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세계문학의 숲 40
카슨 매컬러스 지음, 서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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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신앙이나 종교가 없지만 가끔 기도가 하고 싶을 때는 있다. 두손을 모으고 감사합니다 혹은 제발(!)이라고 시작하는, 주문같은? 그러니까 내밀하고 간절한 무언가를 눈을 감고 소리내서 입밖으로 중얼거려보고 싶을 때가 있다. 뭘까, 이 마음은 어떤 원초적인 소통의 요구인가?

기도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어릴때 할머니 따라서, 동네 친구들에게 떠밀려 드문드문 주일학교를 가곤 했는 데, 부모님이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 같았고, 무엇보다 엄마아빠가 믿지 않는 사람이라서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거기는 천국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자 발을 딱 끊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어쩐지 기도가 하고 싶어진 것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였다) 나는 그것(눈을 감고 손을 모으는 것)을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무척 어색해하면서 혼자 피식 웃고 서둘러 끝냈던 것 같다.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이제라도 기도하는 방법을 좀 배워볼까도 싶은 데, 신앙을 갖고 싶은 건 아니고… 기도 포즈가 좀 우아한 것 같아서… 생각 난김에 연습을 좀 해봐야겠다. 각잡고 으쌰, (안되겠다 자꾸 콧구멍이 벌렁거려진다) 비신앙인이 기도하면서 자의식 안느끼는 방법 아시는 분?

기도가 사라진 자리.
신앙인이라면 내 안의 신과 접속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아하게 손을 모으고 경건한 표정이 지어질 그 순간, 에 나는… 아무래도 입을 비틀고 눈을 부라리며 쉬발- 혹은 쓰벌-을 뇌까리고 있는 것 같다. (응?)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행복할 때나 감사할 때나 심지어 소원을 빌 때에도 오! 주여! 처럼 외쳐보는 그 단어! 아, 쓰벌… (혹은 아 쓰벌?! 아 쉬발~) 그런데 이 욕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고 어쨌든.

그래도.

신앙이 없는/ 믿음이 없는/ (사랑도 꿈도 이젠 욕정… 마저도… 없는…아 욕망은 있다, 내 집 마련의 욕망ㅋㅋㅋㅋㅋ) 인간도 어떨 때는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거다. 기도 비슷한 걸 하고 싶어지는 마음. 왜냐면 나도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원래 그런거예요. (😹)

그르게…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읽는데, 왜 나는 자꾸 기도가 하고 싶었을까나. 싱어의 방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네 명의 손님 모두가 그에게 기도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답없이 오로지 따뜻한 응시만을 돌려주는 체온을 가진 존재, 알수없는 표정의 벙어리 주인공 앞에서 실컷 떠들던 그들은 조금은 온순해지고 또 조금은 후련해진 듯한 얼굴로 싱어의 방에서 나와 다음의 삶을 살아간다.

너는 나를 이해하고 있지? 라며 쉼없이 재잘재잘 대는 비호감 인물들의 장광설 같은 고독과 1도 공감해주고 싶지 않은 외로움. 그런데 그게 또 어딘가는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이야기들이라 마치 내가 싱어가 되기라도 한 듯이 평온하게 들어(읽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코플랜드 박사는 아들 이름을 카를 마르크스로 짓는 게 실화란 말이냐…-_-ㅋㅋㅋ 개뿜었음)

소설이 묘사한 싱어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 역시 그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쉼없이 재잘거려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 관대한 마음이 든다. 이것은 오묘한 이입이다. 싱어에게 떠들고 싶다가도, 어느새 싱어가 되버리는 이입. 그런데, 아- 저에겐 그리워 미칠것 같은 안토나풀라스가 없네요. 응(?) 응. 그렇구나. 싱어의 비결은 안토나풀라스였구나(깨달음!)! 아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나 방금 안토나풀라스 의식적으로 삭제한 거 같은 데 ㅋㅋㅋ) 그러고 보니 이 소설도 퀴어한 느낌이 좀 있다.

기도. 무언가가 확 끼쳐오는 어떤 순간에 후다닥 재빨리 할 수 있는 의식과 같은 것. 그것이 있는 삶은 조금 더 살만한 모습일 것 같다. 아니면 신앙 비슷하게 내 마음 안에 언제라고 떠올릴 수 있는 혹은 떠올려도 좋을- 굳건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설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지, 왜 굳건하고 단단한 마음안에 떠올릴 무언가로 삼을 것이 무엇이냐 했을 때, 외로운 나의 마음은 마치 사냥꾼처럼 내 돈 벌어/ 내가 산/ (이게 중요하다) 책탑이 쌓여있고 홉스가 있는 소박한 내 아파트 따위를 그리고 있는 것이냐… 별 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나.의. 아파트…. 에이씌, 나, 자본주의 생존욕망 밖에 없는 좀비 같은 존재인 건가… 그래.. 뭐 어쩌겠어… 인정하자. 나 좀비다. 좀비도 때론 기도가 하고 싶다. 대상은 미래의 내가 살 아파트.. 🙄…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쨌든 아까까지 저는 싱어의 얼굴을 떠올리며 무척 평온했는 데, 왜 이거 쓰는 현재시각 밤 열두시 1분. 옆집에서 두 청년이 생목을 뽑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거죠? (-_-? 왜죠? 옆집 머스마들아, 그만해..) 세상의 모든 부르짖는(?) 발라드를 없애버리고 싶은 파괴본능이 피어 오르는… 나 자신의 절제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무척이나 기도가 필요한 밤이다..

기도. 기도를 좀 배워야겠다.


벙어리의 눈은 고양이 눈처럼 차고 부드러웠고 온몸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술꾼은 흥분해 있었다.
"당신은 여기서 내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사람이야." 블런트는 말했다. "이틀 동안 나는 마음으로당신에게 말하고 있었어. 내 말뜻을 당신이 이해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 P35

싱어는 바로 그 친구에게 가슴속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싱어만이 현명한 안토나풀로스를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먼저 싱어의 마음속에서 친구는 점점 자라는 듯했고, 밤이면 어둠 속에서 진지하고 오묘한 표정의 친구 얼굴이 나타났다. 친구에 대한 기억들은 싱어의 마음 속에서 변했다. 싱어는 잘못된 것, 어리석은 것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현명하고 좋은 것만 기억했다.
싱어는 큰 의자에 앉아 있는 안토나풀로스를 보았다. 그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의 미친 얼굴은 불가사의 했다. 큰 입은 미소 짓고 있었다. 두 눈은 심오했다. 그는 말하는 사람을 응시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그는 이해했다. - P253

그들은 대단히 바빠. 얼마나 바쁜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하루 종일 밤새도록 일에 매달린다는 소리가 아니야. 그들은 늘 마음 속에 너무 많은 관심이 있어서 쉴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내 방에 와서 말을 해. 난 그들이 어떻게 지치지도, 쉬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 P264

하지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너를 보고 싶은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곧 다시 갈게. 내 휴가는 여섯 달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그 전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래야만 해. 너 없이 혼자 있을 수가 없어. 너는 나를 이해하니까.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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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3-07 0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대상이 신이기 때문에 기도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지, 기도도 결국에는 서로 간의 솔직한 대화가 아닐까 싶어요 ㅎㅎ 쟝님의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공쟝쟝 2022-03-07 01:15   좋아요 2 | URL
저도 라파엘님이 건강하시길 제 미래의 아파트에게 기도합니다 🙏 (다정함에 장난 뿌리기…ㅋㅋㅋ)

라파엘 2022-03-07 01:18   좋아요 2 | URL
장난꾸러기 쟝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잘게요!! 평안한 밤 보내세요 😊

공쟝쟝 2022-03-07 01:21   좋아요 2 | URL
ㅠㅠ 천사다 ㅋㅋㅋ 맞아 라파엘도 천사지? 대천사님 잘자요🥺

단발머리 2022-03-07 0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님을 위해 기도할 때 아파트도 넣어서 기도할게요. 전 솔직하게, 소탈하게, 격의 없이 하는 기도를 좋아합니다. 저 자신이 거룩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고, 다윗의 기도가 다수 수록된 <시편>을 보면 다윗도 그렇게 기도하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주여!‘도 상당한 좋은 기도에요. 내용을 마음에 다 담아서, 주여~~~~ 이렇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나잇!!!

공쟝쟝 2022-03-07 08:28   좋아요 2 | URL
아, 역시! 기도하는 단발머리님을 생각해봤어요! 흐흐 제인에어 느낌의 우아하고 ㅋㅋㅋ 그의 기도 내용은 주여.. 우리 쟝쟝이 번창하여 무엇이든 되어 제게 용돈 봉투를 ….😭😭😭
할머니는 주여 가음사합니다! 라고 항상 기도를 시작했어요. 어릴때 저는 그게 이상했는 데, 살면서 조금은 알것 같거든요. 감사합니다로 시작해서 소망으로 끝나는 어떤 …

Falstaff 2022-03-07 0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쓸쓸하고, 고독한 미국 남부의 정경이 눈에 선뜻하군요!

공쟝쟝 2022-03-07 08:30   좋아요 3 | URL
너무 괴상하고 쓸쓸하고 외로워서 벌벌떨리는 동화같은 인물들이 카슨매컬러스의 전매특허 인가봐요. 저는 이 묘한 분위기가 좋아요. 골드문트님 리뷰 찾아봐야겠어요. 역시 북플에선 안보입니다!

새파랑 2022-03-07 0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도하는 공쟝쟝님의 모습이 궁금하군요 ㅋ 물질적인 기도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 합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아파트 꼭 가지시길 제가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ㅋ (전 무교임 ^^)

공쟝쟝 2022-03-07 08:45   좋아요 2 | URL
일단 손바닥 편 버전은 잘 안되고요 손깍지 버전도 안되고 손 크로스 버전으로 자세 딱 잡고, 캄사..합니다… 까지 했는데 누구한테? ㅋㅋㅋㅋㅋ 저 존경하는 인물 정조 인데 정조한테 할까요? 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막 돌에 하자니 너무 기복 신앙 같고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
물질적인 기도 말고 친구들의 안녕을 위해서 할겁니다 ㅋㅋㅋ 😬

mini74 2022-03-07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도가 누구의 전유물도 거창할것도 없죠. 쟝쟝님 이번에 아파트교 하나 만드시는 거 어때요 ㅎㅎㅎ

공쟝쟝 2022-03-08 02:25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맙소사, ... 아파트 교라니.. 너무 세속적이예요! 제가 막상 기도가 떠올라야할 순간에 떠올리는 건 쉬발이니까 쉬발교... (... 어 그거 아니야..) 제가 어떤 영적 종교의 교주가 되기에는 카리스마가 많이 부족하기도 하구요, 기도도 못하는 미미한 자의식으로 교단을 창설할 수는 없습니다. 교주같은 건 될 수 없습니다.

그레이스 2022-03-07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보시면 후다닥 재빨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쟝쟝 2022-03-08 02:27   좋아요 1 | URL
아, 그래요? 역시... 답은 살 던대로 사는 건가? 기도가 아니라, 넛지? 이런 느낌으로 뭔가 체크할 게 필요한걸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