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어느 시인의 죽음 - 자전적 에세이, 단편소설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혜린의 산문집을 읽은 적이 있다. 장석주의 추천사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수시 접수가 모두 끝나 수능을 앞둔 시기에 산문집의 첫 장을 펼쳤다. 어려운 어휘와 낯선 문장, 집결되지 않는 내용에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이국땅의 묘사를 눈앞에 그려내기 힘들었고 전혜린이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그림을 보듯 글자를 읽어 내려가기 일쑤였고 책 자체도 지루하다고 판단해서 독서를 중지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책의 글귀들은 물론 인터넷에서 일별한 전혜린의 흑백 사진까지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 기묘한 현상에 이끌려 수능을 치르고 나서 산문집을 다시 읽었다. 그렇게 하여 내가 내린 전혜린에 관한 결론은 그녀가 천재가 맞다는 것이다. 천재란 누구를 칭하는 단어인가.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몇 분 만에 풀어내는 사람 혹은 아인슈타인처럼 세계의 사고를 바꾸어 놓을 과학적 발견을 성취한 사람이 천재인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수재일 뿐이다. 천재는, 좁게 말해, 문학에서의 천재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문학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깨어 있는 자가 천재인 것이다. 전혜린은 세 가지 요건 중 특히 마지막에 충실했던 자였다. 갇혀 있지 않고 외국으로, 이국으로 자꾸만 떠나는 그녀는 떠나는 이유를 떠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독일 청년들의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알프스에 올라 둥근 달을 보며 경탄을 표하는 감성. 그녀의 이상적인 뜨거움과 열정은 가히 아름답다. 사실 그녀의 글이 다듬어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글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이상과 감각에 솔직하기 때문이다. 가감 없이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기에 그녀가 더욱 멋있어 보인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집을 읽으며 전혜린에게서 느꼈던 것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나는 이 산문집을 읽으려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 완전히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는데, 한강 덕분이다. 한강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기획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서재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끝에 그녀 인생의 책 몇 권을 소개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임철우 등의 저명한 작가를 꼽던 그녀는 외국인 남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책 한 권을 들어 보이며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매력이 있는 작품이구나, 하고 넘겼던 기억뿐이다. 한강이 인상적이었던 대목으로 꼽은 장면만은 오래 남아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을 과제 도서로 만났을 때 꽤 기뻤다. 그리고 그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파스테르나크의 글은 몹시 어려웠다. 번역된 지 오래 되어 글이 딱딱하기도 했고 파스테르나크가 읊조리는 이야기들이 생소한 탓도 컸다. 문장 자체는 상당히 유려하면서 생생했으나 묘사 위주의 스타일에 애를 먹었다. 나는 감정선을 따라 글을 읽어내는 데 익숙해 있기에 묘사적인 글에 취약하다. 즉 파스테르나크의 산문집은 여러모로 내게 불편했고, 이는 전혜린을 처음 접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래도 과제를 해야 했기에, 라는 형식적인 이유로 억지로 붙들고 읽었더니 난해함이 차츰 걷히며 파스테르나크의 감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게 죽은 피부 조직에 빨간 점의 핏기가 돌 듯 글이 내게서 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시인의 죽음을 요약하면서 한강은 만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만큼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파스테르나크가 만난 사람들이다. 작곡가 스크리아빈,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첫사랑의 여자, 친구 G, 그리고 마야코프스키까지.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순행적으로 자기가 겪어온 기억의 길을 밟아나간다. 한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더 눈길을 주었다. 파스테르나크가 이별을 대하는 방식은, 그러니까, 참 아름답다. 파스테르나크가 전혜린과 비슷한 범주의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그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으나 스크리아빈을 통해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밤,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한참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음악과 작별을 고한다. 한강의 표현대로 깨끗한 마음의 움직임, 어떻게 보면 숭고함까지도 드러나는 장면이다. 스크리아빈의 조언을 듣고 그는 독일에 가 철학 공부를 시작한다. 거기서 첫사랑의 여자와 재회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무턱대고 청혼의 말을 던지지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여자를 보내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는 생각한다. 철학 또한 내 길이 아니구나. 내가 철학이라는 명목으로 하고 있는 것은 문학이구나. 그렇게 그는 첫사랑의 여자와도, 철학과도, 독일과도 이별했다. 독일을 떠나며 그가 한 말이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철학이여 안녕, 젊음이여, 안녕. 독일이여, 안녕. 이처럼 파스테르나크도 이별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갇혀 있지 않고 자신을 자꾸 돌아보며 더 나은 길을 추구하는 모습. 그 과정에서 비치는 순수하고 깨끗한 감각들.


파스테르나크에게 가장 강렬했던 사람은 미래파 시인이었던 마야코프스키였다. 파스테르나크는 마야코프스키의 단어 하나하나에 감탄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열광했다. 삶을 바치고 싶었노라 기술했을 정도로 마야코프스키를 숭배하다시피 대한 것을 보면 애정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천재는 공존할 수 없다는 법칙에 의해 두 사람은 조금씩 어긋난다. 파스테르나크가 마야코프스키에게서 이해하기 힘든 점을 몇 가지 발견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두 개의 개성이 치열하게 맞붙는 동안에도 마야코프스키의 시는 그를 감격하게 했고 그런 의미에서 파스테르나크는 결코 그에게서 분리될 수 없었다. 파스테르나크가 마야코프스키를 탐닉했던 또 다른 이유는 정치성이었다. 마야코프스키는 혁명 시인으로 평가될 만큼 사회 변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파스테르나크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이는 파스테르나크가 마야코프스키를 우러러보는 이유가 되기도 했으며 그 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는 마야코프스키의 권총 자살로 끝난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이별은 슬픔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절망이었다. 파스테르나크는 절망에 잠식하지 않고 그것을 글로 승화했다. 시적이면서도 유려한 글은 파스테르나크의 마음이 이리저리 흐르는 듯 느껴진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이러한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다. 절망을 노래한 작가. 거창한가? 아니,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파스테르나크여, 안녕.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E-9 2015-08-28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소이진님이다!! 어찌나 반가운지 선댓글 후감상 하게 되네요^^ 잘 지내죠?
파스테르나크에게서 왠지 오도가도 못하는 우울한 지식인의 초상이 엿보이는 것 같네요.
(첫줄과 뒷줄의 시차는 리뷰를 읽은 시간만큼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아이리시스 2015-10-29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뒤늦게 와서..알겠..저도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손 번쩍!)
아.....................학교는 어때요, 잘지내는 거죠?^^

사랑이 2016-08-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본에 이어 최근에 러시아본 번역《안전 통행증. 사람들과 상황》이 나왔다. 모르고들있는걸까?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머니,

이승우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울게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기억이다.

 

이 문장을 읽고는 급히 펜과 노트를 찾아 메모해두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잃는다는 것이라기 보다 그와 함께했던 기억들로 쌓인 자신의 삶의 일부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일부를 잃음으로써 허망함을 느끼고 위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허망함과 위태함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떻게든 그를 살려보고자 전국에 있는 좋다는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니고, 좋다는 약은 다 해먹이고…. 하지만 그 어떤 위대한 의사에게 치료받고, 명약을 복용한다 한들 죽음은, 쓸데없는 수고라고 비웃듯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작별인사도 미처 하지 못하고 그를 보내야 할 때가 언제든 찾아오고, 사별과 함께 두려워하던 허망함과 위태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려 즐겁도록 만들어 주고, 남은 이들의 허망함과 위태함이 덜 하도록 보살펴 주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입니다. 오랜 투병과 고통을 겪고 이제는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찾아온 말기 암 환자들과 그런 그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힘을 기꺼이 내어주는 봉사자들과 의사들, 따뜻한 말과 마음이 오가며 호스피스 병동에는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든 온기가 감돕니다. 생의 끝, 밑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서서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해진다고 합니다. 평생 죽음을 연구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절망(우울)-수용'이라고 합니다. 즉, 부정과 분노와 절망의 부정적인 단계들만 거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활짝 웃으며 떠날 수 있는 '수용'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수용 단계에 이르는 며칠 동안은 환자와 가족들 모두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금자 할머니는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평생을 주고도 모자라 늘그막에 아프면서까지 베풀고 싶어하시는 인자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주저하며 가족들이 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도 가족을 걱정하며 위로해주시던 착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연 금자 할머니가 변했습니다. 생전 하신 적이 없는 욕을 자신의 남동생에게 퍼붓질 않나, 식사가 5분이라도 늦으면 벼락같이 호통을 치셨습니다. 평소의 인자하던 금자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모습에 놀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얼마 정도 금자 할머니를 마음으로 걱정하며 대해주었더니 다시 인자하던 금자 할머니로 돌아왔습니다. 맞아요, 할머니. 금자 할머니는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지나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하필 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위의 모든 것이 싫어시고 짜증스러워 지는 단계지요. 한평생 억눌러온 한(恨)과 고통을 마음껏 표출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늘 남에게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오면서 금자 할머니의 마음에는 자그마한 상처들이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었겠지요. 부정과 분노와 타협과 절망의 단계를 거치며 이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는 것입니다. 상처들을 표출하고, 덩어리를 해체하고 나서야 '수용'의 단계에 이르러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욕하는 환자가 좋다. 화는 울거나 웃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찾아오는 분노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평생 동안 가슴 밑바닥에 축적된 슬프고 시리고 아픈 상처들, 옹이로 박인 그것들은 분노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풀리고 사라질 수 있다. (113)

 

금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폐암 말기이셨던 당신께서는 투병 생활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셨지요. 당신께서는 자신의 병을 아시고 부터 얼마 간 많이 예민해지시고 짜증을 부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덩달아 화를 내었습니다. 이 책을 조금 일찍 읽었더라면 할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마음의 일들을 들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옵니다.

 

언젠가 당신의 약봉지를 보다가 '마약'이라고 써진 글자를 보며 깜짝 놀라 질문을 했던 적이 있지요. 마약을 왜 드시느냐고, 마약을 약으로 드시는 것이냐고. 당신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해답을 또 이 책을 읽으며 찾았습니다. 당신께서 드셨던 약은 바로 '모르핀'이겠지요. 암 환자에게는 암성 통증이 따른다고 합니다. 1에서 10까지 단계가 나뉘는데 어떤 단계는 버티기 힘든 통증은 맞겠지요. 이 암성통증을 이기는 데는 모르핀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폐암이셨으니 숨 쉬는데 고통이 따랐을 것입니다. 매일 밤마다 기침을 하는 당신을 보며 왜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과연 못했을까요, 안 한 것일 겁니다. 심지어는 짜증마저 부렸습니다. 조용히 좀 하시라고……. 당신의 고통을 모르고 내뱉었던 말입니다. 우리의 말에 얼마나 상처받으셨을까,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말기 암 환자들, 아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르핀'도 호스피스도, 항암 치료도, 명약 투여도 아닌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이라고 느꼈습니다. 명희 아주머니는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되어 돈이 많았지만 그 행복을 누릴 새도 없이 암에 걸렸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진 채로 호스피스 병동에 나타난 그녀는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통증으로 아파하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그녀를 앞에 두고 가족들은 허구한 날 싸웠습니다. 주된 내용은 유산 문제였습니다. 명희 아주머니의 돈을 더 많이 물려받기 위해서 가족들은 싸우고, 소리 지르고, 머리채를 잡았습니다. 그것도 아주머니 앞에서요. 아주머니는 그런 싸움 장면을 앞에 두고 늘 고개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그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이 부끄럽고,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하루는 아주머니의 남편이 찾아왔습니다. 또 싸웠습니다. 이제는 싸우다 말고 아주머니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당신이 잘못 키워서 애가 저 모양이잖아!" …….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과연 사람이라면 죽어가는 자를 앞에 두고 저주하는 욕설을 퍼붓고, 싸우고, 화를 낼 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이자, 자신들을 낳아주고 헌신하여 키워준 엄마입니다. 명희 아주머니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무시와 멸시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얼마나 불행하고도 슬프고도 안타까운 죽음입니까.

 

삶은 힘들고 암과 함께 가는 삶은 더 힘들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 마디, 따뜻한 스킨십이 환자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외로움을 치유해야 한다. (189)

 

평생 힘들었던 삶, 마지막 길마저도 힘들게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 저는 늘 후회하고,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당신의 고통 한 번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 손을 뻗으셨을 때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드리지 못한 것, 축복의 기도 한 번 올려드리지 못한 것, 셀 수 없는 많은 후회와 죄송함이 밀려옵니다. 저도 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언젠가는 호스피스 봉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저와의 약속이지만 이 죄송함을 가지고 있는 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죽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요.

 

 

 

(+) 청림출판에서 받은 도서입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댈러웨이 2012-07-1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차분하게 아주 잘 읽었어요. 뭐라고 좀 댓글을 달아야겠는데, 그냥 잘 읽었다고만 말하고 가려다가,,,
일단, 소이진님은 너무 어렸을거에요. 가끔씩 그렇게 할머니 한 번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안녕요.

p.s. 이승우 작가 리뷰라고 처음에 생각했어요. -- 오늘 알라딘 서재가 엄청 조용해요???

이진 2012-07-15 12:38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은 댓글 달지 말라고 쓰는 글이잖아요? ㅎㅎㅎㅎ
막 진지하고, 슬프고 이런 글... ㅋㅋㅋㅋ
진지해서 댓글 달면 안 될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제가 아이님하고 댈러웨이님한테 받잖아요.
두 분 글이 너무 진지하고 수준 높아서.. 막 ㅋㅋㅋㅋㅋ

주말되면 알라딘 축축 가라앉아요. 이상하죠?
알라딘이 학교나 회사하고 비슷한가봐요.
주말에는 안 해야할 거 같고 ㅋㅋ

cyrus 2012-07-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님이 인용한 첫 문장, 저도 보는 순간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어쩌면 인간이 타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곁에 있던 타인이 남기고 간 상실감으로 비롯된 허무함이 아니라 예전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낀 행복했던 경험과 기억들이 다시 재현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대한 슬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실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단순히 인간의 영이 육신을 남긴 채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 친할아버지랑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시간은 기억하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실감나게 반응한 적도 없고요. 그래서 막상 지금 곁에 있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정서적으로 큰 상심의 고통을 겪지 않을까 저 스스로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이진 2012-07-15 12:52   좋아요 0 | URL
이승우의 책을 읽다보면 저런 문장들이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저는 밀려오는 감동과 명문장들에 어쩔 줄 몰라하며 펜과 메모지를 들지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그가 떠나고 눈물이 날 때는 그가 추억될 때 잖아요. 그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슬픈게 아니라, 맞아요, 그로 인해 다시 웃을 수 없고 그가 빠져나간 기억이 허망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죽음은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달까. 죽음은 아직 막연하고 어렵게만 다가오고 있어요. 죽음을 완벽히 이해하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네요. 좋겠어요. 저는 중학교부터 벌써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두 번이나 겪었어요. 죽음에는 면역이 생겼어요.

2012-07-15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5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7-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글이 참 좋아요.
할머니가 저 세상에서 마음으로 읽으실 것 같아요.

이진 2012-07-15 12:4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푹 빠져서 글 써봤어요.
리뷰도 오랜만이구요. 은희경의 소설도 써야하는데 말이죠.

그러시겠죠...?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2-07-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리도 멋진 글을 쓸 수 있죠? 대단하삼. 슬프게 하는 건 기억이라는 대목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벤지란 강아지가 죽고난 뒤 한동안 벤지가 좋아하던 KFC에 가지 못했고, 벤지가 즐겨먹던 흰우유를 못마셨답니다. 그거 보면 벤지가 즐겁게 먹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글고보니 저희 할머니도 요양원에 계시네요.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잊혀져서,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해서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요.

비로그인 2012-07-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가요, 소이진님. (마치 우연히 처음 들른 것처럼-)
한 마디로 끝내려고 했는데... 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여기서 줄일게요.

jo 2012-07-1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할머니는 아니고 증조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어요. 심하진 않고요. 약을 매일 복용하셔야 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가까이 살면서도 공부한답시고 1달에 1번도 뵈러 가지 않는 제가 떠오르네요. 용돈 주실때만 좋아라 했던 제가 부끄럽네요. 진짜 있을때 잘해야 하는데.. 내일 찾아뵈러 가야겠습니다. 근데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ㅋ.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즈, Dame Kiri Te Kanawa sings>

 

 

 

 

 

   시리도록 하얀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을 쥐어 뜯으며, 가슴을 쥐어 뜯으며 탄식하고 또 탄식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런 일을 이제서야 책으로 접하게 된 나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고 그에 따라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답답하게 먹먹한 가슴을 어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힘들었다. 계속 찡하게 아려오는 코끝이 신경쓰였고 뿌옇게 흐려진 눈앞이 거슬렸다. 아, 이 애통함을 어찌 전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경찰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성실하고도 정의로운 용사였다. 고모부가 경찰이었고 그 분은 언제나 웃으셨다. 늘 착하셨고 듬직했다. 그래서 나의 머릿속엔 경찰은 착하다,는 이미지가 콕 하고 박혀버렸다. 또 중국 여행을 가서 본 제복입은 멋지고 잘생긴 경찰들로 인해 경찰은 멋있다,는 이미지까지도 박혀버렸다. 하지만 착하고 멋있기는 개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죄 없는 시민을 향해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발로 차고 밟는, 무자비하고 몰상식한 인간들이었다.


 

 

   간이 의무대를 차려놓은 교실은 더 아수라장이었다. 대부분이 이마가 깨진 사람들이었는데도 얌전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얼굴이 피칠갑이 되어 부어오른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양호한 편이었다. 네댓 사람이 계속 사람들을 들고 들어오는데 사지를 못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처럼 머리가 조금 깨진 사람들은 의식을 잃고 계속 들려오는 사람들을 먼저 돌보라고 몇 번이나 자기 차례를 양보해야 했다. (중략)

 

   나중엔 정말 응급처치를 해줄 아무런 대안들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빨간 소독약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의식을 잃고 실려와 바닥에 동댕이쳐진 환자들은 이미 넘쳐나고......

 

   그런데도 미친 전투경찰들은 바로 문 앞까지 다가왔다. 우리가 있는 교실 복도 창을 모두 깨뜨리며 가장 잔인한 욕설과 인상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경찰이 아니었다. 밖에서 전투경찰들이 던지는 돌을 피하기 우해 우리는 벽 뒤에 숨어 오들오들 떨었다. " 야, 새끼들아. 여긴 환자들 있는 곳이라고...... 사람 죽어가는데 이게 무슨 짓들이야. "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돌아온 대답은 기가 막혔다. " 이 개새끼들 니들 오늘 다 죽었어. " 그들은 환자까지도 다시 짓밟을 태세였다.

p. 168-169

 

 

 

   한국의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얼마 전 '부러진 화살'을 보며 경찰과 시민의 대립 장면을 접할 수 있었다. 제복과 방패로 시민 앞을 둘러싼 경찰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 하고 되짚어보니 ' 그래, 저건 다 옛날 일일 뿐이지 '하고서는 말했던 것 같다. 제대로 민주주의가 갖춰진 현재, 저런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위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년도는 2006년. 21세기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위 본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대추 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마을을, 아니 자신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의 인권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경찰들과 대항했다. 무장한 경찰들을 보고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그들의 자존심. 하지만 자존심만으로 무장경찰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송경동 시인은 머리에 벽돌을 맞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의식을 잃었다.

 

 

   하, 전투경찰. 이토록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한 전투경찰의 일기를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단지 훈련소에서 줄 잘못 섰다는 이유로 전 국민과 고참들에게 욕 먹는 자신에 대해 한탄하고 우리들에게 메세지를 전하는 글이었다. 자신들도 한 부모의 자식들이라고, 우리가 시위를 제지하는 것도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정치인을 지키고 싶어 전경이 된 것이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저 사회에서의 치안 업무를 당당히 하기위해 전투 경찰이 된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정치인의 똥개 새끼들...'하는 욕을 들으며 시민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창에 맞는 자신들도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본문을 읽으며 똑같이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정치인의 똥개 새끼들...'하고 욕을 했던 내 모습과 눈물을 흘리며 차갑게 식어버린 도시락을 까먹는 전경들의 모습이 겹쳐지나갔다. 아아, 대체 이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한진중공업에 관한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김진숙'이라는 이름만 알았고, '김여진'이라는 배우가 한진중공업 어쩌고해서 경찰에 불려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김진숙이라는 여성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심하게도 그 크레인이라는 것을 굴삭시 버켓이란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었다. 흙이 잔뜩 굳어있는 버켓에 올라가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크레인이 35m라는 것을 알기에는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언젠가 김진숙님이 크레인에서 내려온 날, 알라딘에는 많은 글들이 게재되었다. 알라딘 입성 초반, 아주 혈기왕성했던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그 분의 사진은 관중들을 향해 외치던 멋지고 당당한 흑발의 여성이었는데 알라딘에서 그녀의 모습은 초라한 백발의 여성노동인이었다. 그 충격에 나는 잠깐 "아아, 김진숙 님이 이런 분이셨구나"하고서는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금방 활기찬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진숙님이 노동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생각치 못했다. 그냥 인권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성의 몸으로서 남자도 하기 힘든 용접공을 하다니. 왠지 남녀차별의 분위기가 풍기는 생각인줄은 알지만 여성 노동자라니, 나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성의 몸으로 엄청난 혹사의 일을 견뎌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고있기에 나는 더더욱 그랬다. 여성노동자라니...

 

 

   송경동 시인이 군데군데 뽑아놓은 김진숙님의 <소금꽃나무>라는 책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울컥했다. 이런 끔찍한 생활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써 간접적으로 접하는 나도 이러한 일을 마주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직접 겪은 자들은 도대체 어떠한 고통을 품고 있을까. 대체...

 

 

   이소선 어머니가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있던 때가 있었다. 바로 그 분이 타계하신 날. 나는 뭐지?하는 마음으로 클릭했다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사실에 놀라고, 또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두번 놀랐다. 그리고는 또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에 글을 쓴 송경동 시인에 다시 놀랐다. 그 당시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글귀를 읽으며 이해하지 못했던 때와는 달리 너무나도 어머니의 마음이 잘 이해되었다. 나이에 상관않고 언제나 당당하고 또 씩씩하게 살아오신 어머니. 노동자들을 위해서 싸우셨고, 응원하셨고, 도우신 어머니. 희망버스를 타고 크레인에 가 김진숙을 만나는 것이 유언이었다는 어머니.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해 한 몸 바치셨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께

  

전태일을 아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바늘구멍 같은 어머니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갔기에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당신은 가난하고 힘없는 아들을 가둔 벽을 허물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만인을 살리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에미 노릇’으로 지켰습니다

당신에게는 배고픔도 슬픔도 고통도 분노도 외로움도

사랑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의 연행도 구속도 구타도

사랑이었습니다

평화시장을 살리고 유가협을 세우고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힘이었습니다


전태일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를 것입니다


당신은 만인의 해방을 위한 길을

오직 사랑으로 걸어갔기에

영원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

 

 

  
   힘든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닫고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2년 전부터 알아오던 한 누나가 있다. 그 누나는 해양 대학을 나와 선장일을 하다가 여자의 몸으로 배를 타는 것은 결혼에 좋지못하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이 있는 시골로 내려와서 살게되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매일 성실하게 살았다. 첫번째 시험은 합격하지 못한 것인지 아무런 말도 없던 것을 보아서는 그랬던 것 같다. 대신 다음 시험을 준비하며 군청의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그 누나의 친구가 농협의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정규직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배가 아프다며 웃으며 말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하면 인간 취급도 못받지"하고서는. 그리고 이제야 이 책을 읽고 비정규직의 애통함을 알 수 있었다. 나도 한 번 기회가 된다면 그들의 편에 함께 서서 응원해주고 싶다. 언젠가는...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3-02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는 것도 힘들고 느낌을 풀어내기는 더 힘들지요, 그래서 나는 리뷰를 못 썼어요.
하루에 많이 읽을 수 없어, 조금씩 조금씩 심호흡을 해가며 읽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알고 이해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면 좋겠어요.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진 2012-03-02 17:11   좋아요 0 | URL
초반에는 그래도 편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가슴을 누군가 콕콕 찌르더군요. 저도 이 느낌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도통 모르겠어서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만 썼는데 또 리뷰를 쓰면서도 눈물이 나려고 해서. 정말 저같이 이런데 문외한인 사람들이 비정규직 근로자나 시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으면 해요^_^

ICE-9 2012-03-04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읽기가 힘들었던 책 가운데 하나였어요. 저려오는 아픔, 무심코 스며드는 눈물 때문에...
어서 빨리 가장 약한 자의 눈물을 먼저 보고 따뜻하게 닦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진 2012-03-04 22:13   좋아요 0 | URL
헤르메스님이 저의 마음을 참 잘 표현해주셨군요. 저려오는 아픔, 무심코 스며드는 눈물... 읽는내내 한숨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발 그런 사회가 속히 오기를...

어머니 2012-03-1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서평을 읽는 동안 가슴이 뭉클하고 눈이 시큼시큼 합니다. 고 이소선 어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 블로그입니다. 영화 <어머니>가 곧 4월 5일 개봉합니다. 시간되시면 꼭 관람해주시고 이소선 어머니를 다시 한 번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신간평가단에 들어오기 전의 리뷰들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퀄리티있도록 쓴 글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여 한 편, 한 편 작성했고 그것을 여러번 읽어보고 수정했기에 눈에 거슬리는 곳도 얼마 없는 글들이 나왔었다. 비록 그것들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겠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뿌듯했던 글이었다. 하지만 신간평가단에 들어오면서 나는 점점 내 글에 탐탁치 않음을 느꼈다. 신간평가단으로 인해서 알라딘 서재에 입성하게 되었고 수많은 애장가분들의 글을 읽게되었다. 내공이 탄탄하신 분들의 놀라운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되자 나는 내 스스로가 작아져감을 느꼈다. 그것이 굳이 알라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글에 자신도 없어져서 어느샌가 대충대충 글을 쓰게 되더라. 전에는 쓰지않던 다이어리도 몇줄 간단히 적고 끝낼때도 많고. 그렇다고 작아져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이어리를 끄적이는 내 스스로에게 아직 청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건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전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일을 통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시도때도 없이 도서실을 드나들며 책을 읽고, 빌리고 한 탓에 매번 다독상 1위에 올라 한 번은 사서 선생님께서 너는 많이 해먹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하고 말씀하신적도 있었다. 그랬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책 구입의 맛을 알아버린 필자는 도서관을 그리 좋아하지 않게되었다. 새책의 부드러우면서 텁텁한 종이냄새와 빳빳한 새 표지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눅눅해진 책꺼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평소에,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성격이기에 어떤 일에 제한을 두면 그 시간내에 절대 어떠한 일을 완수해내지 못한다. 절대 자랑은 아니지만(이런 성격탓에 미술수행평가를 항상 늦게 냈지만 후에는 미술선생님께서도 포기하시고 그림으로만 보았다.) 이 성격이 책을 빌려보는것에도 적용되더라. 초등학교때의 습성을 물려받아서 중학 입학 초기에는 줄창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게일포먼의 책도 몇권 빌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빌리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물론 그때는 작가들은 몰랐고 그저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골랐었다. 그런데 그 책들이 안 읽히는거다. 분명히 제목은 흥미로운데 도저히 책 표지로 손이 가질 않더라. 그래서 한 문장읽고 반납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다. 항상 책의 반납일은 연체되기 일쑤였고. 이래선 안되겠다, 하고 생각해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 후부터 책 수집을 시작하면서, 프리한 독서생활을 하는 방법까지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주로 어린이를 위해 쓰여진 책이나 성적호기심을 다룬 책을 읽었다면 중학교에 들어서는 그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진 책들을 읽었다. 책이라기 보다는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을 많이 접했다. 책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여러 작가와 그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그로인해서 눈과 입으로만 독서에 대한 지식들이 늘어갔다. 이상하게도 책을 구매하면 할수록 마음은 뿌듯하고 편해지는데 책은 안 읽히더라. 그저 책장에 빼곡히 들어앉은 책 먼지냄새만 맡아도 좋다. 지금도 그렇다. 마음 내키면 읽고 그렇지 않을때는 안일하게 지낸다. 나는 책읽을 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또 그것이 엄청난 시간의 갭을 두고 떨어져 있기에 요새는 책을 많이 못읽고 있다. 내가 내키지 않을 때 책을 펼쳐들면 엄청난 잡생각으로 단 한글자도 읽지 못하고 덮기 일쑤이기에 꼭 내킬때만 읽었다. 요새는 신간평가단이 겹치며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들지만 역시 억지로하는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성숙된 작품들을 읽으며 문장력 또한 성장해 나갔다. 늘 작문대회에 출전하면 선생님들께 듣는 이야기는 "문장력은 좋은데..."였다. 한번은 군에서 주최하는 창작 작문대회에 나갔는데 글감이 '교실'이었다. 대회 출전 얼마 전에 동성애를 다룬 작품을 감명깊게 읽었기에 나도 교실을 배경으로 동성애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한국 작품보다는 번역된 작품, 그리고 고급스러운 인터넷 소설(이모티콘이 전혀 쓰이지 않은 진짜 소설다운 인터넷 소설)만 읽던 내게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전개 방식은 물론이고 줄거리 정렬의 방식은 어렵기만 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엄청나게 잘 썼다고 생각했고 당당하게 냈다. 사실 1분을 남기고 3줄이 남은 상황에서 검토할 생각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고. 결과는 참담했다. 장려라고는 하지만 못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내가 못썼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바로 선생님께 항변했다. 선생님께서 심사위원을 하셨기에 따지고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창작은 심사를 안해서 모르겠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이진이는 문장력은 좋은데 이야기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정신없다고" 아, 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 스스로 내 글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유리심장이 탁하고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여러번의 고비를 겪으며 꿈을 국어교사로 잡게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을 좋아하는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장래희망이 시인인 자가있다. 참 많은 면에서 나와 닮은 아이인데 책을 좋아한다는 것, 글 쓰는 일을 즐긴다는 것,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피아노를 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등등 이것말고도 오랜시간동안 친구로 지내온 탓에 서로 비밀을 터울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 둘이서 들어간 동아리는 수학반이었는데 인원도 적고 친한친구들끼리 모였기에 선생님께서도 우리 이야기에 가끔 동참하시고는 한다. 선생님께서 참가하실 때마다 우리는 항상 미래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저는요 시인이 될건데요. 엄머는 계속 음악쪽으로 가라고 하시네요""선생님, 제가 수의사가 괜찮을까요 국어교사가 괜찮을까요. 정말 수의사하고싶은데 도저히 이과쪽으로는...(접니다, 후후)" 하는 둥 선생님께서 우리 말을 경청해주시고 답변해주시고는 한다. 그리고 이 동아리 선생님과는 미래이야기를 하는 반면 국어 선생님과는 문학 쪽 미래이야기를 한다. 선생님께서는 너희 둘처럼 글 쓰는일에 대해 의욕을 가진 사람은 요즘 시대에 별로 없다며 한 번 투지를 가지고 신춘문예같은 곳에 글을 내보라고 했다. 시인이 꿈인 친구는 당연히 그러리라 하였고, 나도 결코 꿈꾸어 보지 않은 일은 아니었기에 마음에 새겨들었다. 국어선생님께는 작문 특강도 받으리라 예약해둔 상태인데 연락이 없다.

 

 

               그렇게 시인이 꿈인 친구와 친해지다보니 그가 쓴 시도 많이 읽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에는 두각을 나타낸 아이였기에 대회만 나갔다하면 장원은 식은 죽 먹기였다. 시를 새발의 때만큼도 모르는 나에게는 꼬부랑 글자 몇 개 조합해 놓은 듯한 글처럼 보였지만, 또 그냥 단어 몇마디 씨부리면 되는 글처럼 보였지만 그에게는 오랜시간 고민을 해가며 썼던 글이리라. 시를 쓰기위해서 시인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 쓴다고한다. 최명희 작가는 글을 쓸 때 바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는 마음으로 임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소설가뿐만이 아니라 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것이다. 아니, 오히려 시가 소설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소설은 공지영 작가가 말하기를 구상만 끝내면 글이 술술 나오는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그 구상이라는 것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한 번 탄탄히 짜두면 결코 틀어질 일이 없다. 하지만 시는 그렇지 못하다. 구성을 다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함축하기 위해 어떠한 단어를, 어떠한 비유를 써야할지 또 고민하여야 하고 또 그것에 생각과 사상을 담아내기 위해 또 고민해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를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어쨌든, 그의 시 중에 [시작始作]이라는 시를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예전에는 약간의 질투심으로 그의 시마다 뚱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 작품은 아주 걸작이더라. '보라/그리하면 느낄 수 있다/느끼라/그리하면 경험할 수 있다'하는 식의 시였는데 외우고 있지는 않은터라 일단은 내가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너무 좋은 나머지 그 친구에게 이 시를 액자에 넣어서 내게 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웃으며 알아서 해라고했고. 그리고 한가지를 더 물었다. "대체 이 시는 어떻게 쓴거니?"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는 나의 진지한모습에 웃음이 터졌는데 입에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해주었다. "시는 생각해야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 얕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어. 그러면 시를 쓸 수 있게 되는거고. 그렇게 해서 쓰인 시는 소위 망작이 나올수가 없지."

 

 

               그렇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깊이, 혹은 얕게 생각한다는 것은 깊이 파고든다는 것이며 깊이 파고든다는 것은 그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느껴야만이 나의 것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다. 작가는 한 가지 사물만으로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 꾼이어야 한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이야기꾼을 판별하는 척도가 아닌 얼마나 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파악하고 느꼈는가의 정도를 판별하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훌륭하다. 글을 쓰기위해 그 사물을 엄청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파악하고 느꼈는지 단번에 느껴진다. 첫 글인 '남자와 여자'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사용하여 남성이 모성에 대한 향수를 갖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하였고, 여성의 남성성또한 설명했다. 이 글 외에도 여러곳에서 성경말씀이 인용되어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다. 또 작가는 자신의 여러 지식들을 사용하고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서 글을 좀 더 고급스럽게 꾸몄다. 하지만 전혀 멋을 내려는 듯 보이지는 않는다. 작문 초보자라면 쓸데없이 미사여구를 사용하거나 고급 어휘를 사용한다고 글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이 작가는 그렇지 않다. 역시 프랑스 최고의 지성답게 어려운 단어로써도 우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알린다.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도 무척이나 돋보인다. 버드나무와 오리나무를 통해서, 그리고 돈후안과 카사노바를 통해서 이토록 수준 높은 글을 써냈다는 것은 작가의 사고력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방증해주는 것이며 상상력또한 무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롱과 찬양'이라는 주제로 표현주의를 생각해내는가 하면 '샘물과 가시덤불'로 성경의 모세를 생각케한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모든 생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작가와의 수준차이가 너무 클 뿐더러 그의 상상력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는게 이리 좋은지는 몰랐다. 요새는 생각하는 것, 창의력이 중요시되고 있다. 고뇌하고 또 고뇌해야 첫 줄을 써낼 수 있는 논술이 판을 치고 있는 사회의 흐름에서 이 책은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의 중요성을 밝혀준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되기는 힘들지만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1-27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썼군요. 이 책 근데 어려워보여요. 에세이인줄 알았는데 이론서군요. 음.. 국어 선생님은 문장력 안좋아도 괜찮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상관이 없는 거지만 소이진님은 벌써 잘쓰는데?^^ 사고력, 창의력, 상상력,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야 쌓아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좀 알려줘요. 히히히히.

이진 2012-01-27 10:31   좋아요 0 | URL
막상 접해보면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제가 리뷰를 너무 못써서 어려운것일뿐 ㅋㅋ 언젠가 아이리시스님이 리뷰는 다른사람이 이 책을 읽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그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지요.
저도 사고력, 창의력, 상상력 무지무지 떨어집니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에도 과감히 도전을 못하겠다니까요.. ㅠ

2012-01-27 0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7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1-2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국어교사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국어교사가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을 선택해도 잘 할것 같지만요. 그런데 국어교사를 하면, 나중에 소이진님 같은 제자를 만났을 때, 그 제자에게 너는 문장력은 좋은데 이야기는 산만하구나 그것을 보완하렴, 하고 말해줄 수 있잖아요. 더 늦기전에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것도 아이에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

이진 2012-01-27 12:05   좋아요 0 | URL
하지만 저도 그제껏 산만한 문제점을 고치지 못한다면 제자에게는 더없이 못난 선생님이 되겠지요. 성격상 남앞에 서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 자체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국어교사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끌리지만 고민중에 있어요. 수의사도 하고싶거든요

:D
 
[소울푸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추웠다. 거리의 나무들은 가지가 잘려나갔다. 가로수 정리 중이었다.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와 함께 가지들은 떨어졌다. 황량한 기둥만이 남았다. 이파리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추운 냉기가 닥쳐왔다. 나무마저도 추운 날이었다.

 

  나는 꽤 들떠있었다. 지겨운 7교시도 이제 10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곧 마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마친다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라면 폴폴 끓여 먹는다. TV와 함께 깔깔대면서 먹는다. 내 방은 난방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이처럼 추운날  따뜻한 거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다. 비록 벗은 라면과 TV뿐이지만 좋다.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볼만한 프로그램도 없지만 그래도 좋다.

 

  오늘따라 나는 가방을 두 개 들고 갔었다. 잡다한 프린터, 영어 자습서와 단어장, 몇 권의 소설책과 에세이집, 다이어리와 여러 권의 공책들을 넣은 본 가방 한개. 그리고 악보만 잔뜩 넣은 가방 한 개 더. 문제는 이 악보가방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하게 무겁다는 것이다. 책으로 출판된 악보만 5권 정도 있다. 또 악보 파일집만 여섯 권, 그냥 쑤셔넣은 악보만 합해도 곡의 총 수는 거의 300개 정도. 그래도 다 종인데 얼마나 무겁겠어?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학교갈 때 무심코 들고 뛰다가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결국 뛰지도 못하고 지각. 이때부터 이 악보가방과 나의 악연 시작.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나는 룰루랄라 휴대폰을 받아들고 가방을 챙겼다. 책상서랍에 넣어둔 다이어리 꺼내서 본가방으로, 영어자습서 꺼내서 본가방으로, 악보가방 챙기고. 넣을 공간 없어서 그냥 들고갈 바로 이 [소울푸드] 팔로 받쳐들고. 그리고 3일동안 묵혀둔 우유 3곽 책 위에 얹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여자친구들과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었다. 이런 낭패가! 마침 빨래한 옷을 허겁지겁 입고 나온터라 호주머니에 열쇠도 없었다. 가방 옆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스테이플러 심에 손만 찍혔다. 할아버지는 컴퓨터 교육 받으러 가셔서 족히 40분은 있어야 집으로 오신다. 이런.

 

  혼자 낙담하여 풀이죽어 서 있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가며 "뭐해~"하며 묻는다. 나는 대답대신 물기 머금은 눈빛 보낸다. 5분이 지났다.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아직 종례를 다 안 마친듯 하다. 2초씩의 간격을 두고 계속 전화를 했다. 전화 목록을 보니 무려 스무통. 그런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슬슬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 문자를 보냈다. 격렬한 말투로 보냈다. 10초 뒤 답장이 없길래 다시 전화하니 그제서야 받는다.

 

  "야, 열쇠 갖고 튀어온나"

  "없는데, 내도"

  "아~씨..."

 

  늘 이런식의 대화다. 끊는다는 말도 없이 끊었다. 이제 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이럴 때가 제일 외롭다. 춥고 집문은 잠겨있다. 그 누구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정류장에 왁자지껄 모여있던 친구들은 벌써 차 타고 가버린지 오래. 이 짜증을 털어놓을 사람만 있어도 좋을텐데 없다. 전화해서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보가방과 손에 든 책, 우유가 슬슬 몸까지 힘들게 만든다. 본가방이 너무 커서 악보가방은 어깨 한 쪽이만 걸쳤는데 장난아니게 무겁다. 식은땀이 뻘뻘난다. 우유는 계속 미끄러진다. 한 개 땅에 떨어트렸는데 떨어지게 전에 발로 한 번 차서 터지지는 않았다. 결국 우유는 집앞에 던져놓기로 결정. 도저히 가방은 길바닥에 놓아둘 수가 없어서 메고 있기로 결정.

 

  그런데 마침 교문을 나오는 친한 여자무리 발견. 얼른 달려갔다. 집에 안가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나는 "집문 잠겼어"하며 흑흑대는 행동을 취한다. 내 모습에 깔깔대는 그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자주 있었기에 익숙하기도, 재밌기도 했었겠다.

 

  그들은 붕어빵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돈 없는데, 하면서도 따라갔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여러개 사서 하나는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갔는데 다들 치사하게 하나씩만 사먹는다. 처절하게 "꼬리만...꼬리만 주라"라고 해도 못 본척 돌아선다. 에잇, 치사한 것들아 하면서 집으로 갈려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 한 명이 다가온다. 불쌍한 오빠 붕어빵 하나만 사주라 하고 부탁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그녀도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놓은 상태라 그 보답으로 사주겠노라 했다. 고맙게도 1,000원 어치 3개를 사준다. 그리고는 내 손에 쥐어준 뒤 "꼭 내 부탁도 들어줘"하며 쌩하니 지나간다. 바쁜일이 있나보다 하고 나는 붕어빵 봉지를 들고 여자무리를 향해갔다. 역시 쥐떼까지 모여든다. 범석아 한입만, 꼬리만 주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싫다고 말하며 끝내 꼬리 하나씩 떼줬다.

 

  그 친구들도 보내고서는 혼자 집앞으로 왔다. 그리고 악보가방을 집앞 땅바닥에 내팽겨쳐 버리고 붕어빵 하나를 꺼내들었다. 슈크림으로 속이 꽉 찬, 꼬리가 없어진 괴상한 모양의 붕어빵이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에 부드럽고 달콤한 슈크림이 퍼져나갔다.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다. 갓 구운 빵과 슈크림의 조화가 어찌나 맛깔나던지. 그 추위에 떨던 내 속이 단번에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30분 정도의 설움이 붕어빵 하나로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붕어빵은 내게 손난로 였으며, 온풍기였다. 붕어빵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스트레스 쌓인 채로 밤 지새웠을 거다. 내가 다리뻗고 푹 자게 해준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붕어빵. 슈크림 붕어빵.

 

  나의 필력이 훨씬 못 미치기는 하지만 이러한 형식으로 [소울푸드]는 전개된다.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 겪었던 이야기를 음식과 연관지어 이야기한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젊고 그들은 나이가 꽤 있다. 나는 현재형이고 그들은 과거형이다. 나는 아직 세상을 많이 겪어보지 못했고 그들은 겪을대로 겪어봤을 것이다.

  초반에는 끼워맞춘다는 생각이 들어 쉬이 글이 읽히질 않았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정말 끼워맞추기 식이었다. "연애는 카레라이스다"라는 문장이 특히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는데, 은유법을 사용했다고 해도 아직 사랑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게는 끼워맞추기 식 밖에는 되질 않았다.

 

 

 

  [소울푸드]를 읽으며 내내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대체 소울푸드가 뭐야?"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시간도 없었고 해서 그냥 읽긴 했지만 이 궁금증 때문에 집중이 안되었다. 그러다 '황교익'씨의 글에서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닌 거의 '개념'에 가까운 설명이었다.

 

 

  현상이나 사물을 글로써 표현해야만 개념이 생기고, 그 개념이 정립되었을 때에야 그 현상이나 사물이 뚜렷하게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인간의 지적 활동이란 대체로 이런 식의 '조작'을 바탕으로 한다. 소울푸드는 음식에 대해 인간들이 보이는 특정의 기호를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조금 느슨하게 말하면, '인간은 어릴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해 강한 기호를 나타내는데 그 기호가 집착 수준에 이른 것'정도가 될 것이다. 먹고 싶어 '환장'하겠고, 또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울푸드란 것이 과연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낱낱의 현상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있다.  (164p)

 

 

  아하, 이것이 소울푸드라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아까 쓴 붕어빵은 내겐 소울푸드가 아닌 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붕어빵을 소울푸드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붕어빵은 내게 온기를 불어넣어 준 음식이 될 테니까.

 

  이 개념대로라면 나의 소울푸드는 아마 '치킨'이 될 것이다. 어릴 적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었던 그 수제 치킨을 엄마와 마주보고 먹었던 일, 아빠가 돌아오는 길에 사오기를 손 모아 기도했던 일, 지금까지도 그것이 먹고 싶어 환장하겠고 또 먹으면 다음 먹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이 글도 그렇게 무거운 주제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내가 말한 붕어빵이나 치킨보다 더 흔한 라면으로 [닥치고 정치]와 나꼼수로 무서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어준씨는 글을 썼고 성석제 작가님은 우리 고유의 장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외에도 술이나 커피, 카레, 주먹밥, 소세지 등의 음식들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가 끓여주었던 된장찌개에 대해 무한사랑을 표출하는 이충걸 작가, 이탈리아에서 소 내장 스프를 먹고 감동을 받은 박찬일 작가 부터 빨계떡(빨갛게 맵고 계란과 떡이 들어간 라면)이 자신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박상 작가에까지 소소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또 웃음 터트리는 글들이 가득하다. 우리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가 가득하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아들에게 커피의 이 맛만큼은 꼭 가르쳐주고 싶다. 원래 커피는 그런 거라고, 매일매일 마시는 거라고. 매일매일 마셔도, 또 또 생각나서 마시고 싶은 그런것, 힘들고 지칠수록 더욱 뜨겁고 달콤하게 나를 깨우는, 마치 소설처럼, 사랑처럼, 바로 너 처럼. (182p)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12-1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올라왔네 ㅋ..ㅋ
도장 꽝!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정성스런 리뷰 잘 읽었어요 :)

Arch 2011-12-16 16:45   좋아요 0 | URL
두분 다 신간평가단이에요? ^^ 소울푸드란 개념이 좋아요. 책은 어떨지... 여러명이 한 주제에 대해 쓴 글은 몇 꼭지만 좋은 경우가 있어서.

이진 2011-12-16 18:32   좋아요 0 | URL
ㅎㅎ 수다쟁이님은 소설이구, 저는 에세이입니다!
진작에 소설로 갈걸... 지금 후회중 ㅠㅠ
소설 대상도서가 무척무척.. 심하게 부럽거든요 ㅋㅋ

이책도 그래요
몇꼭지는 영 별로인 게 많답니다..
많지는 않은데.. 쩝

Arch 2011-12-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도 신간평가단에 들어가는거라면 저도 신청할걸, 아쉽네요.

이진 2011-12-19 16:10   좋아요 0 | URL
ㅠㅠ 저는 소설신청할 것을.
저는 에세이가 저와 맞는 줄 알았는데,
역시 읽다보니 소설이더군요. 쩝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