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예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하면서 나는 별로 걱정이 되질 않았다. 아기 때부터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사람들 틈에서 커서 그런지, 사회성 하나는 끝내주는 네살배기 였으니까. 역시, 나의 예상대로 다른 아이들은 엄마 찾아 울기만 한다는 어린이집 적응기간 동안, 예진이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밥을 세 그릇(!)씩 먹으며 끝내주는 적응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3월 중순, 나는 연우를 낳으러 친정으로 내려갔고....엄마와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이 불쌍해서 연우가 태어난 지 3주가 지나자 예진이도 외가로 데리고 와서 한 2~3주를 룰루랄라 놀았다. 그런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그 때부터가 문제였다.
동생도 보고, 출산휴가 받은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도 알아버리고(그것도 자기가 받을 사랑을 몽땅 빼앗아간 묘령의 아가와 함께!), 몇 주 어린이집을 쉰...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예진이는 그 무섭다는 '등원거부 아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이집 가자고 하면 발딱 일어나 잘 챙긴다. 가방을 매고 버스를 기다린다. 그런데, 막상 버스가 도착해서 다른 친구들이 타기 시작하면 뒤로 내뺀다...TT 어떤 날인가는 안 되겠다 싶어 무릎 나온 츄리닝에 기름낀 머리를 하고 함께 어린이집으로 가기도 했지만, 결국 문 앞에서 10분이 넘게 대성통곡하는 예진이를 데리고 돌아와야 했다. (원장 선생님,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지난 재롱잔치 때 내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라더군...쩝.)
그래서 작전은 변경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도 일하러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진이가 준비를 하는동안 나는 세수도 않고 슬리퍼를 끌고 "엄마 다녀올께~"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놀이터에 숨어서 예진이가 버스를 타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쑈도 예진이의 머리가 커지면서 점점 힘들어졌다. 어느 날은 나가는데 "엄마, 가방도 안 들고 가냐?"(지가 마음에 안 드는 일 있으면 이주일 스타일의 반말을 하는 진) 하기에 "아, 맞다. 깜박했네. 고마워~TT"하고 가방을 챙겨 갔다. 얼마 후에는 신발을 잘 못 신고 갔다고 하기에 구두로 바꿔 신고 갔고....
오늘 아침, 어쩌다 쉬는 평일,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입던 옷 위에 잠바를 입고, 빈 가방까지 들고 나섰다. 그런데 뒤따라 뛰어 오는 예진이. "엄마, 그러고 가면 추워!" 앗...귀찮아서 양말을 안 신었더니..."아, 괜찮아.^^ 엄마는 양말 안 신어도 돼." "그거 말고, 바지. 그렇게 얇은 바지 입고 나가면 어떻게 해. 그리고 세수도 안 했네? 부끄러워 엄마." 아이고...
결국, 나는 세수도 해야 했고 바지도 갈아입어야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예진이가 밥먹는 틈을 노려 현관이 아닌 문간의 삼촌방으로 안착했다. 밖이 얼마나 추운데...다행이다. 아아아...애가 커 갈수록 거짓말도 힘들어진다. 이러다가 조만간, 화장까지 하라고 하는 건 아닌지. 어쩔 땐, 저것이 다 알고 엄마를 놀려먹는 게 아닌가...싶기도 하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