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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그 자리
이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한 주 전에는 수제비 반죽 같은 눈이 육수에 풍덩풍덩 빠지듯 내렸고, 그제에는 단체로 실연을 맞은 구름떼가 하루종일 슬피 눈물을 흘렸고, 어제는 지상으로 마실 나온 안개들이 모든 것을 희뿌옇게 뒤덮고 있었다. 눈이 내리든 비가 내리든 안개가 덮이든 사건사고는 연일 끊이지 않았지만 내(內)에서 은은히 감돌던 서정성은 조용하게 극치를 향해 달려갔다. 한강으로부터 시작하여 신경숙, 윤성희, 김미월, 이혜경에 이르기까지 나는 몇 주 동안을 여성 작가와 함께 지냈다. 그 중 대부분은 한강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냈고, 그 다음으로 이혜경에게 관심과 열성을 쏟았다. 세심하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러나 날카로우며 남성을 능가하는 힘과 격정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러한 글들. 게다가 매력적이며 탄탄하고 잘 쓰기까지한 소설들에 담뿍 빠져 며칠 밤을 샜다. 샤프 펜슬과 형광펜을 손에 쥐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행복하고 즐겁게 읽어나갔으나 힘든 점도 있었다. 단편 소설의 특장이기도 하나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데, 짧다는 것이다. 몰입이 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작품을 읽고, 또 다른 작품을 연달아 읽을 때 속에서 솓구치는, 그리고 뒤섞이는 감정들이 문제다. 물론 두 작품 간에 시간을 두고 곱씹으면서 찬찬히 기다리면 되긴 되나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집이라 칭해지는 책은 이 짧은 소설이 대부분 예닐곱개 씩은 들어가 있기에 한 권을 하루에 다 떼기 위해선 미분함수니 지수함수니 삼각함수니 하는 수학적 혼란이 아닌 문학적 혼란을 견뎌내야 한다. 나는 이혜경의 신간 소설집을 이틀에 걸쳐 완독하며 몇번이고 한숨과 탄식으로 속에서 응어리진 어떠한 감정을 뱉어내어야 했다. 그것이 아니면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문장들과 생각들을 정리하여 머리속 한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그래야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혜경은 농익은 소설을 쓴다. 그렇다고 야릇하고 요염하다는 소리는 아니고 분위기나 글이 다른 작가들보다 성숙한 느낌이 빼짓이 배어난다. 나중에 한강에 대한 글을 쓸 때 자세히 말하겠지만 잠깐 언급하자면, 한강은 어린 새의 심장 같은 소설을 쓴다. 여리고 연약하고 투명하고 부드럽고 뜨겁게 뛰는 소설들을 쓴다. 그 때문에 나는 한강을 20대 젊은 작가로 여겨왔고. 한강의 글은 투박하지도 촌스럽지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세련되거나 도시적이지도 않다. 적당히 중립적이면서 충분히 감정적이고 서정적이다. 이혜경의 글은 결혼 10년차 넘는 주부가 사골을 한 양동이 끓여놓고 불현듯 외국 여행을 떠나 양주를 홀짝이며 남기는 일기 같다. 원숙미가 글 전체에, 비록 서술자가 한창 나이의 여성남성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스며있고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과 고심이 발자국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때로 그녀의 글은 달리도 읽혀지는데, 오래 사랑한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찢어지는 가슴의 여자가 기록하는 일지 같은 느낌도 은근히 드러난다. 그것은 이혜경만의 사랑을 그릴 때의 문체일 것이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방에 들어와 물기를 닦다, 그만 당신 이름을 입밖에 내는 순간,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았어요. 타일 바닥이 서늘했어요. 채 물기를 닦지 못한 머리에서 타일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에 내 뜨거운 눈물을 버무리면서 오래 울었어요. 평온한 비췻빛이었다가 한순간에 음험하게 짙어진 물, 유유히 헤엄치던 작고 예쁜 열대어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빨려들 것 같은 어둠만 펼쳐질 때의 당황과 공포, 내겐 익숙한 거였어요. 그게 뭐였는지는…… 나중에 기회 되면 말해줄게요. 18p
<너 없는 그 자리>는 초반과 후반의 글 양상이 달라지는데, 갈수록 내 집중도가 떨어진 까닭은 아니고, 분명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난 것이다. 앞의 소설들은 무언가 감추는 게 있다. 작가는 드러내지 않고 계속해서 뒤로 미루거나 서술자가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린다. 독자들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겨야 한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진 진실을 알기 위하여 더욱 꼼꼼히 글을 훑어간다. 그러다가 서서히 정체가 드러나고, 해설을 빌리자면 그것이 '앎' 이다. 이혜경의 소설에서 '앎' 이란 고통을 대변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아니, 고통의 시작. 주인공들은 '앎' 을 통해 둑 터지듯 피가 쏟아지는 느낌을 받으며 슬픔과 고통의 좁은 길에 들어서게 된다. '앎' 이후로 그들은 서늘해지고 처참하게 슬퍼진다.
' 너 없는 그 자리' 에서 경원은 케냐에 출장을 갔다고 굳게 믿은 남자를 서울 한복판에서 운전 중에 발견한다. 발견, 즉 '앎' 이다. 경어로 쓰이던 서간문이 어느 순간 낮춤말로 진행되고, 남자를 발견한 경원은 이렇게 쓴다. "오늘 오후 네시 십오분, 뱅뱅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재색 비바리, 당신 맞지?" 곁에 없는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자의 심정으로 읽히기 시작하다 읽어갈수록 공허하고 텅빈 듯 이상한 구멍들이 이 문장에서 맞부딪히며 절정을 맞는다. 추궁하고 심문하는 듯 날카롭게 날아오는 질문들은 어쩐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 소설은 한 여자의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원은 남자를 운명의 상대로 받아들였으나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되레 경원에게 "경원씨가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우린 그저 한때 같은 직장 동료였을 뿐이에요." 하며 거부한다. 경원이 수도없이 거는 전화를 받지 않고 천장 위를 기어가는 바퀴벌레 보듯 그녀를 째려보고. 이렇게 본다면 남자를 그리워하며 회상했던 경원과 남자의 아름답던 추억은 여자의 착각이 아닌 회피일지도 모른다. 현실과 진실에서 회피하여 거기에서라도 사랑하고픈 심정. 어쩌면 위의 인용문에서 여자가 무릎을 꿇어가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까닭은 자신의 애처롭고 비참한 모습을 동정한 것이 아닐까. 혹은 남자를 가지지 못한 슬픔과 분노에 울었던 것일까.
<너 없는 그 자리>는 사랑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초반 몇 개 소설은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 일방적인 사랑, 일방적이 아니었으나 결국은 일방적으로 판명난 사랑, 상호적인 사랑에서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혼자가 되는 사랑, 아픔을 잊기 위해 선택한 사랑…. 이혜경은 '한갓되이 풀잎만'에서 이렇게 말은 해두고 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그러나 이혜경의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는 것을 택한다. '감히 핀 꽃'의 시아버지는 평생을 집 떠나 살다가 죽기 다 되어 본가로 들어오는데 간병인으로 데리고 온 사람이 알고보니 사랑을 나누던 사람이었다. 이렇듯 주인공들은 계약보다 사랑을 중시한다. 특히 사랑은 맹목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덮어놓고 사랑한다. 그저 사랑한다. 그러다 당한다. 이혜경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당한다. 맹목적으로 사랑하다 당한다. 덮어놓고 사랑하다 당한다.
죽음은 후반에 이르러 얼굴을 빼꼼 내밀기 시작한다. 5번째로 실린 소설 '감히 핀 꽃'에서 시작되어 7번째 '꿈길밖에 길이 없어'까지, 총 3작품에 죽음이 등장한다. '감히 핀 꽃'은 늘그막에 죽는 거니 넘어간다치고 '금빛 날개'와 '꿈길밖에 길이 없어'의 죽음은 무언가 의미심장하다. '금빛 날개'는 한 중년의 남성의 글이다. 그는 가족들에게까지 천대받던 무지하고 무식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일하게 명문 대학을 나와 병원을 개업했다. 그는 그야말로 돼지 같이 꿀꿀대기만 하는 가족들과 연을 끊고 지낸다. 그러면서 어릴 적 친척들에게 들은 비난과 동정, 거짓 긍휼의 발화들로 인해 매사에 부정적이고 무심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것은 결국 애지중지 키우던, 어떻게든 잘 살게 해주겠다고 다짐한, 그에게 전율을 불러 일으키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 큰 아들을 죽게 만든다. 불량배에게 칼을 맞고 아버지의 병원 문을 두드린 아들을 아버지는 외면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외면했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외면한 것이다. 사랑과 무심의 괴리는 이토록이나 처참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는 가장 짧다. 그러면서도 울컥한다. 갑선은 축 처진 사람이다. 우울하고 순박하고 숫하다.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돌아다니는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힘들다. 아껴쓰기는 자린고비 저리가라인데다 어깨에는 보통 사람의 수십 배 부담과 피로가 얹혀 있다. 그런 갑선이 어느날 불쑥 알로하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다.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고 무슨 일인지 돈을 펑펑 쓴다. 갑선의 이발소 단골 손님이었던 김씨는 이상하게 여기고 이곳저곳 알아보고 다닌다. 깨달았다. 갑선은 미쳤다. 김씨는 건강검진의 핑계를 대며 정신병원에 갑선을 밀어넣는다. 사람 잘 믿는 갑선은 어수룩한 거짓말에도 감쪽같이 속아 정신병원에 머무른다. 시간이 흐르고 통장 잔고가 바닥나기 시작하며 갑선은 예전과 같이 돌아온다. 그렇게 퇴원하고, "선생님, 저는 왜 미쳐지지도 않는 걸까요?" 하는 말과 함께 목을 맨다. 이 죽음은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갑선의 한탄은 그동안의 고통을 극한으로 함축해 놓은 듯하다. 얼마나 심하고 처절한 고통이든 부담이든 피로이든 참고 인내해오던 남자의 끊어져버린 정신줄. 얼마나 닳았으면 끊어지기까지 했을까. 어느 정도로 힘들었을까….
이혜경의 소설은 힘들다. 해풍처럼 강하게 밀려오는 바람을 견디기 힘들 듯 읽기 힘들다. '앎' 은 이혜경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고 사랑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이혜경의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의 단편을 읽는 것이다. 과거와 과거, 과거와 현재가 버무러져 뿜어내는 고통의 아우라를 우리는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