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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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글을 읽는 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한강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마음의 흔들림을 뜻하기 때문이다. 소설에 있어서 글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대부분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주가 되어 소설은 크게 굴곡지거나 평탄하거나 하는 다양한 형태를 띤다. 한강에게 있어 주는 감정이다. 혹은 감각. 한강의 글에 유독 이탤릭체의 독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강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두운 사람이다. 지병을 가지고 있거나 몸이 허약하거나 그도 아니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다. 이들에게 삶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척추가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휘어진 채 한강의 인물들은 한 발 한 발 힘겹게 나아간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아간다, 이지만 지금은 힘겹게, 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전술했다시피 한강은 이들의 내면의 흐름을 좇아 글을 써내려간다. 이들의 행보보다는 내면과 독백, 회상과 깨달음에 집중하기에 한강의 글에서는 인간의 감정들이 뚝뚝 묻어난다. 거대한 고통에 맞닥뜨려 고뇌하고 사념하는 인물들의 사유(思流)를 따라가는 것은 독자에게조차 힘겨운 나락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읽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강의 글을 읽음이 곧 마음의 흔들림이라는 말의 연유는 이것이다.


따라서 한강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인물들이다. 한강의 인물들을 정의해본 적이 있다. 갓 태어난 어린 새의 팔딱팔딱 뛰는 심장 같은 사람들,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광원을 감싸고 있는 유리막, 그 유리막을 그려낸다면 바로 한강의 인물들이라고 끼적인 기억이 난다. 한강의 인물들은 병들고 허약한 사람들이니만큼 연약하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힘겹고 지쳐 도무지 다른 것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삶은 결코 그들의 소망처럼 쉽지 않다. 부닥친 사건을 견뎌내는 사이 그들은 생기를 잃고 야위어간다. 손으로 움켜쥐면 곧바로 터질 듯 약한 아기새의 심장처럼,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입을 얇디얇은 유리막처럼. 이렇게 소설을 끝내었다면 평론가들은 한강을 허무주의자의 허세쯤으로 취급해 하대했을 것이고 독자들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거두었을 것이다. 한강의 인물들은 자신을 짓누르고 앞을 가로막은 삶에 투쟁한다. 김수영의 풀처럼 쓰러지고 짓밟혀도 일어난다. 당장의 부족한 월세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세면대의 컵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져 있으면서도 그들은 삶에 대한 의지를 주장한다. “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치고 아등바등 살(같은 책)”아간다. 삶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쟁취하려고 하는 것일까. 한강의 소설들은 이에 관한 질문의 제출과 자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주체가 한강의 인물들이 아닌 바로 한강 자신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한강이 그려내는 비슷한 이미지의 여성들은 한강 자신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면이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개성론의 시로 거론할 수 있다. 개성론이란 작가와 시적 화자가 일치하는 경우를 일컫는데 고백적이며 자전적인 성격을 띤다. 한강의 이 첫 시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집이 개성론의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늘 보였던 연약하지만 투쟁하려는 사람들의 모습, 즉 작가 자신의 형체가 시에서도 드러난다. 자화상. 2000. 겨울이라는 시로써 이 시집의 시적 화자들은 곧 작가 한강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집은 총 5부로 나뉘어 있는데, 각 부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인간 존재에 관한 성찰이다. 한강에게 인간이란 살아감의 고통을 안고 있는 생물이다.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살아가면서 의미를 얻는 존재로 인식된다. 고로 시집의 화자들은 하나같이 삶의 고통을 노래한다. “그렇게 부서지고도”(피 흐르는 눈 3) 살아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차라리 담벼락 밑에 뒹구는 돌멩이나 사물, 죽어 해골이 되기를 소망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통을 끌어올리며 한강은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몇 개의 이야기 12)은 단단한 슬픔을 적어낸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환멸이지만, 특히 한강은 언어적 고통에 마음을 쓰는 듯 보인다.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해부극장 2부분


 

이 시의 화자는 자기가 선천적으로 소유한 혀와 입술을 혐오한다. 화자는 혀와 입술에서 발화되는 말, 즉 언어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다. 인간의 고통은 어쩌면 최초의 언어에서 기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가 창조되고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사고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고통이 발아한 것이다. 언어 자체에서 드러나는 고통도 있다. 언어란 칼보다 폭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고 가면보다 두터운 가림막이 될 수 있다. 이를 깨달은 화자는 언어를 두려워하는 듯 보인다.


한편, 언어라는 것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언어를 가졌기에 발생하는 고통은 곧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느끼는 고통인 것이다. 인간 존재로서의 고통은 또 어떠한가. 한강은 정확히 시집에서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추측건대, 그것은 상실로 인한 고통이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서 화자는 저녁밥을 먹으려다 말고 흰 공기에 당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화자는 무언가 영원히 지나가버린 것을 깨닫는다.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는 그것의 정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상실로 인한 마음의 공허와 고독이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읽어낼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영원히 흘려버리거나 지나쳐버리는 행위임으로 인간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고 부족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한 불균일의 삶은 인간을 두 동강 내고, 세 동강 내고, 종내에는 조각들로 어긋나게 한다.


그래서 한강은 은연중에 살아간다는 것에서 탈피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파란 돌)라는 고단한 현실의 삶을 견디다 못한 화자의 하소연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때 한강은 한 가지 놀라운 법칙을 발견한다.


 

십 년 전 꿈에서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파란 돌부분


 

죽어서 본 예쁜 파란 돌을 줍기 위해선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죽음의 홀가분함은 실체가 없으며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인간이란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얻고, 살아가면서 아름다움을 만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 가장 환한 것과 가장 어두운 것이 공존할 때에야 인간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이때부터 한강은 살아간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화자들의 입을 빌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지를 표한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꿈으로 인해 한강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의 삶, 덤으로서의 삶을 살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긴 제목의 시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에서 한강의 거듭남을 볼 수 있다. 화자는 살아 있음의 고통을 느끼는 도중 어슴푸레 빛”(피 흐르는 눈 3)나는 살려줘, 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삶의 고통을 견디거나 극복하려는 면모를 보인다. 강원래의 공연을 보고 쓴 시 휠체어 댄스의 화자는 눈물도, 악몽도 자신을 좌절시킬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삶 앞에 의연한 태도를 드러냈다. 가장 격렬한 투쟁은 조용한 날들 2에 쓰여져 있다.


 

찌르지 말아요 // 짓이기지 말아요


 

1초 만에 /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갔다


 

―「조용한 날들 2부분(강조는 작가)


 

이 시의 화자는 한강의 모습이 투영된 여성일 테지만 말하고 있는 것은 달팽이다. 비오는 날 창문을 열심히 가로지르는 달팽이는 다가오는 화자에게 부탁의 말을 던진다. 마치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들이 신에게 자비를 구하듯 달팽이는 자신의 안위를 화자에게 강구한다. 주어진 삶, 운명에 구속되어 타자 혹은 초월적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나약한 존재. 그러나 달팽이는 내면의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투쟁, 달팽이는 극복하여 싸움으로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한강이 바라보는 인간 존재 또한 그런 것일까. 삶의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투쟁할 때 성장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인 것일까.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통과 투쟁해야 하는가. 한강은 그 방법으로 침묵을 제시한다. 인간의 고통을 잉태하는 혀와 입술을 제거하여 단단한 밀봉”(저녁의 소묘 3유리창)을 배우는 것이 고통을 견뎌내고 고통과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언어의 절제로서 고통의 기원을 절단하는 것.


그리고 인간은 고통과 투쟁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오래 성찰해야 한다.


한강의 시에는 당신이나와 같은 청자가 종종 등장한다. 이는 한강이 충고의 말을 건네는 특별한 대상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신이나 는 한강의 운명, 곧 한강 자신이다. 한강의 시들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였고, 그것은 자기반성이 된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연구하면서 한강은, 시의 화자들은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에 파고들게 된다. 그 경지에서 한강은, 시의 화자들은 희망의 부재를 체화하고 삶이 휘두르는 칼날에 오히려 몸을 내던진다. 이는 인간으로서 고통을 초월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작가로서의 사명으로 읽히기도 한다.


한강도 물론 시로 등단한 어엿한 시인이지만 역시 나는 소설을 쓰는 한강이 좋다. 그러나 한강의 시에는 한강의 소설에 조금 부족한 고요와 평온이 있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새벽에 들은 노래 3) 떠도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고 읊조리는 한강은 어쩐지 숭고해보이기도 한다. 한강이 이 숭고한 작업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몰래, 천천히, 한 글자씩 써내려가다가 십 몇 년 후, 아무렇지도 않게 묶어 두 번째 시집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좀더 원숙한 한강의 시를 접할 수 있을까. 삼십 대, 그 반짝일 순간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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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2015-08-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소이진님의 글은 진짜 감동이에요. 저도 고등학생이 되면 이진님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요. 고등학교 들어오고 제대로 된 책을 완독한게 정말 얼마 안되요. 막막하기만 하죠 뭐 즐거운 대학생활 하고 계시길 바라요. 보고싶었어요 이진님 ㅠ
 
호랑이 발자국 창비시선 222
손택수 지음 / 창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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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감싸는 차가움은 옷을 입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페이퍼를 쓸 지 리뷰를 쓸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엊그제 휴관일인 도서관에 잠입하여(사실 잠입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열람실은 개관 중이었기에. 그런데 요즈음 청소년들, 아니 현대인들, 최소한 우리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도서관은 곧 열람실이고, 열람실은 곧 독서실, 그러므로 도서관은 곧 독서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 말인즉슨 도서관에서 책을 안 읽는다는 거다. 도서관 갈래? 하는 말은 이제 책 읽으러 갈래? 가 아니라 도서관 열람실에 가서 인강 들으며 공부할래? 하는 말이나 똑같다. 여기엔 독서실이 없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잡지 코너 테이블에 앉았다. 종합자료실-갖가지 책이 들어선 장소는 잠겨있었지만 잡지는 통로에 공간을 만들어 따로 빼두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라도 허기진 뇌를 채우고자 했다. <PAPER>라는 잡지에 실린 이이체 시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감탄하던 중이었다(이이체 시인은 스스로 게으름뱅이라고 칭하는데 얼마전 글틴 캠프에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이체 시인은 그 자체로 시인이며 일반인은 따라갈 수 없는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단다. 등단하기까지 천 권을 읽었다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참 웃기다. 광화문 교보문고가 개장하자마자 시집 코너에 가서 시집을 읽다가 점심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또 시집 읽고 저녁 때가 되면 수업을 파한 문창과 친구들과 저녁 먹고 술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다시 시집을 읽었다고 한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충동적으로 내뱉은 "한 학기 안에 등단 못하면 시고 뭐고 때려치고, 아버지 원하는 거 할게." 하는 선언 때문이었다고 하니.). 물을 마시려 고개를 들었는데 눈 앞에 <한겨레 21>이 있었다. 불현듯 신형철이 떠올랐고, 나는 예전 호를 모아두는 곳에서 거의 칠십 권 정도를 가지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두어 시간 정도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만 찾아서 읽었다. 좋은 글이 수차례 머리를 때리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신형철의 글은 두손두발 다 들어 백기를 들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고, 그가 소개하는 시나 소설들마저 하나같이 빛났다. 특히 나는 그 중에서 그가 김중일의 시집을 소개해둔 지면이 가장 좋았고 그 시를 가져와보려 한다. '용산, 천안함 그리고'라는 부제를 가진 시다.




이것은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상형은 털 없이 매끄러운 피부에 가급적 눈물의 숱이 적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


시신의 일부 같은 저녁의 서쪽 하늘 아래서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고 나면 온몸에 털이 무성해지는구나

흑백사진 속 인화된 작약 같은 음색으로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꿈속에 숨어서 혼자 많이 우나 보다


깎아도 깎아도 끝이 없구나


누나는 턱밑까지 흘러내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자신의 얼굴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마당을 가득 채운 편서풍을 이용해 정리하곤 하였습니다


그 며칠 아버지와 형은 한 방울 그을린 눈물처럼

길에서 흔적 없이 흩어졌습니다

걷다가 모르게 빠진 한 올 머리카락처럼

길의 질량과 부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



- 눈물이라는 긴 털,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길의 질량과 부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도 모르게 빠진 한 올 머리카락 같은 죽음. 그런 죽음으로 남편과 아들을, 아버지와 同氣를 떠나보내야한 어머니와 누이의 시간 모르고 자라나는 털. 자고 나면 무성해지고, 깎아도 깎아도 끝이 없고, 얼굴을 망쳐놓는 털들. 김중일은 눈물과 털을 훌륭하게 뒤섞어놓는다. 신형철은 이를 두고 "옳다."고까지 표현했다. 털은 누군가에게 내밀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털은 수치스러우며 부끄러운 것일 터다. 적어도 어머니와 누이에게 털은 바로 그런 것임이 분명하다. 눈물처럼 사라진 가족을 눈물이라는 긴 털로 배웅하는 여자들의 처절하고 비참한 모습은 절로 애도적 분위기에 잠기게 한다.





이렇게, 단 한 편의 시밖에, 그것도 일부만 보았지만, 김중일은 가족을 향한 애도와 슬픔을 '털'이라는 이미지로의 치환을 통해 표현했다. 눈물과 털, 그리고 은유라는 시의 기능이 조화되어 시너지효과를 십분 발휘했다. 그러나 손택수 시인은 그와 조금 다르다. 손택수 시인에게는 좀더 사실적이고 담담한 묘사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 가족을 향한 따뜻하고 서글픈 시선, 그리움, 애틋함, 동정……이 시어가 잔잔하게 깔리듯 시집 전체에 묻어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시들도 바로 그러한 시들이고, 아마 시인이 특히 공들이고 사랑하는 시들도 바로 그러한 시들일 것 같다.



프레이야님의 페이퍼에 오른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고 오래 가슴이 저렸다. "내 눈 밑으로 열을 지어 유유히 없는 길을 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내려다본 적 있다, 16층이었다//기럭아, 기럭아/나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보아버렸구나/내가 몹시 잘못했다"(안도현, 등 『북항』).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보아버렸구나...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등'이란 단어를 두고 생각했다. 그저 기댈 수 있는 버팀목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던 등이 사실 통증의 부위였구나. 등이란 알고보면 얼굴과 몸의 뒷면, 즉 암면이구나. 불거진 척추 마디 사이사이에 고된 노동과 피로, 쓸쓸함이 때처럼 끼어 있구나. 손택수 시인도 등을 애틋한 부위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이하 동일)





"화성군 어디 공사장을 떠돌던 아버지"(송장뼈 이야기, 66쪽)는 한평생 제 몸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을 것이 분명하다. 변변한 직장 하나 없이 여러 공사장을 떠돌며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해야 했을 가장의 부담이 가장 클 테고, 뭐 어디 공사장 막노동이 쉬운 일인가. 벽돌과 콘크리트를 지게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라야했던 고되고 쓰라린 흔적이 아버지의 등에 남은 것이다. 아버지는 "가슴 깊이 가시를 물고 떨고 있"(탱자나무 울타리 속의 설법, 17쪽)는 빗방울처럼 "살속을 파고든 비수를 품고 둥그래진"(동일 詩) 것이 아닐까. 비수 같은 등의 흔적은 아버지에게 '털'과 같은 것이었을 지도. 아들에게 권위적이고자 했던 아버지는 그래서 아들과 목욕탕에 가지 않을 것일테다. 눈물같이 등에 그을린 지게 자국을 차마 보여주지 못하여서.


시인은 아버지가 무척 그리운 듯싶다. 조심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시엔 대부분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때로 권위적이고 엄하고 강하지만, 위의 시와 같이 여리게 등장한다. 또 '아버지와 느티나무'에서는 젊은 청년이다. 시를 통해 아버지와 교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시인은 아버지는 물론 다른 가족들을 하나하나 챙긴다. 송곳니가 닮은 할아버지부터 찾아오는 이에겐 무조건 숟가락부터 쥐어주었던 외할머니…… 시인은 모두를 따뜻한 시선으로 챙긴다. 


시인이 보듬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각박한 세상, 빠듯한 현실, 우리 모두의 삶을 능숙하게 다뤄낸다. 특히 불교적인 결합으로써 시인은 하고자하는 바를 충실히 드러낸다. 이시영 시인은 이를 두고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주로 비근한 소재를 들고 시를 쓰는 손택수 시인은 최근 문창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나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 눈에 선하다. 내가 활동하는 합평 카페에 만약 이 같은 시를 들고 간다면 무섭고 깐깐하신 멘토분들은 이것은 시가 아니라고 쳐낼 것도 같다. 나는 시집을 읽으며 연신 고개를 기울였다. 이렇게 좋은 시인데, 이렇게나 마음에 와닿는 시들인데 왜 시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서정시의 시대는 갔다. 그렇다. 손택수 시인은 서정시인이라는 데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오로지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의 시는 서정시라기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고 서정시가 아닌 것도 아니다. 신서정이라고 할까. 이것이 옳은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손택수의 시는 무언가 쓸쓸하다. 아름다운 서정이 아닌 쓸쓸하고 고된 서정이다. 눈물 같은 시들, 지게자국 같은 시들이 시집을 일궈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일년 전부터 붉은 거미가 보인다고 하였다. 붉은 거미가 천장에서 내려와 큼큼한 냄새가 나는 방안을 흰 머리카락 같은 거미줄로 가득 채워놓고 있다 하였다. 아무도 그걸 치워주지 않는다며 까까머리 어린 손주의 손목을 잡고 거미줄에 걸린 나비 날개처럼 파르르 떨리는 숨을 몰아쉬곤 하였다. 그때 삭정이 손가락이 가리킨 곳, 눈곱처럼 먼지가 끼어 있떤 창문 너머론 짱짱한 가을 햇살이 하얗게 쏟아져내리고 있을 뿐이었는데


아십년도 더 지나 아픈 몸으로 시골집에 내려와서 당신이 앓아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다보니 보인다. 여전히 눈곱이 끼어 있는 창문 너머로 사방에 거미줄을 치고 있는 태양. 햇빛에 돌돌 말려 몸속의 수액이 빨려 올라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듣고 있어야 하는, 붉은 거미의 줄에 걸린 생.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 아무도 대신 걷어줄 수 없다면


나는 그때 창문에 때묻은 커튼이라도 한 장 달았어야 했다.

허공에 손을 내젓는 시늉이라도 한두번 해주었어야 했다.



-붉은 거미, 22쪽





벚꽃이 진다 피어나자마자

태어난 세상이 절벽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아버린 자들, 가지마다 층층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린다

안에서 바깥으로 화르르

자신을 무너뜨리는 나무,

자신을 무너뜨린 뒤에야

절벽을 하얗게 쓰다듬으며 떨어져내리는

저 소리없는 폭포


벚꽃나무 아래 들어

귀가 얼얼하도록 매를 맞는다

폭포수 아래 득음을 꿈꾸던 옛 가객처럼

머리를 짜개버릴 듯 쏟아져내리는

꽃의 낙차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폭포,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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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2013-02-2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테그가 시집리뷰를 다시는 쓰지 않아야 겠다인거예요? ㅠㅠ
시임들을 볼 때면 매번 놀라요. 저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에. 어떻게 사물들을 오묘하게 엮고는 하는데, 정말 감탄스러워요. 전 글을 쓸 때면, 그렇게 써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름하여 선생님들 마음에만 드는 글밖에 쓰지 못하네요.
그냥 깔끔하고, 정리정연한 글?

2013-02-23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3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