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짝사랑하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가 사실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남자.



 

꼬리 없는 도마뱀 같은 의자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빛 없는 소슬한 공간을 꾸물거리면서 타고 오를 듯한 몸체에 올라탄다. 내려앉은 무게만큼의 소리가 한쪽 벽까지 달려가 부딪혀 반대쪽 벽으로 날아간다. 눈 한 번 깜빡일 동안 곰돌이 하더니 크기가 작아지고, 얼마 안 가 사라진다. 나는 두 손 깍지 끼고 눈을 감는다. 성당 유리창을 장식했을 법한 형체 희미한 물체가 일그러진 채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진다. 앞니가 조금 보일 정도로 입술을 열고 아버지, 하고 낮게 중얼거린다. 그러자 심장 박동이 편해지면서 덮인 눈꺼풀 안으로 광원이 불분명한 빛이 황황히 비친다. 구원의 핏방울처럼 성스럽게.

밤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실존적인 존재에게 밤을 패가며 속에서 펄펄 끓여야 했던 것을 토로한다. 기도는 일종의 외침 같은 것이어서 오랜 시간을 하다 보면 몸도 목도 피로해지기는 하지만 고되게 땀 흘려 태산의 정상에 오른 등산가가 느낄, 사위가 뻥 뚫린 듯 시원한 기분이 몸을 장악한다. 그러나 가끔은 눈물을 흘리며 몇 시간이고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어제의 일을 반추하면 할수록 곰비임비 쌓여가는 혼란 때문에 목소리를 달달 떤다. 떨림은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


얼굴을 쭉 내민 달덩이가 앞을 환하게 밝힌다. 올려다본 달의 형상이 웃는 하회탈 같다. 흘리는 빛이 인자하고 포근하다. 나는 할머니의 품에 안기듯 지상에 펼쳐진 달빛으로 걸어 들어간다.


*


별똥이다!

류빈은 저 혼자 고개를 쳐들고 걷더니 내 팔을 붙잡고 발놀림을 멈추었다.

어디?

벌써 산 너머 내려갔지.

조금 달뜨는지 미소가 활짝 피었다. 나는 시삐 발길을 돌렸다. 거짓말이네, 라고 비꼬아 말하자 류빈은 발끈하며 재빨리 나의 뒤를 따라잡는다.

거짓말 아니라, 진짜 있었어.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걸었다. 류빈도 잠자코 따랐다. 간간이 그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교과서며 필통이며 갖가지 문구들 가득 든 가방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차가운 바람이 앞을 막아서서 한 발짝 떼기도 어려웠다. 그와 대조적으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달은 입을 달싹이며 따듯하고 부드럽게 빛살을 노래했다. 류빈은 자꾸 고개를 들어 달을 보며 해갈을 갓 한 사람처럼 탄성을 질렀다.


*


마침내 공원 산책로에 접어들었고, 마녀의 입김 같은 바람에 지친 나는 잠시 쉬었다 가자고 했다. 눈에 뜨이는 벤치를 잡고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류빈은 털실로 짠 두터운 목도리를 감고 있었다. 진한 초록색과 검정 실이 뒤엉키어 하나의 긴 형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꽤 멋졌다. 류빈은 그 목도리를 자신이 직접 짰다고 호언장담했으나 평소 손재주로 보아 필시 다른 사람의 손길이 거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소원 빌어야겠다.

류빈은 깍지 낀 손을 앞으로 뻗어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웬 소원?

별똥 봤으면 소원을 빌어야지.

류빈은 내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히죽 웃는다.

무슨 소원 빌게.

나는 그의 머리 너머로 솟은 나무의 우듬지를 공연히 지켜보며 말했다. 류빈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곧 생각났다며 주먹을 꽉 쥔다. 무엇이냐고 묻자 말이 없어 그러려니 했다.


*


까만 도화지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던 점 하나가 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간다. 하도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그것을 놓칠 뻔했지만 용케 포착해냈다. 크기도 규모도 작은 별똥이나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일 듯한 별똥의 자국을 눈으로 훑어간다. 류빈을 알지 못하던 때에, 유성우가 내린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설렌 마음으로 기다린 적이 있다. 나의 상기된 모습은 마치 첫 소풍을 앞둔 아동의 뒤척임 같았다. 창가에 의자를 두고 앉아 머그잔에 녹차를 탔다. 차분하게 차를 마시며 밤하늘을 지켜보았다. 마음까지 흠뻑 적셔줄 것을 기대하며 한참을 꼿꼿이 앉아 있었는데 유성우는커녕 별조차 깜빡이지 않아 나는 화를 내며 의자를 치웠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뉴스를 보니 새벽 4시경에 별의 눈물이 떼로 내렸다고 했다.

나무들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은 땅을 때리며 걸어간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고, 그저 배회한다. 아직 한구석이 먹먹하다. 그러나 절대자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내가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 영 자신이 없다. 류빈이 뜬금없이 내뱉은-장난이라고 믿고 싶은 말이 머리카락 되어 한 올 한 올 몸 안으로 흡수되는 양 찝찝하다. 그 말이란, 내가 류빈의 팔을 감싸 쥐자마자 마치 계획이라도 한 듯 기계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


우리는 변두리에 있는 후미진 요양원에서 팔다리를 사용하지 못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의 식사를 도왔다. 잘게 다져진 장조림을 밥과 비벼 힘없이 고개를 뒤로 젖힌 한 노부인의 입에 밀어 넣었다. 남의나이는 족히 드셨을 고목 같은 노부인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겨우 세 숟가락을 떠먹였을 즈음에 류빈은 어느새 식사 보조를 끝내고 뒤에 서 있었다. 힘들지, 라고 물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류빈을 보며 소박하게 웃었다.

밥이 반 정도 줄어들자 노부인은 수저를 아무리 갖다 대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노부인의 목을 조르던 음식받이를 떼고 휠체어를 밀어 밖으로 모셨다. 수저를 쥐던 비닐장갑을 낀 채로 류빈에게 다가갔다. 작은 바퀴가 구르는 사이 불쑥 떠오른 우스운 이야기를 그에게 해줄 요량이었다. 요양원 내(內)가 보일러와 히터 등으로 상당히 더워서 이마에는 땀이 송글 흐르고 있었다. 아직 노인 몇이 식사를 마치지 않았기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확히 말이 전달되지 않을 듯싶어 나는 류빈을 안다시피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흠칫 몸을 떨었다.


*


류빈은 나의 손을 밀쳤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미안, 호성아.

짧은 두 단어를 먼저 뱉은 다음, 몇 마디를 더하더니 초조하게 서 있었다. 류빈의 말이 끝나고 사실 그보다 더 식은땀을 흘린 사람은 나였다. 나는 이곳에서 일어난 발화에 꿈만하여 일단 궁따고 보았다. 그러나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휘저으며, 숟가락을 바르르 떨고 있는 백발의 노인에게 달리듯 걸어갔다.


*


호성아, 너는 아니?

너의 웃음에 나는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는 걸.

너의 행동에 나는 망령되이 떨린다는 걸.

매일 나를 억누르고 가두느라 마음의 사슬이 닳아 끊어질 지경이라는 걸.

헤진 심장 조각 사이로 농축된 눈물이 빼짓이 흐른다는 걸.


낮이고 밤이고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몰라.

그저 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이나 동경인 줄 알았어.

그런 거라면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어.

그런데 너의 웃음과 손길에 아파하는 나를 보며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어.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어.


*


류빈은 한쪽 눈을 가릴 정도로 앞머리를 길렀다. 직모요 갈색이 은근히 묻어나는 머리칼은 그와 퍽 잘 어울렸다. 눈이 가려짐으로써 류빈에게는 달무리 같은 기품 퍼져 나왔다.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그 기품 때문에 류빈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류빈이 사교적이거나 활발한 중세적인 성격도 아니어서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여자들의 입에는 자주 오르락거렸다. 매초롬한 이목구비 덕도 있겠고, 류빈 특유의 멋도 한몫했겠다.

류빈은 원색의 포장지로 싸인 선물상자를 자주 받았다. 그것은 간접적인 고백―아니, 구애의 행동이었다. 여자들은 제 어미의 화장품들까지 총동원하여 가장 예쁘게 분칠을 한 상태로 류빈의 앞에 나타났다. 한 번 흘낏 본 그 상판들은 허옇게 뜬 것이 척 보아도 부담스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과 같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류빈 역시 모든 선물과 고백을 거절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굴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구애했다. 그중에는 K도 있었다.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을 날개뼈 밑으로 늘어뜨린 여자였다. 박속같은 피부 위로 곧게 솟은 콧날에 반해 한동안 K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던 속담은 나와 K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K는 뭇 여학생들처럼 류빈에게 쫓아가서는 꼬리를 홰홰 쳤다.

K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류빈은 커다랗게 접힌 종이를 흔들며 나에게 왔다.

선물은 거절해도, 편지는 거절 못 하겠어.

혀를 내밀며 류빈은 웃어 보였다. 하트가 조그맣게 붙은 걸 보아 러브테러 비스름한 것이리라. 류빈에게서 편지를 건네어 받아 찬찬히 살펴보니 K가 쓴 것이었다. 나는 앞에 서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류빈을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곧 사그라지긴 했지만, 꽤 강렬한 감정이어서 오래 잔상에 남아 있었다.

매번 거절만 하지 말고 아무라도 잡고 한 번 사귀어 봐.

애써 웃으며 K의 편지를 돌려주었다. 류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어. 마음에 드는 애가 없네.

나는 그 순간만큼은 류빈이 정말 미웠다.


*


류빈은 어머니와 갓 교복을 사 입은 여동생을 데리고 살았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이태 전에 저혈압으로 죽었다. 류빈은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아버지가 죽자 마음이 편해졌다고 좋아했다. 아버지는 류빈과 그의 가족들에게 하나의 골칫덩이에 불과했다. 벌어오는 돈마다 술과 담배, 도박에 탕진하는 몰상식한 인간이었기에 류빈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되레 대접붙이의 욕설과 폭행 하에서 늘 억압받고 살아왔다. 친구 하나 집에 데리고 와 본 적 없었고, 집에서 저녁 한 끼를 맛있게 먹지 못했다. 류빈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날, 상당히 거리가 있는 우리 집에 왔다. 현관에 서서 피곤한지 눈그늘이 내린 눈을 둥글게 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 괜찮아. 오히려 좋은걸.

고맙게 가족들이 자리를 피해주어서 나는 류빈과 둘이서만 밥을 먹었다. 류빈은 밥알 하나하나를 깨작거리며 젓가락을 놀렸다. 연신 괜찮다고 말했지만 끝마나 흐려지는 목소리에서 슬픔이 확연히 묻어났다. 그 슬픔은 밤이 되자 결국 눈물로서 흘러내렸고, 나는 류빈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의 곁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


나는 하는 둥 마는 둥 청소를 끝내고 서둘러서 요양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류빈은 입을 꼭 다물고 뒤를 따랐다―말을 하거나 붙잡으려 뛰지 않았다. 짧아진 해는 벌써 얼굴을 숨겼다. 주차장에 차가 넘쳐 시간을 못 맞춘 운전자들은 길거리에 주차해야 했다. 죽은 사람이 인맥이 넓은 사람인 듯 수많은 차는 일제히 장례식장을 향해 있었다. 저녁 공기는 차가웠고, 그래서 나는 빠르게 달렸다.


*


별똥 하나가 또 떨어진다. 나는 소원을 빈다. 소원이라기보다 다시 기도한다.




제 주제에 한강을 한 번 흉내 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한강의 감정이라던가 문장을 따라해보았다기보다 철저히 형식만을 흉내 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 나온 것 같아서 기분 좋네요. 지금껏 써온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또 오래 붙들고 있던 작품이에요. 류빈에게 한동안 빠져서 지금도 눈물이 빼짓이 새어나오네요. 마무리를 급하게 하느라 생각한대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 더 적을 만한 글도 떠오르질 않네요. 한 이주 뒤나 떠오를 때 이어보려구요. 원래 이 글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방문자 수가 3만 명을 넘었더라구요. 3만 명 넘으면 하나의 리뷰를 올리려고 했는데, 책을 다 읽지 못했기에 소설로 대신합니다. 곧 한강이나 황정은의 리뷰도 올릴 게요. 폭풍 리뷰가 예상된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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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한강 폭풍리뷰 기대하고 있어요. ^^ 노랑무늬영원도 읽은거에요? 어때요?

이진 2012-12-04 00:0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반가워요. 노랑무늬영원 읽었어요. 여수의 사랑도 몇 편 휘넘기곤 있는데 노랑무늬영원을 거진 다 읽어가서 이걸로 쓰려구요. 정말 좋죠. 역시, 한강, 이죠.
 



8월 4,5주 글제입니다.



1. 남자는 -에 00를 바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1인칭 콩트를 쓰시오.

2. '책을 펴는 순간 죽는다'를 제목으로 콩트를 쓰시오.

3.

-----보기-----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둘둘 감는다. 개미를 눌러 죽이려는데 문득 개미를 누르면 마룻바닥에 이것의 시신과 체액의 자국이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좁쌀만 한 얼룩도 곧잘 찾아내어 역정을 내곤 한다. 개미를 죽이고 나면 얼마 뒤 그 자국도 찾아낼 것이 분명하다. 소파에서 방방 뛰며 아이는 개미를 당장 죽이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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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보기를 읽고 생각나는 콩트를 쓰시오.

단, 보기와 콩트의 내용에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어야 할 것.


1,2,3 중 택1 할것. 분량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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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조각난 필름에 피를 바르고 있었다




남자는 갈색 빛이 나도록 구워진 옥수수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있었다. 제대로 으깨지지 않은 큼지막한 딸기 덩어리가 잼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남자는 잼 숟가락을 놀리다 말고 그것을 집어먹었다.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입이 찢어진 오렌지 인형처럼 실실 웃는다. 그러다가 장지갑 같은, 반으로 접힌 식빵을 하나 건넨다. 커다란 맥주잔에 포도 주스를 따르던 나는 냉큼 받아들였다. 장지갑의 접힌 틈새로 넓은 공간에 펴지느라 색이 연해진 붉은빛이 보인다. 나는 빵을 크게 베어 물었고, 뒤따라 남자도 빵을 깨물었다. 바삭한 겉과 달리 속은 부드럽고 쫄깃했다. “집에는 내려가 볼 거야?” 빵 조각을 우물거리면서 남자는 입을 열었다. 어느새 내 맥주잔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니. 나 과외 있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빵가루가 잔뜩 떨어져 있는 빈 그릇을 싱크대로 옮긴다. 무엇이 그리 신 나는지 연신 오드리 헵번처럼 입꼬리가 올라 있다.


아침을 빵으로 간소하게 대신하고 나서부터 독서에 돌입한 남자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6년 동안 아침을 걸렀는데, 방 짝인 남자를 만나면서 조금씩이라도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잊었던 아침에 배가 든든한 기분을 매일 만끽한다. 남자는 정우라는 이름의 동갑 친구다. 인상이 투박하나 사글사글하다. 상당히 활기차고 유쾌하다. 방을 살펴보기 위해 만났을 때, 얼른 친해져야 한다고, 쭈뼛대는 나의 손을 잡아끌어 점심을 한 끼 사주었다. 햄이 잔뜩 들어가 조미료의 맛이 입안에 계속 감도는 부대찌개였는데, 맵고 짰다. 정우는 연신 맛있다며 이 인분을 혼자서 다 먹었다. 최근에는 대학 적응이 힘에 부치는지 힘들고 우울한 기색을 내비치기는 해도 잠깐이다.


장마가 지나고 부쩍 더워진 날씨에 손부채 질을 해가며 X 아파트에 도착했다. 403호의 벨을 누르자 막대사탕을 문 소년이 문을 연다. 반기는 듯 안 반기는 듯, 묘한 표정이다. 한 시간가량 과외 수업이 진행되었다. 어떻게든 수업을 하지 않으려는 소년의 잔꾀 때문에 계획했던 분량을 다 끝내지 못했다. 강하게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 밑에 앉아서 소년과 담소를 나누다가 소년의 어머니가 차려준 간식 상을 비우고서야 일어섰다. 집을 나서자 열기가 훅 닥쳐온다. 햇살이 노랗게 세상을 덮고 있다. 다른 동으로 발걸음을 뗀다.


 

*


 

그렇게 세 명의 학생들과 티격태격하고 났더니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다. 교수님과 점심을 하기로 약속한 터라 서둘러 학교에 갔다. 만난 교수님과는 학교 근처 죽 가게로 향했다. 허한 속을 달래주어야 한다면서 소고기 죽을 시키셨다. 날이 더워 땀이 계속 새어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죽 가게의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더위를 품에 안고 밥을 먹어야 했다. 뜨거운 죽을 한 숟갈 퍼서 촛불 끄듯 후후 불어 식혀 먹고, 흐르는 땀에 상의는 젖는다. 죽이 굉장히 맛있었기에 먹는 동안 정우 몫을 하나 주문해두었다. 아마 그는 점심도 잊고 책에 빠져 있을 것이다.


예상외로 그는 손바로 책을 놓아둔 채 퍼더버리고 누워 자고 있었다. 선풍기 날개가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처럼 느릿느릿 회전하고 있다. 안쓰럽게 탈탈거리는 소리에, 나는 먼지가 잔뜩 쌓인 에어컨을 깨웠다. 에어컨은 오랜만의 기상에 여러 개의 입을 한꺼번에 벌리며 숨을 토해냈다. 그 기쁜 숨의 냉기에 좁은 거실은 급속히 시원해졌다. 찬 기척을 느끼고 정우가 부스스 일어난다. 나의 손에 들린 죽을 보더니 입을 벌리고 웃는다. “나 또 나가야 해.” 약간 식은 죽을 정우는 빠르게 떠먹는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는지 고개 한 번 안 든다. “늦게 와?” “늦는다면 늦고.” “치킨 사와!” 평소에도 식탐 많고 많이 먹었는데 요새 더 많이 먹는다. “응.”


 

*


 

정우의 소원대로 닭튀김을 손에 들었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친구들을 데려다 주느라 조금 늦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 뒤처리는 언제나 내 몫이다. 느끼한 기름 냄새가 풍겨온다. 문을 열었는데 정우가 보이지 않는다. 낙하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더워서 그런 건가 정우의 샤워 횟수가 늘었다. 거의 집에만 있으면서도 하루 네댓 번씩 하곤 한다. TV 앞에 작은 상을 펴서 닭튀김 상자를 열었다. 노랗게 튀겨진 겉옷이 버터를 바른 듯 윤이 흐른다. 정우가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나온다. 눈이 마주쳤고, 정우는 화들짝 놀랐다. 정우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으로 간다.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다. “왔어?” 방문을 열고 몸이 반쯤 들어갔을 때 정우가 입을 열었다. “튀김닭 사왔어. 얼른 먹어.” 정우는 방문을 닫는다. 나는 벽에 기대고 앉아 TV를 틀었다. 마침 하계 올림픽 경기가 한창이었다. 역도 경기였는데, 우리나라 선수도 한 명 출전했다. 여자 선수가 무거운 바벨을 들고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새삼스러웠다. 반년 가까이 함께 지냈는데 정우의 완전한 나신을 보는 것이 처음이다. 기분 탓이겠지. 정우가 어느새 잠옷을 입고 나온다. 닭튀김을 보더니 달려든다. 살이 두껍게 붙은 닭 다리를 든다. “장미 선수 나오는 경기야?” “아마.” 우리는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올림픽 경기를 보았다.


전등불을 끄고 거실에 누웠다. 닭튀김은 뼈만 남아 있었고, 우리는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배우의 익살스러운 행동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대고 웃었다. 남자 주인공이 사건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동성애자 연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너무 우스워 배를 잡고 웃었는데 정우를 보니 얼굴이 싸늘하다. “정우야, 왜. 아파?” 그제야 정우는 웃어 보인다. 그 후로 몇 번이고 이러한 장면이 계속되었는데 정우는 그때마다 불편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까 닭을 너무 급하게 먹더니 체했나 보다. “아파 보인다. 들어가서 자” “아냐, 안 아파.” “체한 거 같은데? 방에 약 있어. 먹고 자.” 정우는 알겠다 하고 일어선다.


 

*


 

정우는 잼을 바른 식빵을 먹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고 있다. 악덕 사채업자와 도박을 하여 돈을 얻어 가는 만화였는데 굉장히 긴장감이 있어 침이 꼴깍 넘어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시계를 보니 시침이 11을 향해 있다. 친구 한 명이 마침 이 시간에 놀러 오겠다고 한 약속이 생각났다. “정우야, 오늘 내 친구 집에 놀러 오기로 했어.” 얼굴을 빼꼼 내밀며 언제냐고 물어본다. “지금. 너랑 같은 학교 다니는 애야. 인사도 할 겸.” 그러자 정우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행동이 급해진다. 재빨리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설 채비를 한다. “갑자기 약속이 생각났지 뭐야. 저녁쯤에나 들어올 거야.” 말하는 정우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떨린다. “인사라도 하고 가지, 왜.” “아냐. 많이 어지르지 말고 놀아.” 정우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친구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집 앞이니까 문 열어둬.] 정우는 벌써 나갔다. 정우가 나가고 얼마 안 있어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른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고. 거기에는 친구와 정우가 맞닥뜨린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정우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친구는 꽤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야~ 여기야. 정우야 일찍 와!” 나는 옆집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소리쳤고 정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힐끔 보더니 도망가듯 계단을 내려갔다. 친구는 잠깐 서 있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눈이 힘이 들어간 채로 잔뜩 찌푸려져 있다. “너 설마 쟤랑 룸메냐?” 친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과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답을 내뱉으라 재촉하는 듯했다. “응. 둘이 아는 사이야?” 친구는 내 한 마디에 놀라며 말을 짓이겼다. “쟤 게이야. 네 학교에도 소문났을 텐데 몰랐어?” “무슨 웃기는 소리야, 그건. 어서 들어와.” 나는 친구의 모습에 웃었다.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들어가고 자시고 진짜 저 애 게이라니까. 우리 학교에 소문 쫙 났어. 왜 이때까지 나한테 이야기 안 했냐?”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진지한 모습에 나는 조금 흔들렸다. “진짜야?” “진짜라도. 그럼 너 게이랑 반년을 산 거냐? 어오. 왜 말 안 했냐?” “야, 잠깐. 너 집에 가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텅 빈 집에 발을 얹어 놓기 전에 나는 먼저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식탁에 앉아 머리를 괴었다. 정우가 동성애자라. 나는 차분히 생각했다. 이미 속은 불붙어 있었다. 정우에게 화가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맥박이 빨라졌다. 그동안의 이상했던 정우의 모습들이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정적 속에 흐르는 장면들을 잡아채고 있노라니 정우의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전화기도 꺼져 있었기에 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가 지는 시각까지 앉아 있었다.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학교에 소문 쫙 났어.’ …. ‘학교에 소문 쫙 났어.’…. 얼굴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렸을 때 휴대전화의 불이 켜졌다. 기다리던 정우의 문자메시지였다. [내일 너 과외 가면 짐 챙겨 나갈게.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해가 졌다.


나는 정우가 가 있을만한 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집 근처부터 동네 끝까지 몸을 움직였다. 먼저 찜질방을 돌았다. 그리고 게임방을 찾아다녔다. 셀 수 없이 많은 게임방이었기에 하나하나 돌기에 벅찼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집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게임방에 들어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일단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갔다. “저 손님, 몇 시간이나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답했다. “6시간 정도 하셨네요.” “저녁은 먹던가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는 가라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을 피하며 조심스레 정우에게 다가갔다.


정우는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면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왜 왔느냐며 물었다. 나는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그를 설득했고, 그는 계속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잠깐의 실랑이 후에 나는 억지로 정우를 끌고 나왔다. 정우는 나와서도 고개를 푹 숙이고 나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미안.” 정우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하기 위해 숨을 들이쉬자 아무 말도 말아 달라며 부탁한다.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해 마음이 아팠다. “정우야. 괜찮으니까 고개 한 번 들어.” 정우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픈 강아지 마냥 한나절 만에 얼굴이 축축 처져 있었다. “내일 나간다니까 왜 왔어. 게이인 거 숨겨서 미안해. 욕하려면 그냥 가줘.” 정우는 울먹이며 입을 닫았다. 나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정우가 스스로 만든 보호막을 뚫고 한 발짝 다가갔다. 정우는 흠칫하며 뒤로 한 발짝 물렀다. 나는 재게 다가가 정우를 안아 주었다. “괜찮다니까, 괜찮아. 나 그런 걸로 친구 버릴 놈 아니야.” 정우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받아주며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집에 가자.”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떨어진 어두운 복도에는 한 남자의 슬픈 울음소리가 울렸다. 남자를 살금살금 할퀴던 필름 조각들이 눈물과 함께 조금은 떨어졌다. 그렇게 남자의 마음에는 핏물이 고였고, 피는 따듯했다.



(원고지 27.6장) - 오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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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의 별] 치킨하고 닭튀김하고 용어를 바꿔 쓸 이유가 있는지요...이게 왜 다를까, 하고 읽을 때 혼동스러웠습니다.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이 그걸 실망시켰습니다. 첫 문단은 제목과 대비되서 좋았는데, 내용은 그냥 게이에 대한 거였어요. '나'의 선택이 왜 그랬는지 충분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룸메로서 반 년 동안 살았던 걸 이유로 삼기엔...아직 한국에선 그런 걸 이해하기 힘듭니다. 마지막 문단이 무언가 의미 있는 것 같은데...​담배꽁초가 어쩌구 하고, 어두운 복도가 어쩌구로는 의미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라별] 제목이 독특했어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이번 소설에 약간 추상적인 문장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남자를 살글살금 할퀴던 필름 조각들이 눈물과 함께 조금은 떨어졌다, 라던가 남자의 마음에는 핏물이 고였고, 피는 따듯했다. 같은 표현들이요. 문장을 굳이 그렇게 써야했나, 의문이 들었어요. 남자의 심리가 어떻다고 말하고 있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또 치킨과 닭튀김, 또 튀김닭. 같은 걸 지칭하는 거라면 대명사를 사용하는게 좋은 것 같아요. 특별히 바꾸신 이유가 있는건가요? 흠...또 군데군데 과거형 문장과 현재형 문장을 모두 사용하고 있어서, 조금 헷갈렸어요.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나’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친구를 버리지 않아, 라는 대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줘서 좋았어요. 좋은 글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

 

[naR] 다시 한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네요. 동성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 그런 시선에 다쳐 필름 같은 기억들을 안고 스스로 달아나버리는 정우, 현실의 단상을 담아내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잘 담아낸 것 같아요. 하지만, 정우가 게이라는 말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던 사람치고는 '나'의 행동이 굉장히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가 지는 시각까지 앉아 있었다'라는 말 속에서 모든 것을 찾아야 하는데, 읽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나'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재간이 없네요. 1인칭 시점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정우'와의 과거를 되짚는다든가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는 모습을 조금 보여준다든가, 충격을 받고 그 오랜 시간 생각해서 정우를 찾아나서는 '나'의 생각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었으면 싶었습니다. 윗부분, 동성애자 연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그런 얘기를 조금 꺼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또 한 가지, 앞부분에서 배경과 인물을 드러내는 부분이 많이 설명조로 이루어져 있네요./ 특히 '남자는 정우라는 이름의 동갑 친구다.' 같은 건 청자를 상정하고 말하는 것 같은데, 이야기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딱히 청자를 설정한 것 같지 않아요. 그렇다면 도입부에서부터 '남자' 대신 '정우'라고 곧바로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을 말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청연] 이주연속 동성애자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번엔 따뜻한 시선이라 색달랐어요. 그런데 콩트가 전체적으로 너무 평이합니다. 굴곡없고 너무 평평해서 그런가, 읽는 내내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1인칭임에도 룸메이트를 보듬어주는 나의 심리가 너무 드러나지 않은 것 같고요.. 초반에는 상당히 공들인 느낌이 났는데 뒤로 갈수록 빨리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느낌이 났어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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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합평 소설처럼 처절하고 가혹하게 까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올리긴 했지만 사실 기대도 조금 했다. 

비록 마지막 챕터에서 [청연]님 말처럼 빨리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느낌으로 한 시간만에 써버리긴 했지만

초반에는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공을 들인 게 저 정도냐는 평을 받으면 나는 이제 소설 못 쓴다...

사실 좀 더 공을 들일 수 있었겠지만 이 게으름 때문에. 2주나 되는 시간을 활용하지 못했다.


이번 합평에서 안 좋은 평은 다 내가 예상한 것이라 다행히고 마음도 아프진 않다.

저번 소설이 처참하게 까일 때는 내 마음까지 깎이는 것 같았는데, 흑.

제목을 급하게, 생각나는 대로 적었는데 독특해서 좋았나보다. 솔직히 나도 좋긴했기에......


이 소설의 플롯으로 토지 평사리에 소설을 내야겠다. 어쩔 수 없지, 뭐.



다음엔 더 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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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주 꽁트 글제>

​다음 시 중 하나를 선택한 뒤 그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한 편 창작하시오.

 

 

 

1. 최승호, <북어>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2. 김남조, <겨울 바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虛無)의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靈魂)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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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기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무작정 바다로 향했다. 술기운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을 가르며 차는 나아갔다. 한 시간 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히터를 틀지 않았더니 추웠다. 내팽개쳤던 목도리를 주워들어 목을 감쌌다. 확, 온기가 몸에 흘렀다. 얼마큼 더 가자 바다가 보였다. 어렴풋이 해가 뜨기 시작했다. 주변은 뽀유스름해졌다. 온통 연한 회색빛이었다. 해변에는 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해조류가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다. 쌀쌀했다. 아직 겨울이었다. 몸도 덥힐 겸 해서 사빈을 걸었다. 모래가 얼어 있었다. 모래를 밟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승처럼 버티고 선 바람막이숲이 위엄을 뽐냈다. 멀리서 보아도 흐드러진 후박나무 꽃이 퍽 아름다웠다.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이 시렸다.


문득 발로 찬 자갈돌에 그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그는 갑자기 헤어지자고 통보했다. 그의 어두운 얼굴을 보았을 때 예감했어야 했다. 한창 상사들에 치이고 있을 때 그의 문자가 왔다. 퇴근하고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답장은 하지 못했다. 퇴근 한 시간 전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처음에 반기더니 이내 목소리를 내려 깔았다. 상사의 눈살이 신경 쓰여 X카페로 나오라는 말만 듣고 끊었다. 퇴근이 늦어져 황급히 카페로 달려갔다. 그는 머그잔 하나를 앞에 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골똘히 생각하는지 눈을 내리깐 모습이 언제나처럼 매력적이었다. “동윤아, 나 왔어.” 내가 다가가자 그는 흠칫 놀라더니 일어섰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왜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내가 주문한 레몬에이드가 나올 때까지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억지로 분위기를 잡는 게 생경스러웠다. 레몬에이드를 한 입 마시고, 묵묵히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왜 부른 거야?” 나의 물음에 그는 대뜸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미간이 일그러져 있었다. “장정운, 우리 그만할 때 된 거 같다.” 나는 빨간색 빨대를 입에 물었다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무슨 소리야, 헤어지잔 거야?” 나는 당황했다. 반면에 그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 말고는 담담해 보였다. 오래 고민하고 생각해온 문제인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가자 화가 났다. 나를 좋아하지 않았나? 그 동안의 행동들은 모두 거짓이었던가?


새벽의 바다는, 겨울이었고 기온이 낮았음에도 아기 담요처럼 포근했다. 한참을 걸었을까, 사빈의 끝이 보였다. 사빈의 끝에는 바위 절벽이 서 있었다. 절벽이긴 해도 상당히 낮았다. 화려한 죽음을 계획하고 바다를 찾은 여인 같이 나는 조심스레 몸을 절벽 위로 옮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가나 상점이 전무했다. 여름에도 개장하지 않는 바다인 것 같았다. 바다는 색이 까만 것이 무섭도록 깊어 보였다. 그의 심적 고통이 이 바다만 했을까? 그는 나를 사랑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피부가 희어 대부분의 여자보다 예쁜 그를 사랑했다. 아무래도 쉽게 만나기 힘든 인연이다 보니 더 끈끈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특히 그는 내게 많이 의지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오징어채를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 그를 버렸다. 그들은 늘 가난에 쪼들렸다. 커가는 그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 직감한 그들은 두어 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간 고아원에 그를 맡겼다. 나를 여행 가방쯤으로 여겼다며 그는 나와의 첫 만남 자리에서 흐느꼈다. 가만히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3년 가까이 만나면서 다툰 적은 있어도 싸워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교제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은 놓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끈은 놓지 않았다. 결코 감정적 또는 욕구를 풀 목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성격이나 가치관도 비슷했다. 그리고 키는 커도 아이 같은 나를 그는 항상 보듬어 주었다. 다정한 품의 온기가 아직 생생하다.


그는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유리창 바로 옆 자리였는데 창에 계속 김이 서렸다.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나의 행동을 미리 예상하고 왔는지 내가 화를 내도 그는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왜 헤어지자는 건데?” 차오른 화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은 더욱 달궈졌다. 뜨거워진 소금과 콩이 속에서 통통 튀는 것 같았다. “나 들켰어.” 머그잔을 들어 올리는 손이 떨렸다. “…… 누구한테?” “민수.” 가슴에 붙은 붉은 불이 금방 사그라졌다. 두려워졌다. 책상을 붙잡은 손이 그의 것과 같이 떨렸다. “갑자기 집에 들어와서 사진을 못 숨겼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랍부터 열어 보더라.” 민수는 전부터 우리 사이를 의심해왔다. 친한 친구이자 먼 친구였다. 그는 호모포비아-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둘이 꼭 붙어 다니자 처음 ‘너네 게이냐?’ 내뱉은 사람이 민수였다. “아무리 그래도 헤어지자니……. 지금처럼 몰래 만나면 되잖아.”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머그잔은 어느새 비어 있었다. “민수가 사진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더럽대. 씨팔 새끼들이래. 그 살갑던 민수가, 씨팔 새끼들이래.”


두어 시간 망연히 서 있었다. 햇볕이 따가워졌다. 번득 정신이 들었다. 다시 비분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감정적이지 않았다. 시간의 벽이 마음을 두텁게 감싸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여린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당당했던 나는 엄마에게 커밍아웃-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까지 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와 길거리를 걸을 때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그였다.


파도의 작은 포말이 튀었다. 그를 자꾸 설득했다. “민수 말 신경 쓰지마, 응? 내가 그거보다 더 잘해줄게.” 그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카페에서 나가버렸다. 조금 있다 혼자 있고 싶다, 문자가 왔다. 툭하면 게이 이야기를 갖다 쓰면서 사람들은 우리를 아직 거부한다. 성 소수자도 사람인데, 왜 눈치를 보면서 사랑해야 하지? 만약 동성애자의 비율이 높았더라면 이성애자 당신들이 성 소수자였다. 언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니 인정받고 싶지 않다. 우리의, 나의 소망은 그저 동성애자, 이성애자를 따지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편견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그 날이 오면 동윤이 다시 마음을 열어 줄까.


바닷가는 햇볕에 데워졌다. 겨울 바다는 따뜻해졌다. 얼어 있던 모래도 녹아 바삭거리며 깨지지 않고 폭 하고 들어갔다. 조금만 버티면 봄 바다가 되어 있겠지.



(원고자 15.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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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김
그럼에도 동성애를 소재로 삼고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건의 전개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문제가 완벽하게 해소되지 못해서 갑갑한 느낌이 듭니다. 조금 더 확실하고 시원한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Toy
제일 마지막 앞 문단이 조금 걸렸습니다. 굳이 넣을 필요 없는, 완전한 설명조의 글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이진님 글은 좀 더 길게 이야기로 꾸미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것 같은데 뭔가 자꾸 짧게 축약하려는 느낌이에요. 이야기를 하려한다는 느낌보다는 '나 이런 이야기를 쓸거야.'라고 말하는 느낌? 개인적으로 소이진님 글은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청연
평범한 연인의 헤어짐일 수도 있었는데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조금은 특이한 조건을 가지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졌어요. 그런데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점만 빼면 참 신변잡기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커다란 사건이 없고 주인공의 독백만 구구절절하게 나열된 느낌이에요. 뭔가의 사건이나 중심 화제가 있다면 훨씬 좋은 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저번주보단 확실히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다만 질질 끄는 부분을 과감하게 빼고, 마지막에 무슨 동성애자 인권조례같은 글도 뺀다면 좋은 글이 될 것 같아요. 내용으로 동성애자의 편에 서야지, 마지막 글귀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면 소설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답니다:)  주제를 마지막에 집약시켜놔 흥미를 반으로 떨어트리고 있어요.

 

디오
뾰유스름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게 있는 단어인가? 하면서 읽었는데 있네요. 새삼 저의 어휘력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오타가 있네요 '온톤'이 아니라 온통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니 '나'는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엄마는 무슨 반응이었을까요. 과연 '나'도 엄마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않았을까 의문이었습니다.

 

장똘끼
앞문장이 너무 뚝뚝 끊기는 것 같아요. '나는 당황했다.' 감정을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고 그 사람과 표정과 행동으로 돌려말해주었으면 해요. 중간에 보면 피부가 희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왜 나오는지를 모르겠어요. '민수는~' 이 부분에서부터 설명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끝부분에 "툭하면 게이 이야기~" 부분이 나오는데. 저는 이 부분이 이 소설과 조금 떨어져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Para
현재-과거-현재-과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제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과거는 되도록 한 곳에 몰아넣는 게 좋습니다. 잘못 쓰면 산만해 보여요. 문단이 뚝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 아무래도 읽는 데 불편하겠죠.(제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실 문단 잇는 게 제일 어려워요)
나는 당황했다.=되묻는 내 목소리가 눈에 띄게 떨렸다.(혹은 당황했음을 나타내는 어떤 행동) 1인칭이라고 해도 주인공의 감정은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그 편이 나는 당황했다, 라고만 하는 것보다 더 와닿으니까요. 그리고 정운이 성소수자임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동윤을 평범한 외모의 남자로 설정하는 게 나을 뻔 했어요.(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얼굴이 희어 대부분의 여자보다 예쁜 남자'라는 묘사는 현실감이 살짝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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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 :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이상입니다.​
소이진 : ​취향은 아니구요... ㅋㅋ​
최정김 : ​ㅋㅋㅋ개인의 취향​
Para : ​아니 정운이 취향ㅋ

 

시 별강도
평을 떠나서 조금 가슴아픈 이야기네요 'ㅅ'...동성애자가 이성애자들 속에서 살기가 좀 힘들긴 하죠.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하고... 다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조금 끊기는 감이 있었어요.

 

naR
호모포비아나 커밍아웃 같은 용어는, 작중에 넣는 것보다는 주석으로 빼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개인의 취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툭하면 게이 이야기를~열어 줄까.' 문단 같은 경우에는, 소설이 아니라 주장하는 글의 한 부분 같네요. '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는 면도 있긴 하지만, 그 앞부분까지는 일기라기보다 소설적인 측면이 훨씬 강했던 탓에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툭하면~'문단에서 갑자기 휘청거리는 느낌입니다​. 윗부분도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 치고는 상당히 단조롭게 흘러가기는 합니다만.
동성애라는 소재는 제대로 다루기 힘든 소재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에 나온 얘기는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던지면 가장 쉽게 나올 수 있는 형태고, '겨울바다'라는 글제와 연결되긴 했어도 이야기 자체의 유니크함? 특수성?은 별로 부각되질 않아요.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밍스
게이들의 커밍아웃에 앞선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그에따른 당사자의 당혹감을 잘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사건을 직면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흐느끼기만 할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데요. 이런 것은 작가의 평소 성적소수자들에 대해 갖고있는 생각을 표현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건 그냥 그렇다구요. 무언가 편견을 헤쳐나가는 그들을 표현해주었으면 좀더 재미있었을것 같습니다.

 

라별
성소수자의 이야기군요. 음, 시간이 지나면 찬 겨울 바다가 봄 바다가 되어 있겠지, 라는 표현이 호모포비아들의 편견도 사라지길 기대하는 나의 마음을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어요.

 

선별의 별
내팽겨쳐졌던 목도리를 썼다고 온기가 흐를까요. 겨울에 목도리는 조금만 놔둬도 차갑던데. 자동차엔 히터도 틀어져 있지 않았고요. 그리고 술을 마시면 해독작용이 될 때까지 몸이 따뜻해진다고 들었어요. 한 시간 정도 달린 것 같은데, 술기운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면 해독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몸이 차가워지기엔 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헤어지자는 말이 놀란 것치고는 묘사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무슨 소리야, 헤어지잔 거야?” 나는 당황했다. 이게 끝이었잖아요. 상황도 갑작스러운데 한 번에 나타난 감정을 표현하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위선적으로 보였어요. (Q)그가 피부가 희다는 건 게이를 의미하는 건가요? 밑에서 두번째 문단이 주제를 너무 활짝 드러내서 아쉬웠습니다.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직접적으로 말한 건 흥을 확 깨버리네요.


<질문타임>

Q. 그가 피부가 희다는 건 게이를 의미하는 건가요?
A. 아니예요. 그냥 예쁘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표현력이 부족한 작가 탓입니다.​ 희다고 게이는 아니잖아요? 정운의 취향이기도 하구요.
└맞다고 하셨으면 주제에 대한 모순이라고 하려고 했어욬(선별)

 

Q. 과연 '나'도 엄마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않았을까 의문이었습니다.
A. 엄마한테 커밍아웃 하고 나서 말이죠? 보통의 엄마들은 아들이 커밍아웃을 하면 거의 화를 냅니다. 정운의 어머니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요. 제 소망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소망을 ... 살짝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막간 토론
└쿨한 부모님들도 생각보단 많아요(n)
└막상 자기 문제가 되면 '그래!' 하기 힘들죠(디)
└아들이 힘든 길을 걷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까요(소)
└그래도 밝히는 게 자기도 충분히 생각하고 했을 거란 걸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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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도 합평이 더 깁니다, 크크.

저번에는 올라온 글은 많았는데 거기에 코멘트가 많이 없었어요.

이번에는 올라온 글도 많고, 코멘트도 열개가 넘개씩 달렸네요.

방학의 마지막 합평이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를 했나봅니다. 

평이 10개씩 달리니까 기분이 좋긴 좋아요. 내 글을 이렇게나 많이 읽고 평을 해준다니.


개인적으로 이 소설 쓰기 위해 구상하고 상상하면서 꽤 좋은 소설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었는데 평 듣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굉장히 못 썼네요.

제가 다른 사람 소설에 시에만 국한되어 재미없다고 했는데 제 글 마지막 부분에도 시를 바꿔야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했는지 동성애자 인권 조례 비스무리한 부분이 생겨버렸구요.


또 변명을 하자면 이 글도 서너 시간만에 다 써버린 글입니다.

이제 개학을 하면서 합평 소설 준비하는 기간이 2주로 늘어났어요. 

좀 더 좋은 글이 나오겠죠? (어째 1주 1작은 접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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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8-19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네요. 저번 소설보다 훨씬 좋게 읽었어요, 소이진님. 먼저, 글 곳곳에 좋은 표현이 보여서 좋았어요. '그의 부모는 그가 오징어채를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 그를 버렸다' - 이런 문장은 참 좋네요. 튀지 않으면서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복잡하고 화나는 심정을 '뜨거워진 소금과 콩이 속에서 통통 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 것도 좋구요. 합평 중에 문장이 너무 뚝뚝 끊긴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저도 처음에는 조금 낯설긴 했지만 겨울 바다의 이미지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생각해보면 꽤 어울리는 문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 결말이랑 이별 통보를 받은 주인공의 반응이에요.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은 누군가의 말처럼 너무 교훈적으로 들리네요. 그래서 이질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별 통보 받은 주인공의 심리를 조금 더 세세하게 짚어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연애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상상하고 그려보면서 묘사하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소이진님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묘사가 가능해지겠죠? ㅎㅎ)

그렇지만 맨 마지막에 '조금만 버티면 봄바다가 되어있겠지'라는 마무리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버티면 봄바다가 되어있겠지. 소설에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더 가깝게 와닿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요, 마지막 문장.


사실 동성애자의 이야기인 줄은 몰랐어요. 저도 몰랐는데,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하고서 읽고 있지 뭐에요.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상대방이 남자라고 해서 저는 거의 무조건반사처럼 주인공은 여자군, 이렇게 기정사실화했어요. 이건 아마 거의 모두의 무의식에 깔린 정서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게이 이야기가 나오면 꼭 두 주인공을 예쁘고 희고 아름답고, 이런 이미지로 설정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라도 해야 거부감이 줄어들기 때문일까요? 그 점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 '')~ (소이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덧)소이진님, 글 쓰느라 고생 많았어요. 간만에 제대로 된 한국소설 읽은 것 같네요. 요새 한국소설 잘 안 읽어서요. 1주 1작이 순탄대로를 가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렇게 간간히 올라오는 글도 읽을 맛 나네요. 그러니 간혹가다라도 소설 올려줘요. 나도 조만간(조만간?) 쓸지도 모르구요. 그리고 다음에는 진짜 작가처럼 초고, 수정, 퇴고의 과정을 한번 오랫동안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럼 또 봐요~ :)


(이거 비밀 댓글로 할까요? 좀 부끄럽고 주제 넘는 것 같은데 ;; )

2012-08-19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0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0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8-2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소이진님. 그거 해줄게요. 이것저것 찾아서 한 번 만들어볼게요^^ 함께 실천을 하도록 해요!

이제 컴퓨터 끄고 씻고 자러 갑니다^^

이진 2012-08-21 23:11   좋아요 0 | URL
헤헤, 나도 이제 잘거예요.
요새 일찍 자야지, 일찍 자야지 하면서도 12시 넘어서 자서 학교에서 꾸벅꾸벅 말이 아니어요.
잘자요, 굳밤. 나이스 밤. 꾿밤 :)
 



동음이의어의 관계에 있는 단어를 골라, 두 단어를 연관지어 창작하시오.

 

제목은 단어로 할 것.

(예: '배에서 먹은 배'가 주제일 때, 제목은 '배')

 

글의 마지막에 두 단어의 뜻을 적을 것.

 

분량. 시간 제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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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그가 사랑한 사람은 그녀였다.


그는 한 여자와 결혼한 남자였다. 그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를 사랑했다. 먼저 청혼한 것은 여자였다. 여자가 그를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여자는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3학년인 그는 동아리 장이었다. 그는 모든 여인들에게 친절했다. 신입생이라면 강도가 더해졌다. 공교롭게도 그 해 새로 들어온 여인은 여자뿐이었다. 여자는 그의 친절을 독차지했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빼앗겼다. 여자는 예쁘지 않았다. 그는 잘생겼다. 그럼에도 여자는 그에게 구애했다. 끈질겼다. 오랜 구애 끝에 그와 사귀는 데까지 이르렀다. 2년 정도 탐색기간을 거치고 여자는 그에게 구혼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다. 그는 남자라면 안정적인 틀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여자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도구밖에 되지 않았다. 여자는 진실을 모른 채 그와 결혼했다. 한 가닥이 부족한 사랑이란 삐거덕대기 마련이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신혼여행을 넘긴 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인을 만나기 시작했다. 여자보다도 젊고 예쁜 여인들이었다. 여자가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여자가 떡하니 부엌에 서 있음에도 그는 거실에서 시시덕거리며 그의 연인과 전화 통화를 했다. 참다못한 여자는 그날 저녁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이상이 없다고 여겼다. 되레 말을 꺼낸 여자가 주눅이 들었다. 저녁이 지났다. 바윗돌만큼 무거운 공기에 지쳐갈 즈음 그는 벗지 않고 있던 와이셔츠 차림에 정장 윗도리를 챙기고 나갈 채비를 했다. 벌써 현관 앞에 가있는 그를 쳐다보며 여자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 가? 밤이 늦었어. 밖. 그는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 여자는 결심했다. 빨리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여자는 그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차를 사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미행하기가 쉬웠다. 그는 대로에서 잔뜩 치장한 여인을 만났다. 그대로 몸을 옮겨 여관으로 들어갔다. 능숙하게 방을 잡은 그는 여인을 향해 웃어 보이며 여인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맞은편 자동차 뒤에 숨어 그를 지켜보던 여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그는 더러운 여관을 불평하면서도 여인과 함께 밤을 보낼 터였다. 옆방을 잡아 끝까지 감시하자니 그것은 그것대로 서러웠다. 여자는 상처로 아린 마음을 움켜잡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녀를 만난 후로 모르는 여인들과 관계를 하지 않았다. 그녀를 통한 정신적인 만족으로도 그는 쾌락을 느꼈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은인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여자보다 젊고 예뻤다. 여자보다 말을 예쁘게 했고 성격도 싹싹했다. 길게 내려오는 생머리는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는 늘 좋은 향이 났다. 장미향이 나기도 했고, 달콤한 향이 나기도 했다. 그는 장미향을 제일 좋아했다. 손에 밴 장미향을 맡으며 그는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육체적인 만남이었다. 그녀는 그가 접촉했던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배려가 있었고 상대방에 대한 예가 묻어났다. 그는 행위를 하면서도 야릇하면서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사랑’의 감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헤어진 뒤에도 그 느낌이 계속 맴돌았다. 그는 그녀의 번호를 수소문했다. 밤이 아닌 낮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낮의 그녀는 청순했다. 밤의 야하고 탐욕적인 여인이 아니었다. 변화적인 모습에 그는 매력을 느꼈다. 그녀도 그를 퍽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는 여자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취하는 그녀의 집에 동거하다시피 지냈다. 가끔 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아 주었다. 물론 좋은 말은 하지 않았다. 나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에게 무관심했다. 애당초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여자의 극진한 내조 덕에 번듯한 직장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여자에게 고마워했다. 그 뿐이었다.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어. 이제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여자는 수화기 너머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미행 사건 이후로 그에 대해 포기한 여자였다. 여자는 혼자 맞는 밤에 익숙해져 있었다. 자신이 결혼한 여자라는 사실조차 잊은 지 오래였다.


둘의 밤은 달콤했다. 사랑의 파동이 벽을 타고 두 사람에게 되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더 뜨거워졌다. 일렁이는 그림자의 파도가 두 사람의 행위를 예술적으로 만들었다. 암암하게 내려앉은 공기는 둘러앉아 열기에 손을 쬐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씩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며 행복해했다. 시간은 흐르고 아침이 되었다. 공기들은 재빨리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가벼워진 몸을 일으키며 그는 옆에 누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여자에게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하루하루 찾아가는 게 즐거웠다. 그녀 자체로 만족스러웠고, 만날수록 만족스러운 점이 늘어났다. 신기한 여자로군. 그는 널브러진 옷을 챙겼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나신이 멋졌다. 자신이 여자라도 이런 남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발쪽이며 자취방을 나섰다. 그녀는 해가 피부를 찌르고 있는데도 잠에 빠져있었다.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여자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혼을 하나의 도구로 여겼던 지난날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한손에는 이혼서류가 들려있었다. 여자는 대뜸 찾아온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인 것처럼 대하면서도 도장은 찍어주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모습에 화가 났다. 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남은거야? 커피를 타오는 여자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여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가 싶더니 커피 가루가 동동 떠다니는 잔을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이혼은 싫어. 왜? 그냥. 여자는 커피를 한 번 휘휘 젓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마셨다. 그는 멸시에 찬 어투로 여자를 비웃었다. 아직 내가 좋니? 우리 떨어져 산지가 일 년이 다 되가. 여자는 계속 무표정했다. 묵묵히 커피를 바라봤다. 커피는 밍밍했다. 물을 잘 못 맞췄다. 잔을 탁상에 내려놓았다. 그는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안방에 들어가더니 장롱을 뒤지기 시작했다. 도장을 찾아 서류를 완성하려는 의도였다. 여자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 쉬었다. 한때 사랑해서 결혼한 그였다. 하 사랑했던 남자. 사랑하든 안 하든 같이 살기도 했었는데, 그랬던 그가 집을 나간 지 일 년 만에 갑자기 찾아와 이혼을 강요한다. 도장 없어. 그는 여자 앞으로 뛰어왔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좋은 말 할 때 도장 찍어라. 일 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 와서 이혼이래? 여자도 남자에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둘을 휘감았다.


그의 뺨에는 보기 좋게 손자국이 나있었다. 그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자신을 소개하러 갔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본 순간부터 그를 탐탁지 않아했다. 인상이 안 좋아. 그녀에게 속삭였다. 속삭이긴 했는데 그에게 다 들렸다. 싫은 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그러다 부인이 있다는 말에 노하여 그의 뺨을 내리쳤다. 그녀는 황급히 그를 데리고 그녀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여자에게도 뺨을 맞은 그였다. 밀어붙이는 그를 향해 그녀는 욕설을 뱉으며 손을 뻗었다. 나쁜 놈. 빌어먹을 새끼. 자신을 향한 비난의 소리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녀의 손길에도 진정하지 못했다. 그는 사랑에 목마른 남자였다. 사랑받고 자랐다. 그래서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여자와 그녀는 자신을 사랑했다. 여자는 그에게서 사랑받지 못했고, 그녀는 그에게서 사랑받았다. 귀싸대기를 두 대 맞으며 자신에 대한 불신이 기어 올라왔다. Y야, 너 나 사랑하니? 그는 자신의 손을 맞잡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나 이런 사람 아닌데, 갑자기 내가 싫어진다. 그는 엎드려 있었다. 울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온기가 등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그를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침대 위엔 그도 그녀도 없었다. 여자의 집에서는 여자 혼자 아침을 먹고 있었다. 계란이 맛있게 부쳐져 있었다. 여자는 밥을 한 숟갈 퍼서 입에 넣었다. 혀를 씹었다. 비릿하게 피가 쌀을 적셨다. 여자는 입에 넣은 밥을 뱉었다. 밥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그녀였다.



 

 

정사(情事) [명사] 1. 남녀 사이의 사랑에 관한 일.

                         2. 남녀 사이에 벌이는 육체적인 사랑의 행위.

 

정사(情死) [명사]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하는 일.



(원고지 21.5장) 8.11 오후 6:40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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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 > 글이 상당히 외국작품 느낌이 나네요. 외국작품을 많이 읽은건지는 모르겠는데, 번역투가 좀 있는 것 같네요. 나쁜 건 아니지만 습작기에는 번역체를 사용하는게 좋지 않다고 들어서.. 아무튼, 내용은 상당히 단순함에도 감각적인 느낌이 듭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감각적 표현이 좋은 것 같아요. 남자 작가의 글 치곤 유연하기도 하고요. 다만 남자의 캐릭터가 극중에서 상당히 매력적이어야 함에도 매력이 없어요. 내용이나 인물의 관계에 치중하다보니 인물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글이 서술로 치우치는 감이 있습니다. 잘 읽었어요.
식충이 > 글이 너무 설명조라서 전체적인 재미가 떨어졌어요. 다음에는 문체에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해요​

Para > 그, 그녀, 여자. 지칭어가 다 대명사거나 성격이 비슷해서 약간 헷갈렸네요. 글을
보면 노림수인 듯 싶지만. 글이 눈앞에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청연님 평의 '서술에 치우치는~'하고 비슷한 뜻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와 여자가 동반자살했다는 걸 밑에 쓰인 단어 뜻을 보기 전까지는 긴가민가 했습니다. 발쪽이며. 표현이 재미있네요. 하나 얻어갑니다.

쑥물빛 > 여자가 그를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이 부분에서 시절이었다가 아닌, 대학생 시절부터였다. 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육체적 만남이었다, 보다는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육체적 만남을 통해서였다. 가 더 읽기 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밑에 정사의 뜻풀이가 없었다면 남자와 그녀가 동반자살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침대에 없었다는 것은 둘이서 어디를 갔다,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거든요. 그녀는 남자와 동반자살을 할 만큼 남자를 사랑했나요? 이 글에서는 그런 부분이 잘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리고 둘의 마지막이 꼭 동반자살이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둘의 상황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좀 더 절박함이나 그만큼의 깊이를 표현해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자가 밥을 먹다 혀를 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Toy > 이야기로 만들어서 길게, 더 자세하게 만들었으면 매력적인 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캐릭터들의 매력도 좀 더 살리고요. 죄송한 말이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캐릭터들이 다 죽어있는 느낌이 듭니다. 꼭두각시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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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지적이 많이 들어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번역체 지적부터 설명조 문체에 대한 지적까지. 
설명조 문체를 고치는 게 최우선의 문제인 것 같다. 특히 실기 준비를 해야하는데, 실기에서 설명조는 꽝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니면 글을 못 쓰겠다. 내 나름 한국 작가들 비슷하게 쓴다고 했는데 번역체가 보인다니. 
충격받았고, 또 충격받았다.

캐릭터에 대해 변명을 조금 하자면, 이 글을 오늘 12시에 각잡고 시작해서 6시 즈음 완성했다.
밥 먹고, 무한도전 보고, 올림픽 보다가 급하게 완성했다. 물론 구상은 안 하고 썼다. 
자기 전에 '정사'로 글을 써야지 하며 생각해둔 첫 문장을 빼고는 글을 쓰며 생각나는 대로 끼적였다.
당연히 캐릭터가 안 살 수밖에. 다음부터는 제대로 구상하고 쓸게요 ㅠㅠ 
제대로 캐릭터 다 잡고 쓰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테야.

근데 제목이 좀 민망하다...;;

그나저나 되게 오랜만에 쓰는 글. 되~게 오랜만.
1주 1작은 최명희와 토지 문학제가 겹치는 관계로 9월 1주까지 쉬도록 하겠어요. (내 맘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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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2-08-13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시작이지 않습니까.

이진 2012-08-17 00:57   좋아요 1 | URL
이제 시작이지 않습니까 ㅎㅎㅎ

아, 이상하네요. 분명 여기에 답댓글 달았는데 없네 ㅠㅠㅠ

마녀고양이 2012-08-15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하두 오랜만에 들어와서, 깜짝 놀랐잖아요.
소이진님이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계시는군요. 하아,,, 멋지네.

일단 짤막한 문체와 그녀와 여자라는 두사람 표현을 생각하신 점은 신선했고 재미있었습니다.
표현력이야 항상 톡톡 튀고 좋았구요. 생명력이 있다는 점에서, 저는 소이진님의 문체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소이진님이 잘 모르는 주제인거 같아요, 그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면이 잘 와닿지 않아요.
그냥...... 피상적인 면이 있네요.

나중에 또 읽겠습니다. 아하하, 멋져요,, 역시.

이진 2012-08-17 00:59   좋아요 1 | URL
어떻게 불러야할지 고민되요. 달사님이라 할까 여우님이라 할까 ㅎㅎㅎ

지적을 들으려 소설을 올리는 거지만 언제나 평을 들을 땐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지적을 들으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고요. 심장이 이렇게나 약해서 글을 쓸수나 있을는지 ㅠㅠ
솔직히 '정사'라는 단어를 불현듯 떠올리고 플롯도 짜지 않고 줄줄 써낸 소설이예요.
다른 사이트에도 올렸는데 올리는 데마다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 했다거나 여우님같은 평이 대부분이었죠.
하긴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겨우 그만한 일로 동반 자살이라니.
그래도 제가 쓴 소설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예요. 겨우 두개 썼지만... 크크

댈러웨이 2012-08-18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벌써 읽었는데요, 그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처음 꽁트보다 훨씬 좋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목과 첫 문장부터 완전히 확 끌어당긴다는. ( ")
모바일로 다시 한 번 읽어볼께요. 소이진님이 이전에 페이퍼에 썼던 것처럼, 확실히 모바일로 보는 게 눈에 더 잘 들어오긴 해요.

그런데, 번역체라는 것과 설명조라는 것이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문외한???

너무 어려워요, 시제??? 저렇게 시제를 준다니. 화이팅요!

이진 2012-08-19 21:33   좋아요 1 | URL
제목은, 안 그랬는데 알라딘에 올리려고 하니까 민망하더라구요.
확실히 처음 꽁트는 말도 안되는 헛 소리를 하나 지껄인거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한 두번 써보니까 대충은 감이 잡혀요. 지금 서너편 썼는데 벌써 알 거 같으니,
이제 오십 편 백편 써보면 한국 대표작가 되어있는거....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음이의어 되게 재밌었어요. 이런 건 언젠가 수시나 정시에서도 충분히 나올만한 주제니까 유용하기도 하구. 번역체와 설명조...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다들 그런 게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이번에 쓴 소설에서는 설명조 지적은 받았어도 번역체 지적은 안 받았어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