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 현재 내가 외우고 있는 국민 교육 헌장은 여기까지이다. 중간은 생각나지 않고 마지막 부분인 [ 새역사를 창조하자 ] 가 떠오른다.

내가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을 그나마 외우는 것은 국민학교 시절 글씨쓰기 대회가 열릴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던 것이 애국가, 국기에 대한 맹세와 더불어 국민 교육 헌장이기 때문이다. 슬며시 잊혀졌던 이 구절을 다시 떠올린것은 박민규의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이라는 소설속의 구절에 머리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던 때였다.

소위 경필대회라 불리던 글씨쓰기 대회에 처음 나간 것은 국민학교 2학년때이다. 그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당시 축구와 놀이에 정신없던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 출전 의사를 물어볼 것도 없이 딱 한마디를 던졌다. " 야, 니 몇시까지 연필이랑 지우개 가지고 어느 학교로 가 "  흙투성이가 되어 가방을 던져놓고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학교에 도착하니 자리를 배정해주었다.

대회 시작, 국민교육헌장 쓰기였다. 한참을 써내려가다 그만 연필을 떨구었다. 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연필심이 부러졌다. 한참을 망설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까지 나는 경필대회가 열리는 곳의 풍경을 보지 못했다. 모든 아이들 옆에 엄마가 같이 앉아 연필을 깍아주며 잘못쓴 글씨를 지목해주는 광경이었다. 괜히 먹먹해오는 기분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칼을 빌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빨로 연필을 물어뜯어 다시 글을 써내려갔다. 국민 교육 헌장 위로 떨어지던 몇방울의 눈물, 아마 어린 나이에 꽤나 서글펐던 모양이다. 소위 똥종이로 불리던 갱지는 금새 얼룩졌고 지우개질 한번에 찌익 찢어지고 말았다. 대충 얼버무려 재출하였다. 결과는 장려상이었다.

경필대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언덕위에서 동네 오징어 덕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동생을 들쳐업은 어머니가 정신없이 고단한 몸을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고 그냥 말없이 돌아섰다. <앵무새 죽이기>의 스카웃 핀치가 부 래들리를 그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면서 자신이 부쩍 성장한것 같다는 생각을 하듯이 나도 그때 부쩍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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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12-0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같이 앉아 연필을 깍아주며 잘못쓴 글씨를 지목해주는 광경 속의 그 아이가 아마 저 일듯 합니다. 어머니의 과보호 덕분에....전 아직 미성숙 그 자체 입니다. 남들은 너무나 당연히 그리고 쉽게 하는 홀로서기, 제겐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금두요.... .엄마의 그 사랑 .....지금은 조금 알지만.... 언젠가 엄마와 나눈 대화에서 엄마도 그러시더군요. 그때는 그게 최선인줄 알았다.... 전 연필을 물어뜯는 님의 모습, 너무 멋있기만 합니다. ^^ ....

파란여우 2004-12-02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은 내 엄마가 다시 생각나는 페이펍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 얻어온(시식용) 포도주 한 잔 마시고 자야겠군요. 핑계김에 한 잔 한다고 하시겠지만 님의 글을 읽으니 생전에 제 불효가 또 맨정신으로 자게 내버려 두질 않아요. 이럴때는 와인이 참 요긴하죠. 그나저나 위에 계신 저 이쁜 미녀분하고는 와인 나발 불기로 했는데...잉크님의 글은 국민교육헌장이 아니라 엄마 얘기였다구요. 아시죠?^^

잉크냄새 2004-12-0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 / 님의 당당한 글과 모습, 너무 멋있기만 합니다.

파란여우님 / 님은 이제 국민교육헌장을 보면 포도주가 생각나겠군요. 와인 나발 불기 창단식에 저도 참여할랍니다.

진주 2004-12-03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입학식에만 엄마하고 같이 간, 즉 초등학교 졸업, 중고대의 입학졸업을 몽땅 혼자 한 사람도 있으니......너무 빨리 어른되는 연습을 한 사람에게 도리어 위로 좀 해 주세요....

2004-12-05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4-12-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 그래요.^^
 


우리 인디언들도 종교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조상 대대로 그 자식들에게 전해져 왔다. 그 종교는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서로 사랑하라 이르고, 서로 기대어 살라고 일깨웠다.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선 왈가불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는 각각의 사람과 신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P136 ]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갈망과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은 우리의 얼굴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신은 다만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 P138~139 ]


신과의 만남이 침묵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인간의 언어가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영혼은 말 없는 가운데 신에게 다가가곤 했다. 신과의 만남은 홀로 있음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었다. 신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우리 자신과 가깝기 때문이다. [ P139 ]


오히예사 < 인디언의 영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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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많이 나면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이 인디언 관련책입니다. 잘나자빠진 정치가 어쩌고, 이념이 어쩌고 하는 그런것들 말고요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인디언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플레져 2004-12-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인디언 관련 책을 읽고 싶어서 늘 주목하고 있어요. 어떤 게 좋으려는지... 이 책을 한번 봐야겠네요. 땡스투..........^^

미네르바 2004-12-02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우리 자신과 가깝기 때문이다. > 그래서 저도 자주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이 책 저도 읽어 보아야겠어요.

잉크냄새 2004-12-0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인간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감동적이죠.침묵과 경외감으로 가득한 그들의 삶은 항상 감동적이죠.

플레져님/ 다른 좋은 책 있으면 저에게도 추천해주세요.

미네르바님/ 님은 벌써 신과 가까이 계신 분이잖아요.
 





S를 위하여


- 김 춘 수-


너는 죽지 않는다.


너는 살아 있다.


죽어서도 너는
시인의 아내,
너는 죽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너는
그의 시 속에 있다.


너의 죽음에 얹혀서
그도 죽지 않는다.


시는 시인이 아니지만
죽은 너는
시가 되어 돌아온다.


네 죽음에 얹혀서 간혹
시인도 시가 되었으면 하지만,
잊지 말라,
언제까지나 너는 한 시인의
시 속에 있다.


지워지지 않는 그
메아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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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1-2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마지막 시를 음미합니다.



시 퍼가겠습니다.

비연 2004-11-2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잉크냄새 2004-11-30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이 먼저 떠난 부인을 그리며 쓴 시라고 하네요.

S는 부인의 첫 이니셜이라고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네르바 2004-11-3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결국 가셨군요. '꽃'을 남겨두고

저도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 한번 그 분의 시를 음미해 봅니다.

icaru 2004-11-30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라... 저의 이니셜이기도 합니다 ^^

파란여우 2004-11-3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춘수..일제와,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경력이 먼저 떠오르는 저는....참...그래도 그의 꽃은 좋아해요...왕성한 시작을 하시다 가신 분이지요.

잉크냄새 2004-11-30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얼마전에 알라딘 서재에 김춘수 시인이 투병중이라는 글이 올라왔던 기억이 납니다. 님의 말씀처럼 '꽃' 을 남겨두고 떠나셨군요.

복순이언니님/ S 는 슈퍼맨의 이니셜이기도 합니다.^^

파란여우님/저는 이번에 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내용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문제와 별개로 참 좋아하는 시이고 시인이지요.

2004-11-3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01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다음은 『장정일 삼국지』의 발간취지를 고양하고 내용에 관한 정확하고도 폭넓은 이해를 돕고자 작가 장정일 씨에 의해 작성된 글입니다.


<나의 삼국지 이야기>


1. 내가 『삼국지』를 쓰게 된 까닭

5년 전 김영사로부터 『삼국지』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나는 뭔가 ‘점지’ 받았다는 생각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삼국지』는 자신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번역이나 개작·윤색을 할 수 없는 책이다. 우선 분량부터가 한두 권짜리가 아닌 10권 길이의 대작이라 제작비가 엄청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삼국지』 시장에는 늘 자신보다 먼저 시장을 점거하고 있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김구용 앞에는 김광주가, 김광주 앞에는 박종화가, 박종화 앞에 또 다른 선행 판본이 있다는 것은 제작비를 훨씬 뛰어넘는 기획비용을 지출하게 한다. 따라서 『삼국지』는 탈고하고 나서 출판사를 찾는 평범한 집필·출판 관행에서 벗어나, 번번이 출판사가 작가를 점지하는 기획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우쭐해지는 기분과는 달리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차례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한 번도『삼국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반감이었다. 작가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평소에 생각해 왔기에, 이름 난 고전에 자신의 개성이나 명성을 살짝 덧씌워 내놓는 개작이나 윤색은 진정한 작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삼국지』에 달려든 유명 선배 작가들을 은근히 마음속으로 경멸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기나긴 세월이 받들어 모시는 여러 고전 가운데 유독 ‘남성적 서사’가 지배적인 『삼국지』와 나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또 체질과 상관없이 『삼국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늘 업신여겨왔다.
그래서 나는 ‘한문도 모르고 번역도 못한다’는 이유를 방패로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출판사는 ‘또 한 권의 번역본을 추가하려고 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글작가 장정일만의 고유한 해석과 관점이 들어 있는 새로운 판본이다’라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솔깃했다. 그 까닭은 『삼국지』 제의를 받기 한 해 전에 나는 진시황과 그 아들간의 권력투쟁을 그린 『중국에서 온 편지』를 쓰면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구성하는 일로부터 엄청난 매력과 자유를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지』라면? 이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삼국지』를 쓴 허다한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애초부터 『삼국지』를 번역하거나 윤색·개작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망설였다. 『삼국지』를 새로 쓴다는 것은 내가 진짜 쓰고 싶은 일체의 원고 작업을 중단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세월 동안 『삼국지』 하나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점지’가 혹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금전적 보상만큼 작가로서 감수해야 할 손해가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즉답을 피한 채 ‘『삼국지』를 검토할 시간을 6개월만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출판사와 헤어진 바로 그날로 고서점가를 뒤져 구할 수 있는 『삼국지』 판본을 모두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여러 종류의 판본들을 반 년 동안 읽으며 나는 『삼국지』가 새삼 굉장한 책이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를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삼국지』가 굉장한 책이라는 것은 ‘이 책을 가지고 못할 이야기가 없다’라는 세간의 평가가 증명한다. 문제는 『삼국지』가 동양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게 유명무실할 만큼 하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 글을 통해 국내에 번역된 『삼국지』의 문제점들은 물론 소위 원본 『삼국지』 자체가 갖는 본질적 한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겠지만, 3종의 번역본과 1종의 평역본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삼국지』가 읽히지 않을 책이라면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고전으로 취급될 거라면 누군가가 『삼국지』를 새로 쓰는 일보(一步)를 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삼국지』가 군담역사소설(軍談歷史小說)이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삼국의 역사에 덧보태면 안 될 이유가 없고, 또 시대와 인물의 재해석을 통해 『삼국지』 자체를 새로 해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600여 년 전에 편찬된 『삼국지』가 당대의 민중과 시대정신을 반영했다면, 21세기에 읽히는 『삼국지』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삼국지』를 쓰기로 결심한 계기다.


2. 번역의 문제

『삼국지』를 애독하는 사람들은 『삼국지』 하나로 사회·정치·경영·심리·군사·외교·역사·예술 등 하지 못할 이야기가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삼국지』로는 도무지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심각한 장애가 『삼국지』의 다양한 가능성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잘못된 번역 관행이다.
해방 이후 독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명멸해간 숱한 번역본은 물론이고 오늘날 시중에 나와 있는 몇몇 번역본의 문제는 너무나 자명하다. 번역 능력이 전무한 내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학자와 작가들의 오역을 감히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번역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제기하려는 문제는 번역 자체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삼국지』의 독자들은 물론이고 유수의 작가(또는 번역가)들마저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번역된 원말(元末)·명초(明初)의 『나관중(羅貫中)본』과 청대(淸代)의 『모종강(毛宗崗)본』은 현재 중국에서 읽히고 있는 숱한 판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이다. 이것은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 일화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해석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독자를 지닌 『나관중본』과 『모종강본』만이 있을 뿐 정본은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다 역자들은 『나관중본』『모종강본』에만 매달려 ‘이번에 자신이 번역한 『나관중(또는 모종강)본』은 숱한 『나관중(또는 모종강)본』 가운데서도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판본’이라며 실재하지 않는 『삼국지』 정본을 숭앙한다. 정본 또는 원본에 대한 잘못된 신앙을 바탕으로 자자구구(字字句句)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시도의 문제점은 시대의 제약과 한계를 반영한 『나관중·모종강본』이 애초부터 ‘비틀어진 원판(原版)’이었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한 예로 1천 년이 넘게 유지되어 온 조조에 대한 평가는 월단(인물평) 잘하기로 소문났던 허소가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에서 말했다던, ‘그대는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子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 말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한 그 삼국지들은 ‘그 말을 들은 조조가 크게 기뻐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태평성대에는 고만고만한 신하로 만족할게 분명하고, 혼란한 시대에는 더욱 혼란을 부추길 위험한 사람’이라는 허소의 말에 천하의 재사였던 조조가 기뻐했다는 것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후한서』에 실려 있는 「허소전」에 의하면 허소는 『나관중·모종강본』에서와 달리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이요, 난세의 영웅이다(君淸平之奸賊, 亂世之英雄)’라고 말했다. 즉 ‘당신은 태평세월을 혼란하게 할 인물이지만, 오히려 혼란한 세월이 오면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에 젊은 조조는 흥겨워 한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나관중·모종강이 허소의 월단을 왜곡한 것은 ‘영웅’을 ‘간웅’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조조를 능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때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삼국지』를 가리켜 “열에 일곱은 사실, 셋은 허구(七實三虛)”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비교해 보면 장학성의 논평은 중국인의 관용과 과장이 상당히 섞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칠실삼허가 아니라 칠허삼실(七虛三實)이 오히려 더 적확해 보인다. 정사에 따르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비롯해 초선(貂蟬)의 미인계니 적벽(赤碧)에서의 연환계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뒤틀린 원판을 놓고서 번역의 정확성을 아무리 따져본들 생산적인 의제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관중·모종강본』을 정확하게 옮기려고 하면 할수록 독자들은 왜곡된 역사로 가득찬 『삼국지』를 대하게 될 뿐이다.
역사의 왜곡과 함께 원전 번역이 가진 결정적인 약점은 나관중과 모종강이 살았던 시대에는 흥미를 유발했겠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설득력을 잃은 편향적 해석이다. 옹유반조(擁劉反曹)의 시각으로 일관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한족(漢族) 중심의 왕조를 미화해야 했던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분법적인 선악론만 흉하게 도출될 뿐이다. 나아가 황건군(黃巾軍)을 황건적(黃巾賊)으로 사갈시 하는 기술 또한 유교이념이 득세했던 시절의 체재지배적 해석이다. 동학난(東學亂)이라는 비칭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승격되어 불리는 이 시대에, 옛날 옛적 먼 나라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황건기의(黃巾起義)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일에 인색할 필요가 있을까?
짐작컨대 한학자 출신의 번역자들에게는 동양 문화의 정수를 전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탓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원전중심주의에서 한발도 비켜나지 않는 그들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600여 년 넘게 이 땅을 그늘지게 했던 중화주의의 그림자다. 새로운 중국 패권주의가 도래할지도 모르는 21세기에 왜 그렇게 중화주의로 점철된 『삼국지』를 아무 비판 의식 없이 번역하고 군말 없이 읽으려 드는 건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이름난 작가들의 『삼국지』 번역은 한학자들의 원전중심주의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서양의 고전과 달리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소설을 그것도 당대의 가장 이름난 소설가들이 무수히 달려들어 10여 차례나 번역했다면 그건 이미 우리나라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감과 문제의식을 갖고 『삼국지』에 도전한 사람이 없다. 하물며 조선시대부터 관운장이나 조자룡을 몸주로 삼은 무수한 무당(巫堂)까지 있어왔건만, 우리 소설가들 가운데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고 외친 작가는 전무한 것이다.
최근에 나온 한 번역본의 경우 처음 그 책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많은 독자들은 가슴이 설레었다. 민중·민족문학의 좌장이라고 할 만한 분의 작품인 만큼 토종 『삼국지』를 읽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쳤을 때, 그 기대는 말짱 허사가 되고 말았다. 탈식민주의와 문화 주체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소위 민족과 민중을 기치삼아 사회와 문학예술의 일선에서 향도가 되어 왔던 작가의 그 책은 독자와 시대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의 『삼국지』 1권 서문에 “나는 주요한 전투장면에서는 건조한 원문에다 나름대로의 신명을 얹어서 좀 더 박진감 있게 표현하려고 덧붙여 묘사하기도 했고,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 바로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현재형 문장으로 다듬기도 했다”라고 쓰고 있다. 나름대로 신명을 얹어 덧붙여 묘사했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이 문장은 이제껏 되풀이 돼온 『삼국지』 번역 작업의 실체만이 아니라 고전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슬며시 암시해 준다. 모두들 텍스트를 정역을 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앞선 번역자의 몇몇 오역을 시정하면서 새로운 오역을 더하거나 고작해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현대적 어투로 문체를 갈아 입혀왔던 게 고전 번역의 실주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정역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석이다.


3. 해석의 문제

강조하건대 『삼국지』는 그것이 읽혀지는 시대와 우리 주변의 인물 군상을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다. 때문에 『삼국지』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추출하려고 해야지, 안이한 번역본들처럼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위나라, 촉나라 할 것 없이 중요한 전쟁에는 반드시 평소에 경원했던 ‘오랑캐’를 앞세워 전투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큰 나라라도 전쟁터에서 입을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손실은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위험 부담을 주위의 동맹국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베트남으로 이라크로 파병해야 하는 비애가 여기 있는 바, 『삼국지』는 끊임없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국내의 여러 필자들이 마치 의논이나 한 듯이 원전 중심 번역에 매달려 텍스트의 다양한 가능성을 개봉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삼국지』를 재구성하고 당대와의 대화를 시도한 평역 『삼국지』가 10여 년도 더 전에 출간된 바 있다. 오로지 그 평역만이 천년 전의 중국 역사와 현재간의 ‘역사적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산다. 하지만 그것은 이 땅의 80년대를 견인했던 민중의식에 대한 목적의식적인 대타의식을 갖고 쓰인 만큼 작가의 보수성과 고답성이 면면히 은닉되어 있다. 작가가 그토록 자랑하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설 역시 객기와 객담의 차원에 불과하다.
그 『삼국지』가 작가의 온갖 보수성이 저장되어 있는 창고이자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식견 있다는 사람들은 『삼국지』가 작가의 온전한 저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책을 찬찬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에 태만했다.
『삼국지』를 재구성 또는 재해석한다고 할 때 작가는 도대체 『삼국지』의 무엇을 재(再)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한다는 것일 터이며, 따라서 작가의 역사관이야말로 그것의 옳은 기초가 될 것이다. 하지만 황건군을 어김없이 황건적이라고 명기하는 선민적(選民的)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고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관한 진실마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농민혁명으로 붕괴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역사는 황건난을 ‘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작가가 인간사(人間事)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 바른 이름을 붙여주려고 애쓰지 않을 때,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난이 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폭동이 된다.
민중에 대한 선민우월주의적인 시각과 함께 참으로 아쉬운 점은 ‘『삼국지』가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한족의 선전물 또는 강령일 수도 있다’라는 비판적 시야를 그 평역 『삼국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왕실에 대한 불충과 무단(武斷) 행위가 결코 동탁이나 여포만의 전매특허가 아니건만 그 두 사람은 『삼국지』에 나오는 동급의 여타 주인공들에 비해 시종일관 턱없이 의리 없고 예절 모르는 야수로 묘사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두 사람 모두 중앙의 정통 한족이기보다는 변방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평역을 한다고 했지만 그 『삼국지』 속에는 아직 제3국인의 눈으로 중국인의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 나라(중국)의 고전을 해체하여 그들의 정전을 해체해 보이는 일은 그 나라(중국) 사람들에게도 공헌을 하지만, 그것을 시도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모종의 자각을 준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 빈번히 등장하는 동호(東胡)가 그 당시 요동지방의 주도권을 놓고 한족과 다투었던 고구려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 독자들 또한 조조나 유비의 각축으로 압축되는 『삼국지』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려 들 것이다. 중국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에 대한 평판 역시 동탁이나 여포와 다르지 않으며 그들의 운명이 바로 우리의 운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전을 해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국지』의 경우, 자국의 문화유산이라는 헤어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린 중국인이 하기보다 우리 같은 비중국인이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더 잘해내기 위해서는 꼭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나는 ‘우리 삼국지’가 나와야 된다고 말했지만, 『삼국지』가 우리 것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우선 먼 옛날 먼 땅에서 왔음에도 너무 오래되고 친숙하여 마치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는 무의식중의 착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 삼국지’가 나와야 된다면서 먼저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는 착각과 결별해야 한다는 말에 헷갈릴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런 혼란조차 중화주의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500년이라는 조선 역사를 운영해왔던 소중화주의 유산의 비애라고 보면 된다. 실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삼국지』에서 파생된 많은 단어들이 시사용어나 중고등학생들의 시험 문제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읍참마속이니 삼고초려니 괄목상대니 백미니 하는 단어들은 우리 생활 속에 마치 우리 역사의 일부인 듯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제껏 『삼국지』와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가 없는 모종의 일체감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삼국지』를 읽는 한국 독자들은 항상 유비를 ‘우리 편’으로, 또 조조를 ‘나쁜 편’으로 정해 놓고 읽게 되었으며 유비 삼형제가 모두 죽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한숨을 쉬며 흐지부지 독서를 중단하기까지 하니 이게 바로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고 여겨온 우리의 무의식이다. 이제 그것과 결별해야 한다. 우리는 유비의 편도 조조의 편도 될 필요가 없다. 대신 전투로 날이 새고 지는 그 시대에 대한 해석을 통해, 말썽 많은 오늘날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지혜를 얻으려고 해야 한다.
역사의식 부재와 중화사관이 주변화시킨 변방인에 대한 애정이 전무하다는 비판과 더불어, 형식상의 불일치 또한 그 평역 『삼국지』의 취약한 부분이다. 어느 대목에서는 평설이라는 형식으로 서구의 현대적 이론을 날것으로 피력하면서, ‘전설 따라 삼천리’나 다름없는 제갈량의 동남풍 일화는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다. 인과성과 사실성이 결여된 ‘이야기’의 세계와 그것들의 합산이고자 안간힘 쓰는 ‘소설’의 세계가 두서없이 혼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모두가 원전에 압도되어 새로운 판본도 철저한 정역도 할 수 없었던 작가의 어정쩡한 타협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4. 『삼국지』, 누군가 바로 써야 독자가 바로 읽는다

현대인의 가치 판단으로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믿었던 가치와 이념을 일방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워낙 많은 한국인들, 특히 남성들이 이 소설을 무슨 통과의례처럼 읽기 때문에 『삼국지』 속에 나타나는 존왕충군(尊王忠君) 이데올로기와 성리학에 기초한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깊은 주의를 요한다. 한실부흥의 명분을 내세워 고군분투하는 유비의 모습을 보면서 천명 받은 군주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게 충의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불행해진다. 예를 들어 80년대 초에, 자신들의 주군이 만들어 놓은 유신체제를 지속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한강다리를 건너왔던 일단의 정치군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겉으로는 복한(復漢)을 외치면서 내심으로는 새 왕조를 꿈꿨던 유비처럼 13년간이나 정권을 찬탈하고 개인적 야욕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는 지역감정의 씨앗을 이 땅에 뿌려 놓지 않았는가? 이럴 때 『삼국지』는 주군은 물론이고 주군의 실정을 목숨 걸고 탄핵하기보다 맹목적으로 따르기로 작정한 잘못된 정치적 멘탈리티를 가진 인물들을 양산하는 좋은 배양지가 된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과 평역본으로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삼국지』 독서 체험을 바꿀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삼국지』는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 한(漢)나라 말기 중국이 위·촉·오로 분열된 채 약 100여 년 간 싸우던 시절의 군담역사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에는 한대(漢代)에 이르러 중국의 통치 이념으로 공식화된 유교주의 가치관과 인간 이해 방식이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송 때부터 발달한 주자(朱子)의 성리학이 나관중이나 모종강 같은 유명한 『삼국지』 편찬자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던 탓에, 어떤 인물은 괜찮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이 희화화되거나 사소하게 지나쳐가고, 반대로 어떤 인물은 겉과 속이 다른 무능력자인데도 영웅시되거나 중시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예로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조차 조조를 악의 화신으로 알고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충의지사로 알고 있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묘사는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의리와 대의명분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유교적 춘추사관의 산물이다.
특히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가 표방하는 유교적 춘추사관을 충실히 보강해 주는 것이 『삼국지』 속에 삽입된 총 210수에 달하는 시(詩)다. 『삼국지』의 편찬자들은 한 편의 일화나 한 개의 장(章)이 끝날 때마다 긴장된 서사를 이완시켜주는 한편 방금 끝난 일화나 장을 평가할 목적으로 삼국시대나 그 이후에 활약했던 문인들의 시를 찾아 넣거나 직접 써넣었는데, 그 시들이야말로 춘추필법의 정수가 고스란히 고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지』에 삽입된 원시들에 의해 유비(촉)는 언제나 찬양되고 그 외의 제후장상들은 역도로 폄하받거나 어리석은 자로 조롱받는다. 가장 놀랄 만한 예는 전장에서 조운이 한덕의 아들 넷을 차례대로 죽이고 난 직후에 나오는 시다.
“저 옛날 상산 조자룡은/ 나이 일흔에도 커다란 공을 세웠도다/ 혼자서 젊은 장수 넷을 죽였으니/ 지난날 당양에서 주인을 구하던 기개와 같구나.”
원래 어진 이는 대(代)를 끊지 않는다고 했으나, 상대가 조조군이면 애도의 대상조차 못 되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최근의 번역본 『삼국지』는 그 간에 나온 번역본들이 원시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소홀히 취급했다면서 전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210여 수의 시를 완벽히 번역해 넣었다고 자랑하지만, 우리가 그 독(毒)을 고스란히 받아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 편찬자들은 한껏 서정적인 시를 이용해 옹유반조는 물론이고 중화주의와 국가유교의 온갖 도그마를 주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원시의 저자들이 하나같이 당대의 고급 문인 관료들이었기에 영웅들의 삶과 죽음만 미화되고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은 어디에서도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독자라면 ‘『삼국지』의 문제는 바로 『삼국지』에 들어가 있는 시’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에 나오는 시를 거의 다 삭제하고 꼭 필요한 곳에만 시를 새로 써넣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일관하고 있는 춘추필법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선인(청류·유학을 배운 사대부)과 악인(탁류·환관과 외척)으로 정형화하고 이분법화 함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모순되게 약동하는 욕망을 바로 읽지 못하게 한다. 또한 황건군을 사문난적으로 몰아가는 예에서 보았듯이 당대의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이러한 세계관의 제약으로 인해 소중하게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번번이 잘못 기술되고 있다. 바로 이런 문제점이 앞서 예로 들었던 것처럼 자칫 오늘의 우리 역사마저 굴절되게 바라볼 수 있는 맹점을 『삼국지』 독자의 내면에 심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와 같이 영향력이 큰 소설은 누군가가 바로 써야 독자가 바로 읽는다. 청류와 탁류로 나뉘는 중국(한족)의 춘추필법이 황실 내부가 아닌 중화주의로 발현될 때는 한족이 청류가 되고 이민족은 탁류가 된다. 그러므로 몽고족(원나라)과 만주인(청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완성된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가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에 얼마나 충실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삼국지』를 읽는 우리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례로 제갈량이 남만(南蠻)의 추장인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다시 풀어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일화를 거론해 보자. 많은 독자들은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씩이나 적장을 풀어준 끝에 오랑캐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끌어낸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에 경탄하면서 중국인의 배포에 감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일화가 중국인들에게 읽히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칠종칠금 일화에는 중국의 오만한 중화사상과 주변국을 다스리는 중국인들의 오랜 통치술이 응축되어 있다. 그것을 직시한 독자라면 더 이상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이나 중국인의 배포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미련하고 염치없어 보였던 맹획의 행동으로부터 어떤 지혜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만이 한 민족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을 맹획은 일찍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제갈량은 힘들여 정복한 남만에 자치권을 인정하고 군대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런 해석 역시, 누가 바로 쓰지 않고서는 쉽게 고치기 힘든 『삼국지』 독자들의 신화가 되어 있다.
나관중·모종강이 강조한 한족 중심의 중화사관과 관련하여 몇 마디 덧붙여 보자. 『삼국지』가 비록 한족 중심의 위·촉·오 세 나라의 쟁투를 그리고 있긴 하나, 실제로 삼국시대는 숱한 제후들이 각축하던 시대였고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이라 불리는 숱한 민족이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전쟁을 벌이던 시기다. 하지만 두 편찬자는 『삼국지』무대에 비(非)한족을 올리길 극히 꺼려했고, 맹획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설사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한족에 의해 정복되고 감화되는 열등한 미개인으로 묘사한다.
고구려 역사의 귀속을 놓고 중국과 역사 논쟁을 벌이는 이때, 나는 그런 단순한 화이론적 차별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삼국지』가 한족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의 모든 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위나라와 함께 연합작전으로 공손연을 토벌했던 고구려 동천왕의 실제 역사를 복원한 대목이다.


5. 여성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

동서고금을 통틀어 고전이란 늙거나 혹은 젊은 남자들이 즐겨 읽으며 반복해서 익히는 책을 일컫지, 남녀노소가 읽는 책이 아닙니다. 소위 인류의 공적 유산이라고 추앙받는 고전들이 여성들에게는 전혀 친절하지 않은 것이지요. 독서나 교육이 왜 이처럼 배타적으로 고정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한 권의 책이 쓰여야 하겠지만, 『삼국지』는 이런 잘못된 고전 가운데 특히 악명 높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위에는 『삼국지』를 읽었다는 여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여성들의 독서 취향이 ‘말랑말랑’하고 낭만적인 것만을 선호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지요. 진실을 말하자면 무수한 고전들이 그렇듯이 『삼국지』가 여성 독자의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담역사소설이라는 『삼국지』의 서사적 특성상 남성 인물이 대거 등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인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을 갖고 세심히 살펴보면 꽤 많은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것에 오히려 놀라게 되지요. 그런데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축융부인 같은 여장부나 뛰어난 정세판단으로 한 집안을 멸족에서 구해낸 신헌영 같은 인물들은 드물고, 대부분 경국지색을 갖춘 요부이거나 당대의 유교적 충군이념을 보조하는 열녀라는 점입니다. 초선이나 동승의 시첩이었던 운영 그리고 황규의 시첩이었던 춘향이 앞의 부류라면, 아들이 충신(유비)을 버리고 간신(조조)을 찾아왔다고 목을 매어 죽은 서서의 모친과 마초를 꾸짖고 죽은 강서의 모친 그리고 마초 휘하에 있는 아들 걱정으로 싸우기를 주저하는 남편에게 “자식 하나쯤 잃는다고 대사를 그만 둘 수야 없다”고 다그치는 조앙의 처 왕씨는 뒤의 부류이겠지요. 여기에 후주(유선)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보다 먼저 목숨을 끊은 유심의 처 최부인까지 합하면 아무래도 요부보다는 유교적 충군이념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열녀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게 『삼국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서의 모친, 강서의 모친, 조앙의 처, 최부인은 물론이고 중상을 입은 채 유비의 어린 아들(아두)을 안고 조조군의 추격을 받던 중 조운을 만나 아이를 건네주고 자신은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은 유비의 둘째 부인, 손권의 여동생으로 유비와 정략결혼을 했다가 결국 파혼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손부인 같은 황후들마저 하나같이 성명 미상으로 처리되는 것을 보면 『삼국지』의 여주인공들은 각자 개성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당대의 가부장적 국가이념을 널리 알리는 선전수단으로 기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거의 여성잔혹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삼국지』의 여성잔혹 결정판은 그럼 어떤 장면일까요?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며 네 차례나 부인을 팽개치고 도망 다닌 유비의 소행일까요, 아니면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매던 배고픈 유비에게 아내를 잡아(?) 화로에 구워주었던 어느 사냥꾼의 엽기 행각일까요? 여성 독자를 막기 위해 남성 편찬자들이 금줄을 쳐놓은 소설이 『삼국지』입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접근을 막아 놓은 그들만의 흑막 뒤에서 유치한 놀이를 하지요. 저는 여성은 아니지만 『삼국지』를 탈고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만큼 『삼국지』를 싫어했습니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이 도처에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제가 두고두고 웃었던 경우는, 조조의 근거지를 빠져나온 관우가 형수(유비의 부인)를 호위해 위험하고 고단한 먼 길을 헤매며 유비를 찾아가는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유비 일행이 어느 산 속에 들어섰을 때 관우의 명성을 듣고 달려온 황건군의 잔당이 자신들을 휘하에 거두어 주길 원하자, 유비보다 더 융통성 없었던 관우는 단호히 거절을 합니다. 황숙(皇叔)의 군대가 도적 무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에서이지요. 황건군 대장과 그 부하들이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극진히 애원하자, 관우는 할 수 없이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의 수레에 가서 사정을 보고합니다.
『나관중본』『모종강본』을 바탕으로 했던 국내의 번역본들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남편과 황군(皇軍)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감부인의 대답을 되풀이하지요. 하지만 제 『삼국지』 속의 감부인은 수천 년 동안 성실히 수행해 왔던 남성적 수사(修辭)의 앵무새 노릇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장군님, 예로부터 병비일가(兵匪一家)라고 했으니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군인과 비적은 원래 하나라는 것, 제 『삼국지』는 한 가녀린 여자의 입에서 나온 일성으로 남성적 기만의 세계를 통째 거부합니다.
황제에게 반역한 황건군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관우의 대의명분성 발언은 훗날을 위한 명분 축적용은 될 수 있을지언정, 명분으로 치장된 발언인 만큼 현실 인식이 빈약한 언행이라고 해야지요. 실제로 우리 국민은 정국에 따라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근 50년 이상 곡예사 같은 정치 행각을 벌였던 노회한 정치가를 보아왔습니다. 스스로 유신본당(維新本黨)이라고도 밝혔던 그가 잘 못 살았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기회와 보신을 위해 줄을 바꿔서는 ‘철새’들의 행각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어제 오늘에 만연하던 일이 왜 수천 년 전에는 없었겠습니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군웅들 가운데 그 아무도 황건군과 합작한 인물은 없습니다만, 소위 황숙이라는 유비만 유독 황건군은 물론 입장이 불투명한 여러 정치 집단과 합작을 했습니다.
이 글의 첫 장에서 저는 이미 체질적으로 『삼국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 장을 통해서 “저는 『삼국지』를 싫어했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밝혔습니다. 생래적으로 남성적인 폭력의 세계가 싫었던 데다가 권력을 향한 주인공들의 무지막지한 열정은 더 더욱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삼국지』를 써보라는 제의를 받고 검토를 했던 6개월 동안, 저는 매일 밤마다 사람의 목이 떨어지고 어디론가 말을 달려 도망다니는 무시무시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적과 싸우고, 패해서 무릎을 꿇고, 은전을 받은 뒤에 새로운 주군을 위해 생명을 바쳐 싸운다’는 도저히 친숙해지지 않는 남성적 서사가 저를 가위눌리게 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저는 반년 동안의 검토 끝에 『삼국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남성이나 권력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나름대로 판단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여성잔혹극이 두려워서 혹은 도저한 남성적 서사에 질려 아직껏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했던 여성 독자님들, 『삼국지』를 읽어보십시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용호상박의 싸움을 벌이는 남자들의 전 생애가 위선과 자기기만과 모략에 더하여 굴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삼국지』를 보며 비웃어 주십시오!


6. 글을 맺으며

『삼국지』 독자들은 세대에 따라서 자신이 처음 접하고 감명 깊게 읽은 역본이 모두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구의 『삼국지』를 읽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하다. 고전은 되풀이 번역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시대든 그 시대는 자신만의 판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를 낸 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지 않던가. 『삼국지』가 더 이상 읽혀서는 안 될 책이라면 모르되, 그게 아니라면 매 세대마다 그 시대에 맞게 『삼국지』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번역이 아니고 새로운 판본(板本)이 필요하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라면 잘못 번역된 토씨 하나까지 발본색원하여 되풀이 번역되어야 하겠지만, 원래부터 저자가 없었던 연의(演義) 『삼국지』는 언제나 새로운 저자를 구하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한자 번역 능력이 없다. 때문에 단순한 『삼국지』 번역이 아니라 나만의 『삼국지』 판본을 새로 만든다는 각오로 매진할 수 있었다. 선배 작가들처럼 한문 『삼국지』를 거침없이 읽어낼 능력이 있었다면 나 역시 번역이라는 간편성에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원어 능력이 없었기에 오히려 삼국시대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게 됐고, 인물과 사건에 대한 해석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삼국지』가 무의식중에 강요하고 있는 중화주의와 춘추필법을 털어내고 나자, 흥미진진하고 광활한 소설의 세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 소설의 광야에 서서야 비로소 나는 중화주의와 춘추필법을 바탕으로 조탁된 여러 인물들의 메마른 전형성을 벗어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의 피가 도는 주인공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장정일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은 굳이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지를 편가름 하기보다 겉으로는 인의(仁義)·구국(救國)·창신(創新)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권력과 허명을 쫒는 남성적 위선의 세계에 희생당한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수많은 영웅들이 모조리 죽고 책장을 덮을 때,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삼국지』는 자신을 거울처럼 빛내며 우리의 현재 모습을 비춰 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보혁 갈등이 첨예하고 국외적으로는 한반도가 놓여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극심한 오늘날 신판 『삼국지』가 나오지 않고 또 읽히지 않는다면, 시대에 따라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야 된다고 호기롭게 말했던 여러 『삼국지』의 저자들이나 그것을 반겼던 독자들이 서로 멋쩍은 일이 될 것이다. 애초에 내 능력으로는 가당치 않았지만, 5년 만에 탈고된 『삼국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한(韓)·중(中)·일(日), 삼국에서 나온 삼국지 가운데 이만한 『삼국지』는 없다고 자부해 본다. 그러나 신판 『삼국지』가 얼마만큼 높은 완성도를 성취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독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그저 이 판본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이 작가’라는 내 평소의 신념을 독자들이 직접 확인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지』 탈고하고 나서 느낀 역사의 교훈에 대해 한 자 적고 싶다. 『삼국지』의 가장 유명한 편찬자였던 나관중이 썼듯이 역사란 “오래 나누어진 것은 다시 합해지고, 합해진지 오래면 반드시 다시 나눠지는” 것이다. 『삼국지』의 무대가 되었던 1800여 년 전부터 아주 근세에 이르기까지,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합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언제나 영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웅이 앞장서서 통일의 과업을 떠맡을 때마다 이름 모를 무수한 민초들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21세기를 맞이하여 통일이라는 화두를 피해갈 수 없는 우리가 똑같은 비극을 피하는 방법은 먼저 ‘통일의 대업을 내가 이루겠다!’고 외치는 자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일이다. 어떤 영웅에게도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통일에 필요한 소임을 한 가지씩 맡아 행할 때 통일은 온다. 이 말은 신판 『삼국지』와 오래 씨름한 저자가 서문에 꼭 넣고자 별렀던 것으로 이 글의 말미에 다시 한 번 적어둔다.


장 정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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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1-26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지는 예전에 중국 어느 대학에서 완역한 것을 우리나라 어느 출판사에서 번역한 것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명망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다지 새롭다는 느낌을 가질수 없었다. 오히려 비록 만화책이지만 조조를 중심으로 쓴 <창천황로>는 분명 삼국지에 대한 엄청난 시도였다고 본다. 장정일의 말대로라면 <창천황로> 역시 중화사상과 유교중심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어차피 대만사람이 쓴 것이니 당연하겠지.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에 기대가 크지만 삼국지에서 영웅호걸로 일컬어지던 이들의 몰락이 보이는것 같아 한편 아쉽기도 하다.

파란여우 2004-11-26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장정일은 삼국지를 박살(?)낼 작정으로 사는 사람 같더군요. 이문열의 삼국지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자신만의 삼국지를 분석, 재정립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의 신간은 거의 삼국지로 도배하다시피하고 있잖습니까. 작가들은 스펙타클한 그 무엇의 과정을 거쳐야 더욱 성숙되는 것일까요?

잉크냄새 2004-11-2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정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저 지나가는 글에서만 언뜻 보았지만 위의 삼국지에 대한 글에서 보여지는 자신감은 대단하네요. 그가 말한 삼국지를 먼저 출간한 기존의 문인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아먹을 당대 최고의 문객들일텐데, 이 글 자체는 상당히 호전적이라고 할만큼 비판을 하네요.

미네르바 2004-11-2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읽느냐고 숨차네요^^ 전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박종화씨의 번역으로 된 삼국지를 읽었어요. 아버지가 읽고, 언니가 읽고 매일 아버지와 언니가 삼국지 얘기만 해서(혼자 왕따 당하는 기분이라)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구요.(그리고 나서 언니와 아버지의 대화에 나도 끼어들었죠) 그 후 이문열씨가 번역하고, 황석영씨가 또 새롭게 책을 내 놓았는데 다시 읽게 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장정일씨가 새로 쓴다면 어떨까 궁금해지면서 읽어보고 싶네요.

잉크냄새 2004-11-2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독하느라고 혼났답니다.^^ 삼국지를 다시 한번 읽을까 하면서도 쉽사리 손에 잡지 못했는데 이번에 장정일씨의 삼국지가 나오면 한번 읽어볼까말까 고민중입니다. 새로운 시각도 좋지만 영웅의 몰락은 왠지 씁쓸할것 같아요.

2004-11-27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이 먼다는 가정, 얼마나 사치스러운 가정인가. 하지만 마침표와 쉼표만으로 이루어진 문장부호속의 글에 몰입하다 보면 구태여 내가 눈이 멀었다는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오직 목소리와 눈이 멀기 이전의 잔상과 기억에 의해 유추되어지는 불특정 다수의 대화를 쫓아가고 있는 눈먼 내 자신을 볼수 있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

어느날 신호등을 기다리던 한 남자의 눈이 먼다.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눈이 멀기 시작하고 급기야 전염병처럼 온 도시를 눈 멀게 한다. 눈이 멀지 않은 오직 한 사람은 처음 눈이 먼 남자를 진료한 의사의 아내로서 수용소에 최초로 격리된 사람들을 최소한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끄는 나약하나 결코 좌절하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어지는 이성과 가치관, 윤리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지옥을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응시한다. 태초의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를 위해 남겨둔 마지막 희망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하나둘씩 다시 눈뜨기 시작하는 계기는 성당의 눈을 가린 석상의 모습들이다. 신마저 눈길을 돌려버린 순간, 노아의 대홍수처럼 도시를 휩쓴 전염병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악몽처럼 스쳐지나간 현실의 모습은 결국 다시 눈을 뜬 현실의 인간에게 고스란히 남겨둔다. 의사의 아내는 십자가를 짊어진 구원자처럼 눈이 멀어버린다.

눈이 멀기 시작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 집단 이기주의, 폭력, 강간, 살인, 광기, 나약함, 비굴함... 이런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현실속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이룩한 외향적인 문명의 눈꺼풀이 대다수 인간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에서 눈먼자들의 인식은 눈이 멀지 않은 자들의 인식을 따라갈뿐인 것이다. 대다수의 눈뜬 장님들이 만들어낸 인간문명의 광기속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 목울대를 울리지 못한다.

사마라구는 눈이 멀었다는 것은 볼수는 있어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고 말한다. 잠자는 자는 깨울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자는 결코 깨울수 없는 법이다. 이미 정신적 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본성을 육체적 눈이 멀어버린 설정으로 섬찟하도록 묘사한 그의 글은 한동안 백색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눈을 씻고 바라볼 일이다. 세상은 아직 그 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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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11-2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는 자는 깨울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자는 결코 깨울수 없는 법이다! 이 책 찜해둡니다.

하얀마녀 2004-11-2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보관함으로... ^^

파란여우 2004-11-25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분 리뷰를 보고 보관함에 이미 넣어 놨지요^^. 근데 언제 볼라나...저야 말로 눈뜬 장님인가 봅니다. 앙크님의 리뷰는 단순, 간결, 명확이 매력이죠^^

stella.K 2004-11-25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는 자는 깨울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자는 결코 깨울수 없는 법이다. 멋있는 말이네요. 잉크님 어록인가요? ㅋ. 이 작품 좀 어려운 거 아닌가 해서 일단 미뤄둔 건데 리뷰 읽으니 읽어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는...근데 잉크님, 님은 또 언제 이벤트 하실 거예요? 이벤트 하시면 저 이거 선물 받을래요. 하하.

미네르바 2004-11-2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 3월에 읽고 리뷰까지 썼었지요. 읽고 나서도 참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었어요. 감히 까뮈의 <페스트>와 비견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그리고 난 눈뜬 장님이 아닌지 생각했지요. 청맹과니 같은... 그리고 '잠자는 자는 깨울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자는 결코 깨울수 없는 법이다'라는 말... 류시화님의 <지구별 여행자>에서 나온 말이지요. 그 말도 참 오래 남는 말이었는데... 잘 읽었어요. 님의 리뷰를 읽고 제 리뷰를 다시 읽어 보았네요.

잉크냄새 2004-11-2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말씀대로 류시화님의 잠언입니다. 보관함에 넣으셨다면 빨리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대단한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여우님, 저의 리뷰는 단순, 무식, 과격입니다.^^

비연 2004-11-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찜입니다...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진주 2004-11-2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리뷰지만 잉크님의 열렬한 팬들의 찬사 또한 대단합니다.^^

잉크냄새 2004-11-2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고마우신 님들이지요.^^