 못 대고 있어요.
하는 것도 없는데 시간없다고 책도 못읽는 저를 반성 합니다!!!!!!
근데 소이진 님은 고딩인데도 열독하시네여.

jo 2013-12-30 11:50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동영상 첨무는 어떻게 하나요? 동영상 링크를 입력해도 액박밖에 안 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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